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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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언덕 위를 힘겹게 기어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 속, 손잡이를 잡고 몸을 흔들며 생각했다.  시간은 대체 왜 이렇게 안 가는 걸까? 빨리 스무 살이 되어야 할 텐데. 창밖을 내다 보아야 언덕 위로 다닥 다닥 붙은 집들과 바다 같은 하늘이 다였다. 그런데 세상은, 지구는 꼬마 같은 여자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불가항력이라는 말 자체를 떠올리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우리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줄 알았고 나의 꼬부랑 할머니는 귀밑 머리 땋고 얼굴 붉히던 소녀 시절을 가져 본 적이 없었을 거라 여겼다. 이제 버스를 타고 몸을 흔들며 내다보는 세상은 온갖 불가항력으로 덮여 있고 시간은 무참히 빠르다고 느낀다.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세상은 나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불평한다. 살아갈수록 지구에서 내가 그리는 궤적은 점점 더 작아져만 간다. 세상은 더 커지고 나는 외려 더 작아진다. 인생이란 세상이란 이런 걸까?

 

인생( 이 말은 그 당시 문학이나 정치에서처럼 매우 자주 그들의 대화에 등장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대문자로 쓰여 있다)은 그들 앞에 하나의 객체로, 마치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위한 그리고 지적인 호기심과 감성적인 성취를 위한 전장으로서, 그들이 결코 경계를 알지 못했던 것들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 앞에는 모든 길들이 끝도 없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이러한 길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발도 내딛지 않을 테지만(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어떤 길을 택하든 자유이며, 이 길에서 저 길로 가로질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인생에 대한 황홀한 의욕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p.348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젊음에 대한 통찰이 예리하다. 게다가 그 젊음들은 터키인, 기독교인, 유대인들로 민족도 종교도 신념도 공유할 수 없는 이질감에 부대껴야 한다. 발칸반도. 고등학교 지리시간 목이 짧은 지리 선생님은 백묵으로 칠판을 치며 "유럽의 화약고!"라고 이곳을 호명했다. 월드컵 때 몬테네그로라는 나라를 온전히 외우고는 혼자 으쓱했다.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발칸 반도는 축구는 잘 하지만 별안간 시끄럽고 어렵고 혼란스러운 곳으로 폄하된다. 싸움의 틈새에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는 실종된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들. 여기에서 태어난 작가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접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비셰그라드를 가로질러 흐르는 드리나 강의 다리가 지켜보는 인간의 역사를 재건한다. 1516년 터키 제국의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고향을 떠났던 정치가 메흐메드 파샤 소콜리가 유년의 상흔을 드리나 강의 다리를 세우면서 치유한 때부터 사라예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여 1914년 드리나 강의 다리가 무너지기까지의 400여 년의 연대기 안에서 결혼식 날 드리나 강에 몸을 던진 어여쁜 신부, 이교도에 항전을 반대한다고 같은 이슬람교도에 의해 드리나 강 다리 카피야의 대들보에 오른쪽 귀를 못밖여야 했던  알리호좌, 아름다운 터키 소녀에 잠깐 한눈을 팔다 그 열정의 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던 젊은 군인, 비셰그라드 주민들 뿐 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족들의 생활까지 지치지 않고 돌보았던 유대인 처녀가 지나간다. 우리들 각자는 더없이 존귀한 존재들이고 나름대로 주어진 시간을 겸허하게 채우며 삶을 살지만 내일이 당연히 오늘 같을 거라고 여기며 사는 나날들은 때로 거대하고 사악한 흐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사고, 병마, 배신, 자연재해, 전쟁. 100년만 지나면 나의 이름을, 나의 노력을, 나의 꿈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무기력하고 이렇게도 허무한 인생.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스산해지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단지 거기에서 추억되고 이야기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작가의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그는 인간 세기의 반 이상을 일하고 절약하고 염려하고 돈을 벌면서도 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고 주의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며 똑바로 자기 앞만 내다보고 소리 없이 돈만 벌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산적처럼 두 명의 군인 사이에 앉아서 포탄이나 그 밖에 어떤 것들이 다리를 해칠 때면 그 이유로 그의 목을 베거나 총살할 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중략>

 그런 거지, 그런 거야. 상인 파블레는 혼자 중얼거렸다. 모두들 너에게 일하고 저축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강요하지. 교회와 정부와 너의 타고난 이성도. 너는 그 말을 듣고 신중하게 길을 가며 바르게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사는 게 아니라 일하고 절약하고 걱정하고 하는 동안 너의 평생은 그 안에서 지나가버리는 거야.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어져서 세상이 이성을 비웃고 교회는 문을 닫고 침묵해버리며 정부는 힘없이 되어버리고 정직하고 피땀 흘려 돈을 번 사람들은 잃게 되고 빈둥빈둥 세월을 보낸 자들은 얻게 되지.
-p.457

