다 좋은데 제목을 <이토록 재미난 인문학>으로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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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 사람
안삼환 지음 / 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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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을 바라보는 독문학자 안삼환 선생의 첫 소설 <도동 사람>은 여러모로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나에게도 그랬다. 많은 사람에게 낯설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독문학을 전공한 학자의 살아온 발자취를 담은 자서전적인 소설인데 제목으로 고향 동네 이름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시골 출신인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쩐지 내 고향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생각으로 급하게 책장을 펼쳤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있는 포항시 죽장면이 소설의 첫 구절부터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을 하나하나 지도에 찾아보면서 읽었다.

 

영천시 도동이라는 마을에서 시작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집성촌의 이야기, 벼슬을 마다하고 시골에 묻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정겹고 재미났다. 요새 유난히 빠져있었던 유튜브도, 골프 중계도 마다하고 끊임없이 600쪽이 넘는 이 소설을 읽어 나갔다. 출근하고 업무용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것도 잊고 이 소설의 포로가 되었다.

 

토마스 만을 전공한 독문학자의 자서전적인 성장 소설이라고 단언하기엔 <도동 사람>은 그 분량만큼이나 여러 가지 주제와 담론 그리고 서사를 담고 있다. ‘서머싯 몸<인간의 굴레에서>처럼 술술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 그리고 코로나 시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시대를 고스란히 엮었다. ‘존 윌리엄스<스토너>처럼 학문에 정진하는 한 인간의 개인적인 고뇌를 숭고한 인간미로 승화시키면서도 대학 사회의 문제를 더 세밀하고 파헤쳤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나라 독문학계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독문학자로서의 성과와 반성도 펼쳐진다.

 

후반부에 독문학자로서의 여정과 성과를 기술하는 분량이 많아지면서 그 주변 인물들의 근황이 전해지지 않아서 답답해진 나머지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질 정도로 일개 독자인 내가 도동 사람을 마치 친척이나 오랜 친구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루면서도 이토록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소설 서두에 죽음을 앞둔 노학자가 제자인 출판사 사장에게 원고를 넘기는 장면을 마치 추리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중간마다 원고를 읽어 나가는 출판사 사장의 언급을 삽입하는 독특하면서 읽는 재미를 더 하는 장치를 사용했다는 것을 볼 때 이 소설이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도동 사람>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충동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 영천시 도동이라는 동네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 감히 엄두를 못 냈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꼭 읽겠다는 충동, 그리고 안삼환 선생의 작은 딸이 썼다는 창작동화집 <엄마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충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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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낸 <독서 만담>이 4쇄를 찍게 되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독서 만담>에서 엄마와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꼬맹이 딸아이는 이제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 일도 한다. 걸핏하면 심심하다며 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오더니 이제는 ‘일을 하고 있다’라며 하루에 한 번만 통화한다.
늘 앙숙처럼 다투던 아내와 주말부부가 되었고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여간해서 다투는 일이 없어졌다. 주말이면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커피를 마시며 맛집을 찾는다. 가족이 절실해졌고 가족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지막 잎새처럼 소중하다.
세 식구가 아웅다웅 다투던 <독서 만담>의 시절은 지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철이 없었지만 눈물겹도록 그리운 시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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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3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박균호 2021-08-31 13:39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그래이스님

mini74 2021-08-31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남편이 자기를 로또라고 부른다고. 하나도 맞지 않다고 ㅎㅎ 그렇지만 그 부부도 사이좋게 측은지심으로 살아가고 있급니다 ㅎㅎ 4쇄라니!! 축하드려요 ~

박균호 2021-08-31 14:3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8-31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쇄 축하드립니다. 저도 딸 둘이 저렇게 다 떠날 날이 얼마 안남았네요.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하고싶은데 딸들이 항상 저보다 더 바쁘네요

박균호 2021-08-31 17:23   좋아요 1 | URL
자식도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네요

JK 2021-08-31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 책은 작가님께 그야말로 타임머신 같겠네요. 계속해서 행복한 시간 만들어가시길!

