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케리의 미국도 파병 압력 행사할까?

[심층기획 : 미국 대선과 한반도-중(2)] 이라크 파병과 한미동맹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정욱식(cnpk) 기자

 

세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이번 기획에서는 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부시와 케리의 외교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중편에서는 한반도와 관련된 케리의 외교정책을 북핵문제(1편)와 이라크 파병 및 한미동맹(2편)으로 나눠 분석합니다... 글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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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가 당선될 경우 북핵 문제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문제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동맹 재조정이다. 이 문제들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로 우리는 심한 몸살을 앓아왔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병 문제는 별반 차이가 없는 반면에, 한미동맹과 관련해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동맹 재조정과 관련해 케리의 정책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병과 한미동맹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종속변수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존 케리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산만한 일방주의(erratic unilateralism)'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외교노선으로 '진보적 국제주의(progressive internationalism)'을 내세워왔다. 그는 "강하고 존경받는 미국"을 외교정책의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외교정책을 수행할 때, 근본적인 가치와 차분한 자신감에 바탕을 둔 진보적 국제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특히 미국과 국제사회의 안보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집단안보를 추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우방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가 부시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면서 새로운 동맹체제의 건설을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부시가 '나홀로'를 고집했다면, 자신은 국제사회와 '함께' 해보겠다는 것이다. 케리 진영은 이 점이 바로 부시의 외교정책과 가장 큰 차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케리가 내세우고 있는 외교안보의 목표는 부시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승리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이라크에서의 평화정착을 시작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번영, 그리고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을 핵심적인 외교정책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동맹의 창출과 지도 ▲새로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의 건설 ▲군사력뿐만 아니라 외교력, 정보력, 경제력, 미국식 가치와 사상의 활용 등 이용가능한 미국의 힘을 총동원하는 것 ▲중동 석유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의 탈피 등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케리든 부시든, 파병 문제는 계속될 듯

2004년 대선에서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이라크 정책에 있어서 침공을 지지한 원죄 탓인지, 케리는 이렇다할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이라크 정책과 관련해 주목을 끌고 있는 부분은 이라크 주둔 미군은 대폭 감축하는 한편, NATO를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정치적·군사적 부담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지도력에 대한 불신으로 동맹국들이 이라크 파병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이라크 주둔 미군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케리가 집권하면, 미국의 동맹·우방국들은 대규모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닐 공산이 크다. 부시가 재집권하든, 케리가 되든 미국 대선 직후에 있을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와 맞물려, 한국이 또 다시 파병 몸살을 앓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다만, 파병을 요청하는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편에 설 것인지, 적의 편에 설 것인지 양자택일하라"며, 국제사회에 줄서기를 강요했던 부시와는 달리, 케리는 동맹·우방국들을 설득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예방전쟁 : 예방외교

미국 군사력과 관련해서는 "제4세대 전쟁, 즉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비대칭적인 적과 맞서 싸우는 전쟁에 대해 준비하고 이해해온 당사자는 민주당"이라는 케리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역시 부시 행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군사력 변형(military transformation)의 신봉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각종 도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정보력과 통신수단, 그리고 장거리 투사 능력과 신속한 이동배치가 가능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케리는 육군 병력 4만명을 늘리고, 특수군의 능력을 강화하며, 전후 작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민사작전 부대와 군 경찰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디지털 사단"과 "반(反) 확산 부대"를 창설해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등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아울러 군 처우 개선도 주요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력사용과 관련해서는 부시 행정부보다 훨씬 신중한 입장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 이란 등과 직접 대화를 공언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력사용이나 강압외교에 의존하는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대화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즉, 부시 행정부처럼 특정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불필요한 적을 만들기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잠재적인 적국들을 미국식 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위협을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예방전쟁(preventive war)에 입각해 일방적인 무력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통해 안보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과는 달리, 케리는 불필요한 적과 위협을 만들지 않는 예방외교(preventive diplomacy)에 대외정책의 기조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외부로부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다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적국이나 테러집단에게 선제 무력사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9.11 테러 이후 달라진 미국의 안보관과 부시 행정부의 정치 공세를 의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 감축, 조정될 가능성 높아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동맹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큰 틀에서 볼 때,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감축하고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확보하기 위해 기지를 재배치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을 '지역군화'하는 것에 있어서는 부시 행정부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의 규모와 시기는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부시는 2005년까지 1만2500명을 감축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케리는 육군 병력 4만명을 늘리고 이라크 주둔 미군수도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주한미군의 급격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처럼 노골적으로 한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를 압박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 및 새로운 위협에의 대응 차원에서 케리 역시 MD와 관련해 한국의 협조를 원하겠지만, 부시와 비교할 때 그 수준이나 비중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대중국 정책 "전략적 경쟁자"에서 다시 "전략적 파트너"로?

케리가 집권할 경우 미중 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미중관계는 북핵 문제 및 한미동맹의 변화와도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핵 문제와 함께 양안관계가 동북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미국과는 군사동맹관계를, 중국과는 우호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차기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단 중국은 북핵 문제와 대만 문제를 연계시켜왔다. 즉,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확고히 하면서 대만의 독립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보이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을 많이 고려해주고, 반면에 미국이 대만에 무기 수출 의사를 밝히는 등 대만 독립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양상을 띠어온 것이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케리가 집권할 경우 대중정책의 변화 가능성이다. 큰 틀에서 볼 때, 부시든, 케리든 대만이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것 자체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미국의 '초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가 대만의 무기 수출에 적극적인 반면, 케리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차이를 드러낼 공산은 크다. 양안관계와 관련해 케리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고, 미국이 대만 방어를 돕는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부시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보는 반면에, 케리는 '전략적 동반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을 갖고 있는 반면에, 케리는 MD의 조기 구축에 부정적이고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케리의 미국이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을 좌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1996년 3월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에 대해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해 응수한 것이 보여주듯,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 저지는 '초당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는 대만 무기 수출 및 중국을 겨냥한 MD 구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양안간의 긴장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지만, 케리는 대만 무기 수출 및 MD 구축을 '조절해' 양안간의 분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임할 공산이 크다.