 

상인 파블레의 일생은 우리의 일생이기도 하다. 상인 파블레의 최후는 우리가 가장 겁내하는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이념, 종교, 민족은 정작 그것들에 대해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무리들이 단지 자신들의 권력, 명예,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돌연 강고한 경계를 가지게 된다. 갑자기 그 경계는 도덕과 비도적, 정의와 불의의 그것으로 탈바꿈한다. 18세기 후반 대홍수가 났을 때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태인들은 한곳에 모여 서로를 다독였던 모습은 이제 하나의 전설처럼 남고 말았다. 드리나 강의 다리가 4세기를 지나 돌연 무참히 무너졌던 것처럼 그들이 나누었던 인간적인 연대와 공감은 흔적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이야기가 묻힌 곳에 증오와 반목은 다시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데 영원히 살 것처럼 여전히 미워하고 심판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불가능하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영원한 건축물을 세워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고귀한 정신을 가진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영원히 이 세상 어디에서든 자취를 감춰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p.471

 

있을 수 없는 일. 단 하나의 희망까지 저버리는 일. 이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파괴와 약탈이 자행되더라고 어느 한 곳에서는 반드시 위대하고 존엄한 정신이 자라나 거기에 끊임없이 항거하고 투쟁하고 건설하는 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일. 그래,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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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20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글을 읽어보니 "삶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눈깜짝할 새 지나가 버리는 시간에 쫓겨 좀처럼 숨돌릴 여유조차 가질 수 없다. 시간은 교도관처럼 우리 등 뒤에서 회초리를 들고 감시한다."고 했던 쇼펜하우어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그는 "요컨대 인생이란 휴전없는 싸움의 연속이며 손에 무기를 든 채 죽게 되어 있다"고도 말하고, 애꿎은 '단테의 신곡'을 빌어 '이 세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도 알 수가 있다고 통찰했는데 blanca님의 희망찬(?) 이 리뷰에 도대체 어울리기나 하는 댓글인지 저도 조금은 헷갈립니다. ㅎㅎ

* * *

단테의 지옥과 천국

단테는 어디서 지옥의 표본과 이미지를 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말고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가 그린 지옥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그런데 단테가 천국과 그 즐거움을 그리려 했을 때,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그곳과 비슷한 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테는 천국의 즐거움을 그리기보다 자기가 거기서 얻어들은 조상이며 마음속 애인 베아트리체, 그리고 많은 성자들의 교훈을 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이 세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blanca 2012-01-20 22:31   좋아요 0 | URL
어디에선가 인생의 심판은 시간이 한다,는 말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가혹할 만큼 빠르기도 느리기도 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희 동네에는 노인분들이 많아서 복지관에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를 앓으시는 분들 뵈면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지금 붙잡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적은지 자꾸 무기력하게 느껴지네요. 그래서 외려 희망을 자꾸 이야기하고 믿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1-2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보 안드리치 작품 중에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번역본이 있던 게 이 <드리나 강의 다리>지요.이 작품이 나와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냉전이 끝나고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더니 엄청난 무력충돌과 인종학살이 벌어졌죠.그래서 올림픽이나 월드컵할 때마다 이 쪽 나라들의 국명이 복잡하니 외국기자나 아나운서들이 고생합니다.

2006년 월드컵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였는데 2010년 월드컵에는 몬테네그로가 독립해서 세르비아가 혼자 나오더군요.

blanca 2012-01-25 10:48   좋아요 0 | URL
이 쪽 나라들의 이합집산은 정말 다이나믹한 것 같아요. 저는 왜이리 몬테네그로가 귓가에 맴도는지--;; 다양한 인종, 종교, 민족이 공존하는 것은 머리로만 가능한 것인가 봐요. <드리나 강의 다리>의 오래된 판본을 가지신 분들이 인터넷에 사진을 많이들 올리셨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2-01-2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예니체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군요.오래전 읽은 책이지만 그 뒤로 예니체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블로그는 관심있게 보는 편이죠.여자들도 예니체리에 대해 관심이 많나요?

blanca 2012-01-25 22:36   좋아요 0 | URL
아, 노자님, 솔직히 예니체리가 무언가 생각하다 찾아 봤더니 술탄의 근위 부대군요. 음, 저 같은 사람들이 다수의 여자에 속한다면 큰 관심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클레브 공작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9
라파예트 부인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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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게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때로는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사랑이 전존재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아주 호사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다. 이렇게 시작한다.

