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간에서 저를 글썽이게 한, 바로 그 글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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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몇번씩 폭발음 죽음조차 점점 무감각
[한겨레 2004-08-03 17:28]
[한겨레] 테러와 교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참극의 땅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인들을 위한 평화교육센터 사업을 벌이고 있는 평화운동가 한상진 hansangj@hotmail.com씨가 한국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이라크로 떠난 3일 현지 사정을 전해왔다. 한씨가 몸담고 있는 평화운동단체 ‘함께 가는 사람들’( www.ihamsa.net)의 허락을 얻어 이를 싣는다.

어제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두 건의 폭발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를 상대로 한 폭탄 공격이었습니다.

이라크 전체에서 교회를 상대로 모두 다섯건의 폭탄공격이 있었는데 그 중 두건이 제가 살고있는 동네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제 집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거리에서 발생했습니다. 거리의 가까움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겨냥한 것으로는 제가 본 첫번째 공격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자못 컸습니다.

종교갈등 불안감 확산 “무장세력이 드디어 이 전쟁을 종교전쟁으로 끌고 가려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 양상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아마도 일부 아랍계의 단결과 지지를 모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종교박해로 이어지면서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갈등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더군요.

제가 아는 이슬람은 평화와 포용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아랍문화와 이슬람 종교를 기반으로 한 평화교육센터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그 자신감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까지 절망하면 안되는데...”하면서 스스로를 부추겨 보지만, 힘이 들군요.

어제 저녁에 한 기자가 그러더군요. “여기서 도대체 누구를 돕겠다는거냐 지금 보고 있지 않느냐 목숨걸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나도 조만간 나갈거다. 제발 빨리 여기서 떠나라.” 모두들 이라크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제 기자들마저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떠나지 않으면 언젠가 여기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나면 소위 ‘연합군’이라고 불리는 침략군과 무장 저항세력 그리고 속절없이 죽어갈 이라크 민간인들만 남겠죠.

운이 좋아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여기서 겪었던 아픈 기억들을 또다시 모두 끄집어내서 증언하는 일을 해야겠죠. 그 역시 죽음만큼 힘든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시 기억하기 싫을만큼 아픈 기억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 카페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폭발음이 들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건 정도로 들리던 폭발음이 이제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립니다. 이번 폭발에서는 또 몇사람이 죽어 갔을까요.

분노 대신 두려움 커져
어제 폭발사고 직후에, 폭발지점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변함없이 장사를 하고 있더군요. 사람들이 이런 폭발과 죽음에 이제는 무감각해져가고 있습니다. 몇사람 붙들고 “차라리 분노해라. 분노보다 무감각이 더 무서운거다”라고 호소해 보지만, 소용없는 짓입니다. 사실 저도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으니까요. 두렵습니다. 이렇게 계속 무감각해져가다가,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서도 더이상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될까봐서요. 두려움 속에서 몇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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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8-06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들 읽고 퍼가고 전하시길,
한상진 씨의 노력이 의미있는 정치적 결과로 나타나도록 ......
 

추모, 정은임 FILM2.0(2003년 10월, 149호) '돌아온 DJ 정은임'
[필름 2.0 2004-08-04 22:40]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정은임 아나운서가 4일 결국 숨을 거뒀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04년 8월 4일 저녁, 5천 여명이 넘게 다녀간 그녀의 미니홈피를 비롯해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수많은 추모 댓글들이 붙고 있다. 이젠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게된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모하며 지난해 10월 방송복귀 소감을 밝혔던 FILM2.0 기사를 다시 싣는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8년 6개월 만에 MBC FM 영화음악 진행을 다시 맡는다. 그 소식이 전해진 10월 23일은 1995년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이 막을 내린 지 꼭 3,117일째 되는 날이었다. 마침 그날은 그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과연 축하할 일일까요?"

복귀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여의도 MBC 본사 7층 라디오 스튜디오 앞에서 만난 정은임은 지나는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 인사에 꼬박꼬박 그렇게 되묻고 있었다. "당연히 부담되죠. 복귀라면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건데.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그때'라면 1992년 11월 2일에 첫 방송을 시작해 1995년 4월 1일 정영음의 마지막 전파를 쏘아올리던 때를 말한다. 소녀 취향의 닭살 멘트가 난무하는 심야 방송에서 4.3 제주 항쟁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강제 철거의 부당함에 격분하는 오프닝 멘트가 화제를 모은 건 당연했다. 볼세비키가 부르던 '인터내셔널가'와 시위 현장에서 대학생들이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영화음악이라며 틀어주던 이 프로그램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듣게 해준 방송이었다.

