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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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뷔폐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분서주하는 젊은 남녀의 시중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뭔가 모르게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양 극단의 지점에 있었다. 하나는 과연 그들이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들이 그에 합당할 만큼 보이는 그대로 양질의 서비스일까, 하는 일종의 의심이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인간들이 계층적 층위에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주고 받는 풍경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물론 그런 풍경이 그 두 집단의 전부를 표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순한 풍경에서 알레르기적 감상을 불러일으킨 나 자신이 감정적 프리즘을 들이대었을 여지도 있다. 여하튼 언제나 그런 풍경은 그 두 집단 어디에도 나를 제대로 놓아 볼 수 없을 만큼 불편하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리의 콕도르 거리에서 투숙한 여관에서의 생활과 고급호텔 접시닦이의 체험, 런던에서의 싸구려 간이 숙박소를 전전하는 부랑자 생활에 관한 소설이다. 그의 전매특허이다시피 한 르포르타주 형식을 띠고 있어 사실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가난의 체험에 대한 보고서다.  

그의 글이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체험적 진술이 과장 확대되지 않고 건조하지만 성실하고 재기어린 문장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삶의 복판에 흠뻑 빠져든 저자의 목소리는 작위성과 허술한 틈새대신 통절한 고백과 통렬한 비판으로 사무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고급 호텔의 그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나비 같은 드레스와 어린 아이 눈망울 만한 다이아몬드 반지에 휘감긴 금발 미녀가 마시는 칵테일과 그 건너에서 그녀를 위하여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써는 연미복차림의 신사 뒤에 43도 이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후텁지근하고 불결한 지하실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만이라도 자보는 것이 소원인 접시닦이들이 미친듯이 설겆이를 해대고 서로 악다구니를 해대고 울부짖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 안에서도 하나의 계층의 층위가 형성된다. 가장 덜 노예적인 노동자 같은 계층인 요리사와 고용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병리적 환상에서 자신의 노예적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는 웨이터들, 그리고 미래의 전망이라곤 없고 강력한 피로에 굴복하여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는 것으로 삶을 밀고 나가는 접시닦이들. 이들이 바로 불충분한 인원으로(자본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그 거대하고 복잡한 서비스 체계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주역들이다. 복잡한 서비스를 단순하게 완성시키는 비결은 바로 불결의 비밀스러운 혈관이다. 이들이 낳는 서비스는 보여지는 서비스이고 우리는 보여지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는 더럽게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했다,고 '나'는 고백한다. 호텔과 큰 음식점에서 100명이 200명에게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을 제공하기  위하여 악마처럼 고생한다는 대목은 우리가 흔히 누린다고 생각하는 서비스의 생득적 해악을 암시한다. 물론 1933년과 2010년의 시차를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의 사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용역을(물론 물질적 대가가 수반되지만)제공하고 제공받는 이 시스템의 순환에서 정작 잘려나가는 것들에 대한 응시가 절실하다.  

그는 돈이 미덕인 시대(이것은 현대에도 유효하다.)에서도 유일한 가난의 미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바닥까지 가 보는 그 절망의 심연이 주는 일종의 담담한 안도와 앞선 미래를 떠올리지 않고 그저 닥치는 대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의외의 일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가난은 미래를 전멸시킨다. 가난이 가장 슬픈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고 외부를 인식할 기회를 박탈당하다 보면 먼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하나의 불가능으로 다가온다. 가난의 표피적 이해의 껍질을 벗고 나온 저자의 진솔한 고백은 우리가 복지 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또한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는 얘기는 자선의 과시적 풍모의 속물적 더께를 과감히 벗겨내야 함을 강변한다. 복지라는 것이 황공한 자선의 형태로 광고될 때 수혜자들이 정작 받게 되는 것은 하나의 온정적 혜택이 아니라 비열한 권력의 또다른 횡포와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고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의당 당연한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기대에 섞인 불순한 구석을 자각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이해는 요원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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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 전 이 글귀가 현대 사회를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넘치는 상품들. 옷, 가방, 가구, 신발, 심지어 책까지.