박균호 2021-08-31 18:22   좋아요 1 | URL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8-3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4쇄라닛! 인기작가님!!!
지금은 지금대로 너무 좋아보이는데요? 대학생 딸과 1일 1통화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ㅎㅎ

박균호 2021-09-01 05: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감사해요. 하루 한통화는 기본이죵 ㅎㅎ

서니데이 2021-09-01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쇄 축하드립니다.
9월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박균호 2021-09-01 05:43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항상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21-09-1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봤네요. 4쇄 축하드립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네요. 늘 건강하세요.

박균호 2021-09-15 09:43   좋아요 0 | URL
네 언제나 감사합니다. !! 항상 건강하세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은 인터넷이 아니고 여전히 책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빛나는 저작인데 지호출판사에서 나왔다가 절판이 되어서 많은 독자를 안타깝게 한 책이다.

다행스럽게도 서해문집에서 새롭게 멋진 장정으로 새로 냈다. 연필이라는 사소한 물건에 대해서 이토록 집요하고 세밀하게 썼다는 자체가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포털사이트는 상품을 검색하지 지식을 얻는 곳이 아니다. 여전히 책이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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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2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연필> 두 권 위에 있는 연필 너무 예뽀요~😍
어떤 내용이기에 이리 말씀하시는지 궁금!!^^

박균호 2021-08-28 19:18   좋아요 1 | URL
그냥 연필의 모든 것 이에요 ㅎ

서니데이 2021-08-28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필 예뻐요. 박균호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21-08-28 19:18   좋아요 2 | URL
네 감사합니다!!!

그냥 2021-08-2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박균호님 오랜만이죠~
그래봤자 책 읽다가 에필로그 읽고 깜놀!
알라딘 서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그대로 실려있어서
어떻게 여러 책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은지 놀라운데
그런 비중 있는 책들을 소개하시면서 또 이렇게 가벼운 내용을 양념처럼 써 놓으셨는지
너무나 반갑고. 책도 너무 흥미있게 잘 봤습니다.감사합니다.

박균호 2021-08-28 21:44   좋아요 0 | URL
아...정말 오랜만이에요. 원래는 서문으로 쓸려고 했는데 어찌 하다 보니 에필로그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재미나고 귀한 인연이니까 당연한 일이에요. ㅎㅎ 가볍지 않은 인연이잖아요. 부족한 면이 많은데 좋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바람돌이 2021-08-2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연필이 더 예뻐서 눈길이 오래 갑니다. 박균호님 연필성애자! ㅎㅎ
연필이라는 주제 하나로 저렇게 두꺼운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네요. 새로 나온 책은 표지가 정말 멋집니다. 저는 표지 성애자거든요. ㅎㅎ

박균호 2021-08-29 04:31   좋아요 1 | URL
저도 표지 성애자이기도 합니다 ㅎㅎ
 
Sex (Hardcover, Compact Disc)
madonna / Grand Central Pub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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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아내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내가 한 영화에 빠져 있는데 옆에서 아내가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했다. 국어 선생이라서 그런지 고비마다 핵심을 뽑아서 딱 한 마디를 던지는데 맥이 확 풀리고 화가 났다. 와신상담하고 있다가 마침 내가 본 영화를 아내가 재미나게 보고 있었다.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내 나름대로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쓱 던졌는데 미동도 하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스포일러를 아는 게 더 좋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아내의 설명은 이랬다.

 

아내는 평소 셀프 스포일러를 즐긴단다. 즉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관람객의 리뷰나 줄거리를 읽고 나서 보면 더 재미나단다. 줄거리나 결말을 미리 알면 그 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지 궁금해서 영화 볼 맛이 더 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흘린 어설픈 스포일러 따위가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리가 없었다.