2년 반 만에 맞이한 드라마틱한 마지막 방송. 이 때부터 독실한 애청자들이 정영음을 실패한 혁명으로, 정은임을 요절한 게릴라로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라고 눈물의 작별 인사를 고하던 마지막 방송은 MP3 파일로 저장되어 지금도 인터넷을 떠돈다.

"안 그래도 내가 그랬지. 정은임은 전설로 남겨두고 차라리 다른 사람을 섭외해야 한다고.” 정은임의 복귀를 축하하는 점심을 함께하며 홍동식 편성부장(당시 정영음 PD)은 끝내 자신의 충고를 새겨 듣지 않은 담당 PD를 은근히 대견해 했다. 그러면서 오는 2005년 정영음 종영 1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복귀시키려던 자기 복안이 틀어졌다며 정은임의 때이른(?) 복귀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평론가 정성일은 "지금도 마치 커밍아웃하듯이 '저도 한때 정영음의 청취자였습니다'라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만난다"고 말한다. 정은임은 그렇게 청취자들 사이에 은밀한 연대의식을 고취시키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설익은 대학생의 세계관으로 방송하고"도 박수받던 호시절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이제 마이크 너머엔 영화에 담긴 진심을 믿는 충성스런 관객들 대신 박스오피스 성적을 더 믿는 변덕쟁이 관객들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페널티 킥을 맞이하는 골기퍼처럼, 지금 정은임은 11년 전 입사 4개월 만에 덜컥 영화음악 진행을 맡던 그 때처럼 불안하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엔 너무 몰라서 불안했고 지금은 너무 잘 알아서 불안하다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모두들 군대 가 있는 어느 선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뭐, 완전히 신화적 인물이더라고요. 짱돌의 달인에, 강철 같은 사상. 제가 4학년 때 그 선배가 복학하는데 아, 그 신화가 산산히 깨졌다는거 아닙니까. 모든 신화의 속성이란 다 그런 거예요."

92년 11월 2일 첫 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 정은임은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방송국이라는 직장에 대해 내심 실망하고 있었다. MBC 파업에 즈음해 입사한 이 수습 사원은 파업에 참여한 선배들을 대신해 일기 예보에 투입됐다. 찌푸린 날씨를 예보할 때면 잔뜩 먹구름이 끼여 있는 자신의 미래도 함께 예보하는 것만 같았다.

세상의 중심에서 호흡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 방송은 자본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그저 순진한 대학생 마인드였음이 속속 드러나는 순간, 87학번 아나운서의 가슴속에 회의가 밀려들었다. 특히 '앵무새'라고 지탄받던 아나운서의 한계가 뼈아팠다. 못다 이룬 기자의 꿈을 실현할 대안이라고 믿었던 그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머지 않아 '아나운서' 정은임은 기자가 되었다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꿈같은 시절을 만끽하게 된다.

종영 전까지 매주 한 통씩 꼬박꼬박, 70여 통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 제작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대구의 서영무(38)씨와 숙직하는 ‘은임이 누나’와 밤새 수화기를 붙들고 영화를 논하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던 민철호(33)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열혈 청취자 중 빨리 기억나는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직관으로 청소년의 가슴을 할퀴던 정은임을 모두가 예뻐한 건 아니었다. 95년 4월 1일, 정영음은 봄 개편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리고 정은임의 인생에도 개편의 계절이 도래했다.

영화음악 종영 후 몇몇 프로그램을 오가며 영화 코너에 얼굴을 비추던 정은임은 98년, 결혼과 동시에 유학길에 올랐다. 이미 정영음의 마지막 방송에서 영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던 속내를 털어놓은 터였다. 항간에는 영화 연출을 공부하러 간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로부터 2년 뒤. 가슴속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고 팔에는 아이를 안고, 정은임이 돌아왔다.