저 요즘 책 거의 못 읽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놨나봐여.. 미치겠어염. ^^

blanca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진짜 고개가 끄덕끄덕해지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전 벌여 놓은 일도 없는데 책 읽는 시간을 시간이 참 없네요^^;; 요새는 왜이리 게을러지는지. 글자를 읽는 것도 귀찮을 정도랍니다.-..-

기억의집 2010-05-1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저 밑바닥 생활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전 조지오웰의 산문은 다 좋아요. 그처럼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딱 부러지게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순식간에 읽어 치웠던 거 같아요. 그의 글이 님 말씀대로 과장되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일까요?

blanca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분도 저의 완소가 될 듯^^;;해요. 진짜 간명하면서도 또 재미있게 쓰는 그 능력이라니. 재간둥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5-1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일부가 예전에 고급영어독해집에 실렸는데 제목 번역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었어요.덕분에 따라지의 뜻을 알게 되었지요.

blanca 2010-05-19 13:48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알고 보면 옛날 영어 독해할때 명문들이 참 많았던것 같아요. 따라지 인생ㅋㅋㅋ 어감으로만 느끼지 말고 정확한 뜻을 한 번 찾아 봐야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9 19:06   좋아요 0 | URL
이호철 씨 소설에 월남한 따라지 인생 운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이 분이 월남자라서 그런 이야기는 실감나게 잘하지요.

루체오페르 2010-05-1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다. 인간의 역사는 동서고금만 다를뿐 대동소이 하다는걸 느낍니다.

blanca 2010-05-20 13:43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저는 이것 읽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인간이 느끼는 정서는 기본적으로 비슷한가봐요. 현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정말 신기했답니다.

순오기 2010-05-2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작이네요.^^
블랑카님은 리뷰나 페이퍼 썼다 하면 당선작이군요. 축하해요!

blanca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헤헤.그건 아니에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시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달팽이 2010-06-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충격이네요
책읽는 것도 재밌지만 독후감 읽는 재미도 쏠쏠하네요ㅋ

blanca 2010-06-04 10:02   좋아요 0 | URL
그게 자선을 베푼 사람은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조금 저자세에서 감격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런 심리까지 다 간파하나봐요. 그런 자선은 위선인가 봅니다. 야망의25시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5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병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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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껏 어떤 여자에 대해서도 그 자신 이런 감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으나, 그는 이런 감정이야말로 사랑에 틀림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눈물은 더욱 글썽거리며, 희미한 어둠 속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밑에 서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자기라는 존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세계로 사라져가고, 그들 죽은 사람들이 한때 살던 현실의 세계 그 자체는 허물어져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 <死者> 중 

