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탁 위의 책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
정은지 지음 / 앨리스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해서 실제로 원작을 읽지 않았는데도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책들 중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 <소공녀>, <키다리 아저씨>등은 어렸을 때 만화영화로 봐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왜 이 이야기들을 실제로 찾아서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을까. 줄거리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이 주인공들에 나는 얼마나 감정이입을 하며 어린 시절을 지나왔는지..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한번 써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귀여운 일러스트들이 책의 내용이 말랑말랑하고 가볍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저자의 내공이 대단함을 알게 해준다. 그 내공은 사실의 근원(?)을 밝히고자하는 집요함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것은 가히 음식에 대한 탐구정신이라 할만하다. 가령 작은 아씨들에서 라임 피클이라는 것이 나오면 원판을 뒤지는 것은 물론 인터넷 사이트나 다른 책들을 집요하게 참조하여 만드는 방법까지 알아내는 것이다. 신기했던 것은 그 라임 피클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전세계에 그렇게 많이 있다는 것! 음식과 음식먹기를 진심 사랑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혼자 먹는 밥이야말로 음식의 맛을 즐길수 있는 가장 은밀한 행복이라는 저자의 서문에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오늘은 무슨 맛있는 것을 먹을까 상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의 삼각구도는 마리아 크로스라는 여인과 이 한 여자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아버지는 의학박사, 성인군자라 지칭되는 평범한 가정의 남자이지만 가정생활의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엿보게 된다. 자신에게는 조금도 관심없는 한참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 남자의 질풍노도(?)의 마음이.. 마른 세수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으로 다소 귀엽게 표현된다. 그의 아들 레몽은 마리아라는 여자에 의해 드디어 내면의 남성성이 드러난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대 이름을 불러주었을 뿐인데를 전차에서 눈길 한번 주었을 뿐인데로 바꾸면 된다. 쉽게 정복되지 않는 마리아는 레몽이 삼십대 중반의 중년이 될 때까지 복수의 대상으로서 첫 사랑의 기억으로서 레몽의 사랑의 역사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사랑은 이 세 사람의 내부에 격동의 폭풍을, 정염의 화신을 불러온다. 이런 과정들이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 줄거리로만 따지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통속소설인데 역시나 이것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 일흔살이 된 박사는 한 남자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막인데 남자들을 수많은 유혹으로 부터 지켜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결혼에 관심없는 레몽에게 혼자 살아서는 안된다는 조언까지 한다. 이 소설은 지극히 남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게 맞는 것 같다. 마리아라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고 아내나 어머니의 의미를 남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남자가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사실은 궁금했다. 책소개에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일평생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의 문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마리아는 정말 누구와도 같지 않은, 희한한 여자예요. 그래서 내가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답니다. 종일 꿈만 꾸고, 묘지 아니면 외출도 안 하고.... 혹시 그게 다 독서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책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p.131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시킨다.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그래서 죽음은 사랑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사랑을 분해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구판절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 때였습니다. 치히로는 처음에 터널로 들어갈 때와 나중에 나올 때 똑같은 모습입니다. 어머니 손에 달라붙어 무서워하는 얼굴로 걷고 있지요. 그에 대해 치히로가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이냐는 비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무리 못미덥다 해도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 아이가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란 블가능합니다.
때가 올 때까지 아이는 제대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합니다. 서둘러 성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불신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의존하는게 낫습니다.
불신과 의존은 물론 공존하지만, 의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의 세계를 이해했다 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자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수업을 거쳐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선을 긋는 독일교양소설과는 다르지요.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99쪽

책에는 효과 같은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장바구니담기


절망적인 사람들은 침착해 보이려고 하고 아니 거의 무관심한 체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어떤 미신적인 합의에 의하여, 그리고 책에는 전혀 쓰여 있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존재해온 수호자의 권위와 사물의 조리에 대한 신성한 법칙에 따라, 그들은 제각기 힘을 다하여 그 순간만큼은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적으로 겉으로나마 걱정과 공포를 감추고, 아무 관계 없는 다른 일들을 가벼운 톤으로 얘기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11쪽

그렇게 하늘과 강과 산 사이 카사바에서 대를 이어간 세대는 혼탁한 물결이 휩쓸고 간 것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태도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삶은 끊임없이 닳고 소모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지속되고 '마치 드리나 위의 다리처럼' 단단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카사바의 무의식적인 철학이 그들에게 스며든 것이었다.-117쪽

이렇게 밤은 지나갔고 그와 더불어 위험과 고생으로 가득 찼지만 명백하고,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충실한 인생도 지나갔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고 그렇게 이어져내려온 본능으로 그들은 그런 것들 속에서 자신을 잊고 인생을 순간적인 감상들과 직접적인 필요들로 나누어버렸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아야만, 매 순간을 따로 떼어놓고 앞뒤도 보지 않고 살아야만, 견딜 수 있고 좀더 나은 앞날을 바라보며 계속 그런 삶을 지켜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4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효정 옮김 / 까치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서점에서 보는 순간,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정말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페소아의 책이 등장했었는가, 확인하고 싶어 다시 소설을 읽어보니 정말로 앞부분에 짧게 인용이 되어 나온다. 소설을 날로 읽은 것은 아니구나 싶어 역시 무엇이든 읽고 볼일 이라는 다소 삼천포 결론에 빠져본다.

 이 책은 서문부터 나를 사로잡은 책이었다. 무려 처음 잡은 때는 2013년의 5월 무렵인데 출장갔다가 시간이 남아 앞부분을 읽다가 카페에서 주인공을 관찰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책과 정말로 사랑에 빠졌다. (나이가 드니 자꾸 진부한 표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주인공이 MBTI 검사를 했다면 나와 같은 INTJ가 아닐까, 하는 다소 어이없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이 책은 일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의 나열도 사건의 기록도 없다. 추상적이고 무수히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간다. 따라서 한번에 오래 읽지는 못하는 책이다. 장마때문에 조금 울쩍할 때, 너무 더운데 짜증나는 일이 겹칠 때, 가을에 무기력해졌을 때, 누군가의 갑작스런 이별통보앞에...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나는 슬금슬금 펼쳐보곤했다. 누군가의 불안이 나의 불안을 잠재우리라는 다소 이기적인 목적으로 비겁하게 나는 이 책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책은 나의 불안을 걷어가주었다. 먹구름 같았던 내 안의 불안을 가져가 버리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회계사무실의 노동자이고 나도 어떤 거대구조(?)의 일개 노동자였으므로 그것만으로도 나는 어쩐지 비슷한 처지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타인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고 나는 현실과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고.. 주인공의 주절거림이 곧 내 얘기가 되곤 했으니.. 그래서 이 책이 나를 어떤 순간들에는 버티게 해준 것 같다.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불안 속의 인간이다. 그냥 다 그런 것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의 해결은 내 안에 있음을 이 책이 알려준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을 우주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삶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사고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혜의 시작이다. 깊은 고통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우리는 고통을 받을 때 인간의 고통이 끝이 없을 것만 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인간에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고통이라는 사실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p.22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4-01-0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바구니행 책으로 담아갑니다. 신명나게 한 해 또 보내자구요^^

스파피필름 2014-01-0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프레이야님, 신명나게 살아보자구요 살수록 삶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