반면에,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케리의 당선이 중국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중산층과 서민을 주된 지지 기반으로 갖고 있는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대중국 무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이유로 무역적자 해소에 미온적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매년 1천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가 미국의 실업난의 한 원인으로 보고 이를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케리가 집권할 경우 미중 사이에 무역 마찰이 거세게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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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타오르는 유에스에이, 잠 못드는 세계

타오르는 USA, 잠 못드는 세계

민주당 전당 대회 뒤에도 미 대선 박빙 승부… 왜 여건 유리한 케리가 부시를 따돌리지 못하나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도 케리는 부시를 따돌리지 못했다. 미 대선은 예전과 달리 뜨거운 여름부터 한껏 달궈질 것으로 보인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 승부. 모든 여건이 케리 편인데도 이런 아찔한 승부가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 워싱턴= 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민주당 전당대회 다음날인 7월30일 오후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태운 버스와 조지 부시 대통령을 태운 버스가 펜실베니아에서 조우할 뻔했다. 두 무리의 긴 버스 행렬은 40마일 거리를 두고 펜실베이니아 서쪽의 70번 고속도로를 각각 지나갔다. 넓디넓은 미국 땅에서 두 후보가 같은 지역을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올 여름 두 후보의 일정은 자꾸 겹친다. 박빙의 싸움 속에서 양쪽 모두 일찍부터 접전 지역에 온 힘을 쏟는 탓이다.



△ 7월29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연설을 하는 케리 후보(맨위)와, 7월21일 워싱턴에서 열린 기금마련 행사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 세계가 가슴을 졸이며 이들의 승부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GAMMA)

7월26~29일 보스턴의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부시 대통령은 고향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상대방이 잔치를 할 때는 판을 벌이도록 비켜주는 게 도리다. 또 그때 선거운동을 해봐야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부 공업지대인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등 4개 주를 버스로 돌았다.

전당대회 끝나기 무섭게 뜨거운 선거전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역시 전당대회 다음날부터 15일 동안 22개 주를 도는 버스 투어를 시작했다. 워싱턴에서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미 대륙을 종단한다. 대개 이런 먼 거리는 전세기를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케리와 그의 러닝메이트 존 에드워즈는 오로지 버스와 기차만 이용할 계획이다.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한표라도 더 끌어모으는 지상전의 중요성은 2000년 대선 이후 더욱 커졌다.

이번 대선은 어쩌면 2000년보다 더욱 치열한 접전이 될지 모른다. 부시와 케리 양 진영은 8월에 과거 어느 때보다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과거엔 9월 초 노동절이 돼야 선거운동이 본격화했지만, 이번엔 선거전이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나흘간의 전당대회 기간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후보의 지지율은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다. 문제는 지지율 상승의 폭이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 부시의 최측근 참모인 칼 로브는 “케리 지지율이 15%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정도면 8월30일~9월2일의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해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펄쩍 뛰었다. 로브의 이런 말엔 정치적 엄살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선 부동층이 별로 없다. 케리나 부시나 이미 지지층을 결집시켰기 때문에 전당대회를 통한 지지율 상승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칼 로브의 주장이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가 결과에 실망하게 만들려는 정치적 술책이란 게 민주당쪽 주장이었다.

민주당 결집해도 지지율은…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7월29일 발표된 ‘조그비’ 여론조사에선 케리가 부시를 48% 대 43%로 5%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보다 케리의 지지율 상승폭이 크지는 않다. 전당대회 전, 같은 여론조사에서 케리가 부시를 2%포인트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3%포인트가 더 벌어졌을 뿐이다. 더 재밌는 점은 두 후보 지지층의 견고함이다. 케리 지지율은 전당대회 전이나 후나 똑같다. 부시의 지지율만 3%포인트가 내려앉았다. 그게 케리가 아니라 부동층으로 옮겨지면서 부동층 비율이 그만큼 늘어났다.


△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리 지지 연설을 하기 위해 참석한 클린턴 부부. 민주당이 유례없이 결집하고 '정치 스타'들이 지원을 호소해도 승부는 박빙이다. (사진/ GAMMA)

이건 의미심장하다. 케리는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을 확실하게 결집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케리의 잠재적 라이벌로 여겨졌던 힐러리 클린턴은 전당대회장에서 케리를 추어올리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하워드 딘과 민주당 좌파인 데니스 쿠시니치 하원의원도 케리에게 한표를 던질 것을 호소했다. 최근 수십년 동안 이렇게 단합이 잘 이뤄진 대회는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조그비’ 여론조사대로라면, 케리는 부동층을 자기 편으로 끌어오는 데는 아직 역부족이다.

8월1일 발표된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도 케리의 지지율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다. 랠프 네이더까지 포함한 3자 대결에서, 케리는 49%의 지지로, 부시(42%)를 7%포인트 앞질렀다. 네이더는 3%포인트였다. 3주 전 같은 여론조사에서 케리가 부시를 3%포인트 앞선 것과 비교하면, 전당대회가 4%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뉴스위크>는 “이런 상승폭은 뉴스위크의 역대 전당대회 여론조사 가운데 가장 작은 수치”라고 밝혔다. 심지어 공동 여론조사(8월1일)에선, 전당대회에도 불구하고 부시(50%)가 케리(47%)를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이것이 공화당 주장처럼 전당대회 효과가 미미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 주장처럼 “유권자들의 양극화 현상”을 반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격차가 그 정도밖에 벌어지지 않은 게 공화당으로선 다행이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다. 박빙의 상황에선 언제나 상대방을 바짝 따라붙어야 한다. 한번 밀리면 다시 만회하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공화당의 8월 대공세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케리는 전당대회를 통해 ‘베트남의 가장 위험한 전투지역을 자원해서 간 군인 출신’이란 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이 경력을 국가안보 지도력과 연결시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공화당은 케리의 이런 이미지를 지우는 대신에 ‘너무 진보적이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란 딱지를 붙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 열쇠는 케리의 19년간의 상원의원 생활에 있다. “케리는 19년간의 상원의원 생활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왜 1년도 채 안 되는 베트남 참전 경험만을 떠드느냐”는 게 공화당 공격이다. 부시는 직접 케리를 가리켜 “내 적수(존 케리)는 상원의원 19년 동안 수천번의 투표를 했을 텐데 특별한 업적을 남긴 게 별로 없다. 그가 훌륭한 의도를 갖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부시 국정지지율은 계속 추락

