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사 출근을 며칠 앞둔 딸아이와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회사 밥은 주나?”라고 무심결에 물었는데 내가 한 말을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2년 늦여름 어머니와의 저녁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구한의대 부속병원 앞뜰에서 우리 둘이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을 드시게 하고 기저귀를 갈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번거로운 절차를 끝낸 터라 나는 제법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갑자기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본 어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이제 내 밥은 누가 해줄지 모르겠다.” 평생 남의 밥만 해주시던 분인데 당신의 몸이 불편해지자 당장 당신의 끼니 때울 걱정을 하게 만든 불효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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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북플에 들어올 때마다, 플친님들의 효심에 뭉클해져서 울게 됩니다...

박균호 2021-12-24 13:28   좋아요 0 | URL
효심이 아니고 불효에 대한 반성이지요 ㅠㅠㅠ

바람돌이 2021-12-2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머니 세대의 슬픔이네요. 어머님께 저런 말을 들으셨으면 내내 마음한구석이 찌릿찌릿할듯요.

박균호 2021-12-24 15:13   좋아요 1 | URL
네 그렇죠 ㅠㅠㅠ
 

한 인터넷 서점 MD가 이런 말을 했다. “한 해에 책을 3권 이상 내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한 해에 책을 여러 권 내는 작가의 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 사기꾼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 나는 세 권 이상의 책을 냈다. 인터넷 서점에서 팔지 않고 오프라인에서만 파는 아동용 인문학 전집 24권 중에서 8권을 집필했고, 십 대를 위한 고전 읽기 책, 그리고 책에 관한 책.

 

문제는 내년에도 3권을 내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2권은 이미 탈고를 했으니 늦어도 내년 봄에는 판매가 될 것이고 나머지 한 권은 이제 집필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내년 상반기 중에는 탈고를 할 것이고 내년 연말이면 출간이 될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말이다.

 

좋은 책을 쓰진 못하지만 여하튼 책을 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가 되겠다고 자위해본다. 내가 심지어 청소년을 위한 철학을 주제로 지난주에 탈고했지만, 도저히 못 쓸 것 같은 주제는 글쓰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한테 특별한 글재주가 없고 비결도 없기 때문이다. 명색이 글쓰기책인데 글을 못 쓰면 그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겠다 싶기도 하고.

 

다만 딱 한 가지 내가 확신하는 글쓰기 비법은 일단 쓰라라는 것이다. 키보드로 쓰는 글도 중요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글쓰기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일단 쓰기 시작하면 탈고는 눈앞에 있었다. 계약된 3권 중에서 마지막 책의 첫 단락을 쓴 기념으로 아내와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아내와 산책을 하는 그것만큼이나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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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1-12-18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짜 사기꾼이네요. 언제나 아내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스스로 아내 포비아라고 또 경처가라고 자처하시면서 아내와의 산책이 위로와 즐거움이라니요 ㅎㅎ

박균호 2021-12-19 05: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오랜만이에요 ^^ 잘 계시죠? 가끔 오시면 참 반가워요.
 

나에게는 신기한 예지력이 있는데 잠을 자면서도 먹을 것에 대한 촉각이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다. 코를 골고 자다가도 우연히 눈을 뜨면 아내가 뭘 먹고 있기가 일쑤다


오늘 아침도 그런 경우인데 마침 아내가 커피를 내리고 있더라. 냉큼 커피 한잔을 얻어서 빵과 함께 맛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아내가 생수 한 병을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냉큼 달려가 생수 한 병을 아내에게서 바쳤다. 행여나 아내가 마개를 따다가 손이 아플까 봐 마개를 따서 줄려는 찰라.

 

아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왜 마개를 따는 거야?” 


아내의 불호령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 X,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거야?’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아내님은 도대체 마개를 따지 않은 생수병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이었을까? 뭘 하려고 한다고 해도 마개를 다시 닫으면 물이 새지 않을 텐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추호도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늘 잘못하는 사람이니까. 물병 마개를 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내의 다음 말로 금방 해결되었다.

