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정부, 토지강제수용권 100% 달라"

 

"개발이익 환수 말도 안돼", '봉이 김선달식 막무가내 요구' 파문

 

  재벌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에 대해 기업도시 건설시 토지 강제수용권을 100%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사업시행자가 총사업비의 25%를 자기자본으로 조달해야 하는 제한도 풀어주고, 개발이익 70% 환수방침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말해, '공시지가'라는 헐값으로 개인 땅을 강제수용해 남의 돈으로 도시를 건설한 뒤 이를 비싼 값에 분양, 천문학적 차익을 챙기더라도 이를 모두 기업 몫으로 인정하라는 '봉이 김선달식 요구'에 다름아니다.

  전경련의 '봉이 김선달식 요구'
  
  전경련 이규황 전무는 1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강봉균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역혁신-기업도시 정책포럼' 창립모임 겸 간담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이 전무는 우선 건설교통부가 마련한 기업도시특별법 상의 '토지협의매수비율 50% 규정'과 관련, "정부안은 기업도시 건설 대상토지의 50% 이상을 협의매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협의매수 과정에 토지수용 대상자들이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지가가 급등하면 사업계획 수립 등이 어려워지고 기업도시 건설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50% 협의매수 비율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개발이익 70% 환수' 방침과 관련해서도 "도시개발은 개발효과가 10~20년 이상이 지나야 나타나고, 미래에 실현되리라고 예상되는 불확실한 개발이익을 개발계획 수립단계에서 추정하기가 어렵다"며 "또한 기업은 장기간이 소요되는 기업도시 건설을 통하여 많은 위험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마련한 개발이익 70% 환수 방침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이 전무는 또 '사업시행자의 자기자본비율 25% 이상 규정'에 대해서도 "사업시행자의 지분을 제한하는 것은 민간사업자의 유동성과 자금동원 능력에 부담을 주고 다수의 컨소시엄 구성을 어렵게 한다"며 폐지를 요구했다. 그는 또 "기업도시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것이므로 출자총액제한제도, 신용공여한도제도 등의 규제는 기업도시 건설을 위한 투자의 가장 큰 제약요인이므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토지의 직접사용 의무비율'에 대해서도 "정부안은 사업시행자가 토지의 직접사용 의무비율을 산업교역형은 산업용지의 40%, 지식기반형은 산업 및 업무용지의 30%, 관광 레저형은 개발 가용지의 50%로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기업도시의 유형과 상황에 따라 개발용지를 신축성있게 사용하여야 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직접사용 의무비율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필요할 경우 기업이 도시개발후 100% 민간분양을 마친 뒤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파견근로제 확대 등 '노동특혜' 요구하기도
  
  이 전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업도시내에서의 파견근로제 확대 등 노동특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전무는 "기업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선 노동시장도 유연성이 강화돼야 한다"며 "근로자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하고 파견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파견근로제를 개선해야 하며, 쟁의 발생시 대체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체근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 "정부안은 지구지정후 2년내 실시계획 승인신청을 하지 않거나 실시계획 승인후 1년내 개발사업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지구지정을 취소하도록 돼 있으나, 개발구상 단계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됨을 감안해 지구지정후 5년이내에 사업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지구지정을 취소하도록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밖에 "정부안은 지자체와 투자기업이 공동으로 제안하되 지자체의 비협조나 주민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추진이 어려울 경우에만 민간 단독신청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기업도시 지정 제안은 민간단독을 우선으로 하고, 공동사업 여부는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마련한 기업도시특별법 자체가 엄청난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 전경련이 내놓은 추가요구는 한마디로 모든 국가 권한을 기업에게 위임하라는 것에 다름아니다. 과연 정부가 어디까지 전경련에 끌려다닐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박재한/기자


 

 

우리-한나라 "기업도시 특혜,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주자"

 

충청권 의원들 "수도권-충청권 배제 원칙도 깨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토지수용권 협의 매수비율 폐지, 개발이익 처리 자율권 등 한마디로 기업도시 건설시 '전면적 특혜 보장'을 요구해 온 데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부측에 "전폭 수용"을 촉구했다.
  