제임스 조이스의 초기작인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의 중하층 계급인들의 나른한 일상을 덤덤하게 스케치한 열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만큼은 그도 살아날 희망이 없었다.'로 시작하여 역시 '그의 영혼은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로 끝나는 이 단편집은 마치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문을 닫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택한 것은 이 작은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년시대, 사춘기, 성숙기, 노쇠기의 민중의 생활은 질벅거리고 침체되어 있으며 극적인 사건도 낭만적인 로맨스도 없다. 발전소 구경을 위해 학교를 빠지고 나룻배로 강을 건넌 소년들은 우연히 맞닥뜨린 노인의 삶의 체념을 들어주어야 했고, 하숙집 여주인이 딸과 맺어주려고 했던 손님은 비겁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헤맨다. 개인은행의 출납계원은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 어설픈 로맨스를 만들어가다 짐짓 그 정열적인 움직임에 겁을 먹어 발을 뺐다 그녀의 부음기사를 읽고 외로움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은 제임스 조이스가 인간 간의 소통 자체를 믿지 않는 것으로 대변된다. 그는 모든 인연은 설움으로 이끄는 인연이라고 얘기하며 운명에 거슬려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그의 메시지가 메타포에 실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작품으로 엘리엇도 극찬한 <사자>는 이런 그의 소통에 대한 불신과 운명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사무치는 이해와 죽음에 대한 유리알 같은 통찰이 돌올하게 빛난다. 나머지 단조로운 단편들이 줬던 나른함은 이 작품 앞에서 서곡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될 정도로 경이롭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어셔스 아일랜드의 어두컴컴하고 초라한 집에서 늙은 모컨의 자매와 그녀들의 조카가 함께 연 댄스파티의 흥청거리면서도 아늑한 생동감들은 그 파티에 참석한 조카 가브리엘의 아내가 우연히 <오그림의 처녀>라는 민요를 듣고 황홀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에게 아내의 가치와 그녀와 엮은 추억들에 대한 영롱한 아름다움을 재확인하게 해줌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들과 기대는 하나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난다. 아내는 소녀시절 가스공장 소년공에게서 그 노래를 들었고, 고향을 떠나던 날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비를 맞으며 창문에 돌을 맞혀 자신이 왔음을 알렸던 추억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 소년은 죽고만다. 아내는 첫사랑의 애달픈 추억으로 울먹인다. 가브리엘은 지금은 늙어버린 아내가 한때는 한 소년을 죽게까지 한 로맨스를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찰나에 절절하게 스며 시간의 괴력 앞에서 스러지고 만다. 결국 시간의 횡포 앞에서 인간들은 모두 저마다의 오해와 착각을 품고 죽음의 장막 뒤로 퇴장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결국 다 그림자가 될 것이고 이런 인식을 하는 나마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자각은 삶 앞에서 몸을 떨게 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재력, 권력, 사랑 등 세속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레빈이 그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다 스러지고 말것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인식하는 대목이 결말을 장식한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그것과 절묘하게 맞물리고 있다. 가브리엘은 아내의 사랑의 추억에 질투를 느꼈다기 보다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소녀를 기다리는 장면을 떠올리고 옆에 누워 있는, 이제는 결코 젊고 아름다워 그 때 그 소년의 사랑과 동경을 복원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아내의 모습을 서글프게 느끼며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덮이고 있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죽음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며 이 오묘한 대구를 완벽하게 형상화해낸 작가에게 경외를 느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의 마음에도 그런 절절한 추억이, 사무치는 사랑의 기억이 있나 싶어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어 줄 수는 없다,는 작가의 얘기는 내 자신을 덜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젊은 날의 맹목적 믿음이 허무하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회상 속의 사랑은 언제나 박제되어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모습으로 정지되어 있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잡힐 듯 한데 이미 나는 그 때의 모습도 그 때의 투명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이 깨달음을 주렁주렁 달고 늙어가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사자>를 읽기 위해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펼쳐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 쓸쓸함과 잃어버린 순수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추체험이 오롯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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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5-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느끼기에 알라딘에서 가장 글 잘 쓰는 작가 중의 한 분인 블랑카님, 잠시 잠깐 들러 보는 것만으로도 저를 흥분케하는 님~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재능(어쩌면 노력일수도...)을 선물 받았을꼬... 봄밤 없는 봄날씨를 탓하며 부러워해 봅니다.

blanca 2010-05-07 14:32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님의 과찬은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 이 칭찬 먹고 오후를 행복하게 보내렵니다. 감사합니다.!

穀雨(곡우) 2010-05-12 09:46   좋아요 0 | URL
느와르님 말씀에 백배동감. 베스트 오브 베스트.^^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나도 알라딘에서 글 잘쓰는 사람이란 평을 받아보고 싶어...블랑카님.부러워라...요즘은 제 서재에 댓글 달러 오는 사람도 없답니다.

blanca 2010-05-10 13:13   좋아요 0 | URL
노자님.ㅋㅋㅋ 댓글 읽다 웃습니다. 제가 부러워할 만한 사람은 아닌데요^^;; 노자님의 박학다식은 어쩌구요? 노자님 서재에 가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조이스...요즘엔 많이 안 읽히는 작가인데...그래도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은 조금씩 팔리는 편이죠?

