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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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대치를 항상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같은 경우가 그렇다. 나올 이야기는 다 나오고 들을 이야기는 넘쳐서 그랫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그 흡인력, 뭉클함 같은 것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다 오다 단편 한 두편 정도로 알아 왔던 김애란의 대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를 펴든 순간 우리 나라 소설계는 여전히 성장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여타 우수상 수상작들도 꼭 상을 받아서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농축의 미가 돋보였다. 재미있었고 허무하지 않아 좋았다.

 

 

김애란 <침묵의 미래>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루어진 영이다. 나는 거대한 눈이자 입.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낱낱의 입자로도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중략>-p.13~14

 

소설 같지 않은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자기 정의. 이건 흡사 철학책의 한 장을 할애한 것 같다. 여기에서 화자는 사라져 가는 '말'의 정령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특별구역으로  사라져 가는 언어를 구사하는 소수의 화자들이 보존되는 곳. <소수언어박물관>의 정경. 여기에 김애란이 자주 그렸던 활달하고 젊은 88만원 세대의 구체적인 실체는 없다. 이제 김애란은 자신이 어루만지고 구사했던 언어의 본질적 모습에 가 닿는다. 그것은 '말'을 사용하여 인간의 삶을 다루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한계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언어는 삶의 한계이자 철책이면서 해방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도 아니고 우리의 삶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오해와 바람과 눈물을 담는 그릇에 불과할런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죽고 우리의 삶은 언어로 축소된다. 언어로 이야기되는 것은 결코 전부가 될 수 없다.

 

그에게 모어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고 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p.30

 

진지한 이야기가 꼭 지루함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딛고 서는 이 발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의 경계는 확장된다. 이제 김애란에게 서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더이상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우리가 하고 싶었지만 듣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화자가 되어 답답함을 풀어준다. 그녀는 분명 아주 잘 크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부모님의 소개팅이 이루어졌던 시골의 잡화점 같은 '송방'에서의 이야기는 부록 이상이다. 거기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화투놀이의 일종인 '뽕을 쳤다'고 한다. 소개팅에서 가게 점방 같은 곳에서 놀이를 하고 바로 벌칙으로 엿과 삶은 달걀을 사고 사랑에 빠진 그녀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당돌한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녀의 익살도 재기도 시원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러한 부모님의 익살과 재기를 잘 담아내어 조금씩 더 무거워지려 한다. 그녀의 수상소감처럼 그녀의 무게가 길 위에 '방향'을 만들 것이다. 독자들은 그녀가 만든 지도의 발자국에 살짝 자신의 발을 넣어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지는 꿈을 꾼다.

 

 

편혜영 <밤의 마침>

 

오퍼상에서 비밀 사서함을 관리하다 자신의 내밀한 과거에 대한 암시를 발견하는 중년의 사내. 누구나 실수는 하고 누구나 환한 대낮에 크게 얘기할 수 없는 은밀한 공모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는 몹시 떨리는 이야기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다. 아내에게 용서를 받을 일이 하나 있기는 했다. '여자아이'를 추행한 일은 무고로 결론지어지고 그의 아내는 그의 결백함을 깔끔하게 수용해 주지는 않는다.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귀가 하나 빠진 퍼즐로 독자를 유인한다. 바로 속으면 안 된다. 절대.

 

 

그는 자신이 선량하고 성실하며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명확한 신념과 원칙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일로 그런 게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이란 신념이 흔들릴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인데, 자신에게는 애당초 흔들릴 신념조차 없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에게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만이 있다. 그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순간적인 위기에 대처 능력이 뛰어나나 그게 가진 능력의 전부이다. 그가 자부하던 건전한 양심과 신념, 사회적 위상과 도덕에의 의지, 원칙이나 선의 같은 것들은 그간 주머니에 비축된 먼지의 양보다 적다. 그는 그저 상황과 위기에 걸맞게 신념과 가치라는 걸 조작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을 착각했고 과신했다.