 

 성대함과 정중함이 앙리2세 치세 말년 만큼 프랑스에 눈부시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왕은 우아하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디안 드 푸아티에, 그러니까 발랑티누아 공작부인을 향한 왕의 열정은 이십 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그때보다 덜 열렬하지도 덜 눈부시지도 않았다.
-p.9

 

 이 소설은 사람을 주어로 시작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결한 자질, 나약하지만 강렬한 정념은 인물들보다 더 강력하게 소설을 휘젓고 다닌다. 성대함과 정중함이 눈부시게 나타나는 시대에 나타난 열정. 이 필연적 모순에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사랑은 눈을 뜨고 이야기는 끝나고 사랑은 숨어버린다. 가장 저급한 사랑도 가장 고급한 사랑도 가장 자라기 쉬운 토양인 궁정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전투처럼 노동의 전장에 달려나가야 하는 생존에 대한 얘기는 한번이라도 더 연인의 눈길을 받기 위해 과장하고 위장하고 연기하는 무리들과, 깔고 앉은 권력과 재물을 거머쥐기 위해 벌이는 암투들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저쪽이 삶이기도 하도 이쪽이 삶이기도 하다. 저것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게 되어지기도 하고 이게 전부라고 여기며 살다 죽게 되기도 한다.

 

 야망과 연애, 이것이 궁정의 정신이었고 사내들이건 여자들이건 하나같이 그 일에 전념했다. 숱한 이해관계와 각기 다른 파벌이 있었고, 거기에 여자들도 깊이 관여했다. 사랑은 항상 사업과 뒤섞였고, 사업은 항상 사랑과 뒤섞였다. 가만히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무관심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더 올라가기를, 누구의 마음에 들기를, 누구를 떠받들기를, 누구를 해치기를 염원했다. 권태도 몰랐고 여유도 몰랐다. 쾌락에 혹은 밀통에 바빴다.

-p.23

 

소위 지배층이라는 자들의 모습. 이 묘사는 낯설지 않다. 정치라는 것이 민중과 유리되어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에 놓이는 모습은 역겹기도 하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더 올라가기를, 누구의 마음에 들기를, 누구를 떠받들기를, 누구를 해치기를 염원하는 모습. 17세기는 21세기에도 파편화되어 복기된다.

 

이러한 곳에서의 사랑. 궁정의 소문난 바람둥이 귀족 느무르 공과 도덕적인 정열이 대체로 불가능함을 알고 끊임없이 정숙하고자 스스로를 괴롭히는 클레브 공작부인의 사랑은 고도의 심리전과 위장술로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이 시대의 사랑은 비도덕적이기도 하면서 정숙한 겉모습을 위장하기를 바라고 한없는 정열을 바라면서도 진중한 이성이 감침질하기를 기대하는 모순의 결정체로 보인다. 정략적인 결혼이 태반을 이루고 나머지 부수적인 정념들은 각자가 알아서 내밀하게 해결하는 것을 쉬쉬하며 용인하는 모습.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그 상황 자체가 기이한 열정, 욕구 불만 등을 애타는 사랑으로 오해하기 십상으로 만들곤 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 미세한 균열을 감지하는 예리한 촉수를 가졌다. 매력적인 미혼남이 자신에게 바치는 애정은 기실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의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몸을 흔들 때 느끼는 짜릿한 전율에서 더 배가되는 것임을 안다. 사랑이 자신을 인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는다는 고백은 정작 자신이 눈멀지 않기 위한 필사의 노력의 몸짓이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분)가 남편과 동승한 차 안에서 자신의 연인의 모습을 보고 뛰어 내리지 않기 위해 고통스럽게 참는 모습은 흡사 병마에 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투를 벌이는 병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아가페적 사랑은 지향점이고 에로스적 사랑은 현실로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 클레브 공작부인, 프란체스카는 아마도 이 금기의 열정을 경험한 이후 돌아가려고 했던 이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다. 덧없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미 칼라 영상을 보고 나서는 흑백 영상에 적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그런 이야기. 사랑을 쾌락과 애써 분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쾌락으로 폄하하지도 않고 고결하고 완전한 것으로 숭배하지도 않고 그것의 한계, 모순을 보여주며 있는 그대로 그것이 피어오르고 스러지는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아름답고 섬세하고 낭만적인 묘사. 사랑만을 이야기해 보려 했지만 사랑 그 이상을 묘파해 낸 매혹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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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
    from Value Investing 2012-01-14 16:20 
    blanca님의 멋진 서평글을 다 읽고 나니,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연정은 겉보기에는 별나라 같아도, 사실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니, 이 본능이 특수화된 것이며 개체화된 것이다.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랑이 희곡이나 소설에서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거기서는 자기보존 본능과 함께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며, 모든 동작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다) 연출하는 중
 
