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을 읽고 모든 서평은 귀하다. 그런데 특별히 내가 고마운 서평 두 종류가 있다. 우선 내가 알지 못했던 내 글의 장점을 알려주는 서평이다. 이번 책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의 추천사를 써주신 성균관대 고관수 선생님은 다음 구절을 칭찬하셨다. “작은 우산이 큰 우산보다 언제나 못한 것은 아니죠. 사람이 붐비는 골목에서는 작은 우산이 편하고, 탁 트인 벌판에서는 몸을 넓게 가리는 큰 우산이 낫습니다. 생물의 특징도 마찬가지에요. 어느 환경에서나 통하는 만능 옵션은 없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소개한 꼭지의 한 구절인데 이과 출신인 당신은 쓸 수 없는 글이라며 상찬하셨다.
기실 나는 이 구절이 특별히 잘 썼다거나 자랑스러운 것은 아닌데 독자 입장에서는 이 구절이 매력적인 문장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셨던 것.
한편 이 내용을 내 책에 담았다는 사실만으로 자랑스럽고 독자들이 이 구절을 정말 좋아해 줬으면 하는 구절도 있다. 그런데 그 구절을 알아봐 주고 특별히 좋게 말해주는 서평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에서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하마터면 인쇄되지 못할 뻔했는데 그 이유가 영국 왕립학회가 직전에 <물고기의 역사>라는 도감을 내느라 출판 예산을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 말하자면 만유인력이 물고기 도감에 밀릴 뻔했다는 것.
또 괴테의 가장 빛나는 산문이라고 평가되고 내가 정말 재미나게 읽은 <선택적 친화력>의 제목이 사실은 화학 반응을 설명하는 화학 용어라는 것. 괴테는 네 사람의 얽힌 연애를 화학 반응 현상으로 절묘하게 설명한 이야기를 내 책에 담았다는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나는 괴테의 소설과 호프만의 과학 고전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를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낸 아마도 유일한 책을 낸 저자인 것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내용을 조목하고 언급한 서평가가 없었다. 답답하고 목이 메는 느낌으로 나날을 보냈는데 같은 연배지만 언제나 형님 같은 김성신 선생님의 서평을 읽다가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김성신 선생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구절을 딱 꼬집어서 언급하셨다. 이 양반은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이 분명하다. 새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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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이 교보문고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어 대문에 걸렸다. 책을 낼수록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자는 생각하게 된다. 그다지 상업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한 저자의 자괴감에서 생긴 감정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학생들에게는 지나간 시험에 연연하지 말고 다가올 시험에 대비하라는 잔소리를 늘 하면서도 나는 늘 지나간 결과물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매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인터넷 서점의 판매 포인트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버릇이 한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이게 무슨 내 경력에 도움이 될까 싶다.

 

차라리 앞으로 쓸 원고를 좀 더 생각하고 가다듬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지. 지난 책 뉴스를 검색하고 판매 현황에 신경을 쓸 시간에 지금 쓰고 있는 문장 하나를 더 살펴보는 것이 결국 좀 더 좋은 책을 내는 지름길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처럼 굳이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좋은 책이라는 칭찬은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내가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출판사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아마도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는 내가 쓴 책 중에서 가장 공을 들인 책일 것이다. 이 책을 쓸 때만큼은 오로지 이 책에 집중한 것 같다. 글 쓰는 것을 늘 취미로 삼았는데 이 책은 글을 쓰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할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재미나게 쉽게 쓸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늘 내가 쓴 책을 다시 보지 않는데 이 책만은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쉽고 재미나다. 처음으로 내가 쓴 책을 부끄럽지 않게 제자에게 서명해서 선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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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11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한 학생이었다. 출판사에서 과학 고전에 관한 책을 써보라고 해서 어찌어찌 쓰긴 했는데 오늘 숨이 턱 막히는 연락을 받았다. 부산의 모 중학교에서 이번에 나온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는 것. 저자인 나도 어제 막 전달받은 신간을 언제 또 살피고 이런 제의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전교생 5명인 학교의 영어 교사인 내가 전교생 5백 명인 학교에서 과학 고전을 이야기한다? 누가 봐도 예쁜 그림은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요새 중학생들 나도 무섭다. 신통찮고 산골에서 온 나를 향한 그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이 실시간으로 그려진다. 대놓고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놈들도 많겠지. 격렬하게 사양하고 싶다. 그런데 나를 믿고 책을 맡긴 출판사를 생각하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하다. 일단 가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이길 수 없는 전장으로 향하는 장수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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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10-01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해보세요. 응원합니다.

