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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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유일하게 챙겨서 읽는 것이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의 서재와 애독서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다른 사람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꼽혀있고, 어떤 책을 즐겨 읽으며 또 어떤 책을 추천하는지 궁금한 게 대부분의 독서가의 심정이다. 나아가 어떤 사연과 이유로 그 책을 추천하는지도 궁금하다. 독서가들은 사실 추천도서에 목 말라 있다.


자신이 많은 책을 읽어 왔다면 엉뚱한 책을 골라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 늘 아쉽기 마련이다. '지식인의 서재'는 주로 유명인사가 주인공이 되니 종종 추천도서가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대중서가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또 전문적인 분야의 책인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다. 


거의 십년 동안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해오고 있고 독서와 책과 관련된 여러 저서를 출간한 바 있는 윤성근의 <책이 좀 많습니다>는 '지식인의 서재'에서 느끼는 미세한 '궁핍함'을 채워줄 만한 책이다. 유명인사가 아닌 실질적인 생활 독서가들의 서재와 독서생활을 알려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재의 주인들의 직업은 다양하고 평범하다. 국어교사, 번역가, 대학생, 기자, 판소리 고수, 회사원, 바리스타, 도서관지기 등 거의 대부분 유명인사라기보다는 실질적인 책의 소비자이자 생활 독서가에 가깝다. 


근사하고 광활한 서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런 저런 온갖 비상수단을 발휘해서 책을 모으고 소장한다.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를 소개하면 한정된 공간에 많은 책을 소장해야 하는 공통의 장애를 공유하는 서재 주인들은 각자의 서재의 도서분류법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에서 꼼꼼히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독특한 독서 습관도 소개한다. 추천도서라기보다는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개인적인 체험과 밀접한 애서를 이야기한다. 이런 이유로 각자의 애장서는 개인적이나 책을 아끼는 마음은 넓게 공감된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가 중에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씨와 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고수 독서가답게 자신의 헌책방에서 엑기스만 쏙쏙 골라서 사가는 눈썰미를 재미나게 묘사한 부분 등은 이 책만의 장점이다. 그러고 보니 장서가와 헌책방 주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굉장한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적인 독서가와 수집가는 필연적으로 공간의 압박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헌책방에 자신의 장서를 처분할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수집가의 운명이다.


또 본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사후에는 유가족에 의해서 장서가 헌책방에 처분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가 헌책방과 장서가와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이 <책이 좀 많습니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사실 <책이 좀 많습니다>라는 재미난 이 책의 제목도 모아온 책을 감당하지 못해서 윤성근씨에게 책을 처분하게 된 한 장서가의 말에서 따왔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가 중의 한 명인 대학생 김바름씨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고객이기도 한데 그가 부탁한 절판본 <상상의 공동체>를 구해주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윤성근씨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뉴욕의 가난한 여류작가와 런던의 헌책방 직원과의 20년간에 걸친 우정을 담은 편지를 엮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연상된다. 


서재방문기와 서재 주인의 애장서를 소개하는 독특한 포맷의 이 책은 저자인 윤성근씨가 다양한 책에 대한 출간과 유통에 관한 뒷이야기와 그 책과 관련된 독자들의 반응과 추이 그리고 배경지식이 충분히 발휘된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다양한 책에 대한 이론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그 책에 얽힌 우리 독자들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가령 2005년 '디자인이즈'에서 펴낸 천상병시인의 <귀천 : 천상병 육필 서체 시집>이 마치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술을 한잔 걸치고 쓴 것처럼 비뚤비뚤 제 멋대로 늘어진 글자로 채워진 뒷이야기가 그렇다. 


