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12년 12월 31일이다.

 

선물로 화장품을 사려 매장에 들렀는데 나이에 전혀 맞지 않는 화장과 옷차림을 과하게 한 할머니가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은 어쩐지 좀 슬퍼 보였다. 어떻게든 젊음을 붙들어 매려는 모습은 수더분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도 내 나이를 제대로 인식하며 늙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여전히 나는 어린 여자애들의 옷이 걸려 있는 매장에서 옷을 구경한다. 어제 꽈배기 목도리를 사면서 어쩌면 나도 나이를 먹고 있는데 옷을 보고 화장을 하는 스타일은 계속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나도 늙어가는 것일까. 이제 어떻게 화장을 하고 어느 정도 스커트 길이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의 유행을 따라야 하는 지가 정말 애매한 나이로 진입하게 된다. 솔직히 좀 서글프다. 너무 나이에 연연하며 겉늙어 가는 것도 그것을 외면하는 것도 어쩌면 어려서 다 용서가 되었던 시점은 여전히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는 것인 지도. 나이듦에 시선의 관용은 부족한 것 같다.

 

올해 책은 많이 읽고 리뷰는 적게 썼다. 참, 하반기에는 피아노 체르니 100번을 마쳤다. 30번에 들어갔는데 아이 방학으로 중지 상태다. 아이는 상반기에 많이 아팠지만 이제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좋은 엄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항상 반성은 하려고 한다. 독선적인 부모는 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수학 동아리를 만들고 만지고 주무르고 볼 수 있는 생활 속의 수학을 실현하는 이야기다. 반이나마 읽지도 못했다. 어떻게 아이에게 현실에서 수학적 사고를 유도해낼 수 있는지 실례가 있어 바로 응용이 가능하다. 수학 때문에 진로 수정까지 해야 했던 나로서는 참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책이다. 다만 아무래도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더디다. 다 읽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a>b>c에서 a>c를 유도해 가는 질문을 고대로 아이에게 해 보니 얼추 재미있어 하기는 하더라. 하늘에서 눈은 펑펑 내렸고 나는 이 책 덕에 꽤나 학구적이고 교육적인 엄마인 척 할 수 있었다.

나는 수학을 참 싫어했고 못했고 급기야 해답지를 외우면서 거꾸로 접근하는 공부법까지 시도하며 머리털을 쥐어뜯곤 했다. 수학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학문인데 나에게는 가장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먼나라 얘기였다.

 

 

 

 

어느 집에나 유달리 넘치는 물건이 있다. 우리 집은 펜이 그렇다. 나도 아이도 많이 사 날랐고 선물도 받고 남편도 그렇고. 어느새 그 펜을 볼 때마다 방송에서 펜이 없어 쩔쩔매던 아프리카 아이들이 떠올라 죄책감마저 들었었다. 알라딘 서재분의 때맞춘 좋은 페이퍼 덕에 그 펜이 갈 곳을 찾아 너무 기뻤다. 종이를 펴 놓고 잘 나오는지 테스트를 마친 펜들은 이제 갈 곳을 찾아 날아가게 될 터이다. 이 펜을 쓰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게 인간이니까. 2013년에는 제대로 나이들고 싶다. 적어도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마저 무색할 정도의 절망적인 일들이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진부하지만 공감과 연대와 그리고 내일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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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3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다란 박스 하나 그리고 작은 박스 하나로 노트를 가득 넣었어요. 연필은 40자루쯤 넣은것 같아요. 좀 전에 택배기사님이 오셔서 가져가셨어요. 저는 자꾸만 노트를 쌓아두었는데 그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blanca 2012-12-31 14:16   좋아요 0 | URL
우아, 다락방님도 하셨군요! 저도 왕뿌듯하더라고요. 저포함 가족들이 문구 욕심이 많아서 한아름 지고 있었어요. 이제 이게 진정 필요한 곳으로 가니 좋아요.

Arch 2012-12-3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화장품 가게 갔어요. 제가 오기 전에 와 있던 손님은 유달리 수다스러웠어요. 모든걸 다 테스트 해본 다음 간단한 것만 사는 얌체같은 손님. 손님인데 그래도 되는걸까, 나도 그러지 않았나, 종업원은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건 저도 어려워요. 젊어보이고 싶은게 아니라 자꾸 아줌마 소리를 듣고 앉았어서...흑

