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소년 창비청소년시선 10
손택수 지음 / 창비교육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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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돌



지하 일 킬로미터 이상 지점이나 심해에서
미기록 생물종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뜨면
문득 슬퍼진다
그냥 거기 그대로 있도록
모른 척했으면 좋았을 것을
더는 발견하지 않는 것도 발견이 아닌가
멸종된 줄 알았던 생물이
카메라에 포획되어 인터넷 웹 페이지를 오르내리면
멸종도 생존을 위한 최후의 전략임을 알겠다
꼭꼭 숨어라 사향노루야 크낙새야
따옥아 산양아
이미 사라져 버린 또 누구야
나는 마침내 발견하지 않으련다
너희를 찾아가는 길의 두 근 반 세 근 반이 더 생생한
발견의 대상임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강원도 어디 냇가 마음에 둔 수석
가져올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두고 오듯이,
물속에 가라앉아 웃는 돌
간지러운 파문만 들고 오듯이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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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유용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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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혼자다. 외로움을 재산으로 알고 작품을 쓴다. 패배할 줄 뻔히 알면서도 일상과 싸운다. 불의, 논리, 권위, 세속, 타성과 싸운다. 항상 자신과 싸운다. 타협하지 않는다.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마땅하다. 남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글을 쓴다. 이곳이 바닥이라고 생각할 때, 견디는 게 시인이다. M시인은작업실로 호텔을 얘기했는데, 아직 쓴맛을 못 본 거다. 꼭 책상이 있어야 시를 쓰는가. 출세를 위해 시는 존재하는가. 돈을 위해, 이름을 날리기 위해 시를 쓰는가.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가(직장 가진 사람 빼고). 정 갈 곳이 없으면 창작촌에 들어가면된다. 집필실은 훌륭하다. 거기서 일 년 내내 글을 쓸 수 있다.
싫증이 나면, 다시 원래 자리에서 돌면 된다. - P35

언젠가 우리 기관지를 보다가 놀랐다. 그 선배의 약력란에 "문학상 수상한 적 없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게 작가란 말인가. 대놓고 나 문학상 좀 줘, 뭐, 이런말 아닌가. 유용주 문학상 어떠? 상금이 좀 많은디 받을 쳐? 최근 기관지에는 저서 50여 권이라고 쓰여 있었다. 책 많이 내는걸로 문학을 인정받는다면, G와 같은 사람(100권을 훨씬 넘게펴냈다)도 있다. 욕하면서 닮는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장롱 기스 내는 책(사인해서 부쳐 오면 읽다가 던져버린다 하여 붙은이름이다. 문집에 발표한 학생들 작품이 훨씬 뛰어나다), 아무리 책을 많이 낸들 무엇하자는 짓거리인가. 우리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기억한다. 윤동주, 백석, 정지용, 만해 이상, 김소원, 김영랑, 이병기, 신석정, 심훈, 이육사, 김수영, 신동엽, 박용래, 김남주・・・・・・ 모두 작품으로 기억한다. 책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나 좋아하고 암송하는 것은, 개별 작품이다. 좋은 작품은 오래 기억한다.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은 책을 많이 안 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서 50여 권 중에 정말 좋은 작품은 얼마나 들어 있는가. 한 권이라도 똑바로 내라. 대부분 이런 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쓰레기는 땅에 묻으면 토양오염, 태우면 대기오염, 버리면 수질오염이다. 방법은 단 하나, 오염원을 줄이는 일이다. 양심과 염치가 있다면, 돈지랄 그만 떨고(기부를 많이 하고남하고 나눠라), 나무에게 백배사죄할 일이다. - P111

나는 작년에 아우슈비츠에 관련된 책을 스무 권 넘게 읽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 그러면서 드는 부끄러운 생각, 왜 그고통을 당한 유대인이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가. 왜 유럽은 식민지 시절에 대해, 원주민에게 사과하지 않는가. 왜 일본은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사람들에게 반성과 사죄를 안 하는가. 왜 한국은 베트남에게 머리를조아리지 않는가. 왜 욕하면서 닮아가는가.
나의 마지막 수트는 누가 전달해줄 것인가.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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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민주주의 (반양장) - 시위와 조롱의 힘
스티브 크로셔 지음, 문혜림 옮김 / 산지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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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치 해체를 위한 신나치의 모금활동




과거에 신나치Neo-Nazis는 분지델Wunsiedel이라는 작은 독일 마을을 행진하는 것을 즐겼는데, 분지델 주민들은 이를 골칫거리로 여겼다. (히틀러의 심복인 루돌프 헤스Rudolf Hess가 분지델에 묻힌 이후 신나치주의자들은 이곳으로 순례를 왔다.) 2014년에 지역주민들은 원치 않는 신나치의 침입에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정했다.

