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효정 옮김 / 까치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서점에서 보는 순간,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정말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페소아의 책이 등장했었는가, 확인하고 싶어 다시 소설을 읽어보니 정말로 앞부분에 짧게 인용이 되어 나온다. 소설을 날로 읽은 것은 아니구나 싶어 역시 무엇이든 읽고 볼일 이라는 다소 삼천포 결론에 빠져본다.

 이 책은 서문부터 나를 사로잡은 책이었다. 무려 처음 잡은 때는 2013년의 5월 무렵인데 출장갔다가 시간이 남아 앞부분을 읽다가 카페에서 주인공을 관찰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책과 정말로 사랑에 빠졌다. (나이가 드니 자꾸 진부한 표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주인공이 MBTI 검사를 했다면 나와 같은 INTJ가 아닐까, 하는 다소 어이없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이 책은 일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의 나열도 사건의 기록도 없다. 추상적이고 무수히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간다. 따라서 한번에 오래 읽지는 못하는 책이다. 장마때문에 조금 울쩍할 때, 너무 더운데 짜증나는 일이 겹칠 때, 가을에 무기력해졌을 때, 누군가의 갑작스런 이별통보앞에...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나는 슬금슬금 펼쳐보곤했다. 누군가의 불안이 나의 불안을 잠재우리라는 다소 이기적인 목적으로 비겁하게 나는 이 책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책은 나의 불안을 걷어가주었다. 먹구름 같았던 내 안의 불안을 가져가 버리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회계사무실의 노동자이고 나도 어떤 거대구조(?)의 일개 노동자였으므로 그것만으로도 나는 어쩐지 비슷한 처지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타인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고 나는 현실과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고.. 주인공의 주절거림이 곧 내 얘기가 되곤 했으니.. 그래서 이 책이 나를 어떤 순간들에는 버티게 해준 것 같다.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불안 속의 인간이다. 그냥 다 그런 것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의 해결은 내 안에 있음을 이 책이 알려준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을 우주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삶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사고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혜의 시작이다. 깊은 고통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우리는 고통을 받을 때 인간의 고통이 끝이 없을 것만 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인간에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고통이라는 사실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p.22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4-01-0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바구니행 책으로 담아갑니다. 신명나게 한 해 또 보내자구요^^

스파피필름 2014-01-0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프레이야님, 신명나게 살아보자구요 살수록 삶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