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걸리버 여행기를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300쪽이 넘는 이 소설 완역본의 독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걸리버 여행기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굉장히 새롭고 괴이한 소설이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호평도 있었다. 정치, 교육, 윤리 종교, 법률 제도가 저지른 수많은 오류와 부정에 대한 풍자라는 칭찬도 있었다. 반대로 이 소설을 비판한 사람들은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를 인간 혐오로 가득 찬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말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돌아온 걸리버가 인간에게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가족을 내팽겨두고 말과 함께 생활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18세기 유럽은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자각이 이제 막 깨어나려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지적 능력을 의심한 걸리버 여행기는 비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스위프트가 인간을 혐오한다는 비판은 그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억울한 일이었다. 스위프트는 평생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려고 애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떼어 가난한 자를 돕는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수입을 생활비, 빈민 구제비, 자신이 죽은 후 자선을 위한 기금으로 삼등분하는 등 계획적이고 실천적인 빈민 구제에 나섰다.

 

스위프트가 평생 적립한 기금으로 그의 사후 더블린에 성 패트릭 병원이 건립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가 웬만한 부자보다 더 열심히 빈민 구제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위프트는 인간을 혐오하기는커녕 고통받는 민중들이 노예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염원했던 인물이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 혐오라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들은 인간을 혐오하고자 함이 아니었고, 당시 부패한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곳곳에, 인간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담고 있지만 그가 소설을 통해서 추구한 것은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지 인간 혐오가 아니다. 소설가이자 신학자이기도 했던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1724‘M. B. 드래피어라는 필명으로 영국의 아일랜드 식민지 지배 정책을 비판하는 공개편지를 발표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M. B. 드래피어의 정체를 제보하는 자에게 3백 파운드를 지급한다는 현상문을 내걸었다. ‘M. B. 드래피어의 정체가 스위프트임을 대다수 아일랜드 사람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스위프트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평소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위해서 헌신한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국가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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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2024-03-12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실을 잊고 그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경험은 우리가 고전소설을 읽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라는 말로 유혹하는 세이렌의 음성(^^)을 듣습니다. 수고하셨고,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박균호 2024-03-13 04:27   좋아요 1 | URL
아...다섯님 정말 감사합니다 !!!

호시우행 2024-03-1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걸리버가 인간 혐오를 추구한 소설은 결코 아니지요.

박균호 2024-03-13 04:2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읽어보니 그렇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