당분간 구하고,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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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천도서를 멀리하는 편입니다. 추천도서 목록을 아예 외면하는 것이 아니고요, 가끔 목록에 있는 책이 궁금해서 확인합니다만 알고 나면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만 더 생깁니다. ㅎㅎㅎ

박균호 2015-06-1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이 최고죠...ㅎ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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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 세 가지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모두 기웃거렸었다. 개신교는 모태신앙이 아니면서 교회에 다니게 된 대부분의 한국인과 같은 경로로 발을 들였고 한때는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기도 했다. 불교 또한 종교라기보다는 자기수양과 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차원에서 보시를 하기도 하고 불자회라는 단체에도 가입하여 '경담'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법명을 받은 몸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다른 두 가지 종교의 경우와는 달리 불온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군복무시절 세례를 받겠다고 통신교리를 신청하여 우편으로 교리공부를 제법 오랫동안 했었다. 통신교리를 하게 된 계기는 왠지 '세례명'을 가진다는 것이 '폼'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니 결국 세례는 받지 못했는데 대학졸업 무렵 천주교 산하의 학교에 교사로 취직하기 위해서 일삼아 '세례'를 받는 '난 놈'이 있는 것을 보고 새삼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현세에서의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보고 싶어 차마 저승길로 선뜻 나서지 못했던 '아버지'이지, 내가 가보지도 않은 나라에서 생겨난 내 얼굴도 알 리 없는 '부처님'이나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죽고 나서도 나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행복하지, 거룩한 신이 보살핀다는 고통이 없고 영생의 '열반'이나 '천당'에 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외동아들로 태어난 내가 겪은 가장 큰 불편함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싸움박질을 할 때 든든한 '원군'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의 싸움이란 것이 고만고만했고 결국 승자는 '너 ! 우리 형아한테 말해서 때려주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오랑캐 같은 친구 놈을 응징하게 일러줄 형이 없는 외아들이었다. 


친구 놈이 꼼수를 써서 내 딱지를 모두 따가거나, 달리기를 못한다고 놀려대도 그저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삭여야할 뿐 달리 대책이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아이들끼리의 일을 어른들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이 코흘리개들의 '송사'에 재판관으로 등장할 일도 없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형과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려줄 어른의 부재는 코흘리개의 삶을 '억울함의 천국'으로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8월 4박 5일의 일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그분의 방한을 계기로 천주교로 귀의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데 쉰이 다 되도록 굳건한 무신론자로 살아온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민과 공감이 굳이 익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생소한 타자로부터도 느낄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그분이 마침내 한국을 떠날 때는 마치 가족이 먼 길을 떠나는 듯한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코흘리개 시절 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할 때 홀연히 나타나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코를 닦아줄 것으로 희망되었던 자상한 형과 같은 따뜻함을 국빈으로 온 종교지도자에게 느낀 일은 내게는 나름 '영적인 충격'이었다.




이 경험이 나를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를 더욱 주의 깊게 지켜보고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공지영 작가는 이미 십 년 전에 스스럼없이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고백이 아닌 공표를 했다. <수도원 기행 2>는 사실 '돈을 위해 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와 그로 인한 하느님에 대한 갈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따지고 보면 작가가 '돈을 위해 펜을 들지 않는' 경우가  낯설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문학의 본좌 도스또예프스끼의 수많은 명작들이 사실은 도박과 사치로 인한 빚에 쫓긴 절박한 펜 놀림의 산물이었고, 동화작가로 유명한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권정생 선생과 국어학자 이오덕 선생의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말 중의 하나가 사실 '돈'이야기다. 


물론 원고료와 이오덕 선생이 권정생 선생을 염려해서 보내주는 정성이지만 결국 '돈'은 '돈'일 뿐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로서의 '글쓰기'가 결코 점잖지 못한 일이 아닌 이유다. 30대 초반에 이미 평생 쓸 돈을 다 번 공지영 작가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속아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결혼생활을 3번이나 마감해야 했던 그녀에게 '글쓰기'는 고상한 '예술혼의 표출'이 아닌 '생계수단'에 가까웠다. 공지영 작가의 글쓰기는 어린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한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고 자식을 지키나가려는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해서 그의 소설도 구린 돈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낮은 자를 향한 강한 연민과 관심의 촉구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그녀는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단언한다. 그것도 소외받고 불평등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지영 작가는 우리 문학계에서 가장 현실참여적이다. 그의 현실참여적인 문학은 난해한 이론 놀음이나 계몽적인 것이 아니고 오로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핍박받으며, 불평등을 일상적으로 당하고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공지영 작가의 소중함은 그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책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속에서 직접 참여한다는 데 있다. 굳이 공지영 작가의 약한 자를 위한 행보를 열거하는 수고는 필요 없지 않을까?  등단 이후로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지만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의 면모는 결국 '사람'을 위해 펜을 든 것으로 증명된다.


