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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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씨의 전작인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별로였기에 이 책도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추천을 하길래 손에 들었다. 결론은 전작보다 훨씬 낫다.

이른바 책벌레들이라 불리울만한 조선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조선의 인쇄문화, 지식인층의 독서경향과 그것이 사회에 끼친 영향들을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는데 그것을 살피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과 평가를 내리고 있는 장면들이 볼만하다.
어떤 경우는 아주 명쾌해서 그래 이런 비판이 필요했어라는 장면이 있는가하면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일면 좀 과하지 않나라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어줍잖게 이리저리 돌리는 것보다 이렇게 명쾌한 사람이 좋더라....
비판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이 말이다.

우리나라 고려조에 금속활자의 발명이 세계최초라며 자랑스럽게 제시하는건 누구나가 아는 국민적 상식에 해당할게다.
하지만 그 금속활자의 발명이 과연 200년 후의 서양의 구텐베르그의 발명보다 위대한 것이었나라는 질문은 잘 던져지지 않다가 최근에 와서야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기 되고 있다.
저자도 나도 최초니 하는 숫자에 별로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발명이 사회를 과연 어떻게 바꾸었느냐 하는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발명은 서양의 종교개혁과 맞물리면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봉건사회를 뒤집어 엎을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냈다. 어쨋든 사회를 변화시키는 추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던 것.
그렇다면 우리의 그 위대한 금속활자는?
금속활자의 발명은 많은 책을 만들어내어 지식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서 많은 책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목판이 중심이었고, 금속활자는 소량의 다양한 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소량의 책이 누구의 소유가 되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지배층이다.
금속활자의 발명이후 그것이 개량된 것은 세종조까지가  끝이다.
세종조때까지의 개량만으로 사대부들의 수요를 충족하기는 충분한터 더이상의 개량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식의 대중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인쇄술의 발명은 이제 좀 더 그 평가의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16세기 조선은 조광조라는 도덕군자를 맞는다.
건국 이후 100년쯤 흘렀으니 기존의 기득권세력의 안정이 계속되면서 초기의 개혁의욕은 점점 사라져가고 자리보전을 위한 부정부패가 악취를 풍기기 시작할 즈음, 바로 그 부정부패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등장한 사림파와 그들이 대표가 바로 조광조이다.
시대극에서든 일반적인 평가에서든 조광조는 개혁가와 도덕군자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삶뿐만 아니라 군주에게도 역시 도덕적 삶을 강요하였다. 여기에서도 만족하지 못한 그는 유교적 도덕을 백성에게 전파, 강요하기 위해 <삼강행실도>니 <이륜행실도> <열녀전>같은 책을 엄청나게 찍어 배포하게 한다.
더불어 그가 가장 신경을 써서 배포한 책이 있으니 바로 <소학>이다.
<소학>은 그야말로 사대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책이다.
백성과 구분되는 훌륭한 인간의 표본으로서의 사대부 제작지침이라고나 할까?
밥 먹을때는 뭉치지 말고 밥상앞에서 혀를 차지 말라는 둥,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둥, 칠거지악이니 이런 것들이 모두 소학에서 제시된다.
철저하게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일반 백성과 사대부를 경계짓는 책이 바로 <소학>이다.
조광조의 이 기획은 지나치게 성공적이어서 선조대가 되면 조광조의 뒤를 이은 사림파가 바로 조선의 주인이 된다.
이런 사림파의 도덕교육에 대해 저자는 철없는 지식분자들의 행각이라고 일갈을 가한다.
개혁은 필요했지만 나날이 악화되어지는 백성의 실질적 삶의 개선은 젖혀둔채 도덕 일색으로 사회를 바꾸려 하는 것 허망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광조의 뒤를 이은 사림의 세상은 그야말로 백성의 실제 삶의 개선에 대한 학문은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명분과 도덕주의를 내세워 세종때 그나마 발달했던 실용학문들을 압살해버린다.그렇다고 그들이 또 그렇게 도덕적이었냐 하면 참......권력앞에 도덕이란 언어의 유희일뿐이다.
사실상 조광조에 대한 저자의 이런 평가는 일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아니지만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사림이 집권을 하고 난 이후에 대해서는 그들의 관념론과 명분론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그것이 조광조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던 터... 그런데 바로 이 사림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이가 조광조이니 어쩌면 뿌리까지의 비판적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강명관씨의 인물평가는 참 독특하다.
앞의 인물도 그러했지만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에 대한 비판의 칼도 매섭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되었는가 말이다. (지폐에까지 등장하는 분들인데....)
이들이 척박한 조선의 학문 환경에서 주자학을 공부하고 그것의 이론을 극대화하여 발전시키고 한 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그것의 결과가 이후 조선의 학문을 주자학 일색으로 만들어버린 병폐의 시작이었으니 어찌할까?
딱히 보면 이 둘의 잘못이라고만  들이대기는 억울할 것 같은 면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러함에야.... 조광조가 주자의 도덕론으로 사림을 만들어냈다면 주자학의 체계를 정리함으로써 사대부의 유일무이한 사상적 무기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퇴계와 율곡이라고나 할까?
학문의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주자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약간의 자신의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희생되어 나간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허균이고 박세당이다.

