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타 베를링 이야기
셀마 라게를뢰프 지음, 강윤영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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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닐스의 이상한 여행>에서 닐스가 새를 타고 스웨덴 전역을 여행다니는 장면보다는 초입부에 어머니 아버지가 닐스가 교회에 안 가는 대신 그날 설교 내용이 담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책상에 억지로 앉히던 장면을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책상에 성경의 페이지까지 확인하여 놓아주던 어머니의 자상함과 천방지축 닐스가 느끼던 답답함, 압박감이 그 또래 피어나기 시작하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저를 이루는 애정과 뒤섞여 혼란스러웠던 그 느낌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 이름도 어려운 스웨덴의 여작가 셀마 라겔뢰프는 단 하나의 어린이 소설로 나를 사로잡았다. 파란 장정의 계몽사책의 후반부에는 항상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친절하게 덧붙여져 있어 꼬박꼬박 읽었던 기억이 난다. 셀라 라겔뢰프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만 쓴 것이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도 썼는데 그게 아마 이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였던 것같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만 생각하고 잊고 있었던 터에 국내 첫 완역으로 드디어 셀마 여사의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기대했던 내용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스웨덴의 시골 베름란드를 배경으로 파계한 목사 예스타 베를링의 진지하고 낭만적인 연애담을 기대한다면 좀 황당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일단 이 책은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예스타 베를링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그와 그의 연인들이 삶을 더 풍성하게 인식하는 데에 부차적인 역할 정도로 그친다는 것에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스웨덴의 아름답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 풍광에 대한 근사한 묘사, 그곳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전설 같은 이야기들의 옴니버스, 끊임없이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두고 떠나 모험과 고난을 택하는 기사들의 방랑벽, 기사들을 거두어 먹이고 마을 전체의 경제를 책임지다 시피했던 소령 부인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다층적인 인식 등이 보물 꾸러미처럼 펼쳐진다. 흔히 남미 소설들을 거론할 때 단골로 등장했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색채가 이 작품에서는 또 북유럽 식으로 재창조되어 현란하게 구현된다.

 

주인공 예스타 베를링도 그를 둘러싼 주위 인물들도 절대 선이나 악으로 조악하게 감침질되지 않는다. 예스타 베를링은 근사한 사내였지만 술독에 빠져 목사직에서 파면 당하고 브루뷔의 언덕을 떠돌다 옛사랑을 잃었지만 그 사랑이 남긴 재산과 지헤로 마을 전체를 현명하게 꾸려나가는 삼셀리우스 소령 부인에게 의탁하게 되며 그녀 아래의 기사들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악의 현현 같은 사악한 지주 신트람에게 속아 소령 부인을 쫓아내고 기사관을 차지하게 된 기사들은 예스타 베를링을 둘러싼 경솔한 연애 사건에 일조들을 담당하면서 좌충우돌 마을을 말아먹게 된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예스타 베를링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사들의 실수 투성이의 삶에 대한 다양한 만화경이라 해도 될 듯하다. 예스타 베를링은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고 기사들은 끊임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다 다시 기사관으로 돌아오는 그 회귀의 도정에서 방황한다. 하나의 긴 이야기는 여러 장의 작은 이야기들 자체만으로 역동성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열하고 인정머리 없기로 유명한 브루뷔의 목사가 자신의 옛사랑이 죽음을 앞두고 젊은 시절의 연인을 추억하러 왔을 때에는 가장 정열적이고 진심어린 늙은 청년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아들의 죽음 앞에서 죽음이 가지는 아름다운 종결의 의미와 초자연적인 느낌을 섬세한 언어로 되뇌이는 어머니의 이야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 기사가 이른 새벽 첫 햇살이 나무들 꼭대기에 불타고 있을 때 살그머니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했다 머무르지 않고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이야기의 조각들이  하나 하나 모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나의 퀼트 작품을 연상시킨다. 이야기의 화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정작 가장 마지막 문장으로 응축된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해도 될까? 지금까지 환상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벌들이 우리 주위를 내내 맴돌았다. 이 벌들이 어떻게 현실이라는 조그만 벌통 속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잘 살필 일이다.

