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완독하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를 많이 떠올렸다.
로마를 소재로 한 책들 중 아마 가장 많이 팔린 것이 이 두 시리즈 아닐까?
특히 로마인 이야기는 한길사를 먹여살린다는 말도 있었으니.....
이 두 시리즈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할 능력은 없다.
그럼에도 이 두 시리즈를 모두 읽고 난 이후 내 나름의 비교는 한번 해보고 싶다.
단적으로 이 둘을 평가하자면
역사를 빙자한 소설 <로마인 이야기> / 소설로 되살린 로마 공화정의 역사 <마스터스 오브 로마>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다.
역사를 빙자한 소설 <로마인 이야기> -로마제국 찬양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설을 읽는것처럼 재미있다.
아 이 말은 약간 문제가 있는데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이 역사책은 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생각한다.
이 시리즈의 배경은 로마건국부터 서로마제국 멸망까지 로마제국 전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내가 제목을 다시 붙인다면 <로마제국 찬양사>라고 붙이고싶다.
이 시리즈에서 다루어지는 로마인들은 그야말로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훌륭한 인간들의 표상이다.
그들이 로마 제국을 건설해가는 과정은 한마디로 온 유럽에 문명의 빛을 전달함으로써 야만인들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처음 시리즈의 4권정도 읽을 때까지는 우와 시오노 나나미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면서 감탄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읽어갈 수록 뭔가 이상하다.
이거 분명 역사책인데?
왜 로마인들은 모두 훌륭하지?
로마가 제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분명히 정복전쟁을 한다는건데, 왜 로마인 이외의 다른 민족들은 모두 야만적이고 이상하고 그럼으로써 로마로부터 구원을 받는것으로 보이지?
특히나 4권과 5권 카이사르에 이르면 뭐라 붙일말이 없어진다.
카이사르는 완벽 그자체이고 이후 모든 인물의 평가준거가 되어진다.
시오노 나나미는 100% 로마의 입장, 아니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책을 서술한다. 너무나도 편파적으로...
우리가 역사왜곡이라고 하면 흔히들 역사적 사실에 대해 거짓을 말하는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역사왜곡에서 그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팩트는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팩트만 가져와서 편집을 하는 식으로 역사왜곡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뒤로 갈수록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건 바로 그 지점이다.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서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했던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는게 아니냐는 비난이 한때 돌았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로마제국과 일본제국
제국은 선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고, 그 제국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카이사르같은 인물은 거의 신적인 영웅이고......
실제로 작가가 일본제국주의의 꿈을 로마 제국에 투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을 읽다보면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클리아막스는 사실상 5권이다.
공화정이 무너지고 로마 제정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정말 숨가쁘게 작가는 모든 필력을 다 발휘하고 있다.
정말 소설처럼 절정을 향해 치닫던 서술이 드디어 로마제정의 시작이라는 궁극의 목표에 도달했으니, 이후의 이야기는 그냥 김빠진 맥주일뿐 심심하다.
어쨌든 이 책을 읽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딱 5권까지, 그리고 역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소설이라고, 특히나 카이사르라고 하는 인물의 가슴벅찬 영웅서사를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역사에서 한번도 없었던 절대선을 찾는게 무슨 역사일까?
소설로 되살린 로마 공화정의 역사 <마스터스 오브 로마>
전체 22권(소설은 21권, 마지막 한권은 가이드북), 총 페이지 9502쪽 - 다행히 1만페이지는 안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로마 공화정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마리우스 시대부터 술라를 거쳐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이어지면서 결국 로마공화정이 무너지고 로마제정이 시작되는 지점까지이다.
어떻게 보면 로마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클라이막스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내가 로마 공화정의 역사라고 하는건 이 책이 픽션과 사실을 정말 아름답게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시오노 나나미가 그리고 있듯이 그렇게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온갖 사건과 인간군상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가운데 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너무나도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 소설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분량면으로 본다면 카이사르가 가장 많겠지만, 그렇다고 카이사르에게 편중되었다고 할 수 없다.
잠시 등장하는 인물이라도 작가는 애정을 쏟아 그의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속의 어떤 인물에게도 공감하고 그의 마음결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인물묘사가 탁월하다.
여기에서만 본다면 그저 소설이라고, 훌륭한 소설이라고 하겠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들보다 훨씬 즉자적이고 직접적이며 본능이나 탐욕에도 적나라한 그들의 글이나, 그들이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주변 인물이나 평민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다보면 인간세상이란게 원래 이렇게 복잡한게 맞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그런 무수히 많은 욕망의 교차속에서도 시대적 요구가 어떻게 자신을 관철시켜 나가는지 그 흐름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작가는 로마인이 주인공이지만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의 시각이나 생활 관점도 놓치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와는 다르게 그들은 여기서 그저 로마인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일뿐이다.
또한 로마의 지배에 동화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전통과 생각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 무엇이 옳은가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이 책속이 로마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하고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활용하는 것이 무수히 많은 편지글과 연설문들이다.
이 많은 글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냈는지 신기할만큼 많은 그들의 글과 연설이 등장한다.
이 글과 연설들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다.
쉽게 번역된 그 연설들을 통해서 독자는 로마인의 생각과 직접 맞닿을 수 있다.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포복절도하면서 적나라한 그들의 생각을 만나는 시간은 정말 유쾌하다.
또한 당시의 지리, 도시모습, 생활풍속, 여성관 등이 손에 잡힐 듯이 머리에 들어온다.
얼마나 많은 사료를 읽고 그것을 재현해냈는지 그 수고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 책을 읽고 로마의 포로 로마노에 갔을 때 정말 맞아 이쯤 원로원 의사당이 있어야 해, 여기가 귀족들이 주로 살던 팔라티노 언덕이구나, 카이사르가 태어났던 교차로는 여기쯤일까라면서 어느 순간 당시의 로마를 짚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로마라는 도시의 재현은 탁월하다.
동시에 다른 지역들에 대해서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로마인이 중심이기 하지만 로마인과 다른 생활풍속, 다른 생각들을 보여주면서 독자를 그 현장으로 이끈다.
누군가 만약 <로마인 이야기>와 <마스터스 오브 로마> 중 무엇을 볼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나는 무조건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권한다.
소설과 역사의 탁월한 결합이 마스터스 오브 로마에는 있다.
그 이후 로마인들으 찬양할지 말지는 독자의 선택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찬양사를 주구장창 듣다가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