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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평점 :
고전만 읽기 시작한 지가 이미 몇 년 지나서 생존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지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특히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여성 작가의 에세이는 조금 과장하면 한 삼십 년 만에 읽는 것 같다. <즐거운 어른>은 여러모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깜짝 놀란 것이 저자 이옥선 작가가 1948년생 즉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문체가 무척 젊다는 것이다. 종종 출판지원 공모사업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봐온 50대 이상 연령층의 에세이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세련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다.
40대 전문직에 종사하는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톡톡 튀는 문체이면서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력이 종종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가부장제에 관한 소견이 그랬다. 보통 한국의 여성 작가가 가부장제를 언급할 때는 가부장제로 인해서 자신이 받은 피해와 억울함을 토로하며 그것을 어떻게 자신이 용감하게 극복했는지에 주로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옥선 작가는 가부장제가 비록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내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는 의식도 함께하므로 복지제도가 없는 과거에도 대충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았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제사를 책임지던 며느리가 유방암에 걸리자, 집안 제사가 올스톱되었다는 이야기, 결국 제사라는 것이 각자 다른 성씨를 가진 며느리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도 너무 공감된다. 아내가 병원을 전전하던 작년 한 할머니가 들려주었다는 하소연과 결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평생 얼굴도 모르는 시댁 어른의 제사를 성실히 모셨던 할머니는 자신이 유방암이라는 몹쓸 병에 걸리자, 제사 열심히 지내는 것에 대한 소용없음을 몸소 깨닫고 며느리에게는 절대로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다지.
혹은 봉화산 쌍봉 바위에서 좌로 열두 걸음 다시 좌로 뭐 어쩌고 지점쯤에 송이버섯 군락이 있으니 자손 대대로 며느리에게 전해라 같은 내용도 아니라면, 굳이 죽기 직전까지 가서 할 말이 무엇일까?
임종을 지킨 자식이 그렇게 중요할까? 아니 왜 농경시대의 돌봄 방식에나 먹히던 사고를 현대의 직장 생활자에게 갖다붙여서 임종 콤플렉스를 느끼게 하냔 말이지.
위 두 문장은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옥선 작가가 얼마나 트렌디하면서도 지적인 문장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확신한다. 그러면서도 사회 현안에 대한 적확한 통찰력까지 놓치지 않는다. 꼰대스럽지도 않으면서 도발적인 글도 아니다. <즐거운 어른>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박완서 선생이 아직 살아있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