사실, 여러 외부적 여건은 케리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3주 전의 48%에서 45%로 다시 떨어졌다. 지속적인 지지율 추락에도 불구하고 케리와 박빙의 싸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부시의 고정표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지만, 국정지지율 추락은 그에겐 적신호와 같다.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를 방문한 케리의 유세장엔 가는 곳마다 1만명 이상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정권교체를 향한 민주당원들의 뜨거운 열망을 반영한다고 현지 언론들은 평했다. 같은 무렵 역시 오하이오 도버를 방문한 부시를 마중 나온 건 두 자매의 현수막이었다. 그 현수막엔 “할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젠 당신 차례다”라고 써 있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를 지지했던 오하이오는 부시 치하에서 2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4년 전 부시를 지지했던 다른 주들도 대개 상황이 비슷하다. 부시는 “경제가 바닥을 쳤다.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유권자들은 느끼지 못한다. 올 4월부터 일자리 수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지만, 대부분이 임시직이라 아직 유권자들의 피부엔 와닿지 않는다. 부시 집권기간에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부시에겐 커다란 짐이다.


△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동안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보스턴에 군화를 전시했다. 이 군화는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미군들을 상징한다. (사진/ GAMMA)

여기에 미군의 이라크 주둔 문제가 맞물리면서,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이겼던 주들 가운데 상당수가 접전지역으로 돌아서거나 케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라크에 많은 병사들을 보낸 플로리다나 노스캐롤라이나, 웨스트버지니아 등은 모두 부시가 반드시 이겨야 할 지역들이다.

7월24일의 선거인단 조사를 보면, 부시가 케리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부시에게 유리하진 않다. 부시와 케리가 접전 중인 플로리다, 미시간, 위스콘신 등 11개 주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3명)와 오레곤(〃 7명) 등 2개 주는 머지않아 케리쪽으로 넘어올 것 같다고 은 전망했다. 또 케리 우세 주 가운데 접전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주가 메인, 미네소타, 워싱턴 등 3개 주(선거인단 총 25명)인 데 반해, 부시 우세 주 가운데 접전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주는 노스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 7개 주(선거인단 총 73명)에 이른다. 주별 선거의 승자가 그 주에 걸린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 제도’에서, 이런 상황은 케리에게 상당한 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카리스마 부족이 케리의 아킬레스건

그런데도 전당대회까지 치른 케리가 부시와의 지지율 격차를 크게 벌리지 못한 건 뼈아픈 대목이다. 물론 미국 사회가 워낙 당파적으로 갈라져 부동층이 매우 적은 게 근본 이유다. 그러나 대중을 끌어모으는 카리스마의 부족은 여전히 케리에겐 아킬레스건이다. 호감도에서 부시는 케리를 앞선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취재기자 153명을 대상으로 비공식적인 여론조사를 했다. 언론이 케리에게 우호적이라는 공화당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누가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워싱턴의 취재기자들은 12 대 1의 비율로 케리를 꼽았다. 비워싱턴 취재기자들도 3 대 1의 비율로 역시 케리를 꼽았다. 그러나 케리와 부시 중 누구를 담당하고 싶으냐는 질문엔 77명이 부시를, 67명이 케리를 꼽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케리는 재미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평가가 올 11월 미국 대선을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꽃 튀는 접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승리한 주]

조지 부시 승리 지역 30개 주(271명)
앨 고어 승리 지역 20개 주와 워싱턴DC(267명)


앨 고어가 승리한 주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워싱턴DC 델라웨어 하와이 아이오와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메인 미시간 미네소타 뉴저지 뉴멕시코 뉴욕 오리건 펜실베이니아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워싱턴 위스콘신

조지 부시가 승리한 주 알래스카 앨라배마 아칸소 애리조나 콜로라도 플로리다 조지아 아이다호 인디애나 캔자스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주리 미시시피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노스다코타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네바다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타 테네시 텍사스 유타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와이오밍

[조지 부시와 존 케리의 주별 우세 현황]


부시 우세 지역 (25개 주 217명)
몬태나 노스다코다 사우스다코다 아이다호 와이오밍 네브래스카 유타 콜로라도 캔자스 애리조나 몬태나 오클라호마 텍사스 아칸소 미시시피 테네시 앨라배마 조지아 인디애나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켄터키 루이지애나 알래스카

케리 우세 지역 (14개 주 · 워싱턴DC 193명)
메인 버몬트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워싱턴 델라웨어 하와이 메릴랜드 워싱턴DC

접전 지역 (11개 주 128명)
플로리다 오하이오 아이오와 네바다 뉴햄프셔 뉴멕시코 위스콘신 미시간 웨스트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오리건

 

 

2지선다형, 부시냐 반부시냐

미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디에… 변변찮은 정책대결, 오직 부시 지지와 혐오로 엇갈려

▣ 로스앤젤레스= 신복례 전문위원 boreshin@hanmail.net

민주당의 ‘미국에 대한 믿음’(Believe in America)이냐, 공화당의 ‘미국의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 of America)이냐.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향한 벼랑 혈투가 서막을 올렸다. 지난주 민주당은 보스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존 케리-존 에드워즈의 ‘존-존 커플’을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8월30일 뉴욕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되면 11월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건곤일척의 맞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관전자들에게 이번 선거만큼 재미없는 싸움은 없을 것 같다. 인물도 변변찮고 무기도 신통찮다. 거창하게 내건 명분도 고리타분하기만 하다. 주인공인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불평한다. 귀를 혹하게 하는 공약조차 없다.