blanca 2010-05-10 13:1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재미는 없더라구요^^;;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 뒤의 단편작가들 대부분 모방한 것 같아요. 한 마을 사람들 모습을 연작형식으로.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17   좋아요 0 | URL
맞아요.우리나라에도 이문구<관촌수필><우리동네> 박영한<왕룽일가>가 있지요.<원미동 사람들>도 있군요.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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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언덕을 넘으면서 더이상 나의 시선은 앞으로만 전진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삶들을 복기해 보고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하지 말걸, 하면서 수정도 하고 가감도 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의 나이는 이런 시간들을 쌓아가는 징검다리였다. 내일에 대한 전망이나 아슴한 기대대신 걸아온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는 일들이 나의 시간들을 채우며 살아나간다는 것은 더없는 아이러니다. 이게 사는 건가, 정말 생을 호흡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과거의 반추가 덮어버린 시간들이 생의 통찰을 가져온다면 더없이 좋겠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하나의 소설이지만 저자의 철학적 사유의 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극적 재미나 묘사의 섬세한 매력은 떨어지지만 줄치며 읽는 소설이라는 얘기처럼 이야기 속 화자들에게서 미끄러져 나오는 얘기들이 하나의 경구 같다. 또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한 특질들이 개개의 상징처럼 느껴져 결국 쿤데라의 생에 대한 깨달음을 구체화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여기에는 기억의 왜곡에 대한 가슴아픈 체념이 가닿는 망각의 힘에 대한 겸손한 수긍과 시간이 무화시켜버리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고쳐지지 않은 채 잊혀지고 기억된다 하더라도 나름의 왜곡으로 변형된다. 시간이 스치고 지나간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원형이 보존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p.399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나는 고향에 와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여러 명의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루드빅의 귀향이 더듬어나가는 과거의 시간들의 길목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또 그 나름의 시선으로 똑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회고하고 이해하고 고백한다. 공감과 이해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이자 허구의 개념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이 장치는 그 구성 자체로 작가의 의도를 웅변한다. 주인공 루드빅은 여자친구에게 농담을 적어보낸 엽서가 문제가 되어 공산당에서 축출되어 무기를 맡지 않고 사회주의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병사로 징집된다. 이 시기에 만나게 되는 우수어린 느림 그 자체인 루치아를 사랑하게 된 그는 끝내 그녀에게 거부당하고 실패한 사랑에 헛된 환상을 덧칠하게 된다. 대학재학시절 그를 축출하는 판정을 내린 학내 조직 차기 위원장 제마넥에게 복수하고자 수년이 흐르고 난 후 제마넥의 아내를 유혹하지만 루드빅은 이미 예전에 자신을 당에서 축출했던 제마넥이 지금의 제마넥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더군다나 그의 아내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므로 복수의 매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루치아와의 관계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폭력의 연장이었음을 전해듣고는 절망하게 된다. 

자기 밖에 놓인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너무도 커다란 수수께끼인 그런 나이, 또한 다른 사람들은(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 자신의 감정, 자신의 혼란, 자신의 가치 등을 놀랍게 비추어 주는 움직이는 거울에 불과한 그런 바보 같은 열정적 나이에 대한 분노였다.-p.344 

나의 스무살을 루드빅도 통과했다. 젊음이란 찬란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참담한 것이었다. 그 미숙함과 그 미진함이 그 어리숙함이 과장된 허위 밖으로 미친듯이 튀어 나오려 함에도 끊임없이 억눌러 가며 나는 찬란하며 성숙하다고 거짓말하며 다니던 그 시간들의 반추는 부끄러울 정도다. 그 때 만난 사람들. 사랑들. 쌓인 분노들. 그것들을 추리고 수정하고 음미하는 이 행위들의 덧없음에 대한 자각은 루드빅의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 살아봄으로써 가능해진다. 기억의 왜곡이 스치고 지나간 그 자리, 자의식이 난도질해서 구겨놓은 그 밑그림들은 또다른 개인들에 의하여 개별화된다. 예전의 사람은 지금의 그와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고 내가 그 과거를 우격다짐으로 구겨넣어 나의 감정과 의지로 세탁하여 내어 놓아봤댔자 그것이 가지는 의미나 가치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다 농담 같은.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쾌한 농담 같이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나 공유하게 된다. 농담은 가볍지만 상큼한 뒷맛대신 눅눅한 미진함을 남긴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런 것임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시 제대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일런지도 모른다.
 