조선에 학문의 다양함이 숨구멍을 트기 시작하는건 조선 후기 흔히 말하는 실학계열의 학자들이 등장하면서였다. 이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또 중국 청나라의 무수한 서적들의 수입이 있으면서였으니 외부에서의 새바람이 조선 학계에 숨통을 틔워준것이리라....
이 과정에서 이익같은 이는 수많은 책을 읽고 그것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낸다. <성호사설>이란 빛나는 업적이 그것인데 사실 이 책은 수많은 책의 내용을 분류하고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다만 그 편집의 틈사이에 성호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고..... (단 성호가 사회를 바라보던 깊이는 충분히 인정해야 할만큼 훌륭하단다.)
새로운 학풍의 등장은 새로운 문체와 새로운 의식을 가져오고 그 과정에 우리 귀에 익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덕무, 박지원, 정약용 등등.....
흔히 세종과 함께 호학의 군주로 개혁의 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상탄압의 군주이기도 했다. 정조가 이루려던 조선은 어떤 사회일까? 그것은 결국 주자학의 도덕에 입각한 기존 조선의 강화였으며 따라서 당대에 새롭게 청으로부터 들어오던 학문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어난게 문체반정 - 즉 주자학과 고문에 입각한 순정한 문장 외에는 모두 탄압하는 것이었으니 조금 과장한다면 조선의 진시황이 되었을지도 모르겟다.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정조의 문체반정이 정조의 이념적 지향성에서만 다루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정조가 문체반정에 좀 더 적극적이었던 것은 당시 경화사족, 즉 서울에 사는 대갓집 양반들 즉 노론을 경계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본성이 호학의 군주였던 정조가 자신의 왕권에 대한 노론의 위협이 조금만 덜한 시대였다면 이정도로까지 사상을 탄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기때문이다.) 정조의 문체 반정은 정조의 이념적 순수성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정치적 계산의 결과였을까? 이 둘이 모두 한꺼번에 연결되어 있는건 분명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딱 하나로만 원인을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마지막 책벌레는 단재 신채호다.
신채호선생이야 혁명가이기도 하지만 한학에도 아주 밝으셨던 분이다. 근데 그분이 영어도 굉장히 잘햇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원서로 읽어낼 정도였다니....
그런데 대단한 독해력을 자랑했던 이분의 영어읽기가 참 흥미롭다.
영어책을 읽을때 구절구절 '하여슬람'하면서 한문식으로 토를 달아 읽었단다. "I am a boy"를 " I는 am a boy라"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왜 그렇게 읽느냐 물으니 영어나 한문이나 글은 마찬가지가 아니요라고 했다니... 대쪽같기가 이를데 없었던 단재가 영어책을 읽는 모습 상상이 즐겁다.

조선의 책을 좋아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신선한 평가는 책을 읽는 것이 내내 즐거운 경험이게 했다. 저자의 평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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