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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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씨의 전작인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별로였기에 이 책도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추천을 하길래 손에 들었다. 결론은 전작보다 훨씬 낫다.

이른바 책벌레들이라 불리울만한 조선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조선의 인쇄문화, 지식인층의 독서경향과 그것이 사회에 끼친 영향들을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는데 그것을 살피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과 평가를 내리고 있는 장면들이 볼만하다.
어떤 경우는 아주 명쾌해서 그래 이런 비판이 필요했어라는 장면이 있는가하면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일면 좀 과하지 않나라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어줍잖게 이리저리 돌리는 것보다 이렇게 명쾌한 사람이 좋더라....
비판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이 말이다.

우리나라 고려조에 금속활자의 발명이 세계최초라며 자랑스럽게 제시하는건 누구나가 아는 국민적 상식에 해당할게다.
하지만 그 금속활자의 발명이 과연 200년 후의 서양의 구텐베르그의 발명보다 위대한 것이었나라는 질문은 잘 던져지지 않다가 최근에 와서야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기 되고 있다.
저자도 나도 최초니 하는 숫자에 별로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발명이 사회를 과연 어떻게 바꾸었느냐 하는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발명은 서양의 종교개혁과 맞물리면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봉건사회를 뒤집어 엎을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냈다. 어쨋든 사회를 변화시키는 추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던 것.
그렇다면 우리의 그 위대한 금속활자는?
금속활자의 발명은 많은 책을 만들어내어 지식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서 많은 책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목판이 중심이었고, 금속활자는 소량의 다양한 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소량의 책이 누구의 소유가 되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지배층이다.
금속활자의 발명이후 그것이 개량된 것은 세종조까지가  끝이다.
세종조때까지의 개량만으로 사대부들의 수요를 충족하기는 충분한터 더이상의 개량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식의 대중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인쇄술의 발명은 이제 좀 더 그 평가의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16세기 조선은 조광조라는 도덕군자를 맞는다.
건국 이후 100년쯤 흘렀으니 기존의 기득권세력의 안정이 계속되면서 초기의 개혁의욕은 점점 사라져가고 자리보전을 위한 부정부패가 악취를 풍기기 시작할 즈음, 바로 그 부정부패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등장한 사림파와 그들이 대표가 바로 조광조이다.
시대극에서든 일반적인 평가에서든 조광조는 개혁가와 도덕군자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삶뿐만 아니라 군주에게도 역시 도덕적 삶을 강요하였다. 여기에서도 만족하지 못한 그는 유교적 도덕을 백성에게 전파, 강요하기 위해 <삼강행실도>니 <이륜행실도> <열녀전>같은 책을 엄청나게 찍어 배포하게 한다.
더불어 그가 가장 신경을 써서 배포한 책이 있으니 바로 <소학>이다.
<소학>은 그야말로 사대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책이다.
백성과 구분되는 훌륭한 인간의 표본으로서의 사대부 제작지침이라고나 할까?
밥 먹을때는 뭉치지 말고 밥상앞에서 혀를 차지 말라는 둥,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둥, 칠거지악이니 이런 것들이 모두 소학에서 제시된다.
철저하게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일반 백성과 사대부를 경계짓는 책이 바로 <소학>이다.
조광조의 이 기획은 지나치게 성공적이어서 선조대가 되면 조광조의 뒤를 이은 사림파가 바로 조선의 주인이 된다.
이런 사림파의 도덕교육에 대해 저자는 철없는 지식분자들의 행각이라고 일갈을 가한다.
개혁은 필요했지만 나날이 악화되어지는 백성의 실질적 삶의 개선은 젖혀둔채 도덕 일색으로 사회를 바꾸려 하는 것 허망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광조의 뒤를 이은 사림의 세상은 그야말로 백성의 실제 삶의 개선에 대한 학문은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명분과 도덕주의를 내세워 세종때 그나마 발달했던 실용학문들을 압살해버린다.그렇다고 그들이 또 그렇게 도덕적이었냐 하면 참......권력앞에 도덕이란 언어의 유희일뿐이다.
사실상 조광조에 대한 저자의 이런 평가는 일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아니지만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사림이 집권을 하고 난 이후에 대해서는 그들의 관념론과 명분론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그것이 조광조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던 터... 그런데 바로 이 사림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이가 조광조이니 어쩌면 뿌리까지의 비판적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강명관씨의 인물평가는 참 독특하다.
앞의 인물도 그러했지만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에 대한 비판의 칼도 매섭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되었는가 말이다. (지폐에까지 등장하는 분들인데....)
이들이 척박한 조선의 학문 환경에서 주자학을 공부하고 그것의 이론을 극대화하여 발전시키고 한 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그것의 결과가 이후 조선의 학문을 주자학 일색으로 만들어버린 병폐의 시작이었으니 어찌할까?
딱히 보면 이 둘의 잘못이라고만  들이대기는 억울할 것 같은 면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러함에야.... 조광조가 주자의 도덕론으로 사림을 만들어냈다면 주자학의 체계를 정리함으로써 사대부의 유일무이한 사상적 무기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퇴계와 율곡이라고나 할까?
학문의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주자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약간의 자신의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희생되어 나간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허균이고 박세당이다.

