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중학교 15살 난 여자 아이다. 아빠는 영어교사로 엄마는 국어 교사로 일하신다. 두 분은 모두 어문 계열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마치 국어와 수학이라는 반대되는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특기가 확연히 다른 분야에서 각기 발휘된다. 아빠가 책을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어를 전공한 엄마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는 점과, 엄마는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좋아했고 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공집합만 제외하면 부모님은 묘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겹치지 않는 특기와 세상을 가진다.
두 분의 다른 세상은 여행을 가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2년 전 싱가포르 여행이 딱 그랬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해외를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여행 일정을 두 분의 역량을 모두 발휘해야하고 두 분의 진면목이 드러난 기회였던 셈이다.
우선 비행기 티케팅과 호텔 예약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는 비행기 표를 예약한 것도 모자라서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외국의 호텔을 예약한 엄마의 업적에 가슴 깊숙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당신이 하면 싱가포르에 도착은 했는데 호텔 예약은 다음 날에 예약이 되어 있는 황당한 실수를 할 것 만 같았으리라.
아빠는 인천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나와 엄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고 혹시나 우리가 당신을 떼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고, 다른 장소였다면 혼자서 마구 이리저리 다닐 텐데 낯선 공항에서는 우리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가방을 들고 얌전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심지어 중학생인 나를 본인보다 더 공항의 지리와 시스템에 정통하다고 여기는 게 확실하다. 엄마가 잠시 어딜 다녀왔는데 내 옆에 딱 붙어서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여자라서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를 보호한다는 아빠는 사실 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쉽게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고 주장하면 신발도 벗을 태세였다. 마침내 비행기를 탈 때 그는 입구에 비치된 신문을 여러 부 가져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신을 못 한 나머지, 스튜어디스 언니의 눈치를 보는 것도 나는 쉽게 알아챘다. 그에게 난관은 또 남아 있었다. 끔찍한 고소공포증 환자인 아빠는 이륙을 할 때 눈을 꼼 감고 좌석의 팔걸이를 마치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보루나 되는 것처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지막한 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아빠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받친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진 상태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다.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에 진입을 해서 흔들릴 때 그의 공포는 극에 달해 엄마의 손을 부둥켜 쥐고 마치 지구의 종말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고난이 시간이 끝나고 스튜어디스 언니가 입국서류를 나눠주었을 때 마침내 아빠의 세상이 도래했다. 아빠는 입국서류를 영어로 메꾸면서 온갖 유세를 부려서 엄마와 나는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아빠가 죽을상을 짓다가 모처럼 살 만해 보이는 게 반가워서 참아주기로 했다. 아빠는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엄마와 나는 아빠 없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우리도 그런 간단한 그 입국 서류 작성은 이미 작성해봤지만 아빠의 체면과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모른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는 그간의 서러움을 한 번에 만회하려는 듯 기고만장해져서 ‘내가 아니었으면 어디 감히 너희들이’ 해외여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느냐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길을 잃을까봐 13살 난 딸내미의 손을 놔주지 않던 기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꼼꼼하지 않고 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가령 내가 짜게 먹지 말라고 주의를 몇 번 주었는데 지키지 않아서 마침내 내가 일일이 양념의 양을 그때그때 숟가락으로 얹어줘야 한다.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를 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달랑 우리 식구끼리 움직여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을 하고서야 이곳저곳 들릴 곳을 검색한다.
검색과 임기응변은 단연코 아빠의 세상이다. 단 몇 분 만에 그는 그날의 여행지와 일정을 엄숙하게 발표를 했다. 아빠는 택시를, 엄마는 나의 현장체험을 위해서 지하철을 주장했는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엄마의 편을 들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지하철의 이용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지하철 티켓을 사지 못해서 30분간 고군분투를 한 분이다. 보증금 500원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인데 아빠는 지하철을 타고 오라는 죄 없는 친구 분을 향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엄마는 능숙하게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빠가 정한 일정은 나쁘지 않았다. 쇼핑과 볼거리를 적당히 배합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의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 예전에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는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의 목록을 보다가 ‘리틀 인디아’를 발견했고 별생각 없이 ‘한 꼬마 두꼬마 세 꼬마 인디언’의 인디언을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어리고 귀여운 어린 인디언들이 재롱을 자랑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 그는 인디언이 아닌 인디아를 발견하곤 덥디 더운 날씨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차마,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며 우리를 다시 데리고 나가기엔 너무 어이없는 실수라 그는 평생 카레를 한 번도 먹지 않았으면서 억지로 꾹 참고 인도의 거리를 거닐어야 했다. 마치 정말 인도의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온 것처럼 태연히 걸었지만 나는 아빠가 몸을 파르르 떨고, 구경거리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초점이 풀린 눈과 축 늘어진 팔자주름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이미 아빠의 실수를 눈치 챘다.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싱가포르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다는 아빠가 먹은 것은 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였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라곤 ‘칠리 크랩’이 유일했다. 반면 그의 세상의 물건에는 심취를 해서, 라이카 카메라 매장 앞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을 그의 시선의 범위에서 풀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텔의 57층에 위치한 야외 옥상 수영장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수영을 즐긴다든지, 선탠(이건 내가 봐도 불필요하다. 그는 모태 선탠이라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을 즐기지 않았다. 아빠가 세계적인 그 수영장에서 몰두한 것은 남미계열의 연인이 잠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신기해하는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괜한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가 졸지에 붙잡혀서 20분간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에 대한 강의의 수강생이 된 그 불쌍한 커플을 본국에 돌아가자마자 주문을 하겠다는 맹세를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하철역도 보이지 않고 택시역도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택시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탈 수 있는데 우리가 정류장을 알 리가 없다. 그때 아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우리를 인적이 많지 않은 도로로 데리고 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서 손을 든다. 마치 한국에서 택시를 잡는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벌금의 나라에서 하는 아빠의 행동에 우리는 기함을 했지만 아빠를 나무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택시 기사가 법규를 위반한 우리를 고발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그 택시 기사는 한국의 택시 기사처럼 급하게 우리에게 택시에 타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아빠의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임기응변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자국의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손님을 태운 것에 성공한 기사의 성취감과 위기의 가족을 자신의 기지로 구해냈다는 아빠의 자부심은 서로의 만남이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도 이어진 것처럼 감격해하고 서로를 용기와 배려 심을 치하하기 바쁜 눈치다.
가장의 임기응변을 고마워해야 할지, 타박을 해야 할지를 고심할 기운조차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열심히 뭔가에 대해서 대화를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속 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나누었냐고 아빠에게 물었더니 ‘싱가포르의 비밀경찰 제도와 위협받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한 싱가포르 국민의 시민 의식 함양’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