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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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집사로 살아온 남자 스티븐스. 달링턴이라는 영국 귀족을 모시며 삼십오년을 살았고 지금은 패러데이라고 하는 미국인을 모시고 있다. 삼십오년이라는 긴 생활동안 휴가 한번 안내고 살아온 그는 패러데이가 준 육 일의 휴가동안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여행의 시간동안 그는 집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집사'라는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어 신기했다. 소설에는 집사의 '집사다움'에 대한 프로페셔널의 관점이 나온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p.58


 스티븐스가 말한대로 그는 제 아무리 놀라운 외부사건들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저택에서 역시 집사로 일했던 아버지가 쓰러지고 이후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에도 그는 저택에서 열리는 매우 중대한 행사에 본인의 역할을 다하느라 냉정함을 유지한다. 총무로 일하고 있는 켄턴 양과도 일종의 썸을 타지만 집사의 프로다움을 잃지 않으려 마치 모든 감정을 없앤듯한 태도로 눈앞의 사랑을 바로 보지 못한다. 

 사람이 정확히 노동에 대한 댓가를 받는 일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일이 너무나도 즐거워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스티븐스의 직업에 대한 태도를 보면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은 과히 모범이 될 만하다. 이 소설의 묘미는 그런 그의 태도가 자신의 인생에서 놓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삶에 있어서 스티븐스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 때문에 놓쳤던 많은 것들로 인해 그의 인생이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저 인생의 말미에는 그가 조금은 다리를 뻗고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길 그런 여유가 그의 마음에 허락되길 바랄 뿐이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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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어 사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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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서 알게 된 책이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지만 이 책은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진짜 이야기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추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기억이란 것에 의존하지만 말이다. 가계도가 나와있고 등장인물도 모두 실명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거의가 유명한(?) 사람이 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는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의 시기인 무솔리니의 등장, 파시즘, 인종법, 반파시스트 운동, 제 2차 세계대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때이다. 등장인물이 매우 많아 나는 수첩에 정리까지 하며 읽었다.

가족어 사전은 부모의 자녀들이 결혼하면서 점점 확장된다. 무거운 현대사적 배경과 개인사적 배경들이 겹쳐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죽음과 같은 비장한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하게 그려지는 것이 더 슬픈 듯한 느낌을 준다. 가족만이 아는 단어, 사건, 밀어들... 가족이라는 무게가 양 어깨에 한없이 내려앉지만 작가는 유머스럽게 덤덤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서경식 교수가 왜 이 책을 언급했는지 알겠다.

 

 우리 형제는 5남매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며 어떤 형제는 외국에 산다. 그리고 편지 왕래도 자주 없다. 만났을 때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끼리는 단 한 마디면 족하다. 단 한마디, 한 문장, 우리의 어린 시절에 수도 없이 듣고 반복했던 그 오래된 말 한마디면 우리들의 옛날 관계를 단숨에 되찾는다.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우린 베르가모에 소풍 온 게 아니오'라든지 '황화수소산 냄새는 어떤지.' 우리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떼려야 뗄 수도 없게 이런 문장, 이런 말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장 하나 혹은 이런 말 중의 하나는 우리 형제들이 어두운 동굴 속이나 수백만의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서로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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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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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오십 초반의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여는 하루의 여정을 보여준다. 런던 구석구석을 마치 소개하듯이 클라리사의 동선에 따라 묘사되는데 금방이라도 런던에 가보고 싶게 만든다. 클라리사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파티를 연다는 것. 그것은 사실 어떤 목적이 있는 일은 아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만남의 기회를 주는 것 정도랄까. 그런데 그런 일에 의미를 두는 클라리사는 그 준비과정에서 삶의 기쁨을 한없이 만끽한다. 그녀의 표현대로 삶에의 어떤 '봉헌'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클라리사가 한없이 순수한 여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주변인들의 묘사에 따르면 그녀는 세속의 성공을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평범한 인간이 삶에서 아주 작은 기쁨, 행복을 느끼는 것의 중요함을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새긴다. 하지만 클라리사의 이런 삶에의 태도는 삶을 꼭 맹목적으로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끝나지 않아서 좋다. 셉티머스의 자살이 클라리사의 삶과 대비되는 장면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의 마감이 자살로 종결되었다는 점과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을 더 찾아 읽고 싶다.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좀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싶었다. 어떤 즐거움도, 하고 그녀는 의자들을 바로 놓고 책 한 권을 서가에 꽂으며 생각했다. 어떤 즐거움도 젋은 날의 승리들과 결별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가 가끔 기쁨에 떨면서 해가 뜨는 것을, 날이 저무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는 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부어턴에서도 다들 이야기하고 있을 때 혼자 하늘을 보러 갔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는 식사 중에도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다. 런던에서도,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하늘을 보았고.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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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살의 남자는 여자문제(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인지는 나와있지 않다.)로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백면서생인 이 남자는 지나가는 길에서 갱부가 되지 않겠냐고 제의하는 어떤 사내를 만나 광산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어디 갱부가 되는 일이 쉬운가. 다행히(?) 기관지염때문에 갱부도 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듯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학문의 세계에서 빛을 발하지도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 같은 잉여인간의 삶이 그려져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 작가의 말대로 삶의 기둥뿌리가 뽑힌 사람들도 그 정도는 상대적인 법이다. 주인공보다 붉은 담요, 심지어 나이도 어린 꼬맹이는 어디 삶의 기둥이란게 있는지 모르겠다. 광산에서 만난 수많은 갱부들의 삶 또한 그렇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며 주인공의 인생영역도 확장된다. 이 소설은 어딘가에 연재해서 그런 모양인지 정확히 세 페이지씩 번호가 매겨진다. 그것이 더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병에 잠복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상이나 감정에도 잠복기가 있다. 이때에는 자신이 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에 지배당하면서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또한 그 사상이나 감정이 외계와의 관계로 의식의 표면에 드러날 기회가 없으면 평생 그 사상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는 이런 거라며 줄기차게 반대의 언행을 해 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그 언행은 모순되어 있다. 스스로 미심쩍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미심쩍다는 것은 모르더라도 엄청난 고통을 겪기도 한다. p.62