"사람이 보수화되는 가장 큰 이유가 가족이 생기는 거예요. 특히 2세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지죠. 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건 할 수 있겠는데 결코 우리 아이에게는 나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못할 것 같거든요. <허공에의 질주>를 떠올리며 생각해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요즘은 그게 가장 큰 화두예요."

"그게요, 아이 참. 그러니까 막상 가보니까 영화학과가 아닌거예요. 미디어학과인 거 있죠? 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거야" 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을 시작하는 건 정은임의 특기다. 아나운서 시험을 볼 때도 그랬고, 정영음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그는 그럴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팔자에도 없는 경영학 수업까지 받아가면서 그는 비로소 영화라는 텍스트 바깥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세계관을 정리하고 돌아왔다"는 거창한 자평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2년이나 유학하고 돌아온 사원에게 1년 내내 이렇다 할 프로그램 하나 맡기지 않았다. 시간은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영화 볼 시간은 자꾸 줄어들었다.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한 남편을 남겨두고 먼저 들어와 혼자 아이를 키우니까 그럴 수밖에.

"영화를 보지 못하는 환경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밤 12시까지 아이 뒤치다꺼리 하더라도 꼭 새벽 3시까지 영화 1~2편씩 보고 나서 잤어요" 연애 시절 유학중인 남편과 6개월에 한번씩 만날 때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건만, 영화는 아니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지 못하며 사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정은임은 지금도 점심시간에 회사를 빠져나가 가까운 극장으로 간다. 보고 싶은 영화를 빨리 보지 못하면 목에 가시가 돋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이 불치병은 정은임의 아버지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부친은 어린 정은임의 손을 잡고 극장 나들이를 일삼았다. 고등학교 때 정은임의 증세가 더 심해졌다. TV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고 난 후 영화 제목, 제작 연도, 제작사, 남녀 주인공, 영화 줄거리, 그리고 나름의 감상을 공책에 빼곡히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영향을 받아(?) 들어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부 시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앞에 잠시 흥미를 잃기 전까지 그의 이런 식의 영화 보기는 계속됐다.

정은임을 열혈 영화광의 세계로 최초로 인도한 안내자는 사실 아버지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약사 엄마를 대신해 집안 일을 돌봐주던 가정부 언니였다. 장롱 가득 영화 잡지를 쌓아놓고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는 가정부 언니를 보고 어린 정은임은 생각했다. "가정부가 되면 참 좋은 거구나, 영화도 많이 보고 과자도 마음대로 먹고, 참 좋은 직업이구나.” 가정부가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정은임은 그 때부터 영화 사랑의 한 길을 걷게 된다.

"연변에서 오신 아줌마가 먹고 자면서 애를 봐주세요. 근데, 웃긴 게 제가 난생처음 사용자가 된 거잖아요. 그 미묘한 갈등, 임금 인상을 둘러싼 대립을 겪어요. 근데 저도 별 수 없이 기만적인 기업들이 쓰는 ‘패밀리’ 논리를 내세우게 되더라고요. 우린 한 가족이다, 이러면서 인간적 정을 내세워 무마하는 거예요"

입사 11년 차 정은임의 나이도 벌써 서른여섯이다. 일전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 '브레인 서바이버' 아나운서 특집에 출연했더라면 입사 동기 김지은 아나운서와 함께 가운뎃줄, 일명 낙엽줄에 앉을 나이다. 이제 그는 정영음을 진행하던 시절 ‘내 인생의 영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던 <로저와 나>를 얼마 전 슬그머니 목록에서 빼버렸다. 그때는 거대 자본가에게 끊임없이 문전박대당하는 감독(마이클 무어)이 존경스러웠지만 세상을 조금 살아보니까 재기발랄함과 무모함,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정은임은 신입 아나운서 시절 한 인터뷰에서 어느 간부가 "정은임은 동그라미와 가위표밖에 없다"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었다. 당시 한 선배가 그 간부를 지칭해 “그 인간은 세모와 네모밖에 없다"고 말한 것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정은임에게 여전히 당신에겐 동그라미와 가위표밖에 없느냐고 물었다. 정은임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날카로운 것 못지않게 사람에 대한 연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남편이 돈 많이 벌어서 재단이나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란다.