공지영 작가의 도드라진 문학의 성과는 '약한 자를 위한 배려와 관심을 이끌어 냈고' 휴머니즘을 실천한 것이다. 나는 <수도원 기행 2>의 기본적인 근간이 '휴머니즘'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땅에 스며든 강아지 똥이 땅위의 아름다운 민들레를 키운 자양이 되었듯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중의 휴머니즘이 <수도원 기행 2>이라는 역작을 길러냈다고 나는 본다.


<수도원 기행 2>의 머리 부분을 차지하며 전체 글의 모태가 되는 '왜관수도원'만 해도 그렀다.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소재가 왜관수도원이기도 한데, 한국전쟁 중 애초에 군사목적으로 항해에 나선 미국의 배가 인민군과 중공군에게 쫓기는 무려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기적적으로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과 왜관수도원과의 인연이 이 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수도원 기행 2>가 왜관수도원에서 시작해서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이 수사가 되어서 머문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이 책이 단순히 기행문이 아닌 인과관계로 역인 대하소설로 읽히는 감동을 준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이 오로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국민을 속이고 한강철교를 폭파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천인공노할 일로 시작되는 바로 그 전쟁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정치나 국적보다 더 우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총구나 이데올로기보다 더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원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자급자족하며 노동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왜관수도원의 일원이기도 하며 <수도원 기행 2>을 펴낸 분도출판사를 키운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님의 주요한 기획중의 하나였던 가난한 이웃들의 사진만을 찍어 박정희의 핍박을 받는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 이름이 [Human]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예의라는 뿌리를 가진 이 책의 소소한 '인간적인' 면모는 194페이지의 공지영 작가의 저작권인 에펠탑 야경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야경사진을 삼각대가 아닌 손각대로 촬영하여 초점이 맞지 않아 뭉개진 공지영 작가의 귀여운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에서 발견한 유일한 흠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충고는 '야경사진을 찍을 땐 귀찮더라도 삼각대를 사용하시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에 담길 사진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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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 대통령의 필사가 전하는 글쓰기 노하우 75
윤태영 지음 / 책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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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지만 2009년 5월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연결식 조사를 상기해보자. 장례식을 치러내기 위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의례적인' 조사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것을 애통해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통한의' 조사가 이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로 시작해서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로 마치는 한명숙의 조사는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의 모든 일정 중에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눈시울을 가장 뜨겁게 달군 대목이었다. 이 조사를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국민의 반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위대한 경사스러운 날'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 대통령이 된 쾌거'였고 또 다른 국민의 반에게는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한 절망을 안겨준 2012대선을 상기해보자. 결과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선거기간동안 유난히 뇌리에 오랫동안 스며든 연설의 한 장면은 문재인 후보의 어눌한 입에서 나왔다.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명연설을 쓴 이가 바로 윤태영 전 비서관이다.


이 두 개의 글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글은 어려운 미사여구가 아닌 살아 있는 생활 속의 언어를 재료로 삼아야 하고, 윤태영의 글쓰기 방식이 우리 시대의 더할 나위 없는 글짓기 선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양한 글쓰기의 지침 속에 알알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저자와 관련된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글쓰기 교재가 아닌 '노무현 추억하기'로 읽히기도 한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칭찬을 전혀 듣지 못한 '문학청년' 지망생 저자가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고, 정치권의 글쟁이를 거쳐서 이제는 <기록>(책담, 2014)이라는 걸출한 저서를 남긴 글쓰기 선생이 되기까지 몸소 체득한 글쓰기 비법 75가지를 알려준다.