△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민주당 케리 후보(맨위)와 공화당 부시 대통령. 양 진영 모두 이번 선거의 테마인 안보에 대해 어떤 정책을 내세울지 고심하고 있다. (사진/ GAMMA)

‘안보’만이 문제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선거는 없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격차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으로 미국은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다음 4년간 병이 깊어진다면 더 이상 치유할 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미국의 앞길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은 근심과 초조함으로 판세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선거전의 특징은 답이 나와 있는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선거전의 테마는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안보’다. 현재 미국은 9·11 이후 테러전쟁과 그에 이어진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있다. 애국심이 뼈 속에 박혀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또다시 9·11 같은 끔찍한 테러가 일어날 것이냐는 데 쏠려 있다. 더구나 이미 더러운 전쟁이 돼버린 이라크에서 수많은 자국 군인들이 희생되고 미국이 지구촌의 공적이 되면서 안보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안보 테마의 위력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가장 잘 안다.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떤 반대 주제도 먹히지 않는다. 목숨과 재산이 날아갈 위기감 앞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갖은 실정과 심각한 이라크 전쟁 후유증에도 부시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이유는 미국의 심장 뉴욕을 강타한 9·11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충격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시골뜨기 빌 클린턴에게 참패한 것과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실업자들은 넘치고 각 지역을 지탱해온 전통 제조업체들은 망한 지 오래다. 경제지표들은 그럭저럭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바닥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빈부격차가 커져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가구 수가 전국적으로 300만 가구가 넘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 문제는 이번 선거전에서 2순위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 유권자들은 수입보다 많은 고지서들을 손에 들고서도 ‘안보’를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다.

케리 진영과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부시 진영의 선거전략은 ‘힘의 미국’을 앞세운 안보논리다. 미국 내에서도 ‘악당’으로 공인된 부시는 다른 전략은 고려도 않고 있다. 그에 차별화하려면 힘만 믿고 날뛰는 지도자가 아니라 든든하면서도 유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고작 상원 외교안보위원회 경력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안보를 믿고 맡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케리 진영의 최대 숙제다. 하지만 이라크전 파병안에 찬성한 업보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시쪽의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비난이 상당 부분 먹혀들었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케리에게 안보를 맡겨도 좋은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지난 30일(한국시간) 케리 후보는 50분간의 수락 연설에서 그동안의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단호하고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설 직후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2%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봤다. 그러나 효력은 아직 미지수다. 전당대회 다음날 전통적 민주당 지지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면 톱기사에 “케리 연설은 부동층을 흔들었으나 매혹시키지는 못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지난 20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소득층에 지극히 편중됐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다. 5월 둘째 주 <타임>도 ‘일하는 빈민층(Working Poor)’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부부는 물론 온 가족이 일을 하지만 대부분은 의료보험도 없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요지다. 결국 빈민층들에겐 미래가 없는, 가난의 대물림이 불가피하다는 암시를 던졌다.

미국 언론 중 가장 보수적인 두 매체의 기사는 미국의 현주소를 잘 나타낸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선거전이 정책대결 양상을 넘어 화해될 수 없는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설처럼 선거전의 표심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와 케리 후보는 46~48%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지지가 인물과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부시 지지’와 ‘부시 혐오’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부시의 기반인 중산층 이상 백인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요지부동이다. 오로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당과 부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동층 노린 네거티브 전략 득세

케리 지지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외에 대다수 유권자는 ‘부시 반대자’들이다. 부시와 공화당 정권의 독선과 아집에 질린 사람들이다. 특히 4년 동안의 정책으로 고통받아온 저소득층과 소수계는 ‘부시가 싫어서’ 무조건 민주당에 표심을 내준 상태다.

이같은 경향은 선거전에서는 최악의 신호다. 결국 승패는 부동층이 가르기 때문에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요 방송 전파를 타고 있는 부시쪽의 ‘케리 비난 광고’가 먹혀든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나오는 연사마다 부시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현재 부동층은 전체 유권자의 7% 정도로 추산된다. 750만명이 넘는다. 부시는 싫지만 케리도 미덥지 못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린 셈이다.

사실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가 된 케리 진영의 최대 고민은 아직 그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2400만명이 지켜본 것으로 집계된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로 많이 알려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다음날부터 전국 21개 주 버스 투어에 나섰다. 강행군을 하면서 유세 바람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부동층의 향배에 승패가 걸린 만큼 판세가 백중세인 지역을 가장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파고든다는 계산이다.

케리 진영은 경제와 세금, 의료보장, 에너지 자급자족, 안보 등 4개 테마로 공약을 잡고 부동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하지만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짜였다. 사실 내놓을 정책도 딱히 뚜렷한 게 없는 형편이다. 경제 회생에는 묘안이 없고 세금은 부시가 감세 법안으로 선점한 지 오래다. 그나마 저소득층 의료보장이 관심사지만 연방정부의 적자투성이 재정 상태로 획기적인 정책을 세운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케리쪽은 라틴계를 사로잡을 이민법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케리는 정답을 찍을 수 있을까

결국 정책보다는 이미지 싸움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 판세라면 지난 4년 전 대선처럼 득표율엔 앞서고 선거에선 질 가능성이 높다. 골수 지지층을 확보한 부시 진영에 비해 케리 지지층은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단 케리쪽은 공격 전술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의 실정과 이라크전 실패를 물고 늘어져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또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를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하워드 딘 등 인기 있는 당의 스타들을 총동원해 바람몰이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케리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쟁 상황에서 지나친 공격은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또 경제든 의료보장이든 가슴에 와닿는 공약이 없이 부동층 유권자들이 표심을 내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케리 캠프는 더욱 수읽기가 복잡하다. 케리가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 중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2지선다형, 부시냐 반부시냐

미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디에… 변변찮은 정책대결, 오직 부시 지지와 혐오로 엇갈려

▣ 로스앤젤레스= 신복례 전문위원 boreshin@hanmail.net

민주당의 ‘미국에 대한 믿음’(Believe in America)이냐, 공화당의 ‘미국의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 of America)이냐.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을 향한 벼랑 혈투가 서막을 올렸다. 지난주 민주당은 보스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존 케리-존 에드워즈의 ‘존-존 커플’을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8월30일 뉴욕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되면 11월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건곤일척의 맞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관전자들에게 이번 선거만큼 재미없는 싸움은 없을 것 같다. 인물도 변변찮고 무기도 신통찮다. 거창하게 내건 명분도 고리타분하기만 하다. 주인공인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불평한다. 귀를 혹하게 하는 공약조차 없다.