 
아이리시스 2012-01-1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영국소설인가요, 블랑카님? 공작부인이라니까 그렇게 생각해봤어요. 첫줄은 완전 공감이구요. 블랑카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도 재밌어요. 읽기에는 좀 힘들 것도 같은데.. 에로스는 타나토스와도 닮아 있대요. 3초의 희열이요. 예전에 쾌락이 사랑의 전부인 것마냥 묘사하면 좀 거부감이 들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것도 이해가 돼요. 사랑이 아주 낭만적이고 섬세하지 않아도 매혹적일 수 있다는 것이요.

blanca 2012-01-12 22:20   좋아요 0 | URL
프랑스 소설이랍니다. 작가도 라파예트 부인이라고 귀족 부인이고. 그 시대의 로맨스물격인 것 같아요. 아, 분량도 적고 의외로 잘 읽힌답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이러한 것이다, 단정지을 수 없을 것 같아요.

dreamout 2012-01-1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이 책에 대해서 누군가 리뷰를 쓰긴 쓰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역시 있으시네요. ^^

blanca 2012-01-12 22:22   좋아요 0 | URL
^^;; 다른 분들이 읽고 더 좋은 리뷰를 써 주기를 바랍니다.

2012-01-12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3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1-1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서는 워낙에 유명한 소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거 같아요.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이외에는 국내에서 외국 여성작가의 영향력이 미미하니까요.
이 작품이 문학동네 전집 일부로 출간되었군요, 블랑카님 글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저도 이 책 읽어볼께요 ^^

blanca 2012-01-13 22:20   좋아요 0 | URL
아, 이게 프랑스에서는 공무원 시험에도 나오는 책이라고 하더라고요. 반사르코지의 아이콘 같은 책이기도 하다네요. 저는 몰랐어요. 예, 한번 읽어 보시고 저와는 또다른 감상을 들려주세요.

비로그인 2012-01-1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럴 때 차에서 바로 내립니다.

blanca 2012-01-13 22:27   좋아요 0 | URL
쥬드님, 처음에 무슨 얘기인가 했어요^^;;
 
가든파티 (반양장) 펭귄클래식 79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한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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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백화점 옥상에는 간이 테라스가 있다. 탁 트인 시야로 뽀송뽀송한 구름이 잡힐 듯하고 푸른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너울거린다. 그런데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재개발을 기다리는 노후화된 작은 집들과 잿빛 담들이 다닥다닥 붙어 왠지 조금 서럽게 나를 올려다 본다. 마치 삶 같다. 아름답고 희망찬 것들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발을 디딜 땅에, 누일 집 한 칸에, 입어야 할 옷과 먹고 마셔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그러 모아야 살아 낼 수가 있다.  그건 '나'의 얘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얘기이기도 하니 우리의 얘기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으로 오는 가파른 경사로의 가장 아래쪽에 그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었다. 초가집들과 그들의 집 사이로 큰 도로가 나 있기는 해도 사실 거리는 가까웠다. 초가집들은 무엇보다 눈엣가시였고 그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전혀 없었다. 초콜릿 빛 갈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진 자그마하고 초라한 집들이었고, 손바닥만 한 텃밭에는 양배추 줄기와 병든 암탉, 토마토 깡통만 뒹굴었다.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는 셰리던 가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와 차원이 달랐다. 그 거리에는 세탁하는 여인들과 청소부, 구두장이 등이 살았다.
-p.103 <가든파티> 중


더할 나위 없는 날씨에 수백 송이의 만개한 장미꽃 속에서 가든파티를 열게 된 셰리던 가에는 그 초가집들 중 한 곳에 사는 사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섯 아이와 아내를 남겨 놓고 죽게 된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셰리던 가의 딸 로라는 가든파티를 즐기는 것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꺼림칙함을 가지게 된다. 로라가 파티에서 남은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그 집을 방문하게 되는 이야기가 <가든파티>의 사연이다. 로라는 자신의 화려한 모자에 대해 그 초라한 집의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이것은 마치 이렇게 풍족하게 사는 것이 미안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죽음과 가난을 지척에서 목도하게 되는 부잣집의 철없는 아가씨의 모습은 성장의 관문을 그녀가 통과하여 이제 그녀가 진짜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과 같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외면하고 셰리던 가의 거대한 은빛 구름 같은 연기를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p.114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한다. 여기에 진실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든파티>는 호사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날카로운 진실에 대한 성찰이 지나간 자리에 이 짧은 이야기의 중량감이 느껴진다. 생애 마지막 책을 남겨 놓고 요절한 작가에게 깨달음은 한꺼번에 달려왔었나 보다. 우리는 그 깨달음들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들을 그저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된다.  