잃어버린 줄 알고 새로 신청하고 또 잃어버린 줄 알고 신청해 현재 주민등록증만 4장을 갖고 있을 만큼 제 물건을 간수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정은임은 입사 당시 품은 초심만큼은 아직 잘 간직하고 있다. 그는 올해 MBC노조 여성부장직을 맡았다. 직장내 탁아소 설립이 당면 과제다. 또한 여전히 노조 노래패 소속이기도 하다. 최근 노조내 그룹 사운드의 공연을 보고 의기소침해 있긴 하지만.

그가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다음 카페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한때 정은임 복귀 추진 모임(이하 정추임)이 결성될 만큼 열성 청취자를 거느린 프로그램의 종영 이후 8년. 사실상 복귀 운동을 포기하고 간간이 서로의 안부나 묻던 회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제 살을 꼬집어 보겠다는 글이 올랐고 벌써 꼬집어 봤는데 꿈은 아니라는 리플이 달렸다. 복귀 후 첫 방송 전날인 10월 19일 저녁 '정영음 부활 전야 정모'를 열기로 하면서 카페의 축제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이 카페 회원이면서 그 옛날 숙직하는 정은임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던 애청자 민철호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정은임 개인의 복귀가 고마운 게 아니라 진지하게 영화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부활하는 게 고마운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 70통의 주인공 대구의 서영무(38)씨는 "그동안 정은임씨도 변했겠지만 듣는 우리도 많이 변했다"면서 그냥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해달라"고 주문한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투사(鬪士) 정은임이 아니라 삶을 투사(透寫)하는 영화 이야기를 들려줄 인간 정은임일 뿐이다.

정영음이 막을 내린 지 3,119일째 되는 지난 10월 15일. 게시판에 오른 한 청취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어린 감수성을 자극하고, 때로는 쓰다듬어주던 그 라디오, 지금은 낡은 옷가지들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낡은 라디오를 창고에서 꺼내 깨끗이 사과하고는 탁탁, 경쾌하게 먼지를 털어내야겠습니다." 부디 그래주기를. 뿌옇게 내려앉은 먼지와 함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탁탁, 경쾌하게 털어내주길, 정은임은 바라고 있다.

사진 조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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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한민국 '간판'을 내리는 슬픔

[손석춘 칼럼] 고 김선일의 절규를 그새 잊었는가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그가 '헌법의 수호자'로 나섰다. 딴은 처음은 아니다. 이미 '국가 정체성'을 들먹이지 않았던가. 혼자는 아니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추썩이고 <동아일보>가 뒷북쳤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서울방송>도 중계 방송하듯이 주요 '뉴스'로 '전파'했다.

그래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온통 정체성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국가적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엉뚱한 정쟁에 사로잡혀있다. 정쟁의 수준도 차라리 민망스럽다. 도무지 부끄러움이란 모르는 자들이다.

헌정을 총칼로 짓밟은 제 아비를 비판하지 않은 채 언죽번죽 국가 정체성을 거론한다. 종신 집권을 위해 재차 헌정을 유린한 유신체제의 '퍼스트 레이디'가 엄숙하게 말한다. "헌법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 군부의 쿠데타를, 그리고 '유신'을 찬양한 저 제도언론도 온전히 살아남아 한껏 나팔을 분다. 국가 정체성을 목놓아 부르댄다.

그 결과다. 민주공화국이 실제로 '껍데기'가 되는데도 국가 구성원 대다수가 둔감하다. 그 틈을 박정희의 딸은 십분 '활용'한다. "헌법을 지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 기염을 토한다. 수구신문은 대서특필한다.

희극일까, 비극일까. 야당 대표가 그 말을 한 날,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헌법을 지키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부정하는 침략전쟁에 참전했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한 패가 되었던 것은.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용병국가'로 손가락질 받은 것은. 하지만 오늘의 상황과 비교할 일이 아니다. 그 때는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래서다. 차라리 오늘이 더 참담한 것은. 붉은 악마의 열정에 이어 촛불이 타오르고 '네티즌'에 힘입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던가.