  이에 정부가 시민단체의 반대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하자, 이번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공을 국회에서 맡겠다"며 "의원발의로 기업도시 특별법 정기국회내 통과"를 공언하고 나섰다.
  
   여-야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주자"
  
  1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강봉균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20여명과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역혁신-기업도시 정책포럼' 창립모임 겸 간담회에서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은 "기업도시특별법의 모든 기조를 외국인 투자 유치를 기준으로 특혜라 할 만큼 혜택을 주고 기업 위주로 줘야 한다"며 전경련 요구의 전면 수용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개입해 성공한 정책이 없고 민간 섹터는 이미 정부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앞서 나가 있다"며 "모든 선택권을 줄 수 있는 한 기업에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최구식 의원도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 중에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준다는 말이 있는데 민간을 믿는 김에 좀 더 믿으면 좋겠다"며 재계 편에 섰다.
  
  최 의원은 "기업도시가 들어와 공공성을 해칠까 걱정한다지만 공익의 수호자인 지자체장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며 "기업도시의 당사자인 지자체와 기업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켜볼 것"을 정부측에 주문했다.
  
  이에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도 "선의를 갖고 되는 쪽으로 협의해 나가야 한다"며 "개발이익의 공익성 보장도 법규제 보다는 협의를 바탕으로 이뤄가자"고 제안해 개발이익 처리 방향을 법제화하지 말고 지자체와 협의하에 처리토록 해 달라는 전경련의 요구에 무게를 실었다.
  
  같은당 김종률 의원도 사회간접자본(SOC)투자에 소요되는 비용에만 출자총액제한을 제외토록 하고 있는 정부안에 대해서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개별적인 적용이 필요한 지 의문이다. 융통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혀, 투자금액 전체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적용 제외를 요구하고 있는 재계와 태도를 같이 했다.
  
   기업에 지역 선택 자율권 보장
  
  충청도 출신 의원들은 "지역 형평성 차원에서 기업도시 건설 대상에서 수도권과 충청권은 배제한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며 "지역 선택도 기업에 자율권을 줄 것"을 요구해 재계보다 한 발 더 나가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박상돈 의원(충남 천안을)은 "수도권과 충청권을 배제하면 기업들이 나머지 지역에 얼마나 희망갖고 투자할 지 의아하다"며 "정치적 논리로 지구가 결정될 경우 성공을 보장키 어려우니 기업에 지구 선택에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김종률 의원(충북 진천.음성)도 "개발집중지역을 대상에서 제한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신행정수도가 들어온다고 해서 충청권을 모두 배제하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며 정부의 입장에 불만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충북의 경우는 행정수도가 들어오는 충남과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 지역 선택은 민간의 자율에 맞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업의 자율적 선택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당 "기업도시 특별법 정기국회내 통과"
  
  이처럼 여야 의원들이 전경련 요구 수용을 적극적으로 촉구하자 난색을 표하던 정부쪽에도 변화가 엿보였다.
  
  강동석 건교부 장관은 당초 "전경련이 처음 기업도시를 제안해 왔을 때부터 정부는 노동유연성 문제와 환경규제완화에 대한 요구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밝힌 바 있고 토지 수용권의 경우에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오히려 과도한 특혜로 재벌에게 투기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며 전경련의 요구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의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강 장관은 "공청회 해 보니 지자체장들은 기업의 자율권을 좀 더 확대해도 된다는 열린 의견을 갖고 있었다"며 "노동-환경을 제외한 나머지 견해차이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공청회 등을 거치며 수렴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혀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이날 모임의 회장으로 간담회 사회를 맡은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은 "정부안도 있지만 여야 의원 공동 발의로 정기국회를 통과시키면 어떨까 한다"며 "여야가 협력아래 이번 국회 통과도 어렵지 않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강 의원은 "정부안도 기업도시에 대한 요구를 70% 정도 해결하고 있으니 전경련이 이 법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요구하기 보다는 이번 정기국회 중 통과를 목표로 80%짜리라도 만들어 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며 정부안과 전경련안을 중재하는데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이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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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0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련이 보기에 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울까 ...

릴케 현상 2004-10-02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서버라
 
 전출처 : 메시지 > 조선일보, '자세'를 잃다.

조선일보, ‘자세’를 잃다

 

 

내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는 줄곧 우회전해 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보수층은 그 왼쪽 깜박이마저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가 보다.