보기드문 아름답고 가볍지 않은 단편집.
청량한 푸른 하늘과 판자촌의 어딘가쯤에 아직도 작가의 시선은 머물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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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2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읽으신 맨스필드 단편집, 저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안 읽어봤어요.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는데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blanca 2011-09-27 10:51   좋아요 0 | URL
cyrus님 갖고 계시다면 이 좋은 날씨에 꼭 시도해 보세요. 묘사력이 아주 탁월한 작가랍니다. 시인 같아요.

비로그인 2011-09-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이야기였네요. 거대한 은빛 구름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누더기 조각 같은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요. 이건 저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 같아요. 글 잘 읽었어요 :)

blanca 2011-09-27 10:52   좋아요 0 | URL
예, 젊은 여류작가가 그냥 예쁘기만 한 얘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참혹한 진실에 대한 얘기를 가감없이 묘사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하늘은 아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빛깔이네요.

비로그인 2011-09-2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제 창 너머에는 겨울 내내 구멍만 뻥 뚫려 있던 건물들이 이미 사라져 버렸답니다.

2미터나 될까 한, 길 하나를 건너 휑하니 건물들이 사라져 있는 모습이 뭔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언젠간 이곳도 그렇게 삶이 통채로 사라지는 그런 휑한 곳이 되겠지요. ^^

blanca 2011-09-27 10:53   좋아요 0 | URL
요새는 무언가 통째로 들어내고 다시 세우는 일들이 너무 빈번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골목길이 참 소중하고 또 아련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가 의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프레이야 2011-09-2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더기 조각 같은 구름이 아니라 이 가을 바다 수평선에 맞닿을 정도로 낮게 깔려
두둥실 흘러가는 흰구름을 보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오늘 전 그런 구름을 보고 왔어요. 그래도 그런 호사쯤은 이 가을에 누려도 되겠죠.^^

blanca 2011-09-27 10:5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잖아요. 프레이야님, 사시는 곳은 바다내음도 맡을 수 있고 수평선도 보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부산역에 내릴 때 풍겨오던 그 바다냄새가 참 그리워요.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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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런 식으로 쓰니까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다. 가족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 원고를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참한 운명의 남자는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다.
-p.127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 비참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내 성격을 창조하고 숙명을 규정 지은 이 고장들을 이야기하는 데 나는 결코 적임자가 아니었다고.   

 

<쓰가루> 

쓰. 가. 루. 

'패자의 문학'을 했던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나 20년간 자란 곳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혼슈의 북단. 다자이 오사무는 한 서점의 의뢰로 쓰가루 반도를 여행하고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쓰가루>의 풍경, 역사, 추억을 펼쳐 놓는다. 옛친구들과 재회하고 군데군데 유년의 기억들을 들추어 내면서 서투르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가장 다자이 오사무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인간실격>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연약하고 투명한 속내를 들여다 보게 되면 그 속에서 묘한 공감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루저이니까.  

나에게는 또 다른 전문 과목이 있다. 속인들은 그 과목을 사랑이라 부른다.
-p.35 

 

어른이라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이다.
-p.43  

배반당한 청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만과 환각의 시절들을 끊임없이 회고하고 사랑한다. 그건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다. <쓰가루>의 절정은 결말이다. 어머니의 젖을 한 방울도 못 먹고 자란 그는 제2의 어머니와도 같았던 보모 다케를 만나는 것을 쓰가루의 마지막 여정으로 아껴둔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어머니는 하나의 인간과 하나의 삶을 조각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마침내 비로소 자신의 성장 과정의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 재회는 너무나 담담하고 너무나 건조해서 외려 더 뭉클하다. 언어가 비껴 가는 지점. 작가와 독자는 손을 맞잡는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든 자식들에게 이와 같은 달콤한 방심 상태의 휴식을 주는 것일까? <중략> 효도는 자연의 섭리이다. 윤리가 아니다.
-p.181 

격렬한 포옹도 눈물도 극도의 흥분도 없이 그저 잘 왔다! 그 한 마디.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의 가장 안온한 종착점이었다. 

