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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천재 작곡가의 뮤직 로드,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클래식 클라우드 7
김성현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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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신동인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거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의미에서 모차르트는 우리에게 음악가하면 거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모차르트에게 아버지 레오폴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음악적 성과를 냈던 거장이 될 수 있었을까.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누이 난네를과 모차르트는 궁정 악장이자 음악교육가인 아버지의 교육으로 누구보다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3년 5개월 동안 88개국을 돌며 음악회를 열고 유명한 음악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할 수 있었던 교육자로서의 결단이나 실천력은 지금이라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부모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재능의 조기발견이야 말로 천재 탄생의 첫번째 조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식 교육에 있어 참으로 어려운 점이 드러나는데 헬리콥터 파파같은 레오폴트의 존재가 모차르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스무살이 되어 모차르트는 몇개국을 돌며 구직전선에 뛰어들지만 좀처럼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의 취직은 곧 가족의 이주를 의미했던 레오폴트는 너무 높은 연봉이나 처우를 기대했던 탓이다. 결국 아버지는 잘츠부르크에 안주하게 되고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울타리를 넘어서 빈에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 콘스탄체와의 결혼도 단행했고 경제 관념이 없어서 말년까지 후원자나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있었기에 오늘날 사랑받는 모차르트가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천재는 타고 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유전이라면 모차르트의 아들 둘이 평범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의미가 있겠으나 모차르트가 어떤 식으로 작곡에 몰두하며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읽어보면 하늘이 그냥 내리는 천재는 없나보다. 즉 게으른 천재는 없다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에 모차르트 이펙트라고 하여 모차르트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설이 있었다고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증명된 바 없는 상술이라고 한다. 다음의 문구들이 기억에 남아 옮겨본다.


아이들에게는 클래식 음악만 들려주어야 할까. 그렇지만도 않다. 자유롭고 변칙적으로 약동하는 리듬감을 통해 창조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싶다면 재즈가 효과적이고, 차분한 정서 함양에는 우리 전통 음악이 안성맞춤일 것이다. 반대로 로큰롤은 비교적 단순하고 공격적이지만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사실이다. 반드시 음악만 육아와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술과 건축, 패션과 무용, 문학과 영상까지 온 세상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자극으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모차르트의 음악만 특효약이라고 주장하는 발상은 그 자체에 불순한 상업적 동기가 숨어 있다. 


참고문헌이나 자료조사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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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르네상스 피렌체가 낳은 이단아 클래식 클라우드 11
김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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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태어난 1469년에 피렌체는 명목상 공화국이면서 메디치가의 지배하에 있었다. 로렌초가 지배하는 피렌체에서 성장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몰락, 사보나롤라의 집권과 실각을 목도하게 된다. 그 뒤 피렌체 공화국의 공무원이 된 마키아벨리는 잘사는 나라,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게 되는데 민병대를 구성하고 인민 중심의 공화정을 강조한다. 마키아벨리는 귀족보다는 인민에게 신뢰를 보였으며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유롭고 공정한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좋다고 보았다.

메디치가가 다시 실권을 잡게 되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공직에서 물러났으며 늘 나라를 생각했던 그이지만 다시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지 못했다. 그 힘든 시기에 쓴 것이 <군주론>,<로마사 논고>이다. 두 책이 군주제와 공화정을 각각 옹호하는 것처럼 보여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나 시대나 상황에 맞게 현실적인 정치론을 담은 그의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지도자들에게 이용(?)되며 회자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군주론>을 직접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의 핵심 사상에 대해 재밌게 읽었다. 사진 도판도 많아 금방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인문학적인 여행이라는 컨셉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서 서재에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전에 나는 종일 입고 있던 진흙과 먼지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옷을 차려입습니다. 그렇게 적절히 단장한 뒤 선조들의 궁정에 들어가면 그들이 나를 반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만의, 그 때문에 내가 태어난 음식을 먹습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캐묻습니다. 그들은 친절하게 답변합니다. 네 시간 동안 거의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모든 근심과 가난의 두려움을 잊습니다. 죽음도 더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자신을 완전히 선조들에게 맡깁니다.