분지델의 주민 및 상인들로 결성된 ‘극우파에 맞설 권리Right Against the Right‘라는 단체가 한 가지 재치 있는 계획을 생각해냈다. 그 계획은 신나치들이 1m씩 걸을 때마다 지역주민들이 ‘독일의 비상구Exit Deutschland‘라는 단체에 10유로씩 기부를 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비상구‘라는 단체는 신나치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사회 복귀를 장려하는 시민단체였다. 신나치가 많이 걸을수록 그들 집단을 반대하는 단체에 더 많은 기부금이 전달될 수 있었다. 행진하는 길에 걸린 화려한 현수막들이 이 소식을 신나치에게 전했다. 신나치가 행진을 계속하면 극우와 싸우는 단체에 기부금이 전달될 수 있었고, 그들이 행진을 멈춘다면 분지델에 그만큼 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었다.

이 반(反)신나치운동으로 모인 1만 유로의 돈이 기부금으로 전달되었고, (이 운동을 전개한 단체에 따르면) 많은 극우세력들은 이 일로 충격을 받았다. 행진한 사람들은 좋은 일에 기부할 수 있게 해준 ‘공적‘을 세웠다고 감사장을 받았다(이는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역자). 분지델에서 이루어진 이 운동은 신나치즘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독일의 여러 도시들에서 재현되고 있다.(p.68-69)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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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날다 - 우리가 몰랐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혹한 실상
은미희 지음 / 집사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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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게 잡혀온 뒤로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일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시간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저들의 소유였고 재산이었고 부품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언젠가 쓸모없으면 폐기처분되고 말 소모품. 소모품에게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나 존엄성은 부여되지 않았다. 인간이면 안 되었다. 사람이면 안 되었다. 아이들은 그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원하면 안 되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더미였고 마루타였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몸뚱이뿐이었다. 말 잘 듣는 몸뚱이. 말귀를 알아듣는 몸뚱이. 시키는 대로 하는 몸뚱이.(p.106~107)

하지만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곳은 가서는 안 될 금단의 땅이었다. 이름도 숨기고 고향도 숨기고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유령처럼 살아야 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순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말을 아끼며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혹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해야 할 것이다.(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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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
이종욱 지음 / 뜨인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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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의 역사와 함께 빚어진 이 도시는 35년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화란 명분하에 일제의 입맛대로 변경, 확장되었다. 이렇게 식민지화와 근대화가 뒤죽박죽된 서울시는 해방과 함께 다시 본래 주인에게 떠넘겨지듯 되돌아왔다. 기쁨도 잠시, 조국은 분열되었고 곧이어 전쟁이 발발했으며 서울은 폐허가 되었다. 전쟁 이후 권력을 잡은 정권은 서울의 구조를 재편하기 시작했고, 일제가 구축한 기존 구조와 조직에 순응하거나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권력 중심주의적으로 도시를 뜯어고치기도 했다. 그렇게 수정된 도시 구조는 훗날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도시 발전과 확장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p. 316)

심상지리(심상지리, Imagined Geographies)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속의 지리적 인식‘이란 뜻을 지닌 이 개념은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서구중심의 왜곡된 사고를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심상지리가 있다.(어찌 보면 이 책 자체가 내가 품고 있는 서울의 심상지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심상지리는 직접 다녀간 곳, 살던 곳, 머물던 곳 뿐 아니라, 각종 서적과 매체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려질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인식하고 있는 장소에는 각각을 대표하는 시대성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한 장소(도시, 동네)에서 한 시절 진득하게 머물다 떠나버리게 되면 자기가 머물던 시대와 그곳에서의 일들, 자주 보던 경관을 개인의 심상지리에 그대로 반영한가.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에 이르는 장소의 역사와 비교해볼 때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물론 일부분만을 인식하고 있다 하여 문제될 건 없다. 다만 개인적 경험의 한계에서 시대성을 좀 더 넓게 확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장소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한데 도처에 흥미롭고 주위를 끄는 것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 도시 그리고 동네의 역사에 도통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무작정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비교적 가볍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도시 걷기 덕분에 장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길 것이고, 그러한 애정은 장소의 역사로 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렇게 장소의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며, 다시 그러한 경험은 개인의 심상지리의 지평을 넓혀 줄 것이다. (p.31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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