 

<석별> 


도호쿠 지방의 나이 든 의사의 회고록 형식을 띤, 같이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던 루쉰에 대한 추억담이다. 아무래도 집필 계기가 국책 홍보를 위한 조직의 의뢰였다 보니 군국주의적 색채가 짙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나 러일전쟁을 마치 중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대리전, 성전으로 미화한 대목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 대한 불법적 침략, 지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는 모순에 아연했다. 문학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슬픈 자각. 결국 자신의 소속, 처지를 뛰어넘을 수 없는 그 한계.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언어는 진실 한 점을 딛고 피안을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이야기> 


공습경보를 피해 방공호로 대피한 다섯 살 딸에게 아버지가 일본의 옛이야기들을 각색해서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부싯돌 산', '혀 잘린 참새' 는 다자이 오사무를 통해 형식적인 패러디를 뛰어 넘어 성공적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거북이를 타고 용궁 체험을 가고 토끼 소녀가 너구리 아저씨를 골려 먹고 혀 잘린 참새 소녀를 할아버지가 사랑하고. 이런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얘기들을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책을 읽다 혼자 미친듯이 웃게 하고 때로 튀어 나오는 경구들을 메모하게 하고. <석별> 같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계곡 저 건너편에 아름다운 꽃이 분명히 피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아무런 주저 없이 등나무 줄기에 매달려 건너편으로 건너갑니다.<중략> 당신에게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당신에게 믿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p.359 

용궁 기행을 저어하는 우라시마에게 거북이가 내려준 모험의 정의. 피안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차안에 발이 묶이고 만다. 우라시마가 용궁을 떠나면서 받은 조개껍데기를 열어보자 곧바로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그것이 일종의 형벌이라고 반응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세월과 망각은 인간의 구원이라고. 삼백 살의 할아버지가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도 돈이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가능하지, 돈 한 푼 없는 하루살이 신세라면 세상을 등지려고 해도 세상이 쫓아와서 도저히 등질 수가 없다.
-p.425 

쓰가루 유수의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해설 참조)라는 유서를 남기고 연인과 동반자살한 그가 이러한 얘기들을 남겼고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생명의 불안이 언어를 발효시킨다'고 했던 그의 얘기처럼 창조의 동력이 없는 우리들은 생명의 불안 때문에 읽는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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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찜해뒀어요. 다자이 오사무를 읽어본 적은 없는데 단편이 무지 좋을 것 같아요. 블랑카님 글 보니까 할아버지께 이야기 듣는 기분이에요. 일본의 고전들은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는 듯 해요. 저는 [설국] 무지 좋아하는데 이 분이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라고 했다니 읽고나면 순위가 바뀌겠어요! (몹쓸 줄타기--;;)

blanca 2011-08-19 10:18   좋아요 0 | URL
<설국>은 그 시리도록 흰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분위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는 좀 다르지만 그 적나라한 솔직함에 반하게 되는 작가랍니다. 일단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있어 책장이 잘 넘어간답니다. <인간실격>도 좋아요. 아이리시스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마녀고양이 2011-08-1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 라니,,,
무엇인가에 그렇게 몸 받칠 수 있는 것은 정녕 커다란 행운이라 해야 할까요 불운이라 해야 할까요?

거기다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믿는 능력이 없다 라니,,,
그렇네요. 바라는 것이 없다면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이상과 목표가 없다면 노력하지 않을테니 말이죠.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엉엉. 읽고 싶은 책, 너무 많아요. 대청소 시작했는데, 집 다 뒤집어 놓고.

blanca 2011-08-19 10:20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는 모험심 제로잖아요-..- 겁쟁이예요. 저는 무언가를 잘 못 믿겠어요. 그래서 저한테 기억하라고 적어 놓았어요. 대청소요!! 아, 저도 오늘 물걸레질해야 하는데 걸레 빠는 게 너무 싫어요. 책은 저번에 이사오면서 그래도 처분하고 정리해서 좀 낫긴 한데. 요새는 읽고 소장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바로 바로 정리하려고 해요. 반짝반짝 대청소하시고 시원한 커피도 한 잔 하세요. 저는 또 위염이 재발하여 커피를 끊어야 하는 시기가 왔어요. 넘 슬퍼요.

블루데이지 2011-08-1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그냥 모른척, 못 본척 지나치려고 했는데...한번 애정있게 돌아보도록 blanca님이 만드셨어요~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에 분명 공감할것같아요~

blanca 2011-08-19 10:21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ㅋㅋㅋ 저는 제목이 끌려서 기억해 두었다 결국 읽게 되었어요. 특히 일본의 옛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혼자서 여러번 웃었어요.

비로그인 2011-08-19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혀 잘린 참새! 유치원에 다닐 적, 추운 날 이불 속에서 아빠가 읽어주었던 동화.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아빠, 라고 적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아요. 블랑카 님이 여기서, 옛 기억을 불러내 준 탓입니다.

blanca 2011-08-19 10:22   좋아요 0 | URL
쥬드님은 벌써 이 얘기를 알고 계셨군요. 자상한 아빠 덕분에. 저는 처음 들었거든요. 저도 아빠를 생각하니 뭉클하네요.

