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인 목표만 제시하고 과정이 행복하지 않은 교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8세기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의 한 구절이다. 무릇 교육이란 즐겁고 재미나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럽거나 재미가 없는 교육은 쓸모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학교에서 좀 더 재미난 교육을 위해서 도입한 것이 현장 체험 학습이다. 교과서에서 글자로만 보는 것보다 직접 가서 눈으로 실체를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것이 더 재미나고 효과적인 것은 자명하다.

 

티브이에 현장 체험 학습 시행 여부를 두고 토론하는 자리에 학부모 대표로 나온 한 엄마는 현장 체험 학습 미시행은 학습권 침해라는 어디서 반만 듣고 온 소리를 하는데 현장 체험 학습은 교내 교외 둘 다 가능하며 담당 교사와 학교가 결정할 사항이다. 교내에서 하는 체험도 체험 학습의 일종이다.


그런데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서 불편함과 업무의 과중을 감수하고 학교 밖으로 가주는것이다. 호의가 반복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안다. 그리고 그냥 묻는 것인데 악성 민원딱지를 붙이고 있단다. “우리 애 사진은 왜 5장 밖에 없어요?”가 기본적으로 묻는 말이긴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악성 민원을 그냥 궁금해서 질문한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티브이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선생님을 어떻게 대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양반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몰랑~ 우리 애 추억 쌓아야 해! 현장 체험 학습 많이 해줘.” 악성 민원에 대한 성찰도 없고 교사의 고충은 그저 남의 나라일일 뿐이다.

 

저런 학부모를 볼때마다 내 딸이 우리 말을 듣지 않고 교육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이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내 자식이 저런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남의 자식 추억 쌓기 놀이에 왜 자신의 직을 걸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교사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소규모이고 시골 지역이라 악성 민원이 거의 없는 편이다. 현장 체험 학습을 활발히 나가는 편이다.


야구장도 가고 뮤지컬 공연에 간다. 그런데 우리 학교도 체험 학습으로 인한 악성 민원이 여러 차례 나온다거나 교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다면 당연히 그 누구도 현장 체험 학습을 가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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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무려 2003년 무렵에 산 책을 이제야 읽어 본다. 좋은 책은 사 두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는 독서계의 격언은 진리다. 2003년이라면 아직 내가 30대 중반 청춘의 피가 사그라지지 않았던 시절. 그때의 추억을 이 책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독문학에 점점 경도되어 가고 있어서 이 책은 꼭 읽어야 하겠다는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독문학이야말로 서양 문학의 원탑이라는 내 생각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직 덜 읽었긴 한데 뭔가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마디로 유랑 극단을 둘러싼 이야기다. 그런데 유랑 극단, 한 인간의 성장 과정, 연극을 다루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고민과 지혜를 박아 넣은 명작이다. 서울대 독문과 안삼환 선생님이 혹독하게 철저하게 번역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소설이 낯선 분들이 많겠지만 예전에 유행했던 말이 있잖는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뭐 대충 이런 말. 이 말의 원전이 바로 이 소설이다.

Wer nie sein Brot mit Tränen aß,
Wer nie die kummervollen Nächte
Auf seinem Bette weinend saß,
Der kennt euch nicht, ihr himmlischen Mächte!

눈물로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
근심 가득한 밤들을
침상 위에서 울며 지새워 보지 않은 사람은
그대들을 알지 못한다, 하늘의 권능들이여!

한마디로 처절한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은 삶과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한다는 뜻이 되겠다.

자신의 꿈을 좇아 연극을 지망하는 빌헬름에게 친구 베르너는 연극만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장사와 항해와 돈이 오가는 현실 세계에도 충분히 극적인 장면이 있다고 말한다.

Was ist reizender als der Anblick eines Schiffes, das von einer glücklichen Fahrt wieder anlangt...