조선에 학문의 다양함이 숨구멍을 트기 시작하는건 조선 후기 흔히 말하는 실학계열의 학자들이 등장하면서였다. 이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또 중국 청나라의 무수한 서적들의 수입이 있으면서였으니 외부에서의 새바람이 조선 학계에 숨통을 틔워준것이리라....
이 과정에서 이익같은 이는 수많은 책을 읽고 그것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낸다. <성호사설>이란 빛나는 업적이 그것인데 사실 이 책은 수많은 책의 내용을 분류하고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다만 그 편집의 틈사이에 성호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고..... (단 성호가 사회를 바라보던 깊이는 충분히 인정해야 할만큼 훌륭하단다.)
새로운 학풍의 등장은 새로운 문체와 새로운 의식을 가져오고 그 과정에 우리 귀에 익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덕무, 박지원, 정약용 등등.....
흔히 세종과 함께 호학의 군주로 개혁의 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상탄압의 군주이기도 했다. 정조가 이루려던 조선은 어떤 사회일까? 그것은 결국 주자학의 도덕에 입각한 기존 조선의 강화였으며 따라서 당대에 새롭게 청으로부터 들어오던 학문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어난게 문체반정 - 즉 주자학과 고문에 입각한 순정한 문장 외에는 모두 탄압하는 것이었으니 조금 과장한다면 조선의 진시황이 되었을지도 모르겟다.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정조의 문체반정이 정조의 이념적 지향성에서만 다루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정조가 문체반정에 좀 더 적극적이었던 것은 당시 경화사족, 즉 서울에 사는 대갓집 양반들 즉 노론을 경계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본성이 호학의 군주였던 정조가 자신의 왕권에 대한 노론의 위협이 조금만 덜한 시대였다면 이정도로까지 사상을 탄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기때문이다.) 정조의 문체 반정은 정조의 이념적 순수성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정치적 계산의 결과였을까? 이 둘이 모두 한꺼번에 연결되어 있는건 분명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딱 하나로만 원인을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마지막 책벌레는 단재 신채호다.
신채호선생이야 혁명가이기도 하지만 한학에도 아주 밝으셨던 분이다. 근데 그분이 영어도 굉장히 잘햇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원서로 읽어낼 정도였다니....
그런데 대단한 독해력을 자랑했던 이분의 영어읽기가 참 흥미롭다.
영어책을 읽을때 구절구절 '하여슬람'하면서 한문식으로 토를 달아 읽었단다. "I am a boy"를 " I는 am a boy라"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왜 그렇게 읽느냐 물으니 영어나 한문이나 글은 마찬가지가 아니요라고 했다니... 대쪽같기가 이를데 없었던 단재가 영어책을 읽는 모습 상상이 즐겁다.

조선의 책을 좋아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신선한 평가는 책을 읽는 것이 내내 즐거운 경험이게 했다. 저자의 평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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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개학 첫날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이렇게 좋을데가.... ^^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밥해먹이고 씻기고 옆지기가 아이들 유치원에 데리고 갔다.
둘이 역할 분담해서 아침에는 옆지기가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다.
뭐 방학동안 이정도 서비스는 아이들한테 해주기로 한 것.