2011-08-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믿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돈이 없다면 세상을 등지더라도 세상이 쫓아온다.'! 완전 공감돼요. ...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지 못해 죽을 수도 있군요. 창조의 희열이라는 강한 단맛을 맛본 탓일까요. 블랑카님의 마지막 구절에도 공감합니다.

blanca 2011-08-25 10:10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이 두 문장이 정말 와닿더라고요. 굉장히 독특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더라고요. 그걸 예리하게 포착해서 언어로 표현하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아요. 참, 섬님의 추천으로 그 책을 당장 구입했답니다.^^

2011-08-25 18:41   좋아요 0 | URL
앗, 바로 구입하셨군요. 블랑카님에게도 좋은 경험을 주는 책이길 바랍니다...^_^
 
한눈팔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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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너무 소설 같은 소설. 다채로운 서사. 극적인 전개. 평면적인 인물. 그런 소설 대신. 

정말 소설 같지 않은. 단조로운. 별로 대단할 것도 하찮을 것도 없는 고만 고만한 사람들. 그래서 주위를 한번만 쭈욱 둘러봐도 닮은 꼴을 굴비꿰듯 줄줄이 엮어낼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죽지 않은 아내와 건강한 갓난아기 외에 일을 그만둘 듯하면서 못 그만두는 형이 있었다. 천식으로 죽을 듯하면서 아직 살아 있는 누이도 있었다. 새로운 지위를 얻을 듯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장인도 있었다.

 
   

 

이런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겐조의 이야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3인칭 일기를 읽는 느낌이다. 본가에서 버림받다시피 하고 입양되었다 다시 양부모의 이혼으로 파양되다시피 한 남자의 얘기.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양부모.  

   
 

 겐조는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살 수 없는 처지였다. 양쪽에서 내쳐진 채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했다. 바다의 것도 먹고 때로는 산에 있는 것에도 손을 댔다.

 
   

 

나쓰메 소세키는 언제나 담담하고 건조하다. 그런데 그 행간에 눈물이 스며 있다. 그 눈물은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 경험이 남기는 저릿한 슬픔을 공감한다. 다른 일들로 함께 울 수 있다. 바다의 것도 산의 것에도 손을 대는 겐조의 모습이 눈물겹다. 그리고 그 겐조를 둘러싼 한결 같이 무능하고 때로 몰염치한 주변인들. 어느 구석 하나 시원할 것도 상쾌할 것도 없는 지지부난한 일상들. 사실 그런 것이 삶의 대부분임을 소세키는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삶, 사람 들이 언제나 유의미하고 위대해질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못 본 척한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무능력하고 비열한 모습들이 흩뿌려진 소세키의 인간 들은 그래서 어쩐지 익숙하고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단한 이야기나 경구가 없어도 그의 이야기가 언제나 흡인력을 가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
 "모르겠어."
목소리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게 아니지. 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 도중에 멈춰 있는 거겠지.'

 
   

 

결국 들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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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7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철학자의 글을 정리하다가 '이처럼 절실하게 벗어나고자 하는'이라는 대목에서 blanca님의 이 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다소 엉뚱한 느낌은 들겠지만 뭔가 상통하는 것도 있겠다 싶어 댓글로 남겨 봅니다. ㅎㅎ
* * *
한가한 망상(妄想) 속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가장 의기양양한 상황에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기대하는 쾌락들은, 사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초라한 지위에서 우리가 언제든지 손안에 넣을 수 있고 언제든지 우리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그러한 쾌락들과 거의 언제나 같은 것이다. 허영(虛榮)과 우월(優越)이라는 경박한 쾌락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지위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우리는 개인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가장 초라한 지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마음의 평정(平靜), 즉 모든 실재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향유(享有)의 천성이자 기초가 되고 있는 마음의 평정과, 허영 및 우월이란 쾌락은 서로 조화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가 지향하는 휘황찬란한 위치에서는 우리가 이처럼 절실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초라한 지위에서 용이하게 즐길 수 있는 실재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쾌락들을 마찬가지로 쉽게 향유할 수 있을는지도 언제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 아담 스미스,『도덕감정론』中에서

blanca 2011-06-27 23:25   좋아요 0 | URL
언뜻 한번 읽고는 바로 이해되지 않아서 세 번 정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겐조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정말 필요한 얘기네요. 가장 찬란한 상황은 가장 초라한 지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있어야 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oren 2011-06-28 00:46   좋아요 0 | URL
blanca님의 댓글을 보니, 어느 철학자가 매우 긴 호흠으로 자신의 철학을 장황하게 펼쳐 놓은 책 가운데 어느 한 구절을 '덜컹' 끌어 와서 무턱대고 댓글로 남겨 놓은 것 같아 죄송스런 생각도 듭니다.