박균호 2026-10-01 07:12   좋아요 0 | URL
선생님 응원 감사합니다!
 

과학 고전을 사 놓고도 끝까지 읽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첫 장부터 수식과 낯선 개념이 이어지면 책을 읽다가 시험을 치는 기분이 든다. 이해 못 하는 나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될까 봐 아예 펴지 않게 된다.

나도 그랬다.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아이였고,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문학을 공부했다. 그 아이가 자라 3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 지문에는 과학이 자꾸 섞여 나왔고, 피해 온 과학을 교실에서 매년 다시 만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 에르빈 슈뢰딩거를 비롯한 과학 고전 27편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다.

학생들도 그 지문에서 막혔다. 눈이 글 위에서 헛돌았고, 문제 하나를 풀고 넘어가도 비슷한 지문에서 같은 곳에 또 손을 들었다. 그래서 설명하는 순서를 바꿨다. 만유인력과 자연선택, 지동설을 시험에 나오는 용어로 먼저 외우게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이 처음 어떤 질문에서 나왔는지부터 이야기했다.


'쉽게 쓴 책'이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독자도 있다. 이것마저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내가 과학에 약한 사람인가 싶어서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과학자에게는 당연한 설명이 문과 출신인 내게는 중간 한 단계가 빠진 듯 느껴졌다. 그래서 구구단도 못 외우는 문과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초등학생이 할 만한 '왜?'를 이어 갔고, 그렇게 확인한 설명을 한 단계씩 풀어 썼다.

DNA는 왜 김밥일까

이를테면 DNA 이중나선이다. 교과서 그림을 들여다봐도 왜 그런 구조가 되는지는 머리에 남지 않는다.

"김밥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겉의 김과 밥이 전체 모양을 잡고, 안쪽에는 단무지와 햄, 달걀 같은 속재료가 줄지어 들어갑니다. 속재료를 아무렇게나 넣으면 김밥 굵기가 울퉁불퉁해지고 썰었을 때 모양도 흐트러져요. DNA도 바깥의 뼈대가 모양을 받치고, 안쪽의 염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맞물려야 안정된 구조를 이룹니다." - 69쪽

큰 염기끼리 만나면 그 부분만 불룩해지고, 작은 염기끼리 만나면 가운데가 헐거워진다.

개념이 만들어진 과정만큼이나 책이 나오기까지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영국 왕립학회가 직전에 <물고기의 역사>라는 도감을 내느라 출판 예산을 거의 다 써 버렸다.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자기 돈을 털어 인쇄비를 댔고, 왕립학회는 핼리에게 줄 보수마저 남아도는 물고기 책으로 치렀다. 만유인력이 물고기 도감에 밀릴 뻔했다.

화학책에 괴테의 연애소설이 등장하는 까닭

과학 고전이라고 해서 과학자 이야기만 나오지도 않는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로얼드 호프만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에는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악보와 고야의 그림이 실려 있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장편소설 <선택적 친화력>도 등장한다. 소설 초반에 귀족 부부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 에두아르트의 친구인 대위가 화학의 '친화력'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대위는 어떤 물질들이 만나면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원래의 짝을 떠나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고 설명해요. 두 쌍의 물질을 AB와 CD로 놓으면, 서로 짝을 바꾸어 AD와 CB가 된다는 것입니다." - 169쪽

얼마 뒤 에두아르트는 샤를로테의 조카 오틸리에에게 끌리고, 샤를로테는 대위에게 마음이 기운다. 괴테는 화학 반응을 설명하는 이 대화를 뒤이어 벌어질 네 사람의 관계와 겹쳐 놓았다.

과학과 문학이 만나는 작품은 또 있다. 27편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넣었다. 두 소설은 생명을 만든 사람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바꿔도 되는지를 실험실보다 일찍 따졌다.

2028 수능, 문과라고 과학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출간 시점이 제도 변화와 맞물렸다. 2028학년도 수능부터 국어·수학·탐구의 선택과목이 사라지고, 탐구 영역에서는 모든 수험생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함께 치른다. 문과 성향 학생도 과학의 기본 개념을 비켜 가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수능 대비용 문제집으로 쓰지는 않았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2003년 도나 해러웨이의 글까지 약 460년을 따라가며, 과학사와 과학철학도 함께 담았다. 다루는 폭은 넓지만 문장은 지하철에서 낄낄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나게 썼다.