증오의 대상인 제마넥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루드빅의 귀향이 사랑하면서도 피했던 옛친구 야로슬라브를 두 팔에 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모호하지만 진중한 진실의 화두를 던져준다. 인간 간의 관계는 의지와 이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연대로 가능한 것임을. 좀더 가벼워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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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의 심리를 토막질하여 분석하는 서양 사상을 배우면서, 결국 동양 사상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 흐르는 대로,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거. 뱅뱅 돌아서 오게 되더라도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보다 견고한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요?
찬란하지만 잔인한 20대를 보내는게 밋밋한 20대를 보내는 것보다 확실히 나은것인지...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blanca 2010-04-01 22:35   좋아요 0 | URL
혼불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얘기처럼 동양의 그 윤회와 업에 관한 생각들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저는 나름대로 처절한 스무 살의 기억이 있는데 중반까지는 그 기억과 화해를 못하다가 서른이 넘으니 다시 그 시간이 온다고 해도 또 그렇게 살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나를 죽이면서 살아왔으니 그 짧은 시간이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합리화하고 있답니다.^^;;

기억의집 2010-04-0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언덕을 넘으면서~~ 이 앞 대목 참 좋네요. 전 사실 그렇게 행복한 어린시절이나 20대 시절을 못 보내서 그런지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때가 있어요.
블랑카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저는 한때 쿤데라의 열성팬이었는데,,,,
전 몰랐는데 불멸이 절판이라고 하더라구요. 브론테님 방에 가서 글 읽다가 놀랬어요.
아, 그 책이 절판이었구나 싶은게... 전 그 책 쿤데라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거든요. 프라하도 좋았지만
나중에 나온 불멸이 더 좋았고 저의 천주교 세례명이 아네스인데(지금은 무신론이지만) 불멸에 나온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아네스라고 할 정도로 말이에요. 전 10월 생이라서 아네스는 안 된다는 것을 억지로 우겼거든요.
하핫, 별 걸 다 고백하죠!

blanca 2010-04-01 22:38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아네스. 너무 아름다워요. 저는 냉담중입니다. 개종까지 해서 냉담이라니 할 말 없죠. 쿤데라를 좋아하셨군요. 저는 처음이라 조금 낯설고 조금 더 알아가야 할까 생각중입니다. 안그래도 불멸이 다시 나왔더라구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별 걸 다 고백하는 것을 참 좋아라 한답니다.^^;;

아 그리고 천주교에서 무신론으로 나아간 기억의집님 사연이 살짝 궁금해집니다.

기억의집 2010-04-02 11:30   좋아요 0 | URL
천주교 다닐 때부터 종교인들이 이익집단으로 보였고, 더 큰 영향은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었어요. 그 이후 계속해서 자연과학책들만 읽으면서 더 확고해지는 거 같아요.
 
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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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되었다. 완전히. 정말 완벽하게. 리뷰를 쓰고자 하는 <면도날>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읽은 <달과 6펜스> 얘기다.
고갱을 모델로 한 그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슬퍼서가 아니라 그 웅혼한 작품성에 완전히 압도되어 울었다.
눈이 멀고 문둥병까지 걸려 그림을 그려나가는 그 사내의 그 무모한 열정과 이상주의적 삶에 대한 치기가 속물 근성의
그 연약한 거죽을 통째로 벗겨 버린 듯한 착각. 이 한 권의 책이 서머싯 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의 절대적인
기반이 되었다.  

<면도날>을 읽고 나는 알라딘의 리뷰어들에게 감사했다. 칭찬일색의 그 리뷰들이 이 책을 챙기게 했고 오백여 페이지의
그 책을 다 읽고 난 새벽 한 시경 나는 예전 그 때와는 또다른 감동으로 한참을 오도카니 앉아 있게 됐다. 서머싯 몸은
흔히 대중적인 작가로 불리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소설은 여하튼 재밌기 때문이다.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며
일으키는 그 가벼운 바람은 진중한 작품성도 왠지 가벼운 것으로 치환해 버린다. 재밌기 때문에 되레 그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사려깊은 성찰은 천덕꾸러기처럼 돼 버렸던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나도 진부한 칭찬으로
이 책의 지름신을 강림케 하련다. 작품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소설이니 얼른 읽으라고.  