 

당신, 나 먼저 물 한 모금 마시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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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1-12-18 1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물병 따면 꼭 한모금 먼저 마시고 싶더라구요

박균호 2021-12-18 10:57   좋아요 4 | URL
저는 맹세코 먼저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ㅎㅎㅎㅎㅎ

stella.K 2021-12-18 11: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왜 박균호님은 아내님 앞에서 작아지는가...요. 웃프옵니다.😂

박균호 2021-12-18 11:20   좋아요 4 | URL
숙명이온가 봅니다. ^^

프레이야 2021-12-18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경처가군요. 두려워할 경

박균호 2021-12-18 16: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wifephobia ㅎㅎㅎ
 

한 달 만에 딸아이가 집에 왔다. 반갑고 좋아서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우리 몰래 남자 친구 사귀었다가 헤어진 거 아니니?’라고 물었다


대학교 3학년 22살 딸이 남자 친구를 사귈지 말지를 부모한테 허락받을 일도 없고 간섭할 생각도 없다. 다만 그 놀기 좋은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 나이 되도록공식적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이 없으니 의아하기는 하지만 우린 그런 줄 알고 지낸다. 워낙 미주알고주알 우리에게 말을 하는 딸이고 여태껏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는다. 정말 우리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고 남자 친구를 사귀었거나 사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쪽도 나쁜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는 딸아이의 선택이다. 문득 내가 한창 연애할 때 장모님 말씀이 생각난다. 휴대전화가 상용화되기 직전 시절이라 퇴근 후 아내와 이야기를 하자면 집 전화로 전화를 해야 했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면 다행인데 종종 장모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집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자주 장모님과 아내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했다.

 

여하튼 딸자식을 워낙 귀하게 키우다 보니 장모님은 내가 아내에게 전화하는 빈도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결혼하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너무 자주 전화가 와도 걱정이고(이게 왜 걱정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너무 안 와도 걱정이었네였다. 모든 부모가 자식 일이라면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도록 연애 한 번 안 해봤다면 은근히 걱정된다. 물론 연애가 끊기지 않는 것도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고. 가끔 공부만 하지 말고 대학 생활을 좀 즐기라고 조언을 하는데 1, 2학년 때 너무 놀아서 지금은 벌 받는 중이라나.

 

적당히 연애하다가 결혼을 하고 우리처럼 내 딸을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언제까지나 우리가 끼고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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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4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애는 아직 친구가 좋다고 ㅎㅎ 시커먼 남자애들끼리 우루루 다니며 커피 마시고 사진 찍고 여행 가고 그러네요. 코로나로 요즘은 그것도 잠잠 ㅎㅎ 따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찐하게 느껴집니다 *^^* 따님 말하는게 넘 예뻐요 ㅎㅎ

박균호 2021-12-14 17:35   좋아요 1 | URL
남자들 gang age는 초딩때인데 ㅎㅎㅎㅎ 아직 순수한 청년인가봐요.
 


일주일에 한 번 <농민신문>에 칼럼을 연재한다. <농민신문>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매체일 수도 있겠다. 농부의 자식으로 자란 나에겐 조선일보 보다 더 익숙한 신문이다. 동네 이장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코흘리개 때부터 <농민신문>의 애독자였다. 유료구독자 20만 명을 가진 이 신문은 직원들에 대한 대우도 최상급이라고 들었다. 더구나 이틀에 한 번 발간하니 업무 부담도 덜하다. 물론 외부 필진에게도 그렇다.

 

그러나 외부 필진은 외부 필진일 뿐. 지면 개편 철이 되면 한 번쯤 신문사 눈치를 보게 된다. 신문사의 말 한마디로 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칼럼이 잘린다고 뭐가 어떻게 되진 않지만, 자존심이 좀 상하겠다. 어차피 일 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세인데 뭐가 두려울까. 내년에는 내 칼럼 지면을 더 늘여달라고 말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일단 내년에도 살아남았다. 또 이렇게 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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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으신거 축하드려요. 저희땐 학교에서 어린이신문 구독을 거의 강제했던. 그래서 소년동아일보 학교에서 받아보던 기억이 납니다. 박균호님으로 특별판 한 번 가시죠 ㅎㅎㅎ 축하드립ㄴ다 *^^*

박균호 2021-12-13 18:11   좋아요 1 | URL
소년 조선 동아...정말 재미났었요. 우리땐 신청한 사람만 받았는데 ㅎㅎㅎ

페크pek0501 2021-12-13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 1회 연재라니...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상위권 신문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5위 안에 들 걸요. ^^

박균호 2021-12-13 18:11   좋아요 1 | URL
네 아마 그 정도입니다. ㅎㅎ 좋은 직장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