하지만 보라. 미국의 '예속 국가'임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민주시민들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단식을 하며 반대를 했는데도, 대통령 노무현은 휴가를 가지 않던가. 한국정치의 새 장을 열었다는 '노사모'는, 그들의 정열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2004년 8월 3일. 대한민국은 역사에 남을 치욕을 선택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정권이 저지른 침략전쟁을 거들려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떠났다. '죽음의 땅'으로 가는 장병들 '환송식'도 몰래 열었다. 전투병 파병을 시작하는 날도, '보안'을 내세워 국민에게 쉬쉬했다. 헌법이 자신의 사상이라고 언죽번죽 밝힌 대통령은 '휴가 중'이다.

그렇다. 역사는 '노무현의 배신'을 분명히 물을 터이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차분히 묻고싶다. 노 정권의 책임을 꼭 '역사'에만 물어야 할까.

우리 모두 정직하자. 오늘의 상황은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 아직 미국의 '예속 국가'를 벗어나기엔 미숙한 국민 아닌가. 침략전쟁에 참전이라는 헌법유린을 일러 '통치행위'라고 옹호하는 헌법재판소를 보라.

정작 헌법을 유린하는 침략전쟁을 찬성하면서 냉전의 잣대로 헌법을 지키자는 제1야당과 수구언론의 선동을 보라.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수많은 '386의원'들을 보라. 노사모와 노무현을 보라.

저들의 책임에 조금도 물타기할 뜻은 없다. 다만 한 걸음 더 딛자. 과연 저들만의 책임일까. 뜻 있는 젊은이들이 단식까지 벌였지만, 대다수 대학생들은 모르쇠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파병철회를 내걸며 기대를 모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침묵했다.

탄핵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의 어둠을 밝혔던 시민들도 침략전쟁 파병에는 눈감았다. 고 김선일의 참극도, 핏빛 절규도 슬그머니 잊었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현주소다.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 진정한 까닭이다.

모멸감과 슬픔이 몰려오더라도 다함께 정면을 바라볼 때다. 공화국의 밤을. 이 땅에 드리운 저 불길한 먹장구름을. 그 때 비로소 다음 물음에 답이 나오지 않을까.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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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8-0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공화국'의 현주소다. That's right. It's a democracy (not a fantasy but a real), as we know from U.S.A. There's no another democracy...

balmas 2004-08-0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하나의 선문답??
 

 

[오마이뉴스]

 

"태극기 덮여 들어올 관 바라지 않아"

[현장] 파병반대 단체 회원들, 자이툰부대 정문 앞 시위

 

- 현장취재 : 조호진 기자
- 정리 : 구영식 기자
- 사진 :권우성 기자

▲ 2일 오후 이라크 파병을 앞둔 자이툰 부대가 훈련중인 경기도 광주 특전사 교육단앞에서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 회원들이 '파병을 하려면 우리를 밟고 가라'며 드러누워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특전사 교육단과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단체 회원과 학생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부대 정문까지 밀고 들어 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3신 : 2일 저녁 7시 30분]

자이툰부대 정문 앞에 울려퍼진 반전 목소리
"태극기 덮여 들어올 관을 바라지 않아"


▲ 집회 참가자들이 '파병강행 노무현 규탄' 구호가 적힌 종이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일 오후 3시 50분께 '자이툰부대 파병저지 결의대회'가 자이툰부대원들이 대기중인 백마부대 정문 150m 앞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총알받이 한미동맹 반대한다' '자이툰부대 파병 즉각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라크전쟁 희생자와 고 김선일씨를 추모했다.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평화를 사랑하는 몸부림을 헛되이 할 수 없다"며 "파병은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파병의 날, 치욕스런 날에 파병 장병이 대기하는 부대 앞에 섰다"고 말문을 연 뒤 "4월 국회투쟁부터 이 순간까지 자주적인 국가와 평화를 위해 몸부림쳤고 후세에 부끄럽지 않는 싸움을 했다"며 "오는 8월 임시국회에서 75명의 의원을 조직해 철군 결의안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 현장에는 '태극기 덮어 들어올 관을 바라지 않는다' '이라크 파병, 나를 밟고 가라'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이 눈길을 끌었다. 또 이날 참석자들은 '죽음을 부르는 한미동맹 거부' '파병강행 노무현 규탄' 등의 붉은색 손전단을 흔들며 '전쟁반대 파병철회' 구호를 네박자에 맞춰 외쳤다.