blanca 2012-12-31 14:19   좋아요 0 | URL
아, 아이들이 저기서부터 뛰어와서 아줌마래요--;;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 저는 그 어감에 괜시리 우울해져요. 저도 판매업종에 계신 분들한테 진상 부리는 사람들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저도 나이에 맞는다는 게 참 어느 정도 선인지 항상 의식하는 것도 피곤하고 잘 모르겠어요. 치마 레깅스도 작년까지 잘 입고 다녔는데 이게 올해부터는 좀 민망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2-12-3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을 이야기하기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면 좋겠어요.
블랑카님 체르니 100 성공 축하해요^^ 한 해동안 표나게 이루신 게 있네요.ㅎㅎ
30번도 새해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나이듦에 대해 스스로에게부터 너른 마음을 가져야겠어요.
이제 한살씩 먹어가는 걸 의식 못하고 있다가도 문득 변해가는 얼굴이나 몸매 같은 데서 의식하게 되거든요.
흑흑.. 인정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아요.^^

blanca 2012-12-31 14:19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부터 살이 스멀스멀 찌더라고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바로. 지금은 손놓고 불러가는 배를 ㅋㅋ 방치하고 있지만요. 건강하고 곱게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12-3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형수술로 부자연스럽게 팽팽한 얼굴을 한 나이든 아줌마나 할머니들을 보면 참 서글프기도 하거니와 보기도 싫더군요.돈 자랑의 일종인지...

blanca 2012-12-31 14:21   좋아요 0 | URL
노자님 ㅋㅋㅋ 근데 여자랑 남자는 거울 보면서 느끼는 노화에 대한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 안 갔는데 자기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흔들리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거창하게 갈 것도 없이 저도 나이 들면 안 그런다고 보장 못하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2-3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희망 자체보다 더 희망적이고,
때론 절망보다 더 절망을 어루만지는
블랑카님의 손맛 어린 글맛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시길^^*

blanca 2013-01-01 10:34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감사합니다. 팜므느와르님 가정에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우아, 새해첫날부터 눈이에요!

Jeanne_Hebuterne 2012-12-3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시간을 지배하곤 해요. 그래서 시간이 빠르거나 더디게 가는 듯 합니다. 블랑카님의 2013년은 올해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주제넘은 에언을 해봅니다.

나이드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없고 관용없는 사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읽었습니다. 아차, 타인의 시선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어찌되었거나 예쁘면 장땡 아닌가! 하는 생각, 넥 크림을 가지고 이걸 어찌 하나, 과연 효과가 있을까, 글을 쓰던 노라 에프런도 떠올리게 하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블랑카님 서재에 올 때 마다 대문의 글귀를 되새기곤 해요.)

blanca 2013-01-01 10:37   좋아요 0 | URL
쥬드님, 그죠. 이 사회가 나이듦에 참 가차없는 시선을 보이는 것 같아요. 아, 그 예언 너무 감사해요. 2011년의 힘듦이 조금씩 풀어져 나가는 중이에요. 쥬드님도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이렇게 계속 행복해지시기를 바라요. 저는 행복한 청춘보다 행복한 노년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해요.

2013-01-0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2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2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3-01-0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면 좀 더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질 수도 있어요. 남들의 시선으로부터요. ㅎㅎ
저도 지난주에 사무실에서 버려질 처지에 있던 해묵은 다이어리와 수첩을 잔뜩 챙겨왔답니다. 책장에도 무수히 많은 다이어리와 수첩과 노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뿔싸 몇 년 전 느닷없는 대청소때 그만 사라지고 만 것 같아 너무 안타깝더군요. 새해엔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간'을 상상하며 즐거운 일만 가득하길 빌어요~

blanca 2013-01-02 20:22   좋아요 0 | URL
oren님 말씀을 들으니 위안이 됩니다. 저보다 먼저 그 길을 가보신 선배님 말씀들에는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 새겨 들으려 합니다.^^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transient-guest 2013-01-03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보다 조금 젊게 입고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40대 남자가 아이돌처럼 짝 붙는 옷을 입고 엘프남처럼 하늘하늘 걸어다니면 좀 무섭겠지만, 적당히 유행에 맞춘 최근의 옷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40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_-:). blanca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위의 걱정이 필요없을만큼 보다 더 젊은 한해를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blanca 2013-01-03 18:09   좋아요 0 | URL
transient-guest님 고맙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세상을 보는 시선도 무언가 더 성숙해 가는 면이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가끔식 멈추어 서서 주변도 둘러보고 싶은데 이런 여유도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transient-guest님의 한국문학 기행도 새해에 가열차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꿈꾸는섬 2013-01-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만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친숙하고 좋아요. 체르니100번 축하해요. 저도 피아노는 배우고 싶었는데 시간을 그냥 다 허비해버렸네요. 분홍공주님이랑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blanca 2013-01-08 21:40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새해에는 서재에 자주 자주 와 주세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