- p.536

 

다 거짓부렁이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이야기. 그러나 삶과 나 자신을 잘 살핀다면 우리의 삶도 이처럼 환상을 현실 속에 꼭꼭 잘 눌러담는 능력에서 그 행복이 판가름나는 게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는 좋은 안내 지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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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6-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그러니까 제가 생각했던 그런 내용이 아니군요! 제인 에어 같은, 폭풍의 언덕 같은, 오만과 편견같은, 그런 로맨스 소설은 아니란 말이구요. '마술적 리얼리즘' 이라니, 저는 그쪽에 취약한데, 이 책이 그런 내용이었군요. 고마운 리뷰네요, 블랑카님.

blanca 2013-06-07 11:1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 사실 그런 류인줄 알고 읽다가 그만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도 어찌 어찌 읽아 보니 아주 독특한 즐거움이 있었어요. 저도 사실은 마술적 리얼리즘과 잘 안 맞는답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런 류에 순수하게 몰입이 안 돼요. 그래도 이 책은 아주 참신한 즐거움이 있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3-06-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닐스가 탄 새가 기러기더군요. 시골 살 때 이웃에 거위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기러기를 길들인 게 거위"라고 해서 아하...그렇군 했죠.

blanca 2013-06-07 11:17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보니 기러기더라고요. 기러기를 거위가 길들였다니 신기하네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06-0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러기를 길들이면 거위가 된다는 얘기였어요.야생기러기를 사람이 잡아 집에서 가금류로 길들였다는 얘기죠.설마 기러기를 거위가 길들였을라구요~

blanca 2013-06-09 17:58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무식이 탄로났군요 ㅋㅋ 신기하네요. 결국 거위가 기러기군요.

노이에자이트 2013-06-1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기러기 사진과 거위 사진을 비교하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거위를 실물로 보신 적이 있나요? 거위를 안 봤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요.

blanca 2013-06-11 09:32   좋아요 0 | URL
아마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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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김희영님의 번역으로는 일단 여기까지 출간되어 있다. 끝이 아닌 끝을 매만지는 기분이었다. 2권은 '나'의 또다른 자아 스완이 아내가 될 화류계 여자 오데트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이야기와 '내'가 스완과 오데트의 딸 질베르트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다. 이 두 부분은 묘하게 닮아 있다. 스완은 상류층 출신으로 지적이고 신사적인 인물인 한면과 전혀 지적이지 않고  과거가 모호한 여자인 오데트에게 집착하고 그녀가 속한 천박한 집단에 소속되기 위하여 분투하는 의외의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나'의 고모할머니가 부여한 외할아버지 친구인 증권중개인의 아들인 겸손하고 평범한 스완과 사교계를 드나드는 화려한 샤를 스완의 분열된 측면과도 오버랩된다. 1권에서 언급되었던 우리의 사회적 인격에 대한 이야기는 2권의 이러한 캐릭터 유형과 또한 책을 읽는 우리들에 진실로 부합된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모든 관념을 채워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든다는 프루스트의 이야기.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타인의 본모습과 우리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곡해하고 오해할 것이다.

 

오데트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며 마음의 지옥을 만드는 스완의 내면에 대한 묘사는 그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과도하게 타인이나 일의 결과에 집착할 때 보이는 각종 어리석음과 절절하게 닮아 있다. 스완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를 유리한 대로 믿으려 하고 자신의 정당화에 끌어들이려 한다.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우리를 위해 괴로워하거나 기뻐할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마치 다른 우주에 속한다는 듯 시로 둘러싸이고 우리 삶은 감동적인 영역으로 변해, 우리는 그 영역에서 조금쯤 그 사람과 가까워지게 된다.

-p.90

 

오데트와 스완이 사랑에 빠지며 공유하게 되는 그들만의 은어, 약속, 음악의 상징성은 그것이 덧없어질 유한한 것이기에 더 빛난다. 스완이 오데트의 코르사주 카틀레야 꽃을 바로잡아 주며 '카틀레야를 한다'는 그들만의 은밀한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신호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 1권에 등장했던 '나'의 이모할머니들의 피아노 선생인 뱅퇴유가 작곡한 소악절이 오데트에게서 연주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음악이 나올 때 스완이 떠올리는 오데트에 대한 사랑, 정열들은 삶의 변전과 인간의 감정들의 그 다양한 변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들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어리석은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퇴색, 그 감정마저 저물고 남는 것들의 궤적은 그 어떤 것에 대입하여도 무리가 없을 만큼 진정성을 갖는다. 나는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문제로 고뇌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 스완의 그 지옥같은 마음 속의 전쟁을 듣는 것만으로 그냥,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누구에게든, 이라는 위로를 얻었다.