△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민주당 케리 후보(맨위)와 공화당 부시 대통령. 양 진영 모두 이번 선거의 테마인 안보에 대해 어떤 정책을 내세울지 고심하고 있다. (사진/ GAMMA)

‘안보’만이 문제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선거는 없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빈부격차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으로 미국은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다음 4년간 병이 깊어진다면 더 이상 치유할 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미국의 앞길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은 근심과 초조함으로 판세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선거전의 특징은 답이 나와 있는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선거전의 테마는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안보’다. 현재 미국은 9·11 이후 테러전쟁과 그에 이어진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있다. 애국심이 뼈 속에 박혀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또다시 9·11 같은 끔찍한 테러가 일어날 것이냐는 데 쏠려 있다. 더구나 이미 더러운 전쟁이 돼버린 이라크에서 수많은 자국 군인들이 희생되고 미국이 지구촌의 공적이 되면서 안보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선거전에서 안보 테마의 위력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가장 잘 안다.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떤 반대 주제도 먹히지 않는다. 목숨과 재산이 날아갈 위기감 앞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갖은 실정과 심각한 이라크 전쟁 후유증에도 부시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이유는 미국의 심장 뉴욕을 강타한 9·11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충격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시골뜨기 빌 클린턴에게 참패한 것과 지금은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실업자들은 넘치고 각 지역을 지탱해온 전통 제조업체들은 망한 지 오래다. 경제지표들은 그럭저럭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바닥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빈부격차가 커져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가구 수가 전국적으로 300만 가구가 넘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 문제는 이번 선거전에서 2순위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 유권자들은 수입보다 많은 고지서들을 손에 들고서도 ‘안보’를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다.

케리 진영과 민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부시 진영의 선거전략은 ‘힘의 미국’을 앞세운 안보논리다. 미국 내에서도 ‘악당’으로 공인된 부시는 다른 전략은 고려도 않고 있다. 그에 차별화하려면 힘만 믿고 날뛰는 지도자가 아니라 든든하면서도 유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고작 상원 외교안보위원회 경력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안보를 믿고 맡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케리 진영의 최대 숙제다. 하지만 이라크전 파병안에 찬성한 업보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시쪽의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비난이 상당 부분 먹혀들었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케리에게 안보를 맡겨도 좋은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지난 30일(한국시간) 케리 후보는 50분간의 수락 연설에서 그동안의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단호하고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설 직후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2%포인트의 상승 효과를 봤다. 그러나 효력은 아직 미지수다. 전당대회 다음날 전통적 민주당 지지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면 톱기사에 “케리 연설은 부동층을 흔들었으나 매혹시키지는 못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지난 20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소득층에 지극히 편중됐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렸다. 5월 둘째 주 <타임>도 ‘일하는 빈민층(Working Poor)’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부부는 물론 온 가족이 일을 하지만 대부분은 의료보험도 없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요지다. 결국 빈민층들에겐 미래가 없는, 가난의 대물림이 불가피하다는 암시를 던졌다.

미국 언론 중 가장 보수적인 두 매체의 기사는 미국의 현주소를 잘 나타낸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선거전이 정책대결 양상을 넘어 화해될 수 없는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설처럼 선거전의 표심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와 케리 후보는 46~48%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지지가 인물과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부시 지지’와 ‘부시 혐오’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부시의 기반인 중산층 이상 백인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요지부동이다. 오로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당과 부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동층 노린 네거티브 전략 득세

케리 지지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외에 대다수 유권자는 ‘부시 반대자’들이다. 부시와 공화당 정권의 독선과 아집에 질린 사람들이다. 특히 4년 동안의 정책으로 고통받아온 저소득층과 소수계는 ‘부시가 싫어서’ 무조건 민주당에 표심을 내준 상태다.

이같은 경향은 선거전에서는 최악의 신호다. 결국 승패는 부동층이 가르기 때문에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요 방송 전파를 타고 있는 부시쪽의 ‘케리 비난 광고’가 먹혀든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나오는 연사마다 부시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현재 부동층은 전체 유권자의 7% 정도로 추산된다. 750만명이 넘는다. 부시는 싫지만 케리도 미덥지 못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린 셈이다.

사실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가 된 케리 진영의 최대 고민은 아직 그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2400만명이 지켜본 것으로 집계된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로 많이 알려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다음날부터 전국 21개 주 버스 투어에 나섰다. 강행군을 하면서 유세 바람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부동층의 향배에 승패가 걸린 만큼 판세가 백중세인 지역을 가장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파고든다는 계산이다.

케리 진영은 경제와 세금, 의료보장, 에너지 자급자족, 안보 등 4개 테마로 공약을 잡고 부동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하지만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짜였다. 사실 내놓을 정책도 딱히 뚜렷한 게 없는 형편이다. 경제 회생에는 묘안이 없고 세금은 부시가 감세 법안으로 선점한 지 오래다. 그나마 저소득층 의료보장이 관심사지만 연방정부의 적자투성이 재정 상태로 획기적인 정책을 세운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케리쪽은 라틴계를 사로잡을 이민법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케리는 정답을 찍을 수 있을까

결국 정책보다는 이미지 싸움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 판세라면 지난 4년 전 대선처럼 득표율엔 앞서고 선거에선 질 가능성이 높다. 골수 지지층을 확보한 부시 진영에 비해 케리 지지층은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단 케리쪽은 공격 전술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의 실정과 이라크전 실패를 물고 늘어져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또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를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하워드 딘 등 인기 있는 당의 스타들을 총동원해 바람몰이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케리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전쟁 상황에서 지나친 공격은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또 경제든 의료보장이든 가슴에 와닿는 공약이 없이 부동층 유권자들이 표심을 내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케리 캠프는 더욱 수읽기가 복잡하다. 케리가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 중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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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 미국 대선과 한반도 - 상

 

부시 재선하면 한반도는 '고난의 행군'

정욱식/ 2004년 8월 6일



지난 7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미국의 대선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초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부메랑에 맞아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이렇다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부시의 우세를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2004년 미국 대선. 2000년 대선에서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올스톱'이라는 참담한 경험을 한 우리로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이번 기획에서는 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부시와 케리의 외교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2004년 전세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미국의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는 항상 국제사회의 관심사였지만, 이번만큼이나 국제사회의 이목이 미국 대선으로 쏠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부시의 미국' 자체가 너무나도 낯설었고 지구촌에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녀'라는 조롱을 받아왔던 유엔마저도 승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명분도 근거도 없었던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것이 여실히 보여주듯, 부시 행정부는 무분별한 군사력의 사용과 일방주의적 외교로 전세계를 분노와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고통을 받아온 인류사회가 미국 대선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관심 속에는 부시에 대한 정치적 응징과 함께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새로운 미국 정부가 들어설 경우 '다른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올스톱'했던 쓰디쓴 경험을 한 우리로서도 부시의 재선 여부에 남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북핵 문제'로 표현되는 북미간의 대결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한미동맹을 패권주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부시 행정부의 재선 여부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시의 재선이 왜 위험한가?

