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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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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쟁이 토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 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김별아의 책에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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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The Veteran

 

                       -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1967)

 

 

내가 젊고 대담하고 강했을 때,

옳은 것은 옳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깃털 장식을 세우고 깃발 날리며

세상을 바로 잡으러 달려 나갔다.

"나와라, 개**들아, 싸우자!"고 소리치고,

나는 울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다: 선과 악이

미친 격자무늬처럼 얽혀 있어

앉아서 나는 말한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거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사람이 현명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지-

이기든 지든 별 차이가 없단다, 얘야."

 

 

무력증이 진행되어 나를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그걸 철학이라고 말하지.

 

 

When I was young and bold and strong,

Oh, right was right, and wrong was wrong!

My plume on high, my flag unfurled,

I rode away to right the world.

"Come out, you dogs, and fight!" said I,

And wept there was but once to die.

 

But I am old; and good and bad

Are woven in a crazy plaid.

I sit and say, "The world is so;

And he is wise who lets it go.

A battle lost, a battle won-

The difference is small, my son."

 

Inertia rides and riddles me;

The which is called Philosophy.

 

 

 

최영미의 <시를 읽는 오후>에서 읽은 시다.

마지막 연의 반전이 좋다.

작가의 말처럼 시를 읽는 오후, 나는 이미 아름답고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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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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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내 영혼에 존재하는 나라.

  나는 나의 모국에서처럼

  여권 없이 그 나라에 입국한다.

  그 나라는 나의 슬픔과 고독을 바라본다.

  그 나라는 나를 채워주고

  향기로운 돌로 나를 덮어 준다.

 

  나의 내부에는 꽃이 만발한 꽃밭이 있다.

  내 꽃들은 내가 만든 것들이다.

  거리는 모두 나와 관련이 있지만,

  그곳에는 집이 하나도 없다.

  그곳은 나의 유년시절 이후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살 집을 찾아 공중에서 떠돌아 다닌다.

  그 글은 내 영혼 속에 산다.

 

  내가 미소를 짓는 것은 나의 태양이 빛날 때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밤에 보슬비가 오는 것과 같다.

  한때 나는 머리가 두 개였다.

  한땐 그 두 얼굴들이 사랑의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장미의 향기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지금 나는 뒤로 물러설 때조차도 높다란 대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그 문 뒤에는 벽에 죽 이어져 있는데

  그 곳에는 소리를 죽인 천둥과

  빛이 꺾인 번개가 잠들어 있다.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내 영혼에 존재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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