-p.198

 

이러한 '그'에 대한 설명은 '그'가 누구일 지라도 얼마간은 아니 상당 부분이 맞다. 인간은 고정불변의 일관성 있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불확실하고 가변적이고 모호하고 상황에 따라 어떤 모습도 보일 수 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어떠한 상황에서 예외의 모습을 보였을 때 그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대쪽같은 신념과 일관성은 생동하는 삶과 합치되기 어려운 과제다. 물론 지향이 될 수는 있겠지만. 편혜영이라는 작가는 그러한 지점을 비범하게 포착했다. 흘러내리는 단발머리 속에서 예쁘게 미소짓는 그녀의 흑백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다.

 

손홍규의 <배우가 된 노인>도 김이설의 <흉몽>도 우리의 삶의 이면, 그 비의에 대한 적나라한 고찰이다. <배우가 된 노인>이 딸을 위하여 연기하는 삶도 모텔을 청소하며 남편의 범죄를 방조하는 그녀의 그 비루한 일상도 결국 생존에 끄달리게 되었을 때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그 나락에서의 모습에 대한 성실한 고찰이다.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 닿으면 그 골목은 갑자기 그 빈곤한 언어들 앞에서 겸손하게 문을 만든다. 책도 그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사는 삶도 언제까지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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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2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상 받는 사람은 항상 우수상만 받는군요... 편혜영, 손홍규, 윤성희 등이요.
언젠가 그네들도 이상문학상 대상에 이름을 올릴 수 있더라면 좋겠어요.
김애란의 수상에 영 내키지 않았는데, 블랑카님께서 인용해주신 부분과 글을 읽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요.

blanca 2013-01-26 15:4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저도 사실 김애란 취향은 아닙니다. 몇 몇 단편이 소재나 주제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장편은 못 읽어 봤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이 작가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어요. 안주하는 작가가 아니라요.

꿈꾸는섬 2013-01-3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애란 팬인데...아직 이상문학상수상집은 못 읽어봤네요.
요새 워낙 책이랑 멀리 지내서, 가깝게 지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blanca 2013-01-30 09:4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그러다가 또 책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재작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결혼기념일을 잊어 버렸다. 지나고 나서야 둘 다 "맞다!" 했다. 한 술 더 떠 우리가 과연 4월 16일날 결혼을 했는지 19일날 했는지에 대한 헷갈림까지. 누구 한 명이 잊고 누구 한 명이 헷갈렸다면 우린 슬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이 동시에 더이상 기념일에 의의를 두지 않고 그런 지나침에 큰 서글픔을 동반하지 않게 된 것은 일순 달달한 연애와는 다른 삶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다독여 주기로, 이제는 그러한 사이클에 우리가 서서히 진입하게 된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에 대한 수긍이기도 했다.(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스물 세 살과 스물 여섯이 만나 스물 여덟과 서른 하나로 결혼하기까지 왜 많은 사연들이 없었을까. 남녀가 소개팅으로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고 갑자기 세상 전체에 둘만 손을 잡고 걷는 듯한 그 두둥실한 판타지에서 점점 대화가 줄어들고 털 하나도 얄미운 순간도 있었을 테고 그러다 또 갑자기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처럼 느껴져 마침내 하나의 공동체로 들어서기까지. 그러나 어쨌든 해피엔딩은 언제나 많은 기억들을, 많은 고난들을 저만치 밀어내고 현재가 마치 태곳적 과거였던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아, 나도 이런 책을 읽었다. 너무 늦게.

 

 

연애소설. 참 오랜만이다. 이미 다 읽어버린 듯한 착각에 이제는 읽지 않게 된 장르. 첫장부터 큰 기대 없었다. 그냥, 한번쯤은 이런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결혼 적령기의 남녀. 각자의 너무나 다른 유년기가 복기된다. 남자는 가난하고 얼마쯤 비참하다. 여자는 중산층에서 자란 유별나지 않은 캐릭터. 정이현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남녀의 배경차. 둘은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디테일이 참 예쁘다. 정이현의 매력이기도 하다. 아, 그래, 경청. 남녀 관계를 이러한 구도로 설명하는 시선은 참 신선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구나 들어주는 사람에 고프다.

