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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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고통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연이어 일어나는 사고들에 인간이 겪는 고통과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타인의 고통, 그리고 나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맞서야 하는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많은 효용중에 나는 결국 우리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생각하면 그 고통의 영향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 경험의 한 기본적 특징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내면으로부터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반면, 타인은 단지 외적으로 만난다. 누군가를 가깝게 느끼고 잘 알게 될 수도 있지만, 간극은 항상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성을 인식함에 있어 우리는 자신이 남과 구별되는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된다.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자신에게도 일어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은, 우리 마음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우리는 인간 공통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우리는 삶의 공통된, 불가피한 특징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조해줄 문화적 대상과 관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지만, 삶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p.146

 

늙은 사람의 초상화에서 나의 미래의 모습을 발견하고, 앙상한 가지만 빽빽한 나무 그림에서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보도록 하는 것. 제 3자의 시선에서 나를 인간이라는 종으로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것. 이 책에서 찾은 미술작품의 효용이었다. 삶에 대해 냉소하거나 냉담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도록 만드는 것.

 

저자가 말미에서 말했듯이 종국에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데 있어야 한다고 한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그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이든 그 진정한 가치를 삶 속에서 발견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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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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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소개를 보면 무려 ‘세상에서 공부를 가장 좋아한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의 사람의 글인지라 제목처럼 문장도 약간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이 나같은 직장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학자나 대학원생, 대학생에게는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하루 9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와 이 책대로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대다수의 성인은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공부를 하며 취업이 성공(?)하면 동시에 공부와는 안녕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의 시간은 대학까지의 시기로 봐야하겠다.

 역시 사회적으로 인문교양을 강조하여 도서관이나 대학 등에서 강의들이 개설되기는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그런 것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나기란 개인의 굳은 의지가 없이는 실현되기가 힘들다.

물론 나같이 지적 목마름에 이 책 저 책을 주구장창 읽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유용한 측면이 있는 책이다. 고로 이 작은 책은 독자를 제대로 만난다면 한없이 빛나는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따분해서 바로 덮어버릴 책이 되고 말 것이다. 

 

 하여튼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공부에 도움되는 것들을 조금 옮겨보자면,

1. 사유하며 읽을 것

2. 많은 책을 남독하기 보다는 적은 책을 읽을 것

3. 읽기는 그저 사소한 자극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든지 하는 자신만의 생산물을 만들어낼 것.

이렇게 세 가지가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내가 관심있는 것만 보이듯이 책을 읽을 때도 내가 집중하는 것만 보인다. 사실 진리라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나 있으며 그 어떤 책에서도 도움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에게 독서생활이 허락되는 그 날까지 새겨 두어야 할 말인 것 같다.

 

 한 권의 책의 가치는 어느 정도 당신 자신의 가치, 당신이 그 책에서 끌어내는 것의 가치이기도 하다. 라이프니츠는 무엇이든 이용했다. 아퀴나스는 동시대 이단자와 이교도에게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유를 받아들였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그에게 해롭지 않았다. 지적인 사람은 어디에서나 지성을 발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벽에나 자신의 편협하고 무기력한 정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최선을 다해서 무엇을 읽을지 고르되, 훌륭하고, 폭넓고, 진리에 대응하고, 신중하고, 진취적인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노력하라. 이런 특성들은 당신 자신의 특성이기도 하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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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영도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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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읽은 <희박한 공기속으로>가 떠오른다. 한여름에 읽은 그 책이 어찌나 재밌던지 밤새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여느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는 글들에 나는 항상 매혹되곤 한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을 읽고 싶었는데 사실 이 책은 얇은 편이다. 아내와의 이혼과 같은 산악인인 동생마저 잃고 어두운, 검은 고독을 맡보여 살아가는 그는 낭가파르바트의 단독 등반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생사의 기로에서 아무런 생명체라고는 없는 빙벽에 매달려 그는 흰 고독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는 이 고독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가 경험했던 흰 고독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의미를 찾는 측면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인간관계와 행복이라는 연결고리가 너무나도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것으로부터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추측도 해본다. 이성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 성향이 그냥 끌리는 어떤 것.. 그런 것들이 점차 확고해지는 것이 다소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 또한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어떤 일이든 완전히 혼자 힘으로 해내겠다는, 마지막까지 혼자서 해내겠다는,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그러한 갈망은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을 마친 후 더 강해졌다. 이것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싶다든가 어떤 일이건 반드시 해내겠다든가 하는 욕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완전히 홀로 서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안식을 찾고 그 안에 있고 싶었다.

 나는 때때로 명상에 잠기곤 했는데,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 세상의 모든 신비가 내 안에 있다는-모든 비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내게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았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삶과 죽음의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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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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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다보면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이렇게 오래전에도 이런 주제를 다루었구나. 어쩌면 오늘날의 모든 주제들은 고전의 변주들이 아닐까하는 깨달음(?)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는 관념 속에 사는 사람이 나온다. 스스로를 지하에 산다고 칭하며 책으로 배운 세상이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유리창 밖 세상에서는 적응할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며 지하에서의 생활을 안전하다고 느낀다. 지적 허영이 가득한 이 사람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 서글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또한 안전하고 싶고 밖에서는 상처받기 싫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주인공이 마지막에 말하듯 도대체 무엇이 실제하는 삶인지 누가 선뜻 정의내릴 수 있을까,도 싶다. 책이 없다면, 관념이란 것이 없다면, 실제라는 것 또한 정의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위로는 책읽기라는 행위자체가 나에겐 온전한 그 자체로의 기쁨이므로, 이 행위 자체가 실제이지 않을까라는 변명..

 유리창안에서 보는 바깥은 평화롭다. 그러나 때로는 문을 열고 나아가 신선한 바람도 쐬고 비바람도 맞고 해야 한다는 것. 세상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다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단지 내 인생에서 당신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도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의 비겁함을 상식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신 자신을 속이면서, 그것에 위안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 비하면, 내가 당신보다 더욱더 <살아 있다>는 결론이 된다.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 있는>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둬 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합류해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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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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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마르케스가 어쩌면 마콘도와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는데 그 이유는 도무지 비슷비슷한 이름들 때문이었다. 책의 맨앞에는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가 나오는데 그것을 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네 대 이상이 될 때는 봐도 누가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번 탄력을 받아 주루룩 읽었더니 다 읽을 수 있었다. 부엔디아 가문이 마꼰도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고독과 근친상간이다. 가령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충동적이며 모험을 좋아하고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은 동굴 속에 파묻혀 자신만이 몰두하는 무언가에 집중한다. 평생을 고독에 사는 아우렐리아노 형제들(?)에게 나는 더욱 정이 갔다. 난무하는 근친상간 때문에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우르술라의 우려대로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우렐리아노는 돼지꼬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결국 마꼰도의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생을 살다 명을 달리하지만 이름이 반복되듯 또 누군가의 결혼과 출산으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쓴 방법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하는데 가령 불면증이 전염되어 온 마을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나 흙을 먹는 레베카 이야기, 멜키아데스처럼 죽은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 마을을 돌아다니는 이야기, 여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 등은 사실이 아니지만 읽는 재미를 톡톡히 준다. 비슷비슷한 소설의 형식이나 내용 때문에 소설 읽기가 지루해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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