그러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남는다.
밥 먹은거 치우고 대충 집안 청소하고 이렇게 앉으니 오전에 알라딘을 할수도 있네....
점심은 둘이서 먹는거니 샌드위치나 대충 만들어서 먹기로 했고....
엄마들이 방학싫어하는 맘 알겠다. ^^

엄마 다녀올게요~~~~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려서 별로 춥지도 않건만 해아는 꼭 토끼모자를 하고 간단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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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1-1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들어가 보세요. 엄마 방학이랑 애들 방학이 기간이 같아져서 이런 여유로움 못 느끼실겁니다. 지금 마음껏 즐기세요 ^^

바람돌이 2008-01-14 11:44   좋아요 0 | URL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것 같아요. 작년까지는 얘들이 엄마 방학하면 지들도 알아서 자체 방학을 했거든요. 근데 올해는 예린이가 유치원은 꼭 가야한다네요. 1년 내내 결석을 밥먹듯 하다가 막판에 원 무슨 정성인지....
이제 예린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해아는 또 알아서 자체 방학할테고 즐겨야지요. 그래서 내일은 아침 조조 영화도 예매했답니다. ㅎㅎ (조조에 할인까지 받으니까 표 한장에 천원이더군요. 이럴수가....)

물만두 2008-01-1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하필이면 제일 춥다는 날 개학이네요.
감기 조심해야겠습니다^^
더 예뻐졌네요~

바람돌이 2008-01-14 12:43   좋아요 0 | URL
여기는 오늘 날 많이 풀렸어요. 별로 안추워요. 여기는 따뜻한 남쪽나라랍니다. ㅎㅎ

순오기 2008-01-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궁~ 이쁜공주님들!
엄마가 방학하면 알아서 자체방학 ^^
따뜻한 남쪽나라? 저는 빛고을인데...

바람돌이 2008-01-14 22:58   좋아요 0 | URL
저는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부산입니다. ㅎㅎ 이름도 재미없는 무쇠솥산이라고나 할까요? ㅎㅎ

미설 2008-01-1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 돌리시겠네요. 알도는 다음주 월요일에 개학이어요. 한 주 더 잘~~~ 보내야지요. 오늘 아침에 애들한테 하도 소리 질러서 반성중이에요.에고..

바람돌이 2008-01-14 22:58   좋아요 0 | URL
뭐 유치원 갔다와서도 소리지르는건 마찬가집니다. 매일 매일 우리 반성하자고요. ㅎㅎ

하늘바람 2008-01-1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저리 이쁜 거예요
우리 태은이도 저렇게 예쁘게 클까요

바람돌이 2008-01-14 22:58   좋아요 0 | URL
조맘때까지 아이들은 다 예쁜걸요. 태은이는 지금도 충분히 미인이어요. ㅎㅎ

춤추는인생. 2008-01-1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예쁜 분홍공주님들^^
보세요 예린이의 살짝 틀어진 고개하며 땡그랗게 뜬 눈을 보면 전형적인 공주의 모습이예요 게다가 연필까지 들고있다니. 미모와 지성이 겸비된 아가씨네요
해아와 예린이 춤추는 최근의 모습 또 보고싶어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08-01-14 22:59   좋아요 0 | URL
예린이의 포즈는 촬영용입니다. 항상 사진찍기 전에 포즈를 정하고 엄마 이제 찍어 이렇게 주문을.... ㅎㅎ 연필은 언제든지 낙서를 하기 위한 준비라고나 할까요? 가방안에 수첩도 있어요. 지금도 이 둘의 춤은 중구난방입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8-01-1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락~ 쪽쪽 ~ 예쁜 예린이랑 귀여운 해아야~
키티 목도리 넘 예쁘다~ 좋겠네 이제 엄마의 감시에서 조금 풀려나려나 ㅎㅎ

바람돌이 2008-01-14 23:00   좋아요 0 | URL
엄마의 감시라뇨? 이것들이 언제 제 눈치나 본답니까? 너무 기세등등하여 살짝 걱정이구만요. 저 키티 목도리도 어디서 얻은거였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얻어쓰니 누구한테서 얻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ㅎㅎ

전호인 2008-01-1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염!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의 귀염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바람님의 코디 또한 일품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8-01-14 23:02   좋아요 0 | URL
제 코디 아닌데요. 이 녀석들은 항상 자기전에 다음날 자기가 입고 갈옷을 미리 정해놓습니다. 자질구레한 소품들, 예를 들면 머리띠, 고무줄, 목도리 이런 것도 다 지들이 정해서 한다니까요? 제가 미쳐요 미쳐.... ^^;;

울보 2008-01-1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다정한 자매네요,
이런 모습 보면 괜실히 류에게 미안해져요,,ㅎㅎ
아주 많이 자란것 같아요 이뻐요,

바람돌이 2008-01-14 23:41   좋아요 0 | URL
너무 다정해서 걱정입니다. 해아는 약간 심각한 시스터 콤플렉스끼가... 애들은 원래 그런건가? 울보님이 아이에게 미안하면 세상에 안미안한 엄마가 어디있겠어요. 하나든 둘이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제일 중요한거잖아요.