 

'나'는 스완이 오데트와 어떻게 결혼에 이르게 된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소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은 '스완'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리고 갑자기 '나'의 시선은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와 모든 변한 것들의 잔상을 부여잡고 씁쓸해하는 노인의 것으로 변한다. 모든 것의 덧없음을 탄식하며 2권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3권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글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할 수 있을지. 여기까지 온 것에 그리고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프루스트의 그 유려한 만연체에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같아 뿌듯한 느낌도 든다. 서술 시점의 변주, 규칙적이지 않은 서술 시점의 횡단 등 각종 불친절함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아름다운 구석이 많은 책이다. 그것은 여기에는 수많은 '내'가 흩어져 있어 끊임없이 잊혀졌던 '나'를 채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일은 '나'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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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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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냄새가 있다. 무언가 비릿하고 아련하고 한없이 그리운 냄새. 그 냄새에는 많은 것이 묻어온다. 여섯 살 언저리. 나는 노란 가방을 매고 한없이 비를 맞았다. 그냥 무언가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쏟아지는 비로 온통 적셔지는 내가 좋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엄마가 수건으로 나를 닦아 주던 기억. 엄마는 나를 야단치지 않았다. 열다섯 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름이 '~진'으로 끝나던 친구 두 명과 일부러 비를 맞으며 소풍에서 돌아오던 기억. 할 얘기도 들을 얘기도 웃을 일도 넘쳐나던 그때. 그리고 스무 살. 어쩔 수 없이 맞았던 비는 슬펐다. 청춘은 너무 찬란하다는 기대치값이 있어 현실과의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냥,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눈부시던 나이임을 몰랐고, 무언가를 어떻게 이야기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 비릿한 내음이 피어 오르기 시작하면 나는 무언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막연한 그 느낌, 다 불러낼 수 없는 기억들. 하지만 그 냄새와 그 소리 안에 나의 과거들은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쌓여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 책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의 과거는 종잡을 수 없이 소환된다. 그 기억은 현재로 복원되고 다시 화자는 그 기억을 소환해 내는 매개체들에 둘러싸이는 지금으로 복귀하기도 하며 과거, 현재, 미래, 저기, 여기의 경계를 허문다. 숱하게 회자되었던 마들렌이란 과자는 일부일 뿐이다. 그 과자는 과거의 과거를 호명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준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으며 그는 더 이전의 과거, 남편을 잃고 칩거 생활을 하던 레오니 아주머니가 소년이 찾아오면 주고 했던 그 마들렌을 통하여 콩브레 마을의 정경을 다시 불러온다. 프루스트가 불러내는 과거의 부활의 정경은 눈부시다. 그의 화법에 익숙해지면 그의 이야기는 달콤한 향을 풍기며 귓가에 머물기 시작한다.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며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p.91

 

'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할머니 등 모계와 부계가 분방하게 얽힌 삼대 가족과 기묘한 동거를 한다. 콩브레의 저택은 정작 레오니 아주머니의 어머니인 고모할머니의 소유다. 실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프루스트의 눈에 서 종종 콩브레의 집을 방문했던 스완이라는 부르조아는 하나의 대리 자아다. 그는 유대인이고 사교계에서 유명하며 그럼에도 정작 화류계의 여자 오데트와 사랑에 빠지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지향하고 가지고 싶은 것들을 향유하는 귀족 세계를 선망하고 질투하는 '속물근성'은 기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적인 정서이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의 거리 어디쯤이 우리 모두는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데도 그런 것을 가장 잘 이야기한 사람은 거의 프루스트가 유일한 것 같다.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이 그의 앞에서는 하나의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인간들의 내면과 그 인간들이 말과 행동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인간은 아름답지도 이상적이지도 않지만 그래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번복하지만 프루스트의 펜끝에서 그려지는 그들의 궤적은 우리와 너무 닮아 있어 습자지처럼 흡수하게 된다. 존재와 삶은 아름다운 것 이상이다.