스포츠 세계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의외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다.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나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하지만 넥센 히어로스의 '염경엽'처럼 무명선수출신의 명감독이 많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명선수였던 사람은 애초부터 타고난 재능이 워낙 탁월하여 '못하는' 선수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애초에 자신이 주목받지 못한 현역생활을 거친 감독들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 윤태영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지망하긴 했으나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그는 꾸준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하고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명문장을 써낸 장본인이 되었다. 재능은 싸구려이며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는 말의 훌륭한 예가 바로 윤태영이다. 그런 그가 '실용적이고 당장 처방이 가능한 글쓰기 비법'을 소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쓰기 강좌는 지켜야 할 수칙도, 사례도 구체적이다. 김훈이나 김승옥의 소설에서 예문을 구해오기도 했지만 예문의 대부분은 그가 정치 글쟁이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글쓰기 실무의 경험에서 따왔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메모로 쓴다"

"이름 모를 소녀 신비함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

"접속사,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자. 흐름을 중시하자"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자. 욕심이 글을 지루하게 만든다"

 으로 대표되는 75가지의 글쓰기 노하우는 철저하게 실용적이며 구체적이다. 




소설이야말로 글쓰기의 훌륭한 교재라는 가르침에 나는 철저하게 동의한다. 좋은 소설을 읽고 그들을 흉내 내는 일이야 말로 좋은 글쓰기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무릎을 치게 하고 가슴을 울리는 명문장이 가득한 김훈이나 김승옥 그리고 이문구 등의 소설을 읽을 때면 수첩을 곁에 두고 메모를 한다. 메모한 문장이나 문투를 다음번 글을 쓸 때  한 번 써먹겠다는 생각이다. 여의치 않으면 그 문장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면서까지 흉내 내야 속이 시원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흉내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어투와 글 솜씨를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는 고매한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면서도 제자의 함량을 고려하지 않는 저 높은 곳의 하늘 같은 스승이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호랑이 선생의 송곳 같은 질문에 쩔쩔매는 친구를 돕기 위해서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힌트를 주는 다정한 친구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밝혀둘 것은 이 글은 접속사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흐름을 중시하라는 저자 윤태영의 충고대로 접속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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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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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서울의 한 가정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대학에서 사진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딸아이의 아버지는 귀여운 딸을 낳아준 아내와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족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기로 결심했다. 딸아이의 이름은 윤미였고 그 딸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아버지는 전몽각 선생이었다.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은 이렇게 윤미의 출생과 함께 잉태되었다.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여러모로 각별하다. 사진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전문사진작가가 아닌 평범한 '아빠 사진사'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 놀랍다. '장가도 못 갈 것 같았는데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해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이 사랑스러운 사진집의 시작이었다.


전몽각 선생은 아빠의 시선으로 사랑하는 딸아이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 가는 순간까지 일상을 카메라로 꾸준히 담았다. 이 사진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도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윤미'가 그리워서였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소장용으로 출간이 된 <윤미네 집>은 의외로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전몽각 선생 자신이 말한 것처럼 '아마추어리즘의 소산'인지 플래시와 삼각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 흑백사진들은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이 주는 잔잔한 감동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독자들의 관심은 많은데 애초에 많지 않은 수량으로 출간이 된 이 사진집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애를 태웠다. 사고 싶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진집이었고 급기야 가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분량마저 독자들의 성화에 금방 판매가 되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윤미네 집>을 찾는 탓에 결국 초판이 나온 지 20년째 되는 2010년에 새로운 장정과 편집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주명덕 작가가 편집을 맡았고 초판에 없던 '마이 와이프My Wife'가 더해졌다. '마이 와이프My Wife' 는 2006년 유명을 달리한 전몽각 선생이 췌장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정리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구판을 간신히 구해서 소장하던 나는 신판이 나오자마자 2권을 주문해 비닐랩핑도 뜯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전몽각 선생은 원래 토목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가했으며 성균관대학 부총장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이제 그는 '윤미네 아빠'로 더 잘 알려졌다. 딸아이와 가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는 큰 딸 윤미가 태어난 1964년부터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1989년까지 윤미와 아내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그에겐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아내와 딸은 그에게 최고의 모델이었다.