 

아내는 단팥빵을 즐겨 먹는 나를 두고 촌스럽다고 흉을 본다. 내가 제과점에 갈 때마다 거 촌스럽게 단팥빵만 사지 말고라는 말을 꼭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혼자 제과점에 다녀온 아내가 웬 단팥빵을 사 왔길래 이때다 싶어서 버럭 촌스럽게 단팥빵을이라고 놀렸더니 돌아온 아내의 대답이 이랬다. “내가 먹으려고 산 것이 아니고 당신 먹으라고 샀지!”

 

백만 년 만에 아내가 서재에 들어와 내 책을 살펴본다. 너무 커서 책장에 둘 수 없어서 서재 바닥에 둔 사진집을 펼친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큰 사진집일 터이고 우리나라에서 한 권 밖에 없을 테니 아내 눈에도 사진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더구나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촬영한 사진집이니까 더욱 그랬을 것이다. 천천히 사진을 감상하던 아내가 나를 지긋이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 좀 오려가면 안 돼? ‘십수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던 사진집을 오려가겠다니 기가 막힐 수밖에. 간신히 진정하고 이유를 물었다. 아내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랑했다. “벽에 걸어두게

 

자칫하다간 아내 바로 옆에 꽂혀 있는 마돈나(80년대를 주름잡던 그 가수)의 관능적인 사진집 <sex>와 일본의 변태적인 에로티시즘을 대표하는 노부요시 아라키의 사진집으로 눈길이 옮겨갈까 봐 무서워 차마 거절을 못 하고 한참이나 엉거주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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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4 0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전 책장이 눈에 확들어오네요 👀 이런게 전문가의 서재 군요~!!

박균호 2021-08-24 09:48   좋아요 2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봄날의 언어 2021-08-24 1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찍힌 뒤에 가위 가지러 가신 거 아니죠? ^^;

박균호 2021-08-24 10:09   좋아요 2 | URL
다행이도 그러진 않았습니다 ㅎ

초란공 2021-08-24 1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 오려가실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ㅋㅋㅋ ^^;;

박균호 2021-08-24 10:47   좋아요 2 | URL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24 1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런데 영화 스포일러에 대한 생각이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문학과 달리 영화는 비평이나 내용을 먼저 보는 편이예요.

박균호 2021-08-24 11:43   좋아요 3 | URL
역시 고수이십니다!!

바람돌이 2021-08-24 14: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럴때는 과감하게 그래 책이 중요하냐? 당신 맘이 중요하지. 오려줄게라고 하면 안되겠죠??? 저라면 실제로 오리든 말든 상관없이 남편이 그렇게 말해주길 바랄듯요. ㅎㅎ부부생활에서 하나라도 잘 얻어먹기 위해서는 말말말 말이 중요합니다. ㅎㅎ

박균호 2021-08-24 21:16   좋아요 2 | URL
아..역시 ㅠㅠ 저는 많이 부족하네요 ㅠㅠㅠ

mini74 2021-08-24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돈나 어디있나 찾아보는 중 ㅎㅎㅎ 어릴 적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주인공 오리다가 목이 나간 기억이 나네요. 우는 애 달래며 이쑤시개랑 테이프로 깁스해줬던 ㅎㅎ 아내분이 행동으로 나서시기 전에 사부작이 비슷한 사진으로 하나 구입해서 주심이 어떨까요 ㅎㅎ

박균호 2021-08-24 21:16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게 너무 비싸서요 ㅠ

붕붕툐툐 2021-08-24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내분을 저렇게 사진에 담은 데서 사랑이 느껴집니다~ 국어샘이라니 더 멋지네요!ㅋㅋㅋㅋㅋㅋ

박균호 2021-08-24 21:16   좋아요 2 | URL
몰카랍니다 ^^

g6i2qniveg 2021-10-0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부럽습니다 ㅠ 보고 싶네요

박균호 2021-10-09 08:16   좋아요 0 | URL
기회되면 ㅎ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