그렇다면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한반도의 정세는 어디로 흘러갈까? 미국의 대선 이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는 6자회담의 성패 및 북한의 태도, 2기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정세, 미국-중국간의 전략적 이해관계,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진행 상황 및 군사력의 변화 등이 있다. 이들 변수는 대단히 복잡한 함수관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먼저 북핵 문제부터 살펴보자. 부시가 재집권한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미국 대선을 전후해 6자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하고 북핵의 사찰 및 검증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북미 양측의 교집합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물론 강온파 사이의 갈등 해소 결과는 북한정권 교체에 대한 유혹을 확실히 버리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와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 및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로 대북정책의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선의 조합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 대선 전에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북핵 프로그램의 불확실성과 '100% 검증이 불가능한 북핵 프로그램을 100% 검증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미뤄볼 때, 북한과 미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찰 및 검증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핵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야만 완전한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더구나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1기 때보다 더 강경한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도 높다. 1기 때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그리고 잭 프리처드 대북특사 등 '상대적인' 온건파가 힘겹게 초강경파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잭 프리처드는 강경파와의 불화로 2003년 8월 사임한 상태이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강경파와의 갈등과 건강상의 문제로 2기 행정부 인선 때 빠질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2기 행정부 때는 협상파가 득세하기보다는 오히려 딕 체니,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그리고 존 볼튼 등 초강경파가 주도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망과 분석에 기초할 때, 2기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최악의 시나리오란 전쟁의 발발이나 북한의 핵무장은 물론이고, 강압적인 수단에 의한 북한의 붕괴, 혹은 이 둘 가운데 하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팽배해지는 상황의 지속을 말한다.

막강해지는 미국의 군사력

일단 확실한 것은 2기 부시 행정부는 1기 때보다는 훨씬 강화되고 유리한 형태의 대북한 군사력 사용 옵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2기 때는 주한미군을 북한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시키게 되고,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한 미사일방어체제(MD)를 남한, 일본, 미국 본토에 배치하게 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적지 않게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주한·주일미군의 전력 증강과 신무기 개발 및 배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 및 신속한 전쟁 수행 능력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대북한 선제공격 계획인 '5026', 북한 붕괴시를 대비한 '5029', 그리고 북한 군사력의 소진 및 도발을 유도하는 '5030' 등이 상당히 구체화될 것이고, 일본을 한반도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형태로 미일동맹도 개편해 나갈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 등 이른바 "깡패국가(rogue state)"와 테러집단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보유를 방지하기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등 군사적 압박과,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지표관통형 소형 핵무기 등 최첨단 공격 무기의 개발 등도 가속화될 것이다.

1기 때와는 판이하게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MD와 PSI 등 미국 주도의 군사체제에 한국이 참여해줄 것을 요구하는 압박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미국 군사력의 증강이 곧바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 반면에, 미국의 군사력이 이처럼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평화적 해결이 물 건너 간다면, 결국 미국은 군사력 사용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현대화도 부시가 그려놓은 큰 그림 아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시기를 일부 조정할 가능성은 있지만, 당초 계획대로 2005년을 전후해 1만2500명을 감축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오산·평택으로 집결 및 전력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의 배치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제력에 걸맞게 국방비를 늘려 한국 방어 작전에서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대포병 작전 등 주한미군이 맡아온 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기는 것도 가속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란이냐, 북한이냐?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이라크 등 중동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일단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자유선거와 헌법제정을 통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가 '친미' 성향이 되도록 대규모의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에게 추가 파병 요청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한국군의 임무 역시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 및 테러집단 제거로 요청해올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한국이 파병을 해준다는 것 자체를 중요했지만, 재선에 성공하면 한국의 실질적인 도움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가 재선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는 부시가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에 대한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이란은 2004년 초에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해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무리한 요구와 전력생산용 핵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던 유럽연합의 약속 위반을 문제삼으면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2004년 7월 미국 의회의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란이 알 카에다와 연계를 갖고 있었다고 발표해,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공격 목표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2004년 7월 미국 하원은 이란의 핵무장을 억제·좌절·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모든 수단"을 미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376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고,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란 내부의 폭동을 유발하는 등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기 부시 행정부 때 "이라크냐, 북한이냐"는 논란이, 2기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에는 "이란이냐, 북한이냐"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중간의 뒷거래 가능성은?

미중 관계 및 양안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전쟁 억지, 그리고 북한의 붕괴 방지를 대 한반도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왔던 중국은 이 세 가지 목표의 동시 유지가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팔·다리를 걷어붙인 상황이다.

그러나 결국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지고 부시 행정부가 재선에 성공해 북한 체제 제거를 결심할 경우,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도 불사하면서 끝까지 북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2008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대만의 독립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붕괴시 중국의 직접적인 우려 사항, 즉 대량 난민의 중국 유입 문제와 주한미군의 북상과 관련해서, 미국은 난민 수용소 건설 등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주한미군을 3·8선 이북에 주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중국에 해주는 한편,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시 한국에 압력을 행사해 간도 영유권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도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이러한 뒷거래를 하면, 한반도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미중 사이의 이해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양안 문제이다. 이는 한반도가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는 지정학적인 의미와 함께, 미국 주도의 한미동맹 재편이 이뤄지면 한국 역시 미중간의 충돌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재선에 성공할 경우 양안간의 무력 충돌시 주한미군을 차출할 수 있도록 기지 재배치와 임무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한국을 MD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물론 중국을 자극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이 중국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북아의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양안 문제가 시기적으로 중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시가 재선할 경우 임기인 2005-8년 사이에 중대한 고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튼튼히 해야 한다며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주었던 노무현 정부는 부시 2기 때에도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착오는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가 되면서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중간의 충돌시 한국도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튼튼히 한다는 한미동맹이 뜻하지 않게 중국을 적대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이와 같은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의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한국은 엄청난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돕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위험에 빠지고 이에 따라 북핵 문제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고, 반면에 미국을 도와주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남북한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야 할 공산이 크다. 남북한이 2000년 대선 때처럼 미국의 대선 결과를 기다리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시의 재선에 대비한 '예방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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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8-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네트워크(http://www.peacekorea.org/)에서 퍼왔습니다.
 

