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테러와 교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참극의 땅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인들을 위한 평화교육센터 사업을 벌이고 있는 평화운동가 한상진 hansangj@hotmail.com씨가 한국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이라크로 떠난 3일 현지 사정을 전해왔다. 한씨가 몸담고 있는 평화운동단체 ‘함께 가는 사람들’( www.ihamsa.net)의 허락을 얻어 이를 싣는다.
어제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두 건의 폭발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를 상대로 한 폭탄 공격이었습니다.
이라크 전체에서 교회를 상대로 모두 다섯건의 폭탄공격이 있었는데 그 중 두건이 제가 살고있는 동네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제 집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거리에서 발생했습니다. 거리의 가까움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겨냥한 것으로는 제가 본 첫번째 공격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자못 컸습니다.
종교갈등 불안감 확산 “무장세력이 드디어 이 전쟁을 종교전쟁으로 끌고 가려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 양상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아마도 일부 아랍계의 단결과 지지를 모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종교박해로 이어지면서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갈등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더군요.
제가 아는 이슬람은 평화와 포용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아랍문화와 이슬람 종교를 기반으로 한 평화교육센터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그 자신감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까지 절망하면 안되는데...”하면서 스스로를 부추겨 보지만, 힘이 들군요.
어제 저녁에 한 기자가 그러더군요. “여기서 도대체 누구를 돕겠다는거냐 지금 보고 있지 않느냐 목숨걸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나도 조만간 나갈거다. 제발 빨리 여기서 떠나라.” 모두들 이라크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제 기자들마저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떠나지 않으면 언젠가 여기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나면 소위 ‘연합군’이라고 불리는 침략군과 무장 저항세력 그리고 속절없이 죽어갈 이라크 민간인들만 남겠죠.
운이 좋아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여기서 겪었던 아픈 기억들을 또다시 모두 끄집어내서 증언하는 일을 해야겠죠. 그 역시 죽음만큼 힘든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시 기억하기 싫을만큼 아픈 기억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 카페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폭발음이 들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건 정도로 들리던 폭발음이 이제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립니다. 이번 폭발에서는 또 몇사람이 죽어 갔을까요.
분노 대신 두려움 커져
어제 폭발사고 직후에, 폭발지점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변함없이 장사를 하고 있더군요. 사람들이 이런 폭발과 죽음에 이제는 무감각해져가고 있습니다. 몇사람 붙들고 “차라리 분노해라. 분노보다 무감각이 더 무서운거다”라고 호소해 보지만, 소용없는 짓입니다. 사실 저도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으니까요. 두렵습니다. 이렇게 계속 무감각해져가다가,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서도 더이상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될까봐서요. 두려움 속에서 몇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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