하늘바람 2008-01-22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전에 코디를 하고 잔다니 아침이 수월하겠어요 깔끔쟁이 아그들 이뻐요
 
가로세로 세계사 2 : 동남아시아 - 동방의 천년 문명이 열린다 가로세로 세계사 2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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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시각이란게 뭘까?
앞선 먼나라 이웃나라가 서구사회만을 다루어서 균형이 안맞으니 동부유럽이나 동남아시아도 다뤄주는거?
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란게 지극히 편협했던 것에 비하면 이런 책이 나와준것만으로도 균형을 맞추어간다고 해줄수도 있겠다.
하지만 균형이란건 어차피 무게중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야말로 편파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거 아닐까?

책은 현재의 동남아시아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나라별로 그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오늘날의 모습과 미래의 전망까지 두루 살피는 정말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있다.
하지만 적은 지면에 넘치도록 지나친 이 광범위함이 오히려 이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도식화하고 있는건 아닌지 염려된다.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의 역사들이 지나치게 희화화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만화라는 매체의 성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역사를 읽다보면 이건 무슨 바보들의 잔치냐 싶은 느낌...
어쩌면 이런 면은 이 책이 자신의 무게중심 그러니까 이데올로기적인 가치의 중심을 서구식 민주주의, 서구식 근대화에 명백히 둠으로써 생긴 패단이 아닌지싶다.
각 국의 현재와 전망을 논하는 각 국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자본주의적 발전과 서구식 민주주의의 도입만이 능사인 것처럼 얘기되는것의 반복이다.
불편하다.

이 지역의 정치실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서구식 민주주의의 도입에도 실패했고, 공산주의 체제의 도입에도 실패했다.
둘 다가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되지 못해 대부분의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명백히 불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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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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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학철씨의 자서전이다.
평소에 자서전이란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애를 과장이나 호들갑 내지는 감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시대적 역사적 통찰까지 담으면서 담담하게 써내릴 수 있는 그런 큰 그릇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이다.
또 그런게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밋밋한 책일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큰 그릇의 어른을 오늘 발견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잠시의 빛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암흑으로 일관한 시대라고 얘기할 수있다.
1916년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나 1935년 불과 19살에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 망명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서술에 의하면 가출을 한다.
상해에서 김원봉이 주도하던 조선 민족혁명당에 입당 - 21세에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황포군관학교에 입학(이때는 중국의 국공합작기간이었다. 따라서 좌익계열이었던 조선혁명당원들이 이 학교에 대규모로 입학. 군사훈련을 받았었다.)
처음에 조선의용대의 일원으로 국민당 군대에 배속되었다가 24세때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25세에 팔로군과 함께 싸우다가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 부상을 당하고 포로가 되어 이후 일본 나가사키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이때 부상당한 다리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잘리우고 만다.)
잠시 서울에서 해방기 빛을 보는 듯 했으나 이어진 좌익탄압으로 인하여 월북하고 이후 한국전쟁때는 다리 부상을 배려받아 중국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잠시 편안했던 생활도 얼마못가 끝나버리니 모택동 숭배사업과 함께 벌어진 반우파 투쟁이란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또한 10년후의 야만적인  문화혁명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햇다. 
이때 김학철 선쟁은 우파분자로 몰려 강제노동에 처해진다. 거기다 점입가경으로 당시의 모택동 우상화에 본격 반격하는 <20세기의 신화>라는 책을 쓴것이 들켜 문화혁명기에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1980년 64세에 가서야 복권이 되게 된다.근 24년간의 징역과 강제노동이었던 것.

이렇게 일평생에 걸쳐서 고난을 겪었다면 그 인간의 심신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황폐해져야 마땅할 터인데....
식민지 시대의 항일운동으로 인한 고난이야 독립의 신념으로 겪어나갈 수 있었다지만 해방이후 조국과 중국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힘들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믿어왔던 신념이 무너지는 사건들이었을것이다.
사회주의를 향해왔던 자신의 신념이 실현되는 순간 그것이 더한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처절한 피해자로 전화하는 것을 보는 심정이 얼마나 피를 토하는 것이었을지말이다.

