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디지털 대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번잡스런 졸업식장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건물로 이동해  앉아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다 말을 건넸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단정한 노신사분이었는데 허리를 거의 90도 가까이 숙이시는 바람에 다리 꼬고 앉아 있던 나는 다리 풀고 일어나 같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ㅡ,.ㅡ

회사 다니면서 디지털대학교 졸업을 하긴 했고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마 나만 알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작이다. 그게 단지 돈으로 학위를 사는 행위가 될지, 아니면 지적 허영을 충족하기 위함일지, 아니면 생계수단의 다양화 및 그와 비슷한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갈비를 구워 먹고, 와인을 마시고, 맥주를 마신 뒤 나는 집에 돌아와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게 내 술버릇이다. 술마신 뒤에는 혼자 울다가 잠든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 좋은데, 문제는 아침에 붕어눈이 된다는거. 그것만 빼고 나면 꽤 괜찮은 술버릇이다. 민폐도 안끼치고 창피하지도 않으니.

내가 지나온 인생은 전쟁 같았다. 그건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생존하려는게 목적이었고 살려다 보니 나는 전쟁같이 삶을 치러야 했다. 지인 중 한명이 내게.. 넌 전사같아.. 여전사.. 라고 말했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웃었지만 집에 와서 나는 한참 울었다. 잠들때도 두 주먹을 꼭 쥐고 잠들었다던 어느 소설속 주인공 같아서 서러움이 밀려와 울었던 것 같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당장 오늘 해야 할일과 코앞에 닥친 일들도 두려워서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어딘가로 도망이나 쳐버리고 싶은 비겁하고 소심한, 나약한 인간이다. 일요일 밤이면 불면 때문에 새벽 세네시 까지도 잠못드는 그런 인간이다.

할수만 있다면 좀 쓸모없어지고 싶다. 일정 기간 동안이라도. 그 상태에서 어떠한 책무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존재하는 자로서만 있고 싶다. 하다못해 누군가의 펫이라도 말이지.

대체로 나는 천길 낭떠러지 바로 옆, 그 한발자국 만을 남기고 걸어온 삶이었다. 딱 한발만 내딛으면 저 아래로 곤두박질 치게 되는 생이라 긴장을 풀면 모든게 끝이 나고 온 정신을 곤두세워 그 한발의 차이를 지켜내야 살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 한발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데, 그 누구도 나를 안전한 곳으로 당겨 안아주지 않으며 또한 더 위험한 곳으로 슬쩍 밀어버리지도 않는다.

대책없이 흔들리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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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1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

라주미힌 2006-02-2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업 축하합니다 ^^

이리스 2006-02-2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아, 오랜만에 취기가 돌게 맥주를 양껏 마셨다.

잔뜩 마셨음에도.. 열두시 전에 귀가.

취한 틈을 타 잽싸게 속마음에 귀기울여 보니..

사랑한다고 백번쯤 외치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절벽으로 전력질주해서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울음이 들려온다.

그런데 아마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괴롭다고 미치지도 못하고 또 자살하지도 못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힘든 기억도 또렷이 다 안고 미치지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한 타입도 결코 못된다.

하루하루 치졸하게 살아가는 쪽이다. 부끄럽게도.

나 살자고 남한테 모진 소리 해대고, 그악스럽게 생을 부지하려는 부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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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6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6-02-1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외치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요~

이리스 2006-02-1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울음소리 듣고 있지요.
세실님 / 외치면 곧바로 절벽에서 떨어져야하고, 그러지는 못하는 인간이라....

rainy 2006-02-1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못할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럴 때 일수록 미치도록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마.. 누구나 그런 거겠죠..

이리스 2006-02-16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님 / 네... 그런거... 같아요...

시비돌이 2006-02-1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쌩뚱맞은 리플인지 몰라도... 잡지사 기자가 보기엔 화려한 것 같아도 참 힘든 직업이죠. 저 역시 늘상 자살을 꿈꾸긴 하는데, 그럴 용기는 없는 것 같아요. 맥주 500cc 21잔이 치사량이라는 글을 봤는데, 그렇게 먹어도 잘 죽지도 않구요. ^^

이리스 2006-02-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늑대님 / 뭐.. 쌩뚱맞을것 까지는.. ^^ 완전 생 노가다 직종이죠. 맥주 500cc 21잔 마시는 것 자체가 무슨 수도승의 고행같이 느껴지는군요. --;

2006-02-16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02-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넵.. 감사합니다. ^^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혹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익숙해지거나 아니면 나아지는 것이다.

<뮌헨>을 보며 내 기억 속 파리의 거리가, 로마의 거리가 나올때마다 가슴 깊은 곳이 너무 뜨겁게, 아니 너무도 차갑게 얼어붙어 버려서 고통스러웠다. 대체로 너무 많은 장면에 나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영화를 쫓아가지 못할정도였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돌아오자 기적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은 가슴속에 담아둔, 하고 싶었던 말을 두번이나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기적은, 내가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담담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기적을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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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의 추락,

한 걸음 더 내딛으면 허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홀린듯 발을 내밀어버린 나는,

눈물 한 방울 못흘리고, 비명도 못지르고,

쏜살같이 아래로 떨어진다.

쿵, 한 번에 모든게 끝날 줄 알았는데

시간은, 참으로 낯설게 흐르는구나.

여전히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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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6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01-2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추락을 해야 다시 올라올 수도 있겠죠..

2006-01-27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01-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속삭님 / 고맙습니다...
 

아닌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난 사고를 쳤다. 그걸 이제 알다니, 빠른 걸까 아니면 늦은걸까.

깨닫는 순간 너무 창피해서 먼지로 변해서 날아가버리고 싶었다.

천만 다행인건 내가 사고친건 나 자신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것 이상 두려운 일이 또 있으랴.

나는 내가 왜 사고를 쳤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반복되는 문제라서 더 괴롭다.

그릇이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고 나서야 깨진 그릇이 얼마나 형편없고 약했는지 알게 되듯 나역시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소중한 것을 담아두었던 그 그릇들은 그걸 담아두기에는 터무니없이 저급하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조악한 그릇이었던 것이다.

내 소중한 것들을 그나마 거의 온전하게 그 저급한 그릇들에서 건져내어 다행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아직도 나는 한참 멀었다.

잠시 판단력이 흐려진 사이, 엉뚱한 짓이나 저지르고.. 본능에 끌려다니다니.

정초부터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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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새해 오긴전에 액땜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마늘빵 2006-01-0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 괜찮아.

이리스 2006-01-0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ㅋㅋ 그럴까요?
아프군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