 

어떤 관계에서든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은 있다. 연인들은 필연적으로 역할을 선택해야 한다. 굿 스피커가 될 것인가 아니면 굿 리스너가 될 것인가. 말할 것인가, 들을 것인가. 던질 것인가, 받을 것인가. 그들이 서로에게 매혹된 원인은 , 각각 상대방이 아주 훌륭한 청자라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p.114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 우리는 가장 경청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이야기도 그 나름으로 멋진 서사다. 그것이 과장이나 망상일지라도. 그 언어들이 구성하는 세계에서 상대는 독보적인 존재다.  내가 가미한 멋대로의 환상과 겹쳐져 우리는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너'를 내 나름으로 재구성해서 껴안고자 하는 헛된 시도를 '사랑'이라 명명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아주 담담하다. 남녀가 만나 불타오르다 식는 그 파고가 롤러코스터의 그것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아주 당연하게 얌전하게 납득할 수 있게 현실과 환상이 만나 어떻게 그 환상이 사그라드는지 지극히 현실적으로 읊조린다. 남녀는 권태를 느끼고 결혼 앞에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다 원거리에서 주춤 주춤 이별을 준비한다. 연애 소설의 독자인 나로서는 다시 재결합했으면 하는, 지극히 당연한 소망 앞에서 움찔했지만 그렇게 쉽게 해피엔딩이 아닌 기만을 던져 주지는 않는다. 똑똑한 이야기. 우리가 지척에서 당면했던 정말 그럴 법했던 이야기.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이별을 위한 연착륙에는 실패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했다. 비행기 동체도 부서지지 않았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다고,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렇다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대도 충분히 의미 있는 비행이었다는 것도.

-p.208

 

이별의 연착륙. 울며 불며 매달리고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고 절규하지 않아도 싫증나서 겸연쩍은 이별을 했다고 해도 이 지구에서 타인을 만나 잠시 온기를 쬐었다는 것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회고해도 역시나 근사한 의미 있는 일이다.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p.209

 

이 대목에서 소설가 김연수가 떠올랐다. 그의 화법과 그의 시선과 묘하게 겹친다.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순간! 모든 만남은 그것이 스쳐갔던 것일지라도 하나의 기적이다. 잘 만나고 잘 헤어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섭섭하기도 하고 공감가기도 하고. 아, 이런 결말의 연애는 남의 것일지라도 언제 들어도 가슴 한 켠이 뻥 뚫리는 것같다. 아줌마는 언제나 아가씨가 아줌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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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1-2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기념일을 두분 다 잊다니요? 게다가 날짜가 헛갈리다니 ㅜㅜ
너무 우울해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끔 서로 처음 만나 호감을 느끼던 그때를 생각하면 사는 일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올 해는 특별한 결혼기념일을 계획해보시면 어떨까요? ㅎㅎ

blanca 2013-01-22 11:07   좋아요 0 | URL
ㅋㅋ 안 그래도 저희 너무하다 했어요. 그래서 그 작년에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표시해 놓고 나름 즐겁게 보냈답니다. 올해도 또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네요. 꿈섬님 말씀처럼 올해는 더 특별하게 보낼 이벤트를 찾아 봐야겠습니다.66
 

어떨 땐 정말 우리 말로 된, 그러니까 번역을 거치지 않은,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 그럴 때에는 사실 참으로 난감하다. 이런 추상적인 소망을 제대로 충족시켜 줄 딱 바로 그 책을 어디에선가 골라야만 하는 것이다. 대체 어떤 책이 그러한 난감함을 무마시켜 줄 수 있을까.