27편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우주가 궁금하면 <코스모스>부터, 생명이 궁금하면 <종의 기원>부터 펼치면 된다. 막히는 편이 나오면 덮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된다. 앞의 편을 읽지 않아도 뒤가 막히지 않는다. 읽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공식도 거의 넣지 않아, 책 전체에 남은 공식은 F=ma와 E=mc² 둘뿐이다. 고전 한 편이 12쪽 남짓인데, 재미에 끌려 읽다 보면 지하철 몇 정거장 만에 한 편이 끝난다. 그 끝마다 생각할 거리 두 가지와 이어 읽을 책 세 권을 실었다.

이 책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과학자나 질문 하나를 만나 원전을 펼쳐 보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나도 그렇게 27편을 읽었다. 어디에서 막히는지 여러 번 겪어 본 사람이 쓴 책이니, 두려워 말고 이 책을 펼쳐 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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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8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9-29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 - 인간관계부터 커리어까지, 생각이 많은 나를 위한 철학 수업
크리스토프 크바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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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이상한 학문이다. 흔히 철학이라고 하면 많이 배운 학자들이 책상 앞에서 펼치는 어려운 이론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철학이 붙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 일에도 철학이 있고, 공부에도 철학이 있으며, 장난과 휴식,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 그렇다면 철학이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은 바로 그 지점을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철학자의 이름과 사상을 어렵게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한 번쯤 부딪히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만 잘 살 수 있을까?”, “악의 없는 거짓말은 괜찮지 않을까?”, “놀며 시간을 허비해도 괜찮을까?”, “부모가 늙으면 돌보는 게 도리일까?”, “소원을 들어주면 아이가 행복할까?”, “선물로 돈을 주어도 될까?”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아무리 철학책은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이 목차를 한 번 훑어보면, 슬쩍 펼쳐 보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질문들이 너무 생활 가까이에 붙어 있어서, 내 고민 하나쯤은 반드시 들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철학을 거창한 이론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키르케고르, 아퀴나스, 칸트, 니체, 세네카, 플라톤, 아렌트, 벤담, 레비나스, 요나스,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시험공부용 지식으로 머물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 겪는 불안, 관계, 일, 사랑, 부모 자식 문제, 정치, 환경, 종교의 문제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철학이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고 견디게 해 주는 도구처럼 느껴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키르케고르의 ‘자신이 되기’에 관한 대목이었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이 된다는 것이 완성된 사람이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는 순간, 오히려 자기 자신과 멀어질 수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살아왔고, 교육을 받았고, 사회화 과정을 거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그런데 그 자기를 끝없이 고치고 계발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면, 삶은 쉽게 절망으로 기울어진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계발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는지, 그 선택 뒤에 어떤 생각과 가치관이 놓여 있는지 살피는 태도다. 결국 철학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묻는 힘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룬 장도 좋았다. “소원을 들어주면 아이가 행복할까?”라는 질문은 얼핏 당연해 보인다. 부모라면 아이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책은 행복이란 누군가 대신 만들어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소원을 모두 들어주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 삶을 만날 기회를 열어 주는 부모다. 삶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 기회를 주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하고, 스스로 문을 열어 보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선물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선물로 돈을 주어도 될까?”라는 질문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돈 선물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

지 않는다. 돈은 상대에게 좋은 기회를 줄 수도 있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고르게 해 줄 수도 있다. 다만 돈 봉투가 늘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물의 가치는 가격보다 마음을 전하는 데 있다. 아무 말 없이 건네는 돈보다, 서툴더라도 상대를 생각하며 고른 선물이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생일 선물, 입학 선물, 명절 용돈처럼 익숙한 장면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어떤 가치 판단을 하고 있었다.


철학은 현실과 상관없는 학자들의 유희나 말놀이가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나를 잃었을 때, 타인과 부딪힐 때, 일과 놀이 사이에서 흔들릴 때, 사랑과 우정이 헷갈릴 때, 가족 관계가 버거울 때, 사회와 자연과 종교의 문제 앞에서 막막할 때 철학은 뜻밖에 실용적인 대답을 건넨다. 정답을 대신 골라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는 또렷하게 보이게 해 준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철학이야말로 수영이나 요리처럼 익혀 두어야 할 하나의 생존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배워 두면 갑자기 물에 빠졌을 때 몸을 지킬 수 있고, 요리를 할 줄 알면 낯선 곳에서도 최소한의 삶을 꾸릴 수 있다. 철학도 다르지 않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해야 하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가이드북을 챙기듯,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도 곁에 두고 펼쳐 볼 책이 필요하다.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은 그런 의미에서 여행 가방 한쪽에 넣어 두고 싶은 책이다. 길을 잃었다 싶을 때마다 꺼내 읽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다시 걸어갈 방향을 조용히 알려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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