서총련 예술단 '진검승부'와 민중가수 '별음자리표' '조약돌' 등도 율동과 노래 등 문화공연을 펼치며 파병반대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들은 "우리를 밟고 가라, 파병압력 미국을 비판한다"고 외쳤다.

자이툰부대 정문 앞 연좌농성 중 "못 보낸다 안보낸다 파병을 중단하라"

오후 5시 20분께 국민행동 대표단은 자이툰부대원들에게 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부대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평화의 메시지를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바리케이드를 철수해 달라고 경찰쪽에 요청했으나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철수하지 않자 한총련 통일선봉단 소속 대학생들이 바리케이드를 순식간에 철거했다.

이들은 '전쟁반대 파병철회'를 외친 뒤 부대 진입을 시도하며 전경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부 경찰들은 소화기를 뿌리면 방어했다. 하지만 경찰쪽은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진압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6시께 소강상태를 보이다 다시 6시 10분께 민주노동당 깃발을 앞세운 사람들이 기습적으로 군부대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쪽의 저지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현재 백마부대 정문 앞까지 진입해 연좌농성중이다.

이들은 '못 보낸다 안 보낸다, 파병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고, 전경들은 정문 앞에서 이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수 백명의 백마부대원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정문과 담장 주변에 대기중이다.

현재 한총련 선봉대원 80여명은 전경과 대치하고 있고, 대표단은 연좌한 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의 시위는 밤샘농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집회를 마친 뒤 부대까지 행진을 시도하는 참가자들과 저지하는 경찰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몸싸움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발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부대 정문까지 행진을 시도하는 집회 참가자와 경찰이 호박밭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잘못된 길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이 자이툰부대 장병들에게 보낸 편지

다음은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이 자이툰부대 장병들에게 보낸 편지 전문이다....<편집자주>

자이툰부대 장병 여러분께

이 무더위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저희들은 '이라크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 대원들입니다. 국민행동은 전국 시·도·군 36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돼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석유를 탐내는 추악한 침략전쟁인 이라크전쟁에 동참하게 될 우리 자이툰부대 장병들에게 다시 한번 간곡히 호소하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벌이는 명분으로 삼은 대략살상무기는 미국의 자체조사 결과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또다른 명분인 테러배후설 또는 테러지원설조차 미국 자체조사 결과 전혀 근거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지금이라도 잘못된 이라크전쟁을 중단하고 철수해야 마땅합니다. 전쟁를 벌인 주범인 미국조차 철수해야 하는데 왜 이라크 민중과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는 우리 젊은이들이 파병되어야 합니까. 다른 나라 군인들은 다들 철수하기 시작하는데 왜 유독 우리만 추가파병합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라크 독립군 죽이러 간다'고. 미국의 침략에 맞서 이라크의 자주 독립을 위해 몸바쳐 싸우는 독립군과 대항하기 위해 우리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입니다.

지난 일제 36년 동안 많은 독립군들이 일제에 맞서 조선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만일 그때 다른 나라 군인이 와서 일제를 돕는다면 우리 민족은 그 다른 나라 군인을 적군으로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범죄전쟁입니다.

우리의 국군이 침략전쟁의 전범이 되는 순간입니다. 전쟁범죄의 공동전범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합니다. 잘못된 길임을 알게 된 순간 다시 되돌아 나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장병 여러분, 비록 지원하였다 할지라도 지금이라도 지원을 철회하고 나오십시오. 잘못된 길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길을 포기하고 돌아 나오십시오. 지금이라도 이라크행을 중단하십시오.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 특전사 교육단 정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이툰 부대원들의 훈련장이 설치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신 : 2일 오후 3시 5분]

오전 자이툰부대 환송식..."이라크 가고 싶지 않다" vs "잘 다녀올 테니 걱정마라"
파병반대 시위대와 대치..."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식민지 에이전트로 기록될 것"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국민행동)은 2일 오후 1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자이툰부대 파병반대' 출정식을 열고 "망국적 파병강행 노무현 정권 각오하라" "자이툰부대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고 외쳤다.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은 출정사를 통해 "제3세계 민중들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고 있다"고 밝힌 뒤 "이라크 파병은 미 제국주의의 진행프로그램"이라며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식민지 에이전트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출정식에서는 자이툰부대 복장을 한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이들의 헬멧에는 '군인은 집에 가고 싶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이어 오후 1시 30분께 평화유랑단 차량을 선두로 한 파병반대 버스 두 대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자이툰부대로 출발했다.