 

한국인 과학자 ‘23번째 門’ 박테리아 첫 발견

 

한국인 과학자가 바다눈을 만드는 과정에 관여하는 신종 미생물을 발견, 새로운 문(門·Phylum)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이번에 발견한 미생물은 150년의 미생물학 역사에서 23번째 문이며 한국 과학자가 분류체계의 2번째 상위단계인 ‘문’에 해당하는 큰 계통학적 가지를 발견한 것은 처음이다.

원핵생물계통분류국제위원회는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미생물학과 조장천 박사(35)가 발견한 ‘렌티스페레’를 박테리아 계(界·Kingdom) 아래 23번째 문으로, 렌티스페랄레스를 69번째 목(目·Order)으로 인정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내용은 이 위원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ijs.sgmjournals.org)의 ‘98번째 공인 리스트’에 올려져 있다.

조박사는 2003년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 뉴포트 앞바다에서 점액성 물질을 생산하는 새로운 미생물을 발견,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라고 이름붙였다. 우리말로는 ‘거미줄처럼 생긴 점액성 물질을 분비하는 둥근 모양의 세균’이라는 뜻이다.

조박사는 이 미생물의 DNA 정보를 분석한 결과 진화의 정도와 계통의 유사도가 기존의 문들과 현저히 달라 ‘렌티스페레’라는 새로운 문으로 명명했다. 한국 과학자가 종이나 속 단위의 미생물을 발견한 적은 있지만 문을 새로 만들어낸 것은 처음이다.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는 바다눈(심해에서 눈처럼 내리는 하얀 부유물질)의 기원으로 알려진 투명한 고분자물질(TEP)을 분비하는 특이한 미생물이다. 바다눈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사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박사는 세균이 바다눈 형성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한편 조박사는 2003년 7월에도 버뮤다 해역의 바닷물에서 ‘파벌라큘라 버뮤덴시스’를 발견해 새로운 목으로 인정받은 것을 비롯, 그동안 자연계에서 분리되지 않은 미생물들을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배양해왔다. 조박사는 서울대 미생물학과에서 미생물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1년부터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 김상종 교수(미생물학과)는 “이번에 발견한 렌티스페레 문과 조박사의 이름이 미생물학 교과서에 실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

- 계-문-강-목-과-속-종 생물분류체계 2번째 상위단계 -

‘門’이란 :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진핵생물, 박테리아(세균), 아케아(고세균)의 3가지 계로 분류된다. 계 아래는 문-강-목-과-속-종으로 이어진다. 박테리아 계에는 23개의 문, 69개의 목, 6,500여개의 종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동물과 식물은 대부분 진핵생물계에 속한다.

 

‘바다 눈’ 형성 세균역할 첫 규명

 

지구는 ‘미생물의 행성’이라고 일컬을 만큼 수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 자연계에는 5만여종의 미생물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미생물학자들이 밝혀낸 세균은 6,500여종뿐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4만3천여종이 아직도 자연에 묻힌 채 과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학 조장천 박사의 연구는 ‘고효율 배양기법’이라는 새로운 배양법을 이용, 자연계에서 분리하기 어려웠던 난배양성 세균을 찾아내 새로운 ‘문’을 만들어냈다는 의미가 있다.

◇어떻게 찾아냈나=조박사가 속한 오리건대학 분자진화학연구실은 멸균한 바닷물을 이용해 미생물을 키울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을 했다.

1880년대 세균학의 아버지 ‘코흐’가 영양소가 풍부한 배지를 이용해 콜레라균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이후 미생물학자들은 100년 이상을 평판영양배지에서 세균을 배양해왔다. 그러므로 ‘영양소가 많아야 세균이 잘 자란다’는 인식을 버리고 자연환경과 유사한 배지를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

조박사는 멸균한 바닷물로 여러개의 배지를 만들고 태평양에서 떠온 바닷물을 희석해 배지에 넣었다. 바닷물 1ℓ에는 1백만마리의 미생물이 있으므로 적절한 농도로 희석하면 배지 1개에 세균 1마리씩을 넣을 수 있다. 이들 세균을 키운 후 DNA를 추출, 기존의 세균들과 비교한 결과 DNA(16S 라이보좀) 유사도가 약 20% 차이가 나는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를 발견한 것이다.

조박사는 지난 6월 환경미생물학계의 권위지인 ‘엔바이런멘탈 마이크로바이올로지’에 ‘점액성 물질을 생성하는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박테리아 계 렌티스페레 문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연구 내용을 처음 발표했으며 한달여 만에 국제적인 분류위원회에서 공인받았다.

조박사는 세계적인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버뮤다 해역의 바닷물에서도 새로운 미생물을 분리해 ‘파벌라큘랄스’라는 목을 새로 등록(국제계통진화미생물학지, 2003년 7월)했다.

또 태평양 연안에서 아직까지 배양이 되지 않은 신종 미생물인 OMG그룹의 44개 균주 배양에 성공(응용환경미생물학지, 2004년 1월)하는 등 환경미생물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생태학적 의미=깊은 바닷속을 카메라로 들여다보면 마치 육상에서 눈이 내리는 것처럼 새하얀 물질들이 떨어진다. 이를 바다눈(marine snow)이라고 하는데 표층에 생성된 유기물질을 깊은 바다로 내려주어 해양생태계 내에 영양물질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박사는 이번 논문을 통해 바다눈 형성에 세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조박사는 렌티스페라 아라네오사를 멸균한 바닷물에서 배양해 바닷물이 점액성을 띠며 끈끈한 액체로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균에서 나온 끈끈한 물질들이 거미줄 모양으로 연결되면서 매트릭스를 형성한다.