이 정도쯤 되면 책의 내용은 곳곳이 의기에 차고 분기에 찬 심각한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말이다.
그런데 선생의 자서전을 보면서 나는 곳곳에서 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반일과 친일을 아침저녁으로 갈아치우면 동네 개구장이 짓을 도맡아 하던 어린시절부터
뭔가 장래에 대단한 독립군이 될 것 같은 싹수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학창시절까지 자신의 삶을 과장하려한 대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겸손한게 아닌가 싶을정도...
뭔가 의기에 차서 아주 특별한 계기로 상하이로 망명했을 것 같지만 책에 의하면 정말 그리 큰 결심 없이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상하이로 떠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난다. 뭐가 이리 쉽게 떠나는거냔 말야. 독립운동 하러 떠나는게 아니라 그냥 잠시 반항하러 가출하는 10대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상하이 이후 중국지역에서의 항일운동과정과 그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김학철 선생은 인간다운 모습을 포착하려 노력을 많이 한다.

일반적으로 독립운동 하면 곧 비장함과 처절함에다 연결시키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것은 일면만을 너무 강조하거나 부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우리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지 혈육과 친지들을 다 고국에 남겨두고 단신 외국으로 뛰쳐나와 이역 만리 낯선 땅에서 5년씩 10년씩 또는 15년 20년씩 풍찬노숙의 간고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년 열두달 삼백예순날을 밤낮없이 우국지심에 잠겨만 있다면 사람이 과연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지레 말라죽어버리지.

투사로서의 독립군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 나이 또래의 장난기와 헛점투성이의 그러나 결코 그것으로 그들의 피땀이 폄하될 수 없는 모습들을 만나는건 진기한 경험이다.
또한 그 엄혹한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낙관적인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김학철 선생의 글도 감탄스럽다.  글 전체에 흐르는 독립과 혁명에의 낙관주의는 혁명적 낙관주의라는 말을 우리 사회에 유행시켰던 김학철 선생다운 풍모다.

그러나 그 낙관주의가 낙관으로 그쳐버린다면 그것은 바보 아니면 망상에 지나지 않을터...
진정한 혁명을 향한 선생의 서릿발같은 비판정신과 결부됨으로써 그것은 역사발전과 인간에 대한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있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이 책은 점점 비분강개의 조로 변해간다.
식민지 시대에서 유머감각을 잃지 않던 선생이 해방된 조국 북한에서 1인 독재체제의 완성을 위해 조선의용대 시절 동지들이 모두 숙청되어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가고, 또 하나의 사회주의의 조국이었던 중공에서도 반우파투쟁과 문화혁명이라는 미치광이 놀음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문화혁명의 그 미치광이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인독재체제를 비판하는 <20세기의 신화>라는 글을 써내다니....
그야말로 언제라도 자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는 혁명가의 기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최후의 분대장! 최후의 혁명적 낙관주의자!
이 시대에 복원되어야 할 우리의 스승 중 한 분!
그분이 김학철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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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훌륭한데 품절이라니 아쉽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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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vlxmvkdldj 2023-03-1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 전, 중3 시절 우연히 김학철 선생님을 알게되었고 궁금증이 생겨 그분의 책을 찾아보다가 이 글을 본 기억이 있네요. 담담하면서도 깊은… ‘신념’ 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김학철 선생의 삶을 잘 나타낸 명필, 명리뷰네요. 절판된 이 책을(지금은 재출간 되었지만) 어찌 저찌해서 구했고 참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더불어 이 리뷰도요 ㅎㅎ 한동안 잊고 살았던 김선생님이 문득 생각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아무쪼록 좋은 글 감사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도자기 배우러 간다기 보다는 흙놀이 하러 가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자그마한 공방에 가서 찰흙으로 이것 저것 만들어보기 하는....(유치원 외에 내가 유일하게 시키는 사교육이랄까? ㅎㅎ)
그런데 그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라 항상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다.
오늘은 방학이라며 예린이가 꼭 엄마랑 가고 싶다고 할 건 뭐람....
처음으로 아이들 수업하는 모습을 보니 참 잘 노는구나 싶다.
잠시도 가만히 못있고 입을 재잘재잘 떠들면서 손은 손대로 열심히 움직이고...
그거 다 받아주는 선생님이 참 대단하다.
선생님이 나중에 하신 말씀
"애들이 셋 다 너무 밝아요"
이건 이중적인 의미인듯... 한편으로는 너무 너무 밝아서 좋다는 말도 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참 별나고 시끄럽다는 의미도 되고.... ㅠ.ㅠ