 

난삽한 검색에 들어간다. 그냥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알라딘 동네를 떠돌다 우연히 만난 책. 그냥, 제목이 좋았다. 이 작가는 처음이다. 나는 그 유명한 그의 <19세>를 읽지 않았다.

 

 

'수색'은 실제 은평구 수색동의 지명과 겹친다. 정말 이 수색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장마만 되면 한강 하류에 위치해 물이 이곳까지 차오르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이 지명은 이 소설 전체를 견인한다. 소설 속의 '나'는 직장생활과 소설 창작을 병행하다 전업 작가가 되는 모양새로 실제 작가 이순원의 이력과도 겹친다. 자전적이라는 용단은 위험하지만 군데군데 이것이 소설인지, 정말 작가의 내밀한 고백인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 그 모호함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건 정말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를 의식하며 읽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그만큼 핍진하고 뭉클하다. 거짓부렁인지 알면서도 화자의 이야기가 어디에선가 실제 일어났던, 일어나는, 일어날 이야기라고 믿는 것은 청자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적인 포기할 수 없는 기만이다.

 

'나'는 아내와 엄격하지 않은, 그러니까 언제든 다시 합칠 용의가 있는 별거를 하게 된다. 아니, '용의'는 없었다. 심한 갈등의 골로 벌어진 사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정도의 간극. 신사동에 새로운 아파트를 분양받아 들어가는 시점에 부부는 한 명은 작업실로 한 명은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는 비현실적인 별거에 착수하게 된다. 계기는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진 부부. 그 거리 어느 지점엔가 '나'의 '엄마'가 있다. 나를 낳지도 온전히 키우지도 못하고 떠난 두 번째 엄마. 생모는 아버지의 외도로 들어오게 된 시앗에게 '나'를 지목하여 '나'의 엄마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무언의 압력이었다. 아이를 갖지도 이곳에 정착하지도 말라는. 수호는 그러나 그 엄마를 잊지 못한다. 여기까지 왔을 때 언젠가 어디에선가 티비에서 두번이나 본 그 드라마가 생각났다. 젊은 엄마. 눈이 땡글하게 큰 조은숙의 연기였다. 그 등에 업힌 아이. 그러한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걷는 길에서 나온다. 이순원의 또다른 작품 <아들과 함께 걷는 길>과 이 작품이 한데 섞인 그러한 드라마였던 것같다.

 

 

 

'업힌다'는 행위는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모든 그리움과 아련함과 유년의 애착을 한데 그러모으고 남는다. 나를 자주 업어 주었던 나의 꼬부랑 할머니는 나를 업고 정육점 앞에서 처음으로 내가 손으로 '고. 고'하며 고기를 가리키던 시간을 잊지 못하셨다. 나는 이렇게나 젊은데 나의 작은 아이를 조금만 업어도 숨이 턱하니 막힌다. 업어주는 데에 인색하다. 나는 아이를 업어준 엄마로는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대신 아기띠로 안고 고 작은 다리를 달랑거리며 사방팔방을 다녔다. 버스도 지하철도 계단도 지나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의 달랑거리는 오종종한 다리를 때로 양해를 얻고 만져보며 좋아들 했다. 그 정도의 추억이다. 그 아기띠를 뒤로 돌려 업고 무릎을 꿇고 시장통에서 국수를 먹은 기억은 있다. 아이를 누일 곳도 앉힐 곳도 없는 그런 협소한 곳. 국수맛은 일품이었다.

 

'나'는 수색으로 가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번이나 그 '어머니'의 무늬를 직접 찾아 더듬을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그러면서도 무언가에 끌리듯 수색은 '나'의 뒷덜미를 잡는다. 진짜 어머니가 아닌데, 정말 나의 가족도 아니었는데 누구나 한 명쯤은 자신의 유년을 통째로 저당잡은 하나의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의 복기는 본능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만날 듯 만날 듯 만나지 못하고 잡을 듯 잡힐 듯 하면서도 끝내 놓치고 마는 그러한 것. 삶은 그러한 것들의 점철일런지도 모른다.