조박사는 “바다눈에는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물질(TEP)이 함께 있는데 어떤 경로로 형성되는지 알지 못했으나 이번 연구로 세균이 바닷속의 TEP 생성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

 

학계 “생태학적 가치 알아내 더 값져”

 

미국 오리건주립대학 조장천 박사의 연구 업적은 지난 6월 대구에서 열린 한국미생물학·생명공학회에서 일부 발표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학계에서는 ‘미생물 분류와 해양환경미생물의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연구 성과’라고 평가했다.

미생물유전자은행사업을 담당해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배경숙 박사는 “한국 과학자가 종이나 속 단계의 미생물을 발견한 적은 있지만 문을 새로 만들어낸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분류체계에서 ‘문’은 ‘계’의 바로 아래 단계로 현재 미생물 분류학자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는 가장 큰 단위인 셈이다. 서양 학자들이 만든 전체 생물분류체계 안에서 한국 과학자가 붙인 이름이 ‘문’으로 올라간 것도 상당히 드문 일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볼 때 이번 연구는 해양미생물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양연구원 이홍금 박사는 “미생물 배양이 극히 어려운 해양환경에서 새로운 미생물들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신종을 찾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원의 확보라는 국가의 주요 과제로서 이러한 미생물 배양방법의 확립과 순수배양이 적극 추진되고 권장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박사는 “현재 국내 과학자들도 바다나 갯벌에서 많은 미생물들을 분리해내고 있다”며 “다양한 미생물의 발견은 새로운 생물 소재, 의약품 개발 등에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박사의 연구는 또 새로운 종을 발견한 것뿐 아니라 생태학적 가치까지 알아내 더욱 의미가 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 김상종 교수는 “한국 출신의 생물학자들이 분자생물학 연구에 몰리는 가운데 생태학 분야에서 이같은 업적을 내서 기쁘다”며 “네이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박사의 연구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든 것이므로 더욱 값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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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2004-08-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네요^^;
어렸을 땐 과학자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관심이 꽤 많았었는데 ㅋ
(어렸을때 과학자라는 꿈 한 번 안 꿔본 사람 있겠느냐만은...;;)
 

 

 

[시론] ‘폭력 악순환’ 누가 책임지나

 

작년에 나는 이라크에 있었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항공모함 위에서 멋지게 종전 선언을 했건만,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폭격에 무너진 것은 건물들만이 아니라 이라크인들의 삶이다. 전투가 끝나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난한 순서대로 무너진다. 예컨대 바그다드 변두리 ‘알 카마리야’ 주민들은 수도관이 낡아 수돗물이 간신히 나온다 해도 오염되어 끓여먹어야 하는데, 전쟁 이후 가스 공급이 끊겨 그럴 수마저 없으므로 이웃 마을에서 물동이로 물을 받아다 먹었다. 그런데 이웃 마을도 역시 가난하여 그 물마저 오염되었다 했다. 한낮에는 섭씨 60도에 육박하는 가혹한 더위에 그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목이 멘다. 물가는 몇 배나 뛰는데 가난한 가장들은 태반이 일자리를 잃었고 식구들은 전염병과 영양실조로 시름시름 쓰러진다. 전쟁은 무엇보다 반민중적이다.

-美깃발 아래선 모두 점령군-

전쟁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년 반이 넘도록 미군이 이라크를 재건하지 못하는 이유는 군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부 그레이브 감옥 고문’ 사건과 ‘팔루자 학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미군은 이라크인들을 위해 거기 있지 않다. 재건해야 할 이라크를 강압하고 해방시켜야 할 이라크 민간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군 깃발 아래 있는 모든 외국군은 점령군이요, 이라크인들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여러 갈래이고 그들 모두가 김선일씨를 살해한 ‘알 자르카위’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아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애국심이야말로 저항세력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며, 점령이 폭압적일수록 이들의 저항도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건축장비와 의료품을 싣고 갔다 한들 한국 파병군은 군대이며, 이라크에서 하게 될 일은 다름 아닌 이라크인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한 시인이 “전쟁의 책임이 히틀러 같은 호전적 정치인들에게만 있겠는가, 그에 동조하거나 그를 묵인했던 대중들에게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 과반수가 파병이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과반수가 우리나라 사정상 피할 수 없는 일로 본다고 한다. 그 과반수라고 호전적인 성품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평온한 일상을 원할 뿐. 그러나 그런 소박한 욕구의 대가가 전쟁이다. 이것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다. 이라크와 아랍 세계 전체의 증오와 보복으로부터 이제 대한민국 전 국민과 해외 동포들까지 안전할 수가 없다. 테러리스트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사정을 이유로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낸 횡포를 반성해야 한다. 그들도 사정이 있고 서구에 침탈당한 수십 년 동안 그렇게라도 항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야 무지무지 쌓였다. 이라크에 자원해서 간 파병부대 병사들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전쟁에 휘말려 들었고, 우리 땅이 바로 전쟁터가 되었다는 무서운 진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나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과연 정치인들은 어떤 책임을 질까. 히틀러가 2차대전 이후 독일 국민이 겪은 참담한 고난에 대해 무슨 책임을 졌으며, 미국 침공의 명분을 제공한 사담 후세인은 또 어떤가. 정치인이 자살하건 전범으로 처형당하건 개인적 불행일 뿐 전쟁을 겪은 국민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되지 못한다.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정권의 명백한 실책이되, 대통령이 실각한다 해도 그 실수는 무마되지 않는다. 파병을 부추기고 주장했던 언론들, 파병을 가결시켰던 국회의원들, 파병의 논리를 꾸민 이른바 국방 전문가들, 그들 중 누가 자신들이 야기한 폭력과 피의 악순환에 대해 책임질 것인가. 국가의 운명을 거머쥔 집권세력과 기득권층은 행운의 혜택은 제일 먼저 누리되, 국가에 닥친 불행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필경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서 빠져나갈 뿐. 책임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명분없는 파병 철회 마땅-

모든 인간은 평온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도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내가 평온하기 위해서는 남이야 그렇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결국은 국가간 전쟁으로 비화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은 국가라는 추상적 권력이 아니라 평온하게 살기만 바라는 너고 나고 우리다. 평화는 의지가 필요하다. 국가의 위험한 결정을 막아야 한다. 국가는 책임지지 못한다. 국민의 힘으로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을 되돌려야 한다.

〈오수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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