우리가 읽은 것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테가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대화하며 얻은 성과를 <군주국에 관하여>라는 소책자에 기록했습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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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클래식 클라우드 4
김한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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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언급했듯 나 역시 페소아를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들어 이 책을 두번 읽었었다. 이후에 이탈리아어 중역인 까치글방의 <불안의 책>을 몇년 전에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사로잡는 문장이라니... 이렇게 단 두권을 읽었을 뿐인데도 페소아의 매력에 빠졌는데 그 때문에 리스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해도 이상할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한민의 <페소아>를 다 읽고는 정말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나이에 페소아를 연구하려고 전공과 상관없이 포르투갈에 갈 수 있는 용기며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전공자로서의 위엄이 책의 곳곳에 나온다. 한국에는 아직 페소아에 관련된 책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가 큰 몫을 할 것 같다. 페소아는 여러 개의 이명으로 문학작품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정신병이 있지 않을까해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고독을 친구 삼아 평생을 살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심정을 여러 개의 자아로 나누어 활동했던 것일까. 여러 개의 인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통일된 자아를 이루는 것이 인격의 완성인양 배워온 나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사람들은 페소아의 흔적을 찾아 멀리 리스본까지 날아가는 것이겠지만 페소아는 오히려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여러 인물을 살아본 사람이니 상상만으로도 세상 여러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페소아의 집이라는 박물관은 사실 엄밀히 말해 페소아의 집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페소아의 기본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르테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인물과 여행지를 결합한 시리즈를 출간하나 보다. 흥미로운 책들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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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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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몇 달 전부터 몽테뉴의 수상록을 생각날 때 마다 읽고 있다. 이십대에 읽으면서는 전혀 감흥이 없었는데 요즘엔 예를 드는 것 하나하나 까지 재밌는걸 보면 나도 세월의 연륜이 쌓였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이먹는다는 것이 좋지 만은 않지만 그 나이때에 새롭게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런 책들이 무궁무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얼마전에 읽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 인용이 있어서 알게 된 책이다. 그야말로 몽테뉴의 일대기를 아주 얇은 책에 적어 놓은 것인데.. 가끔 수상록에서 본 듯한 문구를 만나면 기쁠 수가 없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몽테뉴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교육이다. 이 대가는 알고보니 그냥 개천에서 용난 경우가 아니었다;; 무려 몽테뉴의 아버지는 교육을 위하여 인문학자들을 소집하여 교육플랜을 세운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 유모에게 맡겨 지는 것이 아니라 벌목꾼에게 보내진다. 말 그대로 요즘 말로 하면 현장체험학습??을 하였는데 '단순하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으로 키우면서도 신체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서 였다. 더불어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아량까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인문주의의 열쇠인 라틴어를 배운다. 일부러 프랑스 말을 전혀 못하는 학자를 가정교사로 삼았고 집안의 모든 사람은 라틴어 이외의 말을 해서도 안됐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중심이 바로 서고 세태에 초연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은 아마도 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쉽지 않았을까, 부러울 따름이다.

 

몽테뉴가 죽는 그날까지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로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경직된 주장을 싫어한 유연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수상록에 계속해서 나오기도 한다. 읽다가 요즘 나에게 딱 적용하고픈 구절을 만나 옮겨둔다. 몽테뉴에게 관심있는 사람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은 장소에 묶여 있는 사람은 작은 근심에 빠진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몽테뉴는 언제나 거듭, 우리가 근심이라 부르는 것은 자체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키우거나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그 자체의 무게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부여한 무게를 지닌다. 가까이 있는 것이 멀리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근심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작은 척도로 움직일수록 작은 것이 더 많은 근심을 만들어낸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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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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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스콧 니어링에 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채식주의자, 헬렌 니어링의 남편이라는 것 뿐이었다. 몇년전에 니어링 부부의 책이 유행할 때 비슷비슷한 것들을 읽었을 것이다. 삶이 이렇게도 단순, 소박할 수 있구나, 나도 실천해봐야지, 책을 읽고나서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자서전이므로 당연히 스콧 니어링이 자신의 일대기를 쭉 소개한다. 초반부 형제들부터 시작해 집안 얘기가 쭈욱 나온다. 이 부분은 사실 조금 지루했다. 건설쪽 일을 했던 기술자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중반부는 대학생활과 교수생활을 했던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는 계속 교사라고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보통 대학교수를 교사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여튼 이론을 실천하며 사는 니어링의 교수시절이야기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나온다. 부당하게 해고당해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니어링은 인생의 위기라 할 수 있는 해직으로 말미암아 보다 폭넓은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가 한때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세월은 나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결국은 나를 추방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유인즉 내가 부와 가난 사이의 극심한 모순과 착취의 불공정, 계획적인 대량 살상과 파괴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경험에 힘입어 세가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즉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p241) 한 사람의 생이 이토록 견고할 수 있을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계획하고 실천하고, 실패했다면 다시 그 과정을 되집어보고.. 가장 단순한 원리인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키지 못한채 나이를 먹고 만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시라도 빨리 뛰어야 할 것 같다. 행동하는 삶을 위해 결단력이 필요하고, 그 결단이 의미있기 위해 늘 사색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자급농으로서의 삶은 그가 오십대에야 실천한 것이다. 두번째 부인으로 스무살 나이차가 나는 헬렌을 만나 버몬트에서 단풍사탕을 만들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산다. 이 부분을 읽으며 똑같이 살아가더라도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는 전세계를 여행하며 공부하고 강연을 하고 책을 쓴다. 노후에 그토록 정력적으로 살 수 있었던 근본은 그의 낮은 생활에 있지 않았을까.. 끝으로 매우 단순하지만 책상앞에 적어두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간소한 여행을 위한 그의 신조를 적어본다.  

1) 자기 혼자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챙겨라. 최소한의 옷가지와 사무용품과 필기구만 있으면 된다. 2) 1등석에서 편하게 여행하지 말고 3등석에서 고되게 여행하라. 3) 식당에 출입하지 말라. 요리할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신 과일과 견과와 그 밖의 신선한 자연 식품을 먹어라. 4) 술, 담배, 청량음료, 커피 같은 습관성 기호식품을 끊어라. 5)택시를 피하고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라. 6) 여가시간에는 될수록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운동을 하고 많이 걸어라.  

 제삼자의 입장에서 쓴 평전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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