 

여기에서 남는 것은 사물이다. 콩브레 마을의 모든 일, 모든 시간, 모든 관점에 형태를 주고 완성하고 축성하는 생틸레르 종탑. 화류계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나'의 집안과 멀어진 스완이 사는 집으로 통하는 산책길, 콩브레 특유의 묘하고 경건한 슬픔을 간직한 귀족인 게르망트가가 있는 길,(그 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작가로서의 소양과 자질의 부족함으로 번민한다). 프루스트는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형이하학적인 것에서 풀어내는 재능이 있다. 우리가 가고 남는 사물들이 포함하는 우리의 기억들은 불멸로 그것들 안에 갇힌다. 프루스트가 이야기하는 켈트족의 신앙.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이 갇히는 동물, 식물, 무생물.

 

그러다 그날이 오면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p.85

 

자, 끊임없이 그는 기억을 이야기한다. 클리프턴 패디먼의 이야기처럼 그의 책은 5~10년 사이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만치 와서 나의 과거를 불러내고 또 저만치 가서 지금을 불러내는 과정은 다시 사는 것에 비견할 만한다. 그가 이야기했던 도자기그릇의 물안에서 다시 복원되는 유년시절의 그 눈부신 정경들처럼, 어느 순간 나의 지금은 다시 재구성되어 훗날의 의미와 재해석을 입고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이야기는 삶에 있어 하나의 지침이다. 조금 불친절한 그의 화법과 몽환적인 그의 음색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 줄 것 같다.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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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3-2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 오는 날엔 한없이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그리움....
비 오는 날 창 넓은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는거 참 좋아해요. 하긴 누구나 좋아하겠지만요^^
읽다 포기했던 이 책! 저에게도 행운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며....ㅎㅎ

blanca 2013-03-25 10: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하면 정말 행복하죠! 우산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저는 지금 심한 감기에 걸려 눈물 줄줄 흘리며 이 댓글 씁니다. 세실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2013-03-2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5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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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가 끝난 뒤>는 마치 삶의, 청춘의 은유 같다. 제목만으로도 왠지 심호흡을 하게 된다. 삶은 몇 개의 찬란한 순간과 그 순간들의 뒷감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뒷감당이 반드시 성가시고 초라하고 처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삶의 교사 톨스토이가 교조적인 설교를 늘어 놓을 때에는 조금 멈칫하게도 되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설교대신 명징한 서사를 날린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 데에 절로 수긍이 갈 정도로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딱 그대로의 완벽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눈부신 순간들이 있다. 노년에서 뒤돌아 본 그곳에 정지되어 있는 순간들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평범한 이름의 이반은 젊고 활기찼던 대학생 순간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의 회고담을 숨을 멈추고 듣는다. 거기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소녀가 있고 그 소녀가 위무도 당당한 은빛 견장을 단 아버지와 등장하여 마주르카를 춘다. '나'의 앞에서 그 부녀는 하나로 혼재된다. 딸을 아름답게 입히기 위하여 정작 자신은 낡은 부츠를 신고 딸과 무도회에서 스텝을 밟는 아버지. '나'는 단박에 그 부녀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소박한 부츠와 딸을 닮은 다정한 미소가 함께 떠오르면서 가슴 벅차도록 정겹고 따뜻한 감정이 밀려들었지요.

-톨스토이 <무도회가 끝난 뒤> 중

 

