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란?
에도시대 일본의 정형시로 5, 7, 5의 음률을 가지는 짧은 시다.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짧은 시의 형태인만큼 한 번에 읽어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기레지(일종의 끊어읽는 지점)을 꼭 갖추어야 한다.
시가 짧은 만큼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지만, 시어로 표현하지 못한 여백을 작가나 감상자가 자기 나름대로 메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책은 에도시대 번성했던 하이쿠를 소개하고 그 옆에 역시 에도시대 같이 번성했던 우키요에를 같이 소개하는 형식이다.
물론 시와 우키요에가 같이 제작된 것은 전혀 아니고 하이쿠에 맞는 우키요에를 찾아서 같이 편집한 형식의 책이다.
멋진 하이쿠와 우키요에를 함께 감상하는 시화집 형태의 책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눈과 마음이 모두 즐거운 책이다.

기본 형식은 이런 식으로 왼쪽에 하이쿠를 소개하고, 오른쪽에 비슷한 우키요에를 배치하는 형식이다.
내 맘에 쏙 들어왔던 몇가지

요사 부손은 하이쿠의 대가이자 화가이기도 하였다.
참 신은 불공평한게 이렇게 한 사람에게 재능을 몰빵하기도 하신다.
도대체 나의 재능은 무엇이냐고 평생 물었건만 아직 대답이 없다.
아마도 이 하이쿠를 쓴 부손은 거기에 맞춰 그림도 그린게 아니었을까?
또 어쩌면 저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며, 햇살 따뜻한 봄날 어딘가 볕좋은 툇마루에 앉아 저렇게 졸고 싶다는 욕망이 몰아친다.

이 우키요에에 부쳐진 하이쿠는
역시 요사 부손의 <가는 봄이여, 동승한 마차 안 님의 속삭임>이다.
그림은 인물화의 대가였던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우산 쓴 남녀>이다.
시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저 남녀의 사랑이 그리 평탄해보이지는 않는다.
가는 봄처럼 속절없이 흘러가고 말 것을 알고 있는 연인들이랄까? 그런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나오는 그림과 시다.
예술은 현실과 달리 역시 장애가 있고 불행이 있어야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가보다.

아 진짜 나는 이런 분위기의 그림에 사정없이 약하다.
그림은 역시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바람 쐬는 여인>
하이쿠는 기카쿠의 <여름 소낙비에 홀로 밖을 바라보는 여인이로구나>
시 자체는 딱히 좋다 생각되지 않는데 홀로 앉아 먼곳을 바라보는 여인의 표정이 정말 기가막히게 아련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화 중에 협롱재춘(나물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란 그림이 있다.
공재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의 그림

저 뒷모습의 아련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어쨌든 이런 모습의 그림에 나는 한없이 약하다는 걸 다시 한번 인증....

시인 잇사의 하이쿠를 좋아한다.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이 시인은 그럼에도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고 어리고 여린 것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을 평생 표현하였다.
적당한 그림이 없었는지 호쿠사이의 곤충모음 그림을 가져왔는데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잇사의 시가 좋을 뿐이고......

역시 색감은 우타가와 히로시게다. 그림의 제목은 <명소 에도 백경 중 마쓰치야마 산야보리의 야경>
에도의 풍경좋은 곳 백군데 중의 하나란 뜻인데 우리가 저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다 알던 곳이다.
사진을 제대로 못찍었는데 밤을 표현하는 저 색감들이 정말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보게 되는 그림이다.
여기에 붙은 잇사의 시도 너무 좋다.
<내 별은 어디서 한뎃잠 자나, 여름 은하수>

이 장면은 그림때문에 가져온 것.
호쿠사이는 역시 천재적인 화가가 맞다.
이 그림을 보고 호쿠사이의 풍경화와 어떻게 연결할까?
호쿠사이가 그리면 도라지꽃도 저렇게 영롱하구나 하고 감탄한다.

요 그림과 시는 지금의 내 마음을 표현한 것.
술 못먹는, 좀 있따 친구들 만나러 나가서 조개찜 먹을건데 술이라곤 한방울도 못먹을 나의 마음은 얼어붙은 한 겨울.
그러나 겨울은 영원하지 않다. 당연히......
그렇고 말고...어느날 내게 술병이 저절로 찾아오는 봄날이 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