 

'성장'에는 눈물이 스며든다. 그 안에 담긴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떠오는 길에 이 '수색'이 있다. 마지막 장면. '나'의 자전적 작품이 발표되고 말없이 계속 걸려오는 그 전화. 자동응답기에 '안녕하세요. 이수홉니다. 저는 지금 수색에 가 있습니다'는 말을 녹음해 둔 '나'. 너무나 아름답고 아련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메시지는 잃어버린 그 '어머니' 를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색의 그 어머니는 마침내 수호의 그 메시지를 받았다. 작가가 그렇게나 찾아 헤매었던 그 물빛 무늬는 이제 읽는 이들을 향하여 점점이 번져 온다. 파문처럼.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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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1-11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은숙, 그런 드라마가 있었군요. 블랑카님의 아련한 유년의 기억도 작품의 이야기만큼이나 물빛 같아요. 수색ᆢ물빛. 늘 마음이 깨끗하게 벅차오르는 페이퍼 고마워요.^^

blanca 2013-01-13 21: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고맙습니다. 이 책 참 좋더라고요. 오랜만에 재미있고 뭉클한 한국 소설을 만나 참 반가웠어요^^

Jeanne_Hebuterne 2013-01-1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추천합니다. 이 사람의 가난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무엇보다도 블랑카님이 저보다 훨씬 더 잘 읽으실 듯 해서요.

blanca 2013-01-16 17:59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쥬드님, 찾아 볼게요^^

blanca 2013-01-16 18:02   좋아요 0 | URL
품절이네요. 도서관에서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3-01-1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순원 작가라...오늘 처음 알았네요. 저도 다음에 기회되면 찾아봐야겠어요.^^

2013-01-18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3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벌써 2012년 12월 31일이다.

 

선물로 화장품을 사려 매장에 들렀는데 나이에 전혀 맞지 않는 화장과 옷차림을 과하게 한 할머니가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은 어쩐지 좀 슬퍼 보였다. 어떻게든 젊음을 붙들어 매려는 모습은 수더분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도 내 나이를 제대로 인식하며 늙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여전히 나는 어린 여자애들의 옷이 걸려 있는 매장에서 옷을 구경한다. 어제 꽈배기 목도리를 사면서 어쩌면 나도 나이를 먹고 있는데 옷을 보고 화장을 하는 스타일은 계속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나도 늙어가는 것일까. 이제 어떻게 화장을 하고 어느 정도 스커트 길이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의 유행을 따라야 하는 지가 정말 애매한 나이로 진입하게 된다. 솔직히 좀 서글프다. 너무 나이에 연연하며 겉늙어 가는 것도 그것을 외면하는 것도 어쩌면 어려서 다 용서가 되었던 시점은 여전히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는 것인 지도. 나이듦에 시선의 관용은 부족한 것 같다.

 

올해 책은 많이 읽고 리뷰는 적게 썼다. 참, 하반기에는 피아노 체르니 100번을 마쳤다. 30번에 들어갔는데 아이 방학으로 중지 상태다. 아이는 상반기에 많이 아팠지만 이제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좋은 엄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항상 반성은 하려고 한다. 독선적인 부모는 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수학 동아리를 만들고 만지고 주무르고 볼 수 있는 생활 속의 수학을 실현하는 이야기다. 반이나마 읽지도 못했다. 어떻게 아이에게 현실에서 수학적 사고를 유도해낼 수 있는지 실례가 있어 바로 응용이 가능하다. 수학 때문에 진로 수정까지 해야 했던 나로서는 참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책이다. 다만 아무래도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더디다. 다 읽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a>b>c에서 a>c를 유도해 가는 질문을 고대로 아이에게 해 보니 얼추 재미있어 하기는 하더라. 하늘에서 눈은 펑펑 내렸고 나는 이 책 덕에 꽤나 학구적이고 교육적인 엄마인 척 할 수 있었다.