행복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의 광경보다 더 매혹적인 것이 무엇이겠느냐…

배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도 생각하기에 따라 연극적인 요소가 곳곳에 있다는 말에 뜬금없이 위로를 얻었다. 내가 하는 수업 한 시간, 행사 하나가 잘 계획되고 실행된다면 성공적인 연극 공연을 마친 배우나 다름없다. 내 하루의 한 장면이 좋은 연극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로와 격려를 해 주는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연극을 소재로 하므로 배우나 방송 관계자들도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18세기 소설에서 배우의 발성을 강조한다. 빌헬름은 연습 때 사람들에게 가장 먼 구석에 앉아 있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기 말이 완전히 들리지 않으면, 열쇠로 벤치를 두드려 달라고 했다. 최근 한국 드라마를 보면 해괴한 현상이 있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하는 드라마를 보는데 자막이 없으면 불편하다. 배우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잦다. 배우가 정신, 감정, 표현력을 말하기 전에 먼저 글자 하나하나를 분명하고 익숙하게 해야 한다. 《모자무싸》에 나오는 강말금 배우처럼 귀에 박히게 또박또박 발성하는 배우가 많지 않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21세기 대군 부인》인가 하는 드라마를 보니 장면마다 그 잘생긴 주인공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냥 잘생긴 남자 배우 화보를 찍지 그러냐. 참을 수 없는 저급함이다.

빌헬름은 셰익스피어에 경도되어 《햄릿》을 자주 무대에 올리는데 작품 해석을 두고 극단 주인과 격렬한 논쟁을 한다. 이 과정을 읽다 보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만 한 《햄릿》 비평서가 또 있을까 싶다. 《모자무싸》에 나오는 시류에 적당히 묻어가면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최필름 사장처럼 극단 주인은 《햄릿》을 적당히 각색해서 비용은 줄이고 관객들의 기호에 최대한 맞춰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만 빌헬름은 원작을 고스란히 무대에 담아내야 한다는 원칙론을 주장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퇴근 후 개인적으로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2년은 된 것 같다. 전국에서 계모임이 가장 흥한다는 경북 상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몇 개 있던 모임도 다 끊었다. 직장에서 업무적인 내용 말고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보든가 글을 쓴다. 자취방에 가서는 저녁 챙겨 먹고 인터넷 좀 뒤적거리고 운동하면 잘 시간이 된다. 주말이 되어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경조사와 강연을 제외한 단독 외출은 아내가 크게 아픈 뒤로는 전혀 하지 않는다. 주말엔 가족과 여행하고, 맛집 탐방하고, 산책을 한다. 가족이래야 한 달에 두 번 서울에서 내려오는 딸과 아내뿐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다.

도저히 심심할 틈이 없다.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같은 책이 곁에 있으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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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즘 강의 주제는 주로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다. 고전에 탐닉하게 되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물이 유치하게 느껴지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의 일생은 고전을 읽기에도 너무나도 짧다. 그래서 고전을 읽다 보면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읽는다 해도 내 서재에 있는 고전조차도 다 읽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적절한 비교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부지런을 뜬다고 해도 전 세계의 이름난 맛집을 다 가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 본연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심리학의 대가이기도 한 고전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수백 년 전 인물인데 요즘 내가 하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죽음, 결혼, 친구 관계, 사랑, 결혼, 사업 등에 관한 우리들의 고민을 수백 년 전 소설 속 등장인물이 똑같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인생살이의 도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그렇다.

 

그런데 삶의 방향성은 대충 알게 된다. 세상살이 돌아가는 상황이 어렴풋이나마 눈에 보인다. 그러나 고전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어렵지 않게 인간을 가장 심오한 몰입상태로 이끌어준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다만 나만 해도 고전 읽기를 너무 늦게 시작한 바람에 좀 더 인생을 풍요롭게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고전>을 쓰면서 중요한 고전 한 줄을 가능한 오늘날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에 맞추어 풀어내려고 애썼다. 하루라도 빨리 고전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한 고전 한 줄은 모두 오늘날 청소년의 학교생활, 가족 관계, 친구 관계, 성적 등과 모두 정확하게 연결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고전이 다 그렇다.

 

수백 년 전 고전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이 겪는 모든 상황에 대한 지혜를 알려준다. 그것도 아주 실용적으로. 이런 나의 노력이 학교 현장에서 미미하게나마 수용되고 있는지 종종 100부씩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덕분에 2쇄를 소진하고 오늘 3쇄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친 원재료를 보석으로 다듬어준 오혜영 그래도봄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19권 책을 냈는데 오타가 하나도 없는 초판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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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손석희가 진행하는 대담 프로그램에 김애란이라는 소설가가 나온 것을 얼핏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프로그램을 일 분 이상 지켜본 일이 없으니 당연히 그냥 가던 길을 갔는데 나는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니 유명한 작가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이름 정도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얼핏 든 생각은 나도 참 어지간히 동시대 한국문학을 읽지 않는가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동시대 한국문학을 읽은 것은 아마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인가 채식주의자인가? 였던 거 같다. 그마저도 몇 쪽 읽다가 포기하고 버렸거나 누굴 준 것 같다.