1차 세계대전에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중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귀환한 래리 대럴이라는 젊은이가 삶과 신의
의미를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는 여정을 중심으로 사교계의 노회한 신사이자 대단한 속물이지만
비열한 사람은 아니라고 몸이 변호한 엘리엇 템플턴, 그의 조카이자 래리의 약혼녀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물신주의에 경도되어 래리를 떠나 안온하고 부유한 결혼생활을 택하는 이사벨 등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인상적인 것은 작중 화자가 대놓고 서머싯 몸 자신임을 밝히고 등장인물들을 때로는 관조하고 때로는 다둑이고 때로는 비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다. 마치 논픽션인 것같은 효과와 더불어 서머싯 몸 자신의 이야기들도 다소 들어볼 수 있는 아주 유쾌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그는 못생긴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절대 익숙해지지 않으며 작가는 열과 성을
다해 몇 달에 걸쳐 완성해 놓은 책을 독자는 이 세상이 하나도 할 일이 없어질 때까지 아무 데나 놓아둔다는 생각에
몹시 우울해진단다.

주인공 래리 대럴이 사랑과 세속적인 부를 모두 놓아두고 떠나는 그 구도의 여정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대척점에 서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엘리엇의 얘기가 그것을 중화해 준다. 엘리엇은 지극히 리얼하고
지극히 유쾌하고 지극히 속물이지만 그래서 미워할 수 없고 관심을 계속 기울일 수밖에 없는 우리 주변 사람이다.
미국인으로서 프랑스의 상류층에 입성한 그는 파티를 숨구멍처럼 여기며 사교계를 그의 삶전체의 무대로 간주한다.
그런 그가 죽어가면서까지 공작 부인이 여는 가장 무도회에 초대장을 받지 못한 것에 격분하다 몸이 재치있게 공작부인의
비서를 사주해 만들어낸 초대장을 받고 참석하지 못함을 애석해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가슴이 아프면서도 무언가에
끝까지 전체를 걸 수 있는 그 순진하고 정열적인 무모함에 경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언은 정말 귀엽지 않은가? 

"엘리엇 템플턴 씨는 하느님과의 선약 때문에 노베말이 공작 부인의 친절한 초대에 응할 수가 없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p.397 

 

끝없이 존속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더 좋아지지는 않으며 하얀 것이 더 하얘지지는 않죠.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중략>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p.459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차 차창으로 뒷걸음치던 풍경마냥 자꾸만 스러져 가는 그 수많은 추억들의 덧없음과 비례하는
생생하고 절절한 기억들의 무게 속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우두망찰하는 요즈음 나에게 래리 대럴은 얘기한다.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거라고. 구도의 여정을 밤을 새워 들려주고 난 래리는 작중 화자이자 작가 서머싯 몸과 함께 아침에 갓 배달된 바삭바삭한 크루아상과 카페오레로 아침 식사를 한다. 래리의 얘기와
몸의 냉정하지만 사려깊은 추임새가 엮어낸 하룻밤을 마감하는 그 아침의 크루아상과 카페오레의 그 아늑하고
그리운 냄새들이 나의 코앞에 와서 당도했다. 나도 그들과 밤을 지새운 듯한 피곤함과 또 래리의 구도의 여정 끝에
함께 당도한 듯한 그 아름다운 지향의 웅장한 아름다움(착각일지라도)이 뒤섞여 그 밤 나는 잠을 설쳤다.  

그리고 구정 전날 제사 일손을 거들면서 어머님의 주름 속에 알알이 박힌 그 수많은 추억들과 고단함에 진정한 애정과 연민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아주 짧은 시간만 유효한 사이비 약발일지라도 나는 몸에게 숭배를, 감사를 바칠 수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의 고장에 가 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정보국의 무리한 비밀 첩보 임무를 맡았다는 그런 사람에게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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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1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머셋 몸 작품 중 못 읽은 책이네요... 서머샛 몸 작품 무척 좋아하는데. 캡쳐하신 글 와닸네요. 찰나와 영원. 영원한 기쁨은 없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찰나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 장바구니에 넣어야겠습니다.