자이툰부대 환송식은 이날 오전 자이툰부대 연병장에서 윤광웅 국방부장관과 유재건·조성태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자이툰부대 인근에 8개 중대 600여명의 병력을 투입,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자이툰부대 인근주민 "면회온 가족들이 몹시 불안해하더라"

▲ 2일 오전 자이툰 부대원들과 면회를 마친 가족들이 귀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이툰부대 인근에 사는 신동호씨는 "오전부터 부대 근처에 있었는데 고급 관료들을 태운 차량들이 10시 30분께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며 "초청된 가족들은 몹시 불안해 하는 표정들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촌동생(23)을 면회온 김숙경씨(25, 서울시 서대문구)는 "동생이 처음엔 가고 싶었했는데 막상 출발날짜가 다가오니까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며 "먼 이국땅이자 위험한 지역으로 떠나보내는 마음이 착잡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내일 떠나는 선발대는 오후 2시에 면회가 끝났고 내일 이후에 떠나는 사병들에 대한 가족면회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아들(23)을 면회왔다는 김 아무개씨(49, 부산시 남구) "아들이 '잘 갔다 올 테니 걱정마라'고 말했다"며 "아들이 걱정돼 가지 말라고 했는데 아들이 자청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는 이라크로 가는 우리의 아들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데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정부쪽에 요구했다.

이날 오전부터 취재하고 있다는 한 일간지 기자는 "가족 면회차량 중에 에쿠스 등 고급승용차는 보이지 않고 소용차만 있었다"며 "결국 다수의 파병군인들은 부유한 가정의 자식들이 아닌 것 같다"고 쓴웃음을 내보였다.

파병반대 시위대 '반전 퍼포먼스'...경찰, 바리케이드 설치 봉쇄

한편 오후 3시 현재 자이툰부대 파병반대 시위 참가자 300여명은 자이툰부대 입구에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바리케이드와 병력으로 이를 차단해 대치중이다. 경찰은 부대 정문 앞에 약 150미터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놓고 시위대의 부대진입을 막고 있다.

이에 파병반대 시위대는 자이툰부대 병사가 쓰러져 누워 있는 퍼포먼스를 통해 파병반대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날 파병반대 시위에는 문정현 신부와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뿐만 아니라 한총련 소속 대학생 등 총 300여 명이 참여했다.


[1신 : 2일 오전 10시 50분]

자이툰 부대 파병임박...파병반대 목소리도 거세져


자이툰 부대가 이달초 이라크로 떠날 예정인 가운데 파병반대를 요구하던 시민, 노동단체들이 이 부대 앞에서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평화행사를 갖고 종교, 문학단체들이 기자회견과 단식농성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화연대,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 평화유랑단 등은 '가자! 자이툰 부대로, 타자! 평화의 버스를'이란 제목의 이라크 파병반대 문화행사를 자이툰 부대가 훈련 중인 경기도 광주 백마부대 정문 앞에서 연다.

이들은 2일 오전 11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1시간 가량 사전행사를 갖고 정오에 자이툰 부대로 출발한다. 낮 1시 30분부터 자이툰 부대 정문 앞에서 '평화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편지 낭독, 퍼포먼스, 노래공연, 파병철회 메시지를 담은 풍선 날리기 등을 진행한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1일 저녁 7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파병철회 문화제'를 연데 이어 2일에는 자이툰 부대 파병을 저지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의 자이툰 부대로 집결해 파병반대 국민행동과 함께 집회를 열 계획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2일 '파병반대 규탄문'을 발표하고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병반대 단식농성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주지역 21개 시민, 사회단체 회원 등 도민 995명은 2일 이라크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추가파병 중단과 이미 파견된 한국군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했다.

이와 함께 천주교평화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반전평화기독연대,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 등 종교단체들이 2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이라크파병 철회를 촉구하는 종교인 기자회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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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8-0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함께 현장에 있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모두 힘내시기를 ...
 

