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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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접시를 들여다보니 근사한 양갱이 담겨 있다. 나는 모든 과자 중에서 양갱을 가장 좋아한다. 별로 먹고 싶지는 않지만 그 표면이 매끈하고 치밀한 데다 반투명하게 빛을 받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특히 파란 빛을 띠게 이겨서 훌륭하게 다듬은 것은 옥과 납석의 잡종 같아 아무리 봐도 기분이 상쾌하다. 그뿐 아니라 청자 접시에 담긴 파란 양갱은 청자 안에서 지금 바로 생겨난 것처럼 반들반들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다. 서양 과자 중에서 이토록 쾌감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크림의 빛깔은 약간 부드럽기는 해도 다소 답답하다. 젤리는 언뜻 보석처럼 보이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어 양갱만큼의 무게감이 없다. 백설탕과 우유로 오층탑을 세우는 짓은 언어도단이다.-66쪽

니혼바시를 지나는 사람의 수는 1분에 몇백 명인지 모른다. 만약 다리 근처에 서서 지나는 사람의 마음에 맺힌 갈등을 일일이 들을 수 있다면 이 뜬세상은 눈이 팽팽 돌 정도로 어지러워 살기 힘들 것이다. 다만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만나고, 모르는 사람으로 헤어지기에 오히려 니혼바시에 서서 전차 깃발을 흔드는 지원자도 나오는 것이다. 강태공이 규이치의 울먹인 얼굴에 아무런 설명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돌아보니 안심하고 낚시찌를 주시하고 있다. 아마도 러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주시할 모양이다.-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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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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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한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정확하게 똑같은 것 같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국면에 이르러야만 벽에 균열이 보이고 기둥이 쓰러지고 건물의 앞면이 내려 앉는다. p.129

 

 매일 찾아오는 하루하루에.. 일상의 균열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이 소설은 정말 오랫동안 읽었다. 쉬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무려 포스트잇이 몇개나 붙었는지 모른다. 어딘가에 옮기는 것은 포기하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사람이 한결같으리라는 것, 일상의 안정이 변치 않으리라는 우리들의 이상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 변화의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가벼운 나날이지만 그 가벼운 나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삶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그래서 어떤 결론에 (인생에 결론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르게 될지라도 그 인과가 하나 어색하지 않은 그런 인생의 길들이 나를 포함하여 우리 주변에는 널려있다.

 일상의 환멸에 주저 앉을 것인가. 가면을 쓰고 꾸역꾸역 살아나갈 것인가. 아름다운 이 소설에 넉다운 당하고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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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삶의 권유 - 타인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게리 콕스 지음, 강경이 옮김 / 토네이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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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게리 콕스라는 저자의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실존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마음같아서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같은 책을 한방에 읽어버리면 좋겠지만 그럴 깜냥은 물론 안된다. 그래서 같은 저자의 이 책을 읽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이 책이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보다는 훨씬 괜찮은 것 같다. 대중철학서 치고는 철학적인 지식이 상당히 나오고 비슷한 말이 반복되긴 하지만 초보자들에게는 반복되는 만큼 복습(?)을 가능하게 해준다. 우선 제목이 이기적 삶의 권유인데.. 책의 내용에는 이기적이 어떻다,는 말은 아쉽게도 나오지 않으니 편집자들이 그냥 붙인 제목인것 같다. 얼마나 자극적인가.. 자기 주장한번 내세우지 못하고 순딩이 처럼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사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지 뭔가. 하지만 이 책을 지하철 같은 곳에서 보기에는.. ㅋㅋ 저 사람 이기적으로 살고 싶은가봐 라고 생각할까봐.. 사실 이것도 지나친 자기검열에 해당하는 거겠지.

 

작은 글씨로 표지에 '타인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써있다. 하지만 결국 읽다보면 인간이라는 대자존재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지만 그 타인이 싫어 내 자신이라는 동굴로 들어가버리는 것이 더 큰 지옥이라는 것을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다. 인용을 옮겨본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지옥은 타인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타인에 대해 존재하는 것, 타인의 판단에 따라 존재하는 것은 지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도 인정했다시피 타인에 대해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주체성 속에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은 그보다 더 한 지옥이다.

타인은 분명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위안과 쾌락의 근원이기도 하다.

...

타인은 부정적 평가뿐 아니라 긍정적 평가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타인의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타인으로부터 '그 어떤' 평가도 얻을 수 없다. p.117

 

실존주의의 교훈,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사는 진정성을 실천해보이는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타인의 타자성을 존중해야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누군가는 타인 하나하나가 곧 세계 하나하나라고 했고 누군가 사람은 한권의 책이라고 했듯이.. 우리가 눈뜨면서 만나는 가족부터 시작해서 직장의 동료들, 그리고 거리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모두를 새로운 눈으로 본다면 분명 우리의 인생은 그 이전과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혹시 타인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가. 실존주의를 통해 그 해결책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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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데케루 펭귄클래식 106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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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실존주의에 관련된 것들이다. 강신주의 다상담도 읽고 있는데 가족을 버리지 못하고 얽매여 고민하는 사람에게 과감히 자신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테레즈가 아마도 이에 딱 맞는 인물이지 싶다. 불행한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최고로 여기는 남편, 가족의 명예를 최고로 여기는 남편에 대한 분노는 테레즈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그 무엇인가를 이글거리도록 한다.

 '이제부터는 이 강력한 '가족'이라는 기계가 나를 향해 돌진할 거야. 그것을 없애거나 그 사이에서 제때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야. 다른 이유를 탓할 필요도 없어. 그들이었으니까, 나였으니까 이렇게 된 거지. 2년이 채 안되는 동안 나를 감추고, 체면을 세우고, 남을 속이기 위해 내가 했던 이 노력. 다른 사람들은 습관 때문에 익숙해지거나 무감각해져 따뜻하고도 전지전능한 가족의 품 안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지내려고해.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p.140

 테레즈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져서 살아간다. 최소한 참고 묵묵히 견디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전지전능하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마지막에 그래도 한번은 진정한 대화가 통할까 했으나 역시나 서로의 대화는 벽으로 튕겨져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 남편에게는 인습이라는 탄탄대로가 죽는 그 날까지 필요했기 때문이다.

 테레즈와 시누이인 안의 대조적인 성격이라든가, 안이 짝사랑했던 그리고 테레즈의 마음에 불을 지른 장 아제베도와 테레즈의 남편을 비교해보며 읽는 것도 재밌었다. 사람이 꼴보기싫으면 사소한 모든 것이 싫은 법.. 자세히 묘사되는 그 꼴보기 싫음에 속으로 큭큭거리면서 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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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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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스승이 되어주는 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지 일반적인 게 아니다. 사랑의 관념은 사랑이 아니다. 바다의 관념은 소금도, 모래도 아니다. 물개의 얼굴은 관념에서 솟아올라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사건과 함께 풍성해지고 즐거워져야만, 비로소 생각이 시작될 수 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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