카메라가 흔해진 요즘에는 '아빠 사진사'가 아닌 아빠가 드물다. 그러나 자식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할 때까지 '아빠 사진사'노릇을 하는 아빠는 드물다. 전몽각 선생은 심지어 윤미가 결혼을 할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곳까지 따라가서 사진을 담는 열성까지 보인다. 물론 딸의 허락을 사전에 받기는 했지만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딸의 일상을 담으려는 그의 의지는 심지어 결혼식까지 이어져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쥐고 로우촬영으로 윤미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시도는 딸아이 윤미에 못지않게 사랑하는 아내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고 대신 그의 절친인 강운구 선생이 대신 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윤미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가 윤미를 더 이상 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윤미가 미국생활을 하기 위해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 사진이 윤미의 마지막 사진이 된 것이다.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윤미네 집>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이란 결국 기술이나 장비의 소산이 아닌 따뜻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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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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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글쓰기는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책이나 신문 잡지 같은 전통적인 글쓰기의 터전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만 싶다면 누구나 블로그, SNS 등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서 '글을 잘 쓰는 방법' 또한 작가의 독차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글쓰기 강좌, 글쓰기 방법론을 다룬 책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기작가 즉 우리시대의 '파워 라이터' 24인의 글쓰기 방법론을 담았다는 점에서 다른 글쓰기 관련 책과 차별성을 확보한다.



시나 소설보다는 다양한 전공분야의 특수성과 독특함을 살려 자기만의 개성 있는 책으로 성공한 파워라이터들의 글쓰기 비법을 배워보자는 의도다. 강신주(철학자), 김두식(법학교수), 김종대(군사평론가), 박찬일(셰프. 음식칼럼리스트), 선대인(경제연구인), 신형철(문학평론가), 전중환(진화심리학자) 등의 면면만 봐도 이 책이 담으려고 노력한 다양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파워라이터 24인이 알려주는 글쓰기 팁은 모호하거나 어렵지 않다. 직관적이며 실제적이다. 공부잘하는 친구의 비밀 노트를 훔쳐보는 것처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적용가능한 팁을 선사한다. 애초부터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든지,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특출한 것이 아니고 오롯이 스스로가 글쓰기라는 전투에서 습득한, 노하우로 성공한 글쟁이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파워라이터들의 전공이나 직업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보유한 글쓰기 노하우도 다양하다. 각자가 독특한 글쓰기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데 그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분모를 찾는다면 다음 9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글쟁이가 되려면 '비만'과 '변비'를 경계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독서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읽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않으면 글쓰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설'이라 함은 독서를 하고 나서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글쟁이가 될 수 있다. 일기도 좋고, 개인 블로그도 좋다. 독서가 숨을 들이쉬는 행위라면 글쓰기는 숨을 내쉬는 행위다. 숨을 들이키기만 하고 내쉬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글쟁이는 곧 '메모하는 사람'이 이어야 한다.  

글쟁이가 가지고 있는 '머피의 법칙'이 있는데 중요한 아이디어는 꼭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하다 못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떠오른다는 것이다. 수첩을 휴대하기 번거롭다면 스마트폰의 메모기능을 이용하더라도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는 꼭 기록을 해야 한다. 글쓰기 아이디어는 마치 여름날의 소나기와 같아서 예고 없이 찾아와서 불현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셋째, 고통스럽게 쓰되, 쉽게 읽혀야 한다.

고통스럽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을 의미한다. 한 권의 저서를 쓰기 위해서 수백 권의 관련서를 탐독한다든지, 도서관에서 몇 달을 죽치고 앉아서 자료를 수집한다든지, 수없이 퇴고를 반복한다든지 등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을 한 살 낮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작가는 모름지기 노인과 어린아이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는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나라와 취향을 넘나드는 퓨전 요리사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글쟁이다.