 

[교수신문]

 

교수논단-파병철회와 경제파탄론

2004년 07월 19일   백일 울산과학대 

얼마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한미관계 악화는 우리경제에 중대한 불안요인이라는 것이다. 동북아정세는 경제파탄논리는 종종 검토되던 것이었으나 대통령 전용 보고서를 청와대가 직접 공개하고 대 국민 홍보용으로까지 확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건은 김선일씨 사건으로 악화된 이라크 파병 여론 선회를 직접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까지 다급해진 것은 정부의 피랍사건 초등대응 실책과 미국계 언론 AP통신의 정보은폐 의혹, 그리고 국회 파병동의안 통과 시점 등, 일관된 파병안 강행일정 속에서 일이 발생해 정부책임이라는 사회적 지탄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잘못됐다면 고쳐야지 경제파탄을 내세워 오히려 이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떳떳치 못한 일이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진상 은폐보다도, 한미관계까지 들먹이는 노무현 정부의 상황인식이다.
보고서는 한미관계 악화, 미국 경제제재,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한국신용등급 인하, 해외자본이탈, 증시가 파탄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인데, 유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꼭 그래야 진짜로 국가 이익이 보장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불가피한 고뇌의 한 수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파병을 합리화하려는 낮 뜨거운 대응논리의 발굴인가. 말 나온 김에 이 시나리오의 현실성을 강행 가능성과, 실제 경제파탄 발생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점검해보자. 왜냐하면 그간 한미관계악화와 실익 논리는 냉전논리와 함께 정권 합리화의 양대 단골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보고서와는 달리 파병 철회시 부시정부가 경제 제재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라크침공도 감행하는 판에 네오콘(신보수주의)이 무슨 일을 못할까마는, 대선이 코앞이고, 날로 확대되는 이라크 침공정보 조작 의혹은 부시를 옥죄는 그물이다. 둘째 이라크전쟁의 도덕성 추락은 9.11테러 당시의 기세등등한 국수주의와는 다른 환경이다. 부시의 무기력은 스페인 필리핀 등의 파병철회, 멕시코 등의 파병거부에도 별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못한 사례에서 입증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 강행을 예상한다면, 이것은 경제원리의 기초를 모르는 턱이다. 경제이익은 상호적인 것이다. IMF사태이후 우리 증시에 들어온 외국자본 약 2백억불 중 상당수는 불과 5~10% 정도의 헐값으로 주식을 인수해 수 십배 이익을 본 바 있다. 아직도 건질 이해가 있는데 그것을 포기할 자본이 있을까. 혹시 무디스가 어떤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언제 바뀔 정권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철에 먼저 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병과 한미관계, 경제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연관시키는 것은 국제정세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명백한 무리수다. 오히려 우려되는 바는 군사적 변화, 즉 파병 철회시 한반도 긴장고조 가능성인데, 이 확률도 사실은 크지 않다. 이번 3차 6자회담에서 나온 대북 협상조건의 놀랄만한 변화(중유 공급, 다자 안전보장, 경제 제재 해제 등)는 최근 동북아정세의 긴장완화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른바 악의 축 메뉴에서 북이 제외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성질이 아니다. 이것은 남한 당국이 미국에 잘 동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의 중대한 변화요인(미패권주의에 대한 국제적 반발 확산 등)과 그 심각성을 의미한다.
이번 청와대 보고서 파문은 파병 경제이익 논쟁에 가까운 것이다. 영원한 동지가 없는 냉엄한 국제사회 논리에서 자국의 이해관철은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냉철한 국제정세 분석력과 자기 주체성의 바탕위에서 나온다는 것은 오랜 국제관계사가 웅변하는 것이다. 더러운 국제 석유커넥션이라는 오명으로 가득한 이라크 침공을 세계사의 진전 운운하며, 파병 반대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최소한 더 이상 파탄 운운하면서 국민을 현혹하지는 말라. 경제가 정 어렵다면, 남의 피로 내 삶을 강구하는 부도덕을 강요하기 보다는 더 뼈를 깍는 노력을 차라리 호소하라. 이른바 국가 유력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청와대가 힘을 합쳐 나라경제 회생에 매진은커녕, 엉뚱하게 파병 합리화 보고서에 힘을 빼는 것은 마치 베트남전 1인당 최저 살상비용을 계산한 미국 경제기관들의 부도덕성을 재현한 것 같아 참으로 씁쓰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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