나는 수학을 참 싫어했고 못했고 급기야 해답지를 외우면서 거꾸로 접근하는 공부법까지 시도하며 머리털을 쥐어뜯곤 했다. 수학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학문인데 나에게는 가장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먼나라 얘기였다.

 

 

 

 

어느 집에나 유달리 넘치는 물건이 있다. 우리 집은 펜이 그렇다. 나도 아이도 많이 사 날랐고 선물도 받고 남편도 그렇고. 어느새 그 펜을 볼 때마다 방송에서 펜이 없어 쩔쩔매던 아프리카 아이들이 떠올라 죄책감마저 들었었다. 알라딘 서재분의 때맞춘 좋은 페이퍼 덕에 그 펜이 갈 곳을 찾아 너무 기뻤다. 종이를 펴 놓고 잘 나오는지 테스트를 마친 펜들은 이제 갈 곳을 찾아 날아가게 될 터이다. 이 펜을 쓰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게 인간이니까. 2013년에는 제대로 나이들고 싶다. 적어도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마저 무색할 정도의 절망적인 일들이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진부하지만 공감과 연대와 그리고 내일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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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3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다란 박스 하나 그리고 작은 박스 하나로 노트를 가득 넣었어요. 연필은 40자루쯤 넣은것 같아요. 좀 전에 택배기사님이 오셔서 가져가셨어요. 저는 자꾸만 노트를 쌓아두었는데 그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blanca 2012-12-31 14:16   좋아요 0 | URL
우아, 다락방님도 하셨군요! 저도 왕뿌듯하더라고요. 저포함 가족들이 문구 욕심이 많아서 한아름 지고 있었어요. 이제 이게 진정 필요한 곳으로 가니 좋아요.

Arch 2012-12-3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화장품 가게 갔어요. 제가 오기 전에 와 있던 손님은 유달리 수다스러웠어요. 모든걸 다 테스트 해본 다음 간단한 것만 사는 얌체같은 손님. 손님인데 그래도 되는걸까, 나도 그러지 않았나, 종업원은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건 저도 어려워요. 젊어보이고 싶은게 아니라 자꾸 아줌마 소리를 듣고 앉았어서...흑

blanca 2012-12-31 14:19   좋아요 0 | URL
아, 아이들이 저기서부터 뛰어와서 아줌마래요--;;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 저는 그 어감에 괜시리 우울해져요. 저도 판매업종에 계신 분들한테 진상 부리는 사람들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저도 나이에 맞는다는 게 참 어느 정도 선인지 항상 의식하는 것도 피곤하고 잘 모르겠어요. 치마 레깅스도 작년까지 잘 입고 다녔는데 이게 올해부터는 좀 민망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2-12-3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을 이야기하기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면 좋겠어요.
블랑카님 체르니 100 성공 축하해요^^ 한 해동안 표나게 이루신 게 있네요.ㅎㅎ
30번도 새해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나이듦에 대해 스스로에게부터 너른 마음을 가져야겠어요.
이제 한살씩 먹어가는 걸 의식 못하고 있다가도 문득 변해가는 얼굴이나 몸매 같은 데서 의식하게 되거든요.
흑흑.. 인정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아요.^^

blanca 2012-12-31 14:19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부터 살이 스멀스멀 찌더라고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바로. 지금은 손놓고 불러가는 배를 ㅋㅋ 방치하고 있지만요. 건강하고 곱게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12-3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형수술로 부자연스럽게 팽팽한 얼굴을 한 나이든 아줌마나 할머니들을 보면 참 서글프기도 하거니와 보기도 싫더군요.돈 자랑의 일종인지...

blanca 2012-12-31 14:21   좋아요 0 | URL
노자님 ㅋㅋㅋ 근데 여자랑 남자는 거울 보면서 느끼는 노화에 대한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 안 갔는데 자기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흔들리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거창하게 갈 것도 없이 저도 나이 들면 안 그런다고 보장 못하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2-3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희망 자체보다 더 희망적이고,
때론 절망보다 더 절망을 어루만지는
블랑카님의 손맛 어린 글맛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시길^^*

blanca 2013-01-01 10:34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감사합니다. 팜므느와르님 가정에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우아, 새해첫날부터 눈이에요!

