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해맑은 졸업 사진인데 알고 보면 슬픈 사진이다. 부모가 참석하지 않고 친척도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 참석한 졸업식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내가 치료 중이라 무남독녀 졸업식에 가지 못했다. 나 혼자만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그러면 더 슬플 것이라는 게 딸아이의 만류에 그러질 못했다. 딸아이 졸업식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슬픈 이유다. 해맑게 웃고 있어서 더 슬프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 졸업식에 팀원분들이 와주셨다. 모두 각자의 카메라를 별도로 준비해 와서 딸아이를 마치 자신들의 막냇동생이나 된 듯이 학교 굿즈를 사주고 꽃다발도 안겨주셨다. 내가 평생 몸담은 공직사회에는 없는 문화다. 참으로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1%의 시청률에 매일 희비가 오가고 더 높은 연봉을 찾아 이직을 밥 먹듯이 하는 방송국이 이토록 따뜻한 면이 있는 곳이었다니. 한 선배가 딸아이에게 밥을 사주면서 너도 후배가 들어오면 잘 해준다고 하면 된다고 하셨단다. 요즘 공직사회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정글이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오직 본인과 본인의 업무만 챙기는 문화가 팽배하다. 내가 불편하지 않고 다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공공기관이 예전에도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운전 면허시험을 보러 갈 때 온 선생님들이 간절히 내 합격을 기원하고 내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매일 나를 운전면허학원에 데려다 주시기도 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추억일 뿐이다. 나도 후배들에게 잘 해줘야 할텐데 괜한 엉뚱한 화가 될지 두려워 주저하게 된다.


딸아이와 단둘이서 독서토론회를 한달에 한 번 하기로 했다. 과연 딸아이가 결혼하기전에 세계문학필독서 50를 다 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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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정말 마음이 짠하셨겠어요. 그래도 저렇게 밝게 웃고 있으니 보기 좋네요. 따님 졸업 축하드려요.
책 너무 잘 읽고있습니다. 따님과 한 달에 한 번 독서토론 그것도 결혼하기 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 두 분께 다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가끔 실황중계 부탁드립니다. ^^
근데 학교 굿즈가 있었군요.
저 땐 상상도 못 하던건데...

박균호 2024-03-05 10:24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야망은 큰데 실천이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공사다망한 따님분이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