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 김용택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
김용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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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별



우리 집 서쪽 하늘로 달이 가고 있다 그 속에, 별도 데
려간다 별들은 하늘에서, 어느 날은 다르고 어느 날은 또
다르다 나는 그 다른 날들의 별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추억해내 행복해하고,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놓고 개구리
처럼 멀리 뛰며 괴로워한다 생각해보면 별이 없었던 하
늘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을 달래 별 아래 놓아둔
다 아침 별들은 슬픔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감지 않는다
(p.13)



꿈을 생시로 잇다



달빛으로 시를 썼다
달빛이 견디기 힘들면 가만가만 집을 나와
달이 그려준 산그늘까지 걸어가
생각을 접어주고
발자국을 거두며 돌아왔다
가난하고 가난하여서
하나하나가 일일이 다 귀찮니 않았다
꿈속에서도 시를 쓰다 잠이 깨면
연필이 손에 꼭 쥐여져 있어서
꿈을 생시로 잇기도 하였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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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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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비정전>에서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 말. "세상엔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으로 시작하는 아비의 얼굴은 내 청춘의 잔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세상에는 발 없는 새가 있어, 영원히 땅 위에 앉아 쉴 수 없다는 말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남자의 뒷모습을, 맘보를 추던 그의 청춘을 그렇게 추억했다.

그러므로 4월 1일 만우절 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3층에서 장국영이 투신해 자살했다는 기사가 떴을 때, 나는 그것이 기념비저인 만우절 거짓말이길 바라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장국영이 죽은 날, 약국에 가거나 회사를 조퇴한 여자들의 숫자가 공식적으로 집계됐을 리 없지만 나는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자살하기 직전, 그는 매니저와 차를 마시기로 했었고, 절친한 친구와 배드민턴 시합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두 약속 모두를 지키지 못했다. 불행히도 호텔에서 투신한 후, 그는 몇 시간 동안 살아 있었고, 퀸 메리 병원의 응급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p128. 소설가 백영옥이 쓴 글 부분)

* 2012년 당시 출간된 에세이. 시인 이병률이 사진을 찍으며 동행하고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작가, 감독, 공연기획자,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여행을 떠난 곳의 감상을 글로 묶었다. 은희경, 이명세, 이병률, 백영옥, 김훈, 박칼린, 박찬일, 장기하, 신경숙, 이적의 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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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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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수는 그 풍경을 뒤로하고, 훈련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닝복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쓴 채, 손에는 붕대를 감고 빗줄기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을 향해 주먹을 뻗고 있었다. 어느덧 체중을 감량한 53세의 공평수는 놀랍게도 상체를 좌우로 날렵하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매끄러운 동작 뒤로 달빛을 받은 밤바다가 보였다. 바람의 입김으로 밤바다의 살결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허공엔 빗방울이 애잔하게 뿌려지고 있었고, 그 허공으로 상체를 움직이며 주먹을 뻗는 공평수는 흡사 빗방울이라도 때리려는 듯했다. 그 풍경은 어떤 힘이 있었는지 나를 얼어붙게 했다. 나는 먼발치에 서서 발을 떼지도 못한 채, 그의 동작을 계속 응시했다. 주먹은 허공을 향해 뻗어지고 있었고, 그 허공 속에서 빗물이 부서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를 조롱했던 언어와 멸시했던 눈빛들도 부서지고 있다, 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훈련이 단지 복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삶은 무의식적으로 이산화타노만 내뱉으면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하나의 주장처럼 인식되었다. 그가 뻗는 것은 주먹이지만, 그가 하는 것은 복싱이지만, 그의 행위에는 그 어떤 주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p168~169)

* 올해 최민석의 에세이와 소설을 꾸준히 읽었는데, 참 일관성이 있는 작가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왜? 이 작품이 수상작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재미는 있지만 탁월하지는 않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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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것들의 세계 - 가장 크고, 가장 빠르고, 가장 치명적인 생물의 진화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하윤숙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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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희생자는 나무가 아니라 북대서양대합quahog clam, 아르크티카 이슬란디카Arctica islandica로, 기후변화를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수심 80m의 차가운 해저에서 비슷한 부류의 다른 조개 200개와 함께 이 대합을 건져 올렸다. 대합은 몇백 년이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무가 나이테를 더하듯 조개도 매년 껍데기에 성장선을 더해 간다. 여기에는 형성 시기의 환경과 관련한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다. 나이테와 마찬가지로 성장선도 성장 여건이 우호적일 때 더 커진다.

대합은 가장 흔하게 잡히는 조개 종류였으므로(혹시 클램 차우더를 먹은 적 있다면 몇백 년 정도 살다가 잡힌 동물의 살을 먹어 소화했을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과학자들은 흔히 어부들이 그러듯이 잡은 조개를 전부 배 안의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이후 실험실로 돌아가 조개 성장선을 세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이 잡은 조개가 이제껏 연구한 다른 어떤 것보다 오래 산 조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세었을 때는 조개의 나이가 405살이었다. 다시 세어 보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까지 시도해 보니 한 세기가 늘었다. 태어났을 당시 중국이 명나라 왕조여서 ‘밍Ming‘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조개는 죽을 때 507살이었다.(p.174~175)


* 명나라 때 태어난 조개 조오오오오오상님이라니! 또 4800년 이상 산 강털소나무...(트로이를 세울 무렵 태어난) 소나무 조오오오오오오오상님이라니! 이 책은 차례에 소개된 대로 큰 것들, 작은 것들, 오래 사는 것들, 빠른 것들, 시끄러운 것들, 강인한 것들, 치명적인 것들, 똑똑한 것들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는 과학적 발견, 혹은 연구 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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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과 O
김현 외 지음 / 알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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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인디아나 존스>에 빠졌다. 아서왕의 전설을 따라 성배와 성궤를 찾고 나치와 맞서 신비한 고대의 힘을 선한 편(미국...)에 돌려주는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당시 기준으로) 대모험 판타지. 이 영화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좀 많이 빠진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매번 장래희망에 고고학자를 써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내 머리가 좀 컸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아들아, 한국에는 고고학자가 없단다, 있다 해도 인디아나 존스처럼 모험을 하는 게 아니라, 방구석에 처박혀 한자나 본다며 꿈을 산산조각 냈다. 아버지는 이후에도 내 꿈을 여러 번 조각냈는데 고고학자 이후 탐정으로 장래희망을 바꾼 뒤에는 불륜 커플 뒤꽁무니나 쫓는 일이다, 라고 했고 소설가가 될 거라는 말에는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다, 그건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이 말은 모순적이지만 진정성의 차원에서는 진실에 가깝다...),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는 말에는 영화감독은 그저 여배우나 만나려는 눈먼 자들일 뿐이다라고 했다. 결국 그가 원한 나의 장래희망은 의사나 검사였는데 그것이 고고학자보다 나와 거리가 더 멀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그와 나 둘 모두 알게 되었고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p31~32, 정지돈의 글)

* 책 전편을 구성하는 작가들의 글들은 기대에 못미쳤지만, 옮겨 적은 정지돈의 글을 읽고는 슬몃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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