Jeanne_Hebuterne 2012-12-3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시간을 지배하곤 해요. 그래서 시간이 빠르거나 더디게 가는 듯 합니다. 블랑카님의 2013년은 올해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주제넘은 에언을 해봅니다.

나이드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없고 관용없는 사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읽었습니다. 아차, 타인의 시선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어찌되었거나 예쁘면 장땡 아닌가! 하는 생각, 넥 크림을 가지고 이걸 어찌 하나, 과연 효과가 있을까, 글을 쓰던 노라 에프런도 떠올리게 하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블랑카님 서재에 올 때 마다 대문의 글귀를 되새기곤 해요.)

blanca 2013-01-01 10:37   좋아요 0 | URL
쥬드님, 그죠. 이 사회가 나이듦에 참 가차없는 시선을 보이는 것 같아요. 아, 그 예언 너무 감사해요. 2011년의 힘듦이 조금씩 풀어져 나가는 중이에요. 쥬드님도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이렇게 계속 행복해지시기를 바라요. 저는 행복한 청춘보다 행복한 노년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해요.

2013-01-0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2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2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3-01-0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면 좀 더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질 수도 있어요. 남들의 시선으로부터요. ㅎㅎ
저도 지난주에 사무실에서 버려질 처지에 있던 해묵은 다이어리와 수첩을 잔뜩 챙겨왔답니다. 책장에도 무수히 많은 다이어리와 수첩과 노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뿔싸 몇 년 전 느닷없는 대청소때 그만 사라지고 만 것 같아 너무 안타깝더군요. 새해엔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간'을 상상하며 즐거운 일만 가득하길 빌어요~

blanca 2013-01-02 20:22   좋아요 0 | URL
oren님 말씀을 들으니 위안이 됩니다. 저보다 먼저 그 길을 가보신 선배님 말씀들에는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 새겨 들으려 합니다.^^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transient-guest 2013-01-03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보다 조금 젊게 입고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40대 남자가 아이돌처럼 짝 붙는 옷을 입고 엘프남처럼 하늘하늘 걸어다니면 좀 무섭겠지만, 적당히 유행에 맞춘 최근의 옷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40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_-:). blanca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위의 걱정이 필요없을만큼 보다 더 젊은 한해를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blanca 2013-01-03 18:09   좋아요 0 | URL
transient-guest님 고맙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세상을 보는 시선도 무언가 더 성숙해 가는 면이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가끔식 멈추어 서서 주변도 둘러보고 싶은데 이런 여유도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transient-guest님의 한국문학 기행도 새해에 가열차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꿈꾸는섬 2013-01-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만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친숙하고 좋아요. 체르니100번 축하해요. 저도 피아노는 배우고 싶었는데 시간을 그냥 다 허비해버렸네요. 분홍공주님이랑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blanca 2013-01-08 21:40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새해에는 서재에 자주 자주 와 주세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사람이 결핍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타인의 빈곤, 고통, 애환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 지나치게 결핍에 시달려도 닻을 내리고 정착할 곳이 없어 타인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감과 연대는 구호로 만들어야 할 만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가치다. 절로 우러나오기엔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고 세계가 너무 바쁘고 걍팍하게 돌아간다.

 

여기 하나의 풍경이 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걸레질 하는 여자. 그 여자가 어디 한 구석이라도 먼지를 놓치지 않을까 감시하며 물 한잔을 권하지 않는 여자. 이 풍경은 주인과 노예로 계급신분제가 있었던 머나먼 과거 속의 것이 아니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의 축배를 들었던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두 개의 극단은 더욱 자주 서로를 비껴간다.

