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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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자의 다른 책들을 작년에 몇 권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그 책들과 맞닿아 있다. 같은 사람의 생각이라서 인지 몰라도 전작들과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나온다. 이번에 읽으면서 와 닿은 부분만 언급하면.. '함'의 과잉상태에 빠진 우리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개인의 자아실현은 우리 현대인들의 숙명과도 같다. 주체적으로 자아실현을 하지 않는자는 직무유기인 것처럼 개인의 진정성이란 본연의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자기주도학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를 찾아다니며 이 혁신학교 출신이 특목고로 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슨 연관인지는 모르겠다만...

 적극적인 성격으로 모임을 조직하고 세상에 내 자신을 끊임없이 알린다. 목적지를 향해 몰아가는 우리들은 여행도 목적지를 찍고 네비가 안내하는 가장 최적의 길로만 다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자아실현이 가능할 것 같다는 착각..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몰아부치는 삶은 여유가 없고 생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이는 자율적 주체로서 행하는 것이 아닌 단지 욕망의 노예로서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자기가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것조차도 사실은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였던 것이다. 열심히 살수록 공허한 이유를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결론은 우리는 살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을 던지는 척하지 말고 진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발 멈추고 내 자신을 되돌아봐야한다. 이대로 가는 것을 멈춘다면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 초조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의 가치는 속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여유롭게 물러서 질문을 던지는 삶. 긴 꿀같은 연휴를 끝내야 하는 저녁밤,불안과 초조가 엄습해오지만 5월에는 좀더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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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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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선 그렇게 좋은 느낌의 단어는 아니다. 세상물정을 안다는 것은 이제는 속세(?)의 때가 묻어 더 이상한 순수한 아이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웬만큼 살아본 경험을 담보로 남에게 쉽게 속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들여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물정과는 조금 다르다. 이 사회를 사회학자의 눈으로 본 시각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도 언급했듯이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세상으로서의 사회'로 인식한다면 사회학자는 '세계로서의 사회'로 인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텍스트를 노련하게 읽고 그 이론을 이 세상에 적용하여 사회를 해석한다는 것이 우리같은 범인들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이 필요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해야겠다. 강신주의 다상담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이론과 실천은 절름발이처럼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언행일치라고 해서 이론과 실천이 동시에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둘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론으로 한발 나아가면 실천으로 다른 한발이 나아가면서 한 개인 나아가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행동이 먼저 나아갔는데 알고보니 이런 이론도 있었더라며 이론을 발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고 흔들리며 조금씩 나아가야지만 발전이 있는 것이다.

 

  책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개인에 대한 관심이 곧 자기 속에서 사회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나 개인이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 그것들에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 이 책의 힘은 여기에 있다.

 개인에 대한 관심은 나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 속에서 반복되는 사회라는 커다란 단위에 대한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관심을 나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개인을 언급할수록 탐욕스러워지지만, 자기 속에서 사회를 발견하는 사람은 개인을 언급할수록 품이 넓어진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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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들, 사랑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4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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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믿지 못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게 가능한 모양입니다. 언젠가 어느 동창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자기 마누라가 요즘 다른 남자들과 동거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더군요. 그런 일을 어떻게 참느냐고 물었더니 간단히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질투심도 극복할 수 있더라.> 인간은 죽음 말고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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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14-04-1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여자에 둘러싸인 남자의 엉킨 사랑이야기랄까. 살짝 분통이 터졌는데 시절이 특수한 때였으니 남자가 그렇게 우유부단한것도 이해가 갔어요 몰랐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더라구요 ^^
 
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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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제목은 거의 두세글자에 간결해서 읽은 건지 안읽은 건지 도통 헤깔린다. 이 책은 서점에서 보고 너무나 이뻐서 샀는데.. 현암사에서 나온 이 시리즈 계속 사게 될 것 같다. ㅠㅠ 너무 예쁘다. 4권까지 나왔고 14권까지 나온다는데..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혹하지 않을 수 없는 디자인. 네모 반듯함.

 내용은 뭐 쿨한 도련님의 사회초년생 이야기다. 삶의 애착이 별로 없고 쉽게 단념하지만 그래도 정직한 도련님이 어느 학교에 발령받아서 사소한 일들 몇 가지를 겪고 못 견디고는 그만두는 이야기랄까. 도련님의 행태를 보아서는 이렇게 쿨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부러운 일. 뭐에 그리 목숨걸고 직장에 다니겠다고 아둥바둥인지 모르겠는 요즘. 한주가 하루처럼 빨리가는 요즘. 도련님이 나는 부러울 뿐이다. 역시나 나쓰메 소세키는 깨알같은 유머를 발견하게 한다.

 농담도 도가 지나치면 못된 장난이다. 구운 떡의 검게 탄 부분 같은 것으로, 그런 걸 칭찬하는 사람은 없다. p.46

이런 식의 문장때문에 나는 소세키의 소설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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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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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에 나온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지금 번역이 되었고 이 당시 폴 오스터의 나이가 예순넷이었나보다. 제목 그대로 폴 오스터 자신의 일기다. 평소에 폴 오스터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그의 창작의 근원을 보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이제는 겨울로 접어드는 나이.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는 그를 이루었던 많은 것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몸, 장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간과계이다. 책의 첫페이지부터 사로잡는 문장. 너는 네 몸안에서 사는 것이 어떠니. 우린 결코 우리의 몸을 떠날 수 없다. 일상의 사소한 동작들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되돌아본적이 있는가. 수없이 나열되는 그 동작들을 읽으며 나는 내 몸의 감각을 느껴본다. 오른다리에 무릎통증이 조금 있고 지금 방이 살짝 싸늘해서 기침이 간간히 나오고 있다. 장소 또한 우리가 살아온 과정을 말해준다. 가난했던 20대부터 한번의 결혼 실패와 재혼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거쳐왔던 수많은 방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 불행했던 부모의 결혼생활. 행복한 재혼.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서술해서 오히려 그것들이 주는 거부감 대신 사실로서의 나열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의 나이로는 겨울일지언정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이상고온으로 봄도 없는 요즘이지만..) 젊은이이건 늙은이이건 몇번의 봄이 남았는지 누가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난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이 작가가 꾸준히 책을 내주고 기대이상 이든 기대이하든 내가 그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부디 그의 갑상선이, 심장이 건강하여 그리고 공황장애가 더 심해지지 않아 오래오래 더 많은 글들을 써낼 수 있길 멀리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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