 

작정하고 한국 동시대 문학을 싫어한다기보다는 그냥 고전 문학에 탐닉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취향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굳은살이 된 것이다. 그나마 관심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황석영이 얼마 전 신간을 낸 모양인데 인공 지능의 도움을 상당수 받았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니 시대에 맞는 글쓰기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나는 인공 지능이 보조한 글보다는 톨스토이 같은 천재가 수십 번 손으로 쓰고 고쳐 쓰고 아내 소피아가 한 땀 한 땀 다시 정서하고 의견을 개진해서 완성된 소설을 한 번이라도 더 읽고 싶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책을 사고 버리다 보니 이제는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기도 하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극찬한 책은 읽다 보면 거의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읽고 나면 다시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뒤에 다시 읽으면 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동과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수백 년 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 고전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나는 참 좋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현재 나와 같은 똑같은 고민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이렇게 고전 문학에 탐닉하다 보면 새삼 인생이 참 짧다고 한탄하게 된다. 아직 읽고 싶은 고전이 너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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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여주의 흥천도서관과 안양의 만안 도서관 강연을 다녀왔다. 모두 처음 가보는 곳들이다. 흥천도서관은 인구 3천 명 면 소재지의 도서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큰 도서관이었다. 건축학적으로 설명을 하기는 어렵지만 1, 2층이 트여있어서 마치 수려한 성당에 온 느낌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이 독서의 즐거움은 책 자체보다도 책을 읽어보면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평소와 달리 보이는 색다른 경험이 더 크다고 했던가.

 

흥천도서관은 주변의 풍경이 목가적이고 소담스럽다. 도서관 바로 앞에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 둘레길에 서 있는 나무와 오두막이 마치 수려한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여기에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이 비추니 천국이 따로 없다. 다만 한가지 내가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도서관은 대체로 언덕 위에 있는데 그간의 사정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지만, 노약자 이용자가 많은 도서관의 특성을 고려하면 개선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강연하면서 약간 웃기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 이야기에 도취해 바로 앞에 앉아서 열심히 내 말을 듣는 여성 관객 자리 30cm 앞에 침이 튀겼다는 사실이다. 그날이 가족 여행가는 날인데 내가 쓴 < 세계문학 필독서 50>을 재미나게 읽고 강연에 참석했다는 그분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침이 튀기는 순간 그분의 눈동자 각도는 정확히 내 얼굴로 향했으니 이 참사를 깨닫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죄송스럽다.

 

안양은 매우 복잡한 도시였다. 차도 많고 사람도 참 많았다.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강연 시작 30분 전에 만찬에 참석할 것 같은 정장 차림의 여성분이 강연장에 입장하신 것이다. 그분께 내가 미리 준비해서 간 내 책을 선물했다. 좀 멋쩍어서 도서관 마당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데 여기 또한 천국이 따로 없다. 내 아내는 가끔 내가 특별하지 않은 나무와 꽃 풍경을 보고 소리 내 감탄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하는데 만안 도서관 앞마당은 특별한 조경이 없는데도 그늘아래서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도서관 담당자 선생님은 내 저서를 모아놓은 테이블 위에 그날 꽃시장에서 직접 사 왔다는 예쁜 꽃병을 두셨다. 슬며시 수고스럽게 뭘 이렇게까지 준비하셨냐고 여쭈었는데 가끔 이 정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핀잔하는 강사분이 계신다고 한다. 조금 낯선 세계관이다. 여하튼 이 자리도 즐거워서 오버하는 바람에 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몇 마디 우스갯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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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4-2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도서관을 다니며 강의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강의를 해봤는데, 다른 동네에서 불러줄 정도로 유명해지지는 못했네요. 얼른 좀 더 유명해져야 할텐데 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책을 내지 않으면 그럴수 없겠구나 싶네요. 일단은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해야겠어요.

아, 언젠가 우리동네 도서관에 오시면 들으러 가야 겠어요. 제가 우리동네 도서관 사서 쌤들이랑 친하니 슬쩍 이야기 해볼게요.

박균호 2026-04-22 13:04   좋아요 0 | URL
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지요. 저도 유명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에요. 우연히 기회가 닿았습니다. 여러 도서관 강연 다니는 것은 재미난데 이게 나이가 드니 장거리 운전하는 것이 꽤 피곤하네요 ㅠㅠ . 무슨 동네 인지 모르겠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좋겠네요. 여러모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