넷째, 자료조사에 가급적 많은 시간을 투자해라.

어떤 글이고 간에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 되지 않고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쓰기는 힘들다. 그런 글들은 책으로 나온다고 해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자신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은 철저한 자료조사에 의한 팩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답사여행과 자료수집에 가장 철저한 작가 중의 한 명인 그는 '태백산맥'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성공시대는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자인한 바 있다. 글쓰기의 8팔은 자료수집이 차지해야 한다.


다섯째, 자신만의 색깔이 중요하다.

SNS가 일반인들의 주된 글쓰기 창구라서 생긴 현상이겠으나 패션뿐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봤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두들 문투가 비슷하고, 사용하는 어휘가 비슷해서 분명 수백 명의 다른 사람의 글인데 읽고 나면 한 사람이 쓴 글인 줄 착각하겠더라는 이야기다. 우리 눈에는 똑같이 생긴 수천 마리의 야생 영양 떼가 귀신같이 자신의 새끼를 알아보는 것처럼, 좋은 작가는 설사 이름을 가리더라도 자신의 글임을 알아보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 글쟁이는 모름지기 자신만의 독특한 문투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찾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만나는 타인의 불평이나 비판을 참아내야 한다.


여섯 번째, 자신의 책의 독자를 3천명쯤으로 설정해보자.

적어도 책을 내는 작가라면 누구나 베스트셀러 즉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독자를 생각한다. 딱히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다수의 독자를 꿈꾸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 다만 너무 소수나 다수의 독자가 아닌 3천명쯤의 독자가 자신의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독자들의 반응이 계산이 된다고 한다. 투수가 본격적으로 게임에 나가기 전에 가상의 타자를 세워두고 피칭 연습을 하듯이 작가도 반응이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숫자의 독자를 수를 설정한다면 좀 더 흥미진진한 글쓰기 작업이 되리라. 적절한 비교인지는 가늠이 안 되지만 서재 장서의 수를 특정 한다면 더욱 독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가령 무턱대고 책을 사고 무더기로 쌓아두기보다는 500권정도로 자신의 장서를 정하고 한 권을 새로 사면 자신의 장서 중에서 한 권을 빼내는 식이다. 이런 식이면 책 한 권을 사더라도 좀 더 신중해지기 마련이고 더욱 효율적인 독서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곱 번째, 글쟁이에게는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이라고 해서 학교 선생님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글솜씨가 너무 훌륭해서 내 것으로 훔치고 싶은 글을 만나게 된다. 또 한 편이라도 이런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은 작가를 만난다면 그가 바로 글쟁이에게는 롤모델이요 스승이다. 산 자일수도 있고 죽은 자일수도 있다. 그러나 생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남긴 가장 훌륭한 교과서 즉 저서를 반복해서 읽고 흉내 낸다면 그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나 진배 없다. 자신이 감탄한 문장을 흉내 내 보고 자신의 것으로 조금씩 소화시키다 보면 글쓰기 실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왕도가 있다면 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덟 번째, 당신이 어떤 책을 집필하겠다고 작정을 했으면 '서문'을 먼저 써 볼 것을 권한다.

실제로 4권의 졸저를 낸 나의 경험은 이렇다. 책을 집필할 때 가장 큰 난제는 '서문'이었다. 서문 또는 머리말이란 한마디로 '당신은 왜 이 책을 썼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희한하게도 원고를 마무리하고서도 서문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라는 이야기다. 필자 자신이 왜 이 책을 쓰려고 하는지 이유를 스스로 정리해야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글쟁이는 다독가이어야 한다.

글이라는 집을 지을 때 아무리 재료가 풍부하고, 집을 설계하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독서량이 부족하다면 그는 '연장통'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등학교때 문예반에 들어갔다가 함양미달로 하루만에 쫓겨난 나로서는 너무 늦게 만난 이 책이 아쉽고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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