삶은 때로 가혹하게 교훈을 설파한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무도회에서의 아름다운 부녀와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의 이야기는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다.  반전은 잔혹하게 다가온다. '나'는 거리에서 그 다감하던 아버지의 모습 대신 도망가려던 포로를 가차없이 매질하고 학대하는 폭력의 주동자로 그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의 시선을 짐짓 피한다. 당당하고 부유한 아버지가가 되기 위하여 타협하여야 하는 것들,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언가 이성적이고 세속적이고 그럴 듯한, 그렇고 그런 설명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톨스토이는, '나'는 이러한 폭력의 구체화만으로도 자신의 소망, 환상, 사랑을 그 자리에서 포기해 버린다. 톨스토이가 자신이 가진 막대한 재산, 저작권을 포기하려 했던 그 모습과도 닮아 있다. 어느 순간, 무언가를 깨달아 버린 그 자리에서 다시 물러서기란 쉽지 않다. 그게 뭐 어때서,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라고 쉽게 타협하고 체념해 버리고 침묵해 버리고 견디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두 남자는 묘하게 닮아 있다. 그렇게 인생의 비의는 벗겨진다. 정말 톨스토이다운 이야기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가난하고 비참한 농노가 주인에게 자신의 결백과 진정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한 심부름은 맡은 돈을 허무하게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가 대들보에 목을 매는 것으로 종결된다. <폴리쿠시카>. 이 불쌍하고 전혀 정당해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묘사의 천착은 눈물겹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하니 막힌다. 옮긴이가 '최상의 리얼리즘을 이루어 낸 작가'라고 그를 명명한 것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삶은 그 정도로 비참하고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맥을 함께 한다.

 

<무도회가 끝난 뒤> 사랑과 정의와 대의의 환상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  그 청년과 <폴리쿠시카>의 그 비참한 농노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절망을 얘기하려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얘기해 버렸다. 대령에게서 매질을 당하던 포로와 그 대령의 품에 안겨 사뿐히 스텝을 밟던 아름다운 소녀와 주인에게 자신의 충절을 증명해 보이려다 또다른 배신자처럼 오인받을 상황에 몰려 목을 맨 농노. 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존귀하고 눈물겨운 생명이다. 그런 얘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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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0-3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훔쳐볼 때마다 <글 잘쓰는 블랑카>라는 생각만 들게 하는 블랑카님.
첫 단락부터 장난이 아니네요.
많이 읽는다고 다 잘쓰는 건 아닐텐데, 이건 뭐... 비결은 꾸준히 쓰는 걸까요?

blanca 2012-10-31 22:14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쌀쌀한 날씨에 제 마음 따뜻해지라고 이런 댓글 달아주시는 거지요?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0-3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첫 문단부터 압도적입니다^^
블랑카님, 전 요즘 안나 카레니나를 뒤늦게 읽고 있어요. 영화는 진작에 봤지만 원작을 제대로 읽질 않아서요.
언젠가 님이 쓰신 리뷰도 본 적 있는데요.
톨스토이는 절망을 얘기하려다 사랑을 외치는, 그런 작가 같아요, 정말.

blanca 2012-10-31 22:15   좋아요 0 | URL
와, 프레이야님! 안나 카레니나 읽고 계시는군요! 아 꼭 리뷰 써 주세요.
 
일곱 박공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2
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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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 제목에서부터 의문이 들었다. 대체 '박공'이 무엇을 얘기하는 건가 싶었다. 원문 제목은  <The House of the Seven Gables>다. 게이블. 바로 <빨간머리 앤>의 아름다운 집, '그린 게이블즈'가 떠올랐다. 문을 두드리면 꼭 그들의 앤이 아니더라도 머슈 아저씨와 마릴라가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그 집도 이 '박공'과 관련이 있었다. 알고보니 가장 흔한 ㅅ자 지붕형태를 얘기하는 단어였다. 장소가 바로 제목이자 소재, 주제가 되는 책이 어떤 내용을 품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붕이 일곱 개인 집이 잘 그려지지 않아 인터넷에 검색하니 실제 비슷한 모델의 집의 이미지가 있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집의 정경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 건물 자체가 마치 화려하고 음울한 회상들로 가득 찬, 자기 생명을 가진 거대한 인간의 심장과 같았다.
-p.39

 

친정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온 곳이다. 일곱 박공의 집처럼 두 세기까진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장소 이상의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지위를 부여받는 것 같다. 그 집에서 매번 최대한 교통이 불편한 학교, 직장 등에 나갔다 어깨에 먼지떠께를 얹고 귀환하곤 했던 기억들은 구석 구석마다 먼지처럼 가라앉아 또르르 말려 있는 느낌이다. 벽마다 가족 구성원들의 추억, 회한들을 숨기고 이 집도 함께 늙어가는 중이다.

