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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간판'을 내리는 슬픔

[손석춘 칼럼] 고 김선일의 절규를 그새 잊었는가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그가 '헌법의 수호자'로 나섰다. 딴은 처음은 아니다. 이미 '국가 정체성'을 들먹이지 않았던가. 혼자는 아니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추썩이고 <동아일보>가 뒷북쳤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서울방송>도 중계 방송하듯이 주요 '뉴스'로 '전파'했다.

그래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온통 정체성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국가적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엉뚱한 정쟁에 사로잡혀있다. 정쟁의 수준도 차라리 민망스럽다. 도무지 부끄러움이란 모르는 자들이다.

헌정을 총칼로 짓밟은 제 아비를 비판하지 않은 채 언죽번죽 국가 정체성을 거론한다. 종신 집권을 위해 재차 헌정을 유린한 유신체제의 '퍼스트 레이디'가 엄숙하게 말한다. "헌법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 군부의 쿠데타를, 그리고 '유신'을 찬양한 저 제도언론도 온전히 살아남아 한껏 나팔을 분다. 국가 정체성을 목놓아 부르댄다.

그 결과다. 민주공화국이 실제로 '껍데기'가 되는데도 국가 구성원 대다수가 둔감하다. 그 틈을 박정희의 딸은 십분 '활용'한다. "헌법을 지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 기염을 토한다. 수구신문은 대서특필한다.

희극일까, 비극일까. 야당 대표가 그 말을 한 날,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헌법을 지키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부정하는 침략전쟁에 참전했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한 패가 되었던 것은.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용병국가'로 손가락질 받은 것은. 하지만 오늘의 상황과 비교할 일이 아니다. 그 때는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래서다. 차라리 오늘이 더 참담한 것은. 붉은 악마의 열정에 이어 촛불이 타오르고 '네티즌'에 힘입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던가.

하지만 보라. 미국의 '예속 국가'임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민주시민들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단식을 하며 반대를 했는데도, 대통령 노무현은 휴가를 가지 않던가. 한국정치의 새 장을 열었다는 '노사모'는, 그들의 정열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2004년 8월 3일. 대한민국은 역사에 남을 치욕을 선택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정권이 저지른 침략전쟁을 거들려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떠났다. '죽음의 땅'으로 가는 장병들 '환송식'도 몰래 열었다. 전투병 파병을 시작하는 날도, '보안'을 내세워 국민에게 쉬쉬했다. 헌법이 자신의 사상이라고 언죽번죽 밝힌 대통령은 '휴가 중'이다.

그렇다. 역사는 '노무현의 배신'을 분명히 물을 터이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차분히 묻고싶다. 노 정권의 책임을 꼭 '역사'에만 물어야 할까.

우리 모두 정직하자. 오늘의 상황은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 아직 미국의 '예속 국가'를 벗어나기엔 미숙한 국민 아닌가. 침략전쟁에 참전이라는 헌법유린을 일러 '통치행위'라고 옹호하는 헌법재판소를 보라.

정작 헌법을 유린하는 침략전쟁을 찬성하면서 냉전의 잣대로 헌법을 지키자는 제1야당과 수구언론의 선동을 보라.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수많은 '386의원'들을 보라. 노사모와 노무현을 보라.

저들의 책임에 조금도 물타기할 뜻은 없다. 다만 한 걸음 더 딛자. 과연 저들만의 책임일까. 뜻 있는 젊은이들이 단식까지 벌였지만, 대다수 대학생들은 모르쇠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파병철회를 내걸며 기대를 모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침묵했다.

탄핵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의 어둠을 밝혔던 시민들도 침략전쟁 파병에는 눈감았다. 고 김선일의 참극도, 핏빛 절규도 슬그머니 잊었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현주소다.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 진정한 까닭이다.

모멸감과 슬픔이 몰려오더라도 다함께 정면을 바라볼 때다. 공화국의 밤을. 이 땅에 드리운 저 불길한 먹장구름을. 그 때 비로소 다음 물음에 답이 나오지 않을까.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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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8-0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공화국'의 현주소다. That's right. It's a democracy (not a fantasy but a real), as we know from U.S.A. There's no another democracy...

balmas 2004-08-0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하나의 선문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