수업을 마치고 막내조카를 데리고 온 여동생과 오랫만에 우리집으로 왔다
어른들끼리 앉아서 수다 떨고 아이들 넷은 지들끼리 난리를 치면서 놀고.....
저녁은 예린이가 노래를 부르던 에디모양 카레 볶음밥을 카레 넣으면 별로일것 같아서 그냥 볶음밥 해서 에디모양으로 계란 부친 것 오려주고 해서 먹였다.
집에 갈 생각들을 안하는 녀석들땜에 결국 8시 반쯤이 되어서야 동생이 일어섰는데 조카중에 큰 녀석이 지네 집에 안간단다.
오늘 여기서 자겠다네...
애들 둘이나 셋이나 뭐 달라질 것도 없어서 말리는 동생 그냥 보내고 막내까지 그냥 여기서 자라고 꼬셨지만 막내는 아직 요지부동 무조건 엄마랑 지네 집에 간단다.

그 뒤로 한참을 노는 녀석들을 겨우 달래서 씻기고 자리에 눕히니 10시다.
애들 방에 이층침대를 얼마전에 사줬기에 아래 위로 나눠서 눕혔다.
근데 잠자리에 누워서도 시끌 시끌...
결국 뭐 좀 늦게 자면 어때 이런 날도 있어야지 싶어 내버려두고
난 오늘부터 개강하는 미술치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오늘 강의는 뭐 시작 부분이라 미술치료의 의미 필요성, 역사이런 것들의 개론적인 부분
인상적이었던건 마지막에 강사가 선무당 사람잡지말라는 따끔한 경고정도! (약간 뜨끔) ㅎㅎ

강의듣고 정리까지 마치니 훌쩍 12시가 넘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아직도 시끌 시끌이다. ㅠ.ㅠ
지들끼리 무슨 얘기가 그리 신나는지...
근데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억지로 재울려고 들어가보니 아예 아래층 침대에 셋이 다 누웠다.
싱글 침댄데.....
비좁아 터지겠구만 무조건 셋이서 같이 잔단다.
할 수 없이 역시 내버려둠.
역시 나는 너무 무른 엄마야....
지금은 잘 자고 있는데 약간 걱정이다.
며칠전에 아래층에 둘이서 같이 자다고 몸부림 치면서 예린이가 칸막이에 얼굴찍어 얼굴 밑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었는데...오늘 또 어느 한 놈 멍드는거 아닌지....
제발 그냥 다리 같은데 멍들고 말아라...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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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1-11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아이들은 어쩜 저리 즐거울까요. 눈에 선합니다. 1층에 세명, 아무래도 잠 들면 올려 놓아야 할듯. 요즘 엄마노릇 열심히 하시네요. 아 부럽다...

바람돌이 2008-01-1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은 들었는데 제 힘으로 올려놓는건 못하겠어요. 옆지기는 지금 아예 조금이라도 무거운건 못드니 안되고... ㅎㅎ 게다가 올려놨다가는 내일 아침 원성이 장난 아닐 것 같기도 하고... 기냥 지들끼리 차고 밀고 자겠지요. ㅎㅎ 세실님이야 평소에도 늘 부지런한 엄마시잖아요. 저는 좀 게으른 엄마거든요. ㅎㅎ

조선인 2008-01-11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밝아요. 까르르르르르르

바람돌이 2008-01-12 01:28   좋아요 0 | URL
그래도 뭐 너무 설친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것보다는 낫잖아요? ㅎㅎ

BRINY 2008-01-1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어릴 때 2층 침대의 로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3남매라 그런 건...방학때 이층 침대가 있는 사촌네 집에 가면 가위바위보해서 교대로 이층에 올라가 자고 그랬답니다~

바람돌이 2008-01-12 01:29   좋아요 0 | URL
저는 이층이고 일층이고 침대를 구경해보는게 로망이었습니다. ㅎㅎ

순오기 2008-01-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요것도 어릴 때 연출될 풍경이지요^^
침대가 로망이었다는 말 엄청 친근하게 다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