blanca님께서 인용해 주신 [겐조의 메아리처럼 울리는 듯한 질문과 울부짖는 대답]이 자꾸만 머리를 멤도는 것 같아 목소리가 여전히 똑같은 철학자의 뒤이은 언급 한 대목을 덧붙여 봅니다.
* * *
저 평범한 안전과 만족보다 더 낫지 않다는 것

불굴의 근면함으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경쟁자보다 우월한 재능을 획득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다. 이어서 그는 그러한 재능들을 공중(公衆)의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며, 똑같이 열심히 여러 취직의 기회를 사람들에게 간청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춘다. 그는 내심(內心)으로는 증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봉사하고, 자신이 경멸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아부한다. 그가 전 생애를 통하여 추구하는 이상은 자신이 결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어떤 공적이고 우아한 휴식(休息)의 관념인데, 그것을 위해 그는 어느 때에든 자신의 힘으로 쉽게 이룩할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의 평정(平靜)을 희생한다. 그리고 만약 아주 늙어서 드디어 그것을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것이 어떤 점에서도 그가 이것 때문에 포기했던 저 평범한 안전과 만족보다 더 낫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최후의 순간이 되어 그의 육체가 고통과 질병으로 쇠약해지고, 자신의 적들의 불의(不義), 동지들의 배신(背信)과 망은(忘恩) 때문에 그가 받아 왔다고 상상하는 수많은 침해와 실망의 기억에 의해 그의 마음이 쓰리고 괴로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그러한 부와 권세가 사소한 효용(效用)만을 지닌 허접한 것에 불과하고, 육체의 안락과 정신의 평정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족집게 상자 정도의 쓸모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부와 권세는, 족집게 상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편리함 이상으로 번거로움을 더 많이 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 아담 스미스,『도덕감정론』中에서

blanca 2011-06-28 21:24   좋아요 0 | URL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예전에도 한번 인용하신 것 기억나요. 어떻게 이렇게 명철하고 예리하게 삶을 파악하고 묘사할 수 있을까요? 정말 놀랍네요. 기회가 되면 꼭 완독해 보고 싶게 만드는 인용구입니다. 죄송하긴요.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드는 댓글인걸요.

비로그인 2011-06-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요새는 담담하면서 조금은 밝은 느낌의 글이 좋아집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 걸으면서도 조금은 힘이 나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그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들을 보면서 전철의 그 수많은 사람들, 하루에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건들. 나름 담담하면서 조금은 밝게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blanca 2011-06-27 23:2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도 이제는 지나치게 염세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얘기에서 질기고 생명력이 있는 얘기로 옮겨 가려고 합니다. 그런 시점이 온 것 같아요^^

cyrus 2011-06-2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상중 씨의 <고민하는 힘>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좋게 평가하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한 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감명깊게 읽어봤는데 국내에 나스메 소세키의
작품이 생각보다 많이 번역되었더라구요. 전에는 민음사 시리즈에 있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문동에도 그의 작품이 번역되었군요. ^^

blanca 2011-06-28 21:20   좋아요 0 | URL
예. 저는 아직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읽어 보지 못했어요. 정말 기묘하고 매혹적인 작가입니다. 캐도 캐도 무언가가 자꾸 더 나오네요. 저도 정말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작품이 나쓰메 소세키를 알기 위한 입문서라고 하네요. 자전적인 작품이라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6-28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요맘때 소세키 소설에 빠졌던 때가 떠오르네요. 전집이 나온다면 꼭 소장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blanca 2011-06-28 21:21   좋아요 0 | URL
후와님도 좋아하시는군요. 아, 전집이 나오는 것도 괜찮겠어요.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드문 드문 소세키를 읽게 되네요. <그후>도 참 좋았어요.

비로그인 2011-06-2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이 급박하니 글을 읽을 수가 없더이다, 블랑카 님. 그 어느 글도 내 속으로 스며들 수가 없어서.

blanca 2011-06-28 21:22   좋아요 0 | URL
쥬드님, 동감해요. 저는 그때 오히려 독서가 괴롭더라고요. 정말 말 그대로 활자만 겉돌며 읽게 되고요. 결국 허구가 현실을 이길 수는 없는 걸까요?

마녀고양이 2011-06-2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결국 들켜버렸네요... ㅠㅠ

blanca 2011-07-01 12:41   좋아요 0 | URL
저도 제 얘기하는 줄 알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