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영을 아예 못한다. 자전거를 전혀 타지 못한다. 번지점프는 그 단어를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육개월 전까지만 해도 운전을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운전대 앞에서는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모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직장 생활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대인관계가 아니었다. 바로 갑자기 나를 던져 넣어야 하는 새로운 상황,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업무들이었다. 그러니 신입사원 때는 하루하루가 고행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사람들, 일들, 나는 금방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를 치고 수습할 수 없는 낭패를 당할 것만 같았다. 주변을 둘러 보면 할 수 없는 일들 천지였다. 나비의 날갯짓은 간지러움이 아니라 내 위벽에 생채기를 긋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만 되면 뒷골이 땡겼다.
나는 왜 이렇게 커버린 것일까? 자문할 새도 없이 나의 아이는 나의 새가슴이 그어 놓은 경계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내가 물을 무서워하니 아이도 물가에 내어 놓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은 항상 스트레스였으니 무언가 도전적인 모험상황은 저도 모르게 앞서 막아서고 있었다.
떠밀리다시피 하여 가게 된 수영장. 유아풀은 발목까지. 핑크키티공을 들고 들어가니 갑자기 아이들이 나를 주목해 주며 공을 빌려 달라, 공놀이를 같이 하자,고 아우성이었다. 웬 인기? 하며 흡족해하며 그 아이들을 상대해 주다 보니 나의 꼬맹이는 점점 심심해지는 터라 성인풀을 계속 가리키며 들어가자고 한다. 아, 거기에는 여동생부부가 가슴까지 물을 찰랑이며 꼬맹이를 유혹하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너무 무서웠다. 경위가 아닌 것은 알고 있으나 그리고 차마 자존심때문에 입밖에 내어 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조카 튜브 좀 태워주면 안 되겠냐, 나는 여기에서 지켜보겠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나비의 날갯짓은 시작되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드디어 물이 허리를 넘어서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짓궂은 사람이 수영하다 뻗은 팔이나 다리 때문에 내가 미끄러지는 상황을 떠올렸다. 꼬맹이는 야외풀로 나오니 흥분의 도가니였다. 물을 뒤집어쓰면 슬퍼하는 게 아니라 교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예상못한 상황이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그렇게 큰지 몰랐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물을 뒤집어 쓰며 은근히 즐기고 있는 내모습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이 나비들을 다 데리고 나가 버렸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잔뜩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산 지난날의 억울함을 떠올렸다. 수영을 당장이라도 배우고 싶었고 배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목까지 차오르는 물이 공포감을 주기 보다는 그 투명한 액체 속을 유영하며 잊고 살던 자유의 환각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등등.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를 투사시켰던 아이의 모습이 사실은 닫힌 유리병안에서 바깥을 응시하던 모습 뿐이었다는 것. 일곱살 때 수영장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건져 주었던 커다란 오빠처럼 결국 누군가는 나의 손을 잡아 준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던 시간들.
내 안에서 생채기를 내던 나비들이 한 마리씩 다시 날아 들어오고 있지만 걔들을 내보낼 수 있다는 그 일말의 가능성을 엿본 기막힌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나는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마구 접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며 그 바람을 한 움큼 먹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척척 운전해 갈 수 있는 그런 날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용감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번지점프하는 할머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