blanca 2010-02-16 14:0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명절 잘 치르셨는지요? 이 책은 피곤한 와중에도 열심히 읽었답니다. 무엇보다 몸 책은 재미있으니까요. 분량이 좀 있어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금방금방 넘어가더라구요. 다음에는 '인생의 베일'을 읽어볼까 하고 있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7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모옴의 중단편집도 재미있으니 하나하나 독파해 보세요.그런데 계속 읽다 보면 모파상의 인물묘사를 연상케 하지요.모옴도 모파상의 작품을 좋아했으니까요.결국은 읽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어요.그런 걸 극복하지 않으면 독서가 독이 될 수도 있죠.

blanca 2010-02-17 18:19   좋아요 0 | URL
모옴의 중단편집이 재미있군요. 그런데 모옴은 어떤 이상적인 인간을 꼭 대척점에 놓아 두는 것 같아요. 이게 조금 작위적이기는 한데. 맞아요. 박완서. 모파상. 모옴. 인간 속의 잔인하고 절망적인 속성을 너무 적나라하게 파헤쳐서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츱츱해지는 단점이 있더라구요. 노자님의 고언을 들어야 이들의 독서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8 16:20   좋아요 0 | URL
하긴 박완서도 우리 마음 속 누구나가 갖고 있는 속물근성을 잘 끄집어 내지요.특히 모옴의 성격묘사를 보면 아주 악랄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착한 사람이 남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당하는 이야기를 통쾌하다는 듯이 그리거든요.달과 6펜스에도 그런 인물이 나오죠.마누라를 뺏기는...
 
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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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야망이 빈약한 배경과 만났을 때 인간은 때로 극단적으로 잔인해질 수 있다.
재능과 야망에 성적매력까지 가진 남자가 출세를 위하여 상류층 부인들의 속되고 무른 감정을 희롱하고 이용하는 이야기.
게다가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모파상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갈라져 있다. 유려한 묘사도 섬세한 감정의 속살의 드러냄도 없는
그저 툭툭 거친 붓으로 캔버스에 보이는 대로 단조롭게 그려갈 뿐이다. 
솔직히 이 점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을 훑고 가는 수많은 단상도 다 같은 색깔로 도열하고 있다.
인간의 그 연약한 가변성과 복합적인 감정의 다채로운 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뛰어드는 언론계의 추악함도 그 부정성이 지나치게 비대하게 부푼 느낌이다. 
 

인간이 이용가치로만 저울질당하고 애정도 하나의 약점으로서만 작용하는 그 세계가 거북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현실을 눈감아버리고 싶어만지는 나의 미성숙함때문인지 재미있고 술술 읽혔던 소설의
해피엔딩이 자못 거슬린다. 인간의 비열함과 비루함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해피엔딩으로
읽히는 기괴함이 있다. 권선징악적인 그 위선적이고 단순유치한 도식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지만
결국 인간과 삶을 긍정할 수 없는 그 결말에도 찝찝한 뒷맛이 과히 좋지 않다. 

모파상의 견고한 현실은 긍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대작가이지만 당시의 자연주의적 사조는 사실주의적 배경에 과장된 인간형이 얽혀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래서 <벨아미>를 닫고 나오는 길은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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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는 못 읽은 책이라 모르겠고,
적과 흑, 위대한 개츠비~ 도 같은 부류의 책이 아닐런지...

blanca 2010-02-03 15:31   좋아요 0 | URL
다 비슷 비슷한 부류 같아요. 개츠비만 사랑을 위해 출세를 이용했고. 저는 자꾸 청춘의 덫의 이종원 생각이 나서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2-0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소설은 인간을 너무 적나라하고 비관적으로 그려서 싫다는 사람이 많아요.이문열 씨도 <비계 덩어리>에 대한 감상을 그렇게 쓴 적이 있지요.그런데 저는 모파상,특히 비계덩어리는 몇 년에 한 번씩 꼭 반복해 읽어요.굳이 표현을 찾자면 섬뜩한 유머라고나 할까요.블랙 코미디라는 단어로 부족하니까요.

blanca 2010-02-06 15:03   좋아요 0 | URL
아....제가 놀란 건 결말부분이었어요. 벨아미를 냉소하는 건지 옹호하는 건지 모호하게 그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마치 당연한 상념들인마냥 나열해 놓고 끝내버려서. 참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보통 이런 인물들에 대한 냉소가 없어 좀 거북했나 봐요. 비계 덩어리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