 

 

 

 

이 책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발칙한 발상을 한다. 그녀는 백인이고 중상류층에 속해 있는 저널리스트다. 그녀에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워킹 푸어들의 생활상은 주변 세계에서 풍경으로라도 자주 떠오르지 않는 먼 나라 이야기다. 고급 음식점에서 잡지의 기사 꼭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그녀가 직접 워킹푸어들의 세계로 입수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녀가 철저한 실험과체험을 중시하는 과학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엉뚱하고 가당찮게 느껴지는 출발이었다. 인위적으로 빈곤해지기로 인위적으로 피곤해지기로 결심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오만이자 독선으로 비쳐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여하튼 따라가 보자. 그녀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것은 감정적인 동정이나 박애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정말 그렇게 일정 자본금 없이 노동시장에서 몸으로 벌어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가능성 타진이다. 날로 높아가는 집세, 물가, 생각보다 비탄력적인 임금, 미국의 복지정책 개정으로 인한 일정 기간 보조금 수급 후 의무 취업 정책하에서, 산다는 것은 가능할까?

 

그녀의 저임금노동자 체험 생활 그 자체는 점차 진정성을 얻어 가는 것 같다. 식당의 웨이트리스, 호텔 청소부, 청소 용역 업체의 가정집 청소부, 요양 병원의 영양 보조원, 월마트의 판매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취업 이력은 점차 다양한 굴곡을 그려간다. 시간당 6달러에서 7달러를 벌어 그 수입의 50프로 이상을 집세로 지불하면서도 모텔의 장기투숙 등 주거는 안정되지 못하고 식사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먹는 정크 푸드들로 점차 채워진다. 벌어서 먹고 근근히 살아나가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취업 때마다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운 약물검사 절차, 일터에서의 고용주들의 대리인들의 숨막히는 감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은 하나의 잠재적인 범주자로 간주되는 일이었다. 청소 용역 업체에서 파견나간 으리으리한 대저책에서 핏빛 같은 녹물로 더러워진 샤워실의 대리석 벽의 이음새를 말끔히 청소해 달라는 주인 앞에서 그녀가 차마 할 수 없었던 되뇌었던 이야기는 가슴으로 와 닿는다.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펫을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p.129

 

이 르포르타주는 70년 전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세계를 취재한 조지 오웰의 것과 만난다. 두 개의 풍경은 시간과 장소의 격차를 무색케 할 정도로 닮아 있다. 가진 자들의 호화로운 세계, 중산층의 그럴 듯한 생활을 지탱하기 위하여 그 아래에서 허우적 대는 빈곤층들의 고난과 처절한 생활상은 외피만 조금씩 갈아 입을 뿐 끈질기게 반복된다.

 

 

 

현대적인 대도시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뜨거운 지하굴 안에서 접시를 닦으며 보내야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중략> 그의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는 딱 살아 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는다. 그의 유일한 휴일은 해고다.
-p.152

 

 

이 불결하고 작은 식기실을 둘러보면서 우리들과 저 식당 사이에 양날개 문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었다. 식당에는 깨끗한 식탁보, 꽃병, 거울, 금박 처마 장식, 아기 천사 그림 등 온갖 화려함을 누리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자 떨어진 이 곳에서 우리는 혐오스럽도록 불결했다.
-p.88

 

 

'앎'이라는 것은 때로 대안이 없는 공허함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 둘은, 그리고 이 둘이 알게 된 사실을 읽게 된 우리는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죄책감. 부책감.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하여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방치해야 하고 남의 음식을 서빙하고 남이 사고자 하는 쇼핑 품목을 배치하게 위하여 정작 자신들의 욕구는 돌보지 못해 아예 마비되어 버린 사람들. <노동의 배신>의 바버라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나의 선택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화려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거리는 더 까마득하게 멀어져버린 것만 같은 지금의 무력감 속에서 어떤 결론도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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