 

'일곱 박공의 집'에는 쇠락한 귀족 핀천 가문의 후손인 헵지바가 숙부을 죽인 혐의를 받고 수감 중인 오빠 클리퍼드를 기다리며 그 집에 구멍 가게를 열어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이 노년의 오누이는 더없이 음침하고 비참하다. 하루 하루를 견뎌 나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시련이자 고문이다. 외부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기대도 없다. 그 집 한 귀퉁이에 세들어 사는 청년 은판 사진사 홀그레이브에게 핀천 가문의 처녀 피비가 이 집에 온 것은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구원의 세례는 이 늙은 오누이에게도 미친다.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처럼 만연체의 연설을 늘어 놓던 작가 호손의 목소리가 갑자기 청랑해지는 것도 자신이 만든 이 캐릭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예쁜 묘사들.

 

그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듯이 피비를 읽었다. <중략> 그녀는 그에게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가 갖지 못했지만 그의 생각에 아주 절실한 모든 것에 대한 통역이었다.
-p.191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서 갖지 못했지만 절실하게 원하는 것들에 대한 통역이라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언어들은 또 다른 차원의 감정을 고양한다.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것들을 구체화하고 해석해 주는 존재로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자 희망. 그 극대점에는 비참하게도 살인 누면을 쓰고 감옥에서 젊음을 소진하고 풀려 난 클리퍼드가 있다.

 

평생 동안 그는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이 비참해지는 법을 배워 왔다.
-p.202

 

고난은 언제나 사람을 각성시키고 상처의 생채기는 언제나 저릿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포기해도 비참해지는 법은 언제나 다른 경로를 통해 새롭게 학습된다. 손을 놓았다 다시 접하면 또다시 외국어 실력은 저만치 물러가 있다. 호손은 예리하지만 잔인가히도 한 것 같다. 고딕 소설 같은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기억들을 환기시키고 고통을 소환해 낸다. 핀천 대령과 땅의 소유권을 놓고 분란이 일어 마법사 누명을 쓰고 처형되는 매슈 몰이 단말마에 짜내었다는 예언은 만화경처럼 다양한 형태로 복제되어 후손들에게 돌아온다. 갑작스러운 죽음. 그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억측과 오해. 그 속에서 태어나는 희생양. 고색창연한 이 집은 딱딱해져가는 심장처럼 몰락의 징후를 예감하며 힘겹게 박동한다.

 

결말에서야 밝혀지는 무고한 클리퍼드를 감옥까지 가게 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촌 핀천 판사의 묘사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그는 외부에서 볼 때 더없이 고상하고 인자한 존경받을 만한 대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근접해서 보면 그의 모든 면은 탐욕과 위선에서 나온 일종의 타락한 연기다. 그 연기는 지역에서 사회에서 너무나 잘 먹힌다. 정계에까지 진출하려는 그의 의도는 무지한 대중 앞에서의 그럴듯한 연기로 갑작스러운 죽음만 아니었다면 곧 현실화될 전망이었다. 그가 그의 선조가 피를 흘리며 죽어간 바로 그 의자에서 시들어 가고 있을 때 호손이 장황하게 그가 그렇게 마침표를 찍지 않았으면 행해졌을 일들을 늘어놓는 대목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이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하는 것들에 대한 잔인한 실체를 눈 앞에 그려주는 그의 명민함 때문이다. 핀천 판사는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유형이면서도 가장 욕망하는 것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야망이 마법보다 무서운 부적'이라는 호손의 경구는 인간이 한 곳에 뿌리박고 앉아 대대 손손 부귀 영달을 누리고 싶어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사실은 하나의 잘 변장한 야망의 또 다른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다.

 

 

남매가 '일곱 박공의 집'을 도망치듯이 떠났다 다시 돌아오고 나서 새로운 정착지를 향해 떠나는 결말은 동화적이기도 하면서 호손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한 결말이기도 하다. 현실과 비현실, 시간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그가 그려낸 스케치는 그가 삶에서 깨달은 남겨진 자들에게 해주고 떠나고 싶었던 애기인 것만 같아 기억해 두고 싶다. 그 누구나에게도 개별적이지만 공통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도 같다. 상처도 후회도 회한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우리 인간 세상에서 정말 잘못된 일은, 내가 행한 것이든 당한 것이든 진정으로 바로잡히지 못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중략>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정당함을 찾을 수 있게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끼워 넣을 마땅한 구석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보다 나은 치유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라고 여겼던 그것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p.425

