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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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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 제목은 '고요한 삶은 외롭지 않다'이다.

뭔가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자의식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고민하게 만든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홀로 있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조용한 안도의 마음을 가진다. 그렇지,, 잊고 있었던 것.

저마다의 기준은 다른 법이라는 것이다. 타인과의 사랑, 친밀한 관계보다 무언가 알고 싶은 지적욕구, 혼자 책을 읽는 것 등을 사랑해왔던 나였으니 말이다. 물론 외로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하고 진정한 기쁨을 주었던 것은 돌이켜보면 무엇을 깨달았을 때나 스스로의 강박적인 행동들이 주는 내 삶의 질서였다.

 

이 책은 고독함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천재들의 삶을 통해 고독한 시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힘으로 창작물을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 내향적인 인간이거나, 강박이나 편집증에 휘둘리고 있거나, 심하면 정신분열로 인식된다 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이 성공적인가, 혹은 그 사람은 행복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칸트, 비트겐슈타인, 뉴턴의 일화가 재밌다. 칸트의 일화야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건강염려증이 심했다는 데서 조용한 폭소를 해본다. 

 

사람마다 충족감을 주는 타인과의 친밀감의 정도는 다르다. 직장에서의 피상적 관계만으로도 자아감을 형성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부담스러워하는 애착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적정 수위가 달라 사람들은 서로들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약한 것이 인간이다.

살 수록 더욱더 느낀다. 요즘말로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너무 긴장하거나 자책은 말자. 여유를 가지고 나란 인간이 마음가는 대로 살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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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에이브러햄 J. 트워스키 지음, 최한림 옮김, 찰스 M.슐츠 그림 / 미래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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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스누피에 등장하는 머리 둥그런 이 아이들을 싫어하겠는가. 스누피나 찰리 브라운의 친구들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디까지나 이들의 머리가 둥그렇기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ㅋㅋ 스누피가 이렇게 철학적인 만화였는지 그리고 이 만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이렇게 자조적인(?), 자책감에 시들리는(?) 인물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를 낮추어 불러 일으키는 유머를 좋아하는데 찰리 브라운이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 보통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내심 안도하게 되는 뭐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중 특별하달 것은 없다. 어디선가 한번은 보았을 내용들이다. 자책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런 일화가 나온다.  

저자가 딸에게 접시의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게 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단다."라는 이유를 대자, 딸아이가 "그럼 제가 이 접시를 깨끗이 비우면 아프리카 아이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즉 불행한 사람을 도울 능력이 되면 바로 도우면 되는 것이고 내가 처참한 기분을 느낀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니 갖고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인지 만화와 글 사이를 오가느라 집중이 잘 안되었다. 만화를 아예 글 이전에 제시하고 설명은 그 뒤에 쭈욱 제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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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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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안에 갇히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수록 즉,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행복하고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 같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관심의 대상이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권태,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행복에의 정복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심의 폭을 넓혀 좀 더 유연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답이다.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의 모든 의미와 목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기 쉽다. 가령 극단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은 엄청나지만 사고의 폭이 넓은 사람은 세상에 내가 죽을 만큼 중대한 일도 걱정할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러한 유연한 사고는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흔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은 스스로의 감옥에 갇혀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의 폭을 외부로 향하라는게 더 맞는 말 같다. 1930년에 나온 책임에도 행복에 대한 처방이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적용하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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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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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외로웠나 보다. 사실 이 책의 끝자락까지 읽는 동안 몇 구절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있었지만 내가 울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울게 된 문장이 무엇인가 하니 밝히기 쑥스러울 정도로.. 저자가 마지막에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어주어 감사하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을 느낍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도 날 알지 못하는 이런 관계 속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눈물을 흘리다니 말이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슬픔과 연민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그런 슬픔을 느끼고 나니 내가 강렬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순간에 이 책의 저자와 나는 서로 교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니얼 고틀립은 결국 당신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르다. 누군가의 인생의 날들에는 서른셋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전신이 마비되고, 아내와는 이혼을 했으며, 자폐아 손자를 갖게 되는 일정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운한 객관적인 사실들이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 인생에 놓여있는 인간은 그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 마음가짐들이 한 인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대하는 독자로서 내가 마음을 여는 만큼 이 책도 나에게로 와서 많은 의미가 되어 주었다.

 엄청한 시련 앞에서 대니얼 고틀립은 분노하게 된다. 그 분노를 치유하는 길은 단 하나 바로 ‘용서’였다. 용서는 화해와는 상관없다. 마음속에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을 품어서도 안 된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화를 완전히 버리는 과정이다. (p.135) 이 밖에도 저자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스스로에게 일어난 시련, 상처, 욕망들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지켜보라는 쪽으로 조언하고 있다. 배가 고파 45cm 아래의 높이에 있는 프레첼을 꺼내려다 내용물을 엎게 된다.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보며 망연자실히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먹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했다고 생각하고 서서히 시간이 흐르자 붓다가 도를 터득한 것처럼 저자 스스로도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상실과 박탈로부터 욕망을 참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두려움, 불안,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슬픔을 끌어안고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내보는 것, 그런 시간들을 갖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싹트고 폭풍과도 같은 마음에서 조금 벗어나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대니얼 고틀립의 생각이다. 이 가을은 아니 이 겨울의 초입은 스스로 견디어내보는 그런 시간들로 채울까한다. 어느 순간 내 마음 안에도 작은 코메디언이 나타나 이제는 툭툭 털고 일어나라며 재밌는 춤을 춰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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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빈 추천도서]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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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으로 가는 문턱 어느 날 나는 기차 안에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의 앞에 앉은 여자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서 집에 돌아와 이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책 사이사이에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하이테크펜으로 글귀를 적는 것인지 혹은 자신의 느낌을 적는 것인지 열심히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기란 쉽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한 2주에 걸쳐 읽은 것 같다. 두툼한 분량에 비해 생각 외로 술술 읽혔는데 좀더 음미하면서 읽으려고 일부러 하루에 조금씩만 읽었다. 책은 크게 훈련, 사랑, 종교, 은총의 네 부분으로 나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영적 성장, 진화를 목표로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적성장을 위한 방법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훈련 부분을 가장 열광하며 읽었고, 사랑 부분에서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본 내용들이었고 마지막으로 종교와 은총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에 의하면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성장을 위한 노력은 수많은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모험을 거부한채 늘 자신의 울타리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순간에는 편하게 삶을 영위할 것 같아보이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인용되는 수많은 임상사례를 통해 어느덧 나와 비슷한 경우를 발견하고 그것이 나의 성장과정 특히 부모와의 관계속에서 발생된 문제임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의 전반을 통해 느끼는 바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똑같은 역경이 주어질 때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반면 누군가는 아주 극단적으로 자살로까지 이르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은총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저자 자신도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면 현실의 삶을 고수하는 것보다 더 큰 삶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안주의 달콤함은 나를 끊임없이 게으르도록 유혹한다. 사랑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게으름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재밌다. 주옥 같은 구절이 너무나 많아 나 역시 포스트잇을 책에 많이 붙여놓았다. 하지만 다음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고 부지런하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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