사람들은 경험한 당시에 쓴 글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당시의 사정은 순간의 혈기에 사로잡혀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전하기 쉬운 법이다. p.68

도쿄에 있을 때는 눈이 팽팽 돌 만큼 사람이 움직이고 있어도, 움직이면서 다들 뿌리를 내리고 있고, 마침 뿌리가 뽑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세상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나 하나뿐일 정도라서 센주에서 옷뒷자락을 허리에 지르고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도 남의 두 배였지만 이곳 역참 마을에서 뜻밖에 붉은 담요를 얻었다. 붉은 담요를 얻고 나서 2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그 꼬맹이를 얻었다. 두 사람 다 나보다는 훨씬 뿌리가 뽑혀 있었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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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로모프 1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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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사건을 다룬 소설보다는 확실히 인물의 성격, 특징을 다룬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성격이 확연히 다른 서너명의 인물이 나온다. 제목이기도 한 오블로모프. 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가진 지주이지만 부자는 아니다. 다소 쇠락해가는 집안의 오블로모프는 무척 게으르고 행동력이라고는 없는, 특별한 목표의식도, 이루어야할 꿈도 없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그의 친구 슈톨츠는 늘 바쁘고 재산을 모으고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인물이다. 슈톨츠와 올가는 현실에 안주해있는 오블로모프를 늪(?)같은 그의 일상에서 구원하고자 조언하고 행동을 하도록 종용하기에 이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느 쪽인가, 어떤 삶이 옳은 삶인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것이 바른 삶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올가와의 사랑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기질 차이였다. 올가는 오블로모프의 나태함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블로모프는 갖은 핑계를 대어 결혼을 미룬다. 올가가 생각하는 남편상은 지금 그대로의 상대가 아니라 미래에 자신이 그리는 이상형이었다. 처음에는 게으른 오블로모프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바쁘게는 살지만 텅빈 영혼을 갖을 바에는 오블로모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삶도 자기 자신만 좋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블로모프가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사랑하게 된 연인은 자신을 위해 헌신한 아가피야 마트베이브나였다. 소설에서 아가피야가 집안 살림을 분주히 하는 장면이 자주 묘사되곤 했는데,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헌신할 수 도 있구나, 하며 재밌게 읽었다.

1권은 앞부분은 조금 지루하지만 뒷부분과 2권은 정말 후루룩 읽혔다.

2016년이 밝았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마치 오블로모프의 인생처럼), 일상의 작은 일들 하나하나가 허망한 것이 아닌 그것들이 쌓여 내 인생, 내 기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새삼 깨닫게 된다. 많이 기록하고 많이 행동하고 좋은 책들을 더 많이 만나는 2016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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