 

 

+ 작가의 문체는 때로 굉장히 장황하고 교조적이다. 하지만 이런 서술이 지루함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다. 캐릭터와 배경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능력과 초현실적이고 마법적인 서사의 힘이 매력이다.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결말의 해피엔딩은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다. '그린 게이블즈'에 앤이 오지 않았더라면 마릴라와 머슈 남매가 핀천 남매처럼 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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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까지 박공을 마음대로, 조개껍데기 비슷하게 생긴 무엇으로 상상하고 있었답니다...
블랑카님 때문에 이제 제대로된 상상을 하겠네요.... ㅋㅋ. 그런데, 옛날 러시아 동화 읽을 때 스프라든지 아니면 유럽 동화의 무슨 빵 이런거를 상상할 때 정말 가슴이 뛰었는데 실제 접하니.... 음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손은 주홍글씨 밖에 못 접해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황하고 교조적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오니 말이죠.
오랜만에 뵙는거 같은데, 잘 계시죠?

blanca 2012-04-27 22:21   좋아요 1 | URL
마녀고양이님, 저는 박공이 무슨 목수 같은 직업을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ㅋㅋ 이런 뜻일 줄은 저도 몰랐답니다. 저는 <주홍글씨>를 어렸을 때 아마 계림문고판으로 지루하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참 신기한 건 이 책은 재미있답니다. 독특한 즐거움이 있는 책이라 간만에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대체 왜 바쁜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운데 항상 잠도 모자라고 그런 상태예요. 코알라양 만큼은 아직 아니지만 이제 꼬맹이도 친구처럼 어디 데리고 다닐 수준이 되어 재미지기도 하고요. 마녀고양이님 생활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2012-04-27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헤밍웨이를 정주행하면서, 미국문학을 전공하며 헤밍웨이와 피츠제랄드와 포크너를 읽었어야 했는데...하는 생각을 하는 중인데, 블랑카님 리뷰를 보니 그들 이전에 호손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네요. 큰바위 얼굴같은 동화도, 영 굿맨 브라운같은 단편도, 주홍글씨같은 청교도 사회를 그려낸 장편도 척척 써내는 호손인데, 게다가 초현실적이고 마법적인 서사라니... 이 사람 천재입니까!!!

blanca 2012-04-27 22:24   좋아요 1 | URL
브론테님, 헤밍웨이 정주행하고 계시는군요! 우아, 근사해요. 저는 브론테님이 얘기하신 책들 중 <큰 바위 얼굴>만 읽었어요. 이 책은 옮긴 이가 자칫 지루할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 일단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동화 같은 느낌도 있는데 군데군데 호손의 이야기들이 삶의 경구들 같아서 철학책 같기도 해요. 천재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미국문학을 전공할 뻔했는데 영어가 너무 부족해서--;; 접혔어요.(접은 게 아닌고요--) 브론테님의 헤밍웨이 정주행 경과가 궁금해집니다. 간간이 올려주실거죠?

노이에자이트 2012-05-02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홍글씨 상당히 재미있어요.저는 서른 넘어서 읽었으니 그럴까요? 사실 어린이가 읽기엔 좀 어렵죠.성인이 된 지금 읽으시면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blanca 2012-05-02 23:19   좋아요 1 | URL
노자님, 그럴까요? 저는 참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른 넘었으니 이제 한 번 제대로 읽어볼까요?^^;; 호손의 문체가 만연체 및 약간 교조적인 면이 있는 게 참 재치있긴 하더라고요. 발자크도 생각나고요.

icaru 2012-06-15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 표지는 <위기의 주부들> 시작할 때 나오는 그림인데 ㅎㅎ) 뒤늦은 딴소리 지송^^;;;

blanca 2012-06-15 22:1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 표지가 의외로 여기 저기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놀라고 그래요. <위기의 주부들> 시작할 때도 나왔군요!

saint236 2012-09-26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표지는 아내의 역사라는 책의 표지로도 사용된...

blanca 2012-09-27 10:07   좋아요 1 | URL
아, 저도 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