하긴 왼쪽 깜박이가 계속 켜져 있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좌회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진보진영에 속한다는 사람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보수층은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 보수층이 느끼는 불안은 과도한 것이다.

‘할 말을 하는 신문’이라 주장해온 <조선일보>가 막말하는 신문이 된 것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7월 말에 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사설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보면서부터다. “이제 이 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우리의 아들 딸들은 조국의 부끄러운 모습만 집중적으로 교육받고, 6·25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사람 목숨을 앗아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활동을 학습하고, 미국 등의 동맹국이 추악한 나라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의 ‘신(新) 국민’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 나라 학교는 ‘인간개조(改造) 공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시쳇말로 ‘오버도 한참 오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8월 초에는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을 문제 삼다가 우스운 꼴을 당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둔한 기사라는 걸 깨달았음을 자인하는 듯이, 며칠 뒤에는 “NGO에 대한 국가지원은 정당하며 우리의 경우 액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론을 실었다. 코메디 아닌가.

국보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조선일보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다시 꺼내 읽은 것 같았다. 현재를 내전의 전야라 우기고 우익 총궐기를 외치는 듯한 글귀들이 지면 여기저기에 등장했고, 급기야는 전두환 빼고는 얼추 다 모인 것 같은 5공인사 중심의 선언문을 70, 80년대 독재에 항거하며 발표되었던 시국선언의 전통에 연결하는 창의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8월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과거사 진상규명법이 “나라 전체가 남의 족보를 뒤지고, 자기 족보를 점검하느라 고문서 더미를 헤치고, 때론 이 나라를 강탈했던 일본 국회의사당 서고까지 찾아가 일제의 헌병 명단과 순사 명단을 챙기며 6·25 부역자 재판기록을 다시 읽는 이 시대착오의 참담한 국가파괴 행위”라고 몰아부쳤다. 그리고는 9월 들어서 그들이 그려준 가계도만 보아도 가족사적 아픔이 적지 않았을 김희선 의원 집안의 내력을 대문짝만하게 기사화함으로써 자신들이 과거사 진상규명법을 비판하며 예단했던 폐해를 몸소 실천하기까지 했다.

이런 조선일보를 두고, 증오심이
기승을 부려 예전의 교활함과 노회함을 잃었다고밖에는 달리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의 조선일보는 신중함에 더해 신속함을 가지고 있었고 의뭉스러움과 독살스러움을 겸비했으며 그 양면을 내보임에 있어 솜씨 있고 자재로웠다. 그러나 지금 조선일보는 포효하고 있기는 하되 덫에 걸린 짐승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스탠스를 잃었다.

조선일보의 이런 허둥거림은
오래 전 예고된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80년에 ‘올인’했던 전두환 독재정권이 87년 민주항쟁으로 물러났던 바로 그때 조선일보의 정오는 이미 지나 버렸다. 89년 베를린 장벽과 함께 냉전이 무너져 내리고 더불어 자신을 나라를 세운 세력으로 참칭할 수 있게 해준 반공이라는 깃발이 세계사적 문맥을 상실했을 때, 조선일보의 시계는 늦은 오후 시간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호적인 국가권력에 이어 의회권력마저 잃게 되자 오래된 불안과 초조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자라났고 그것이 지금 조선일보가 내비치는 흥분과 공격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렇게 공격성을 무분별하게 표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몰락의 진행을 증거한다고 할 수 있다.

김종엽/한신대 교수·사회학 [한겨레신문, 200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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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한국의 출판기획자>(15)도토리 심조원 대표

출판코너를 채우기 위해 그간 나름대로 찾다보니 "문화일보"에서 괜찮은 기획을 진행했었더군요. 기획 제목은 "한국의 출판기획자를 찾아서"인데, 출판에 있어 기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책을 구해 읽다보면 작게는 단행본 한 권의 기획, 크게는 총서나 전집과 같은 시리즈 기획물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편집을 "선택과 배제"의 원칙에 따른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는 직접 글을 써서 자신의 의중을 전할 때도 있지만 이렇듯 "선택과 배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의중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현대 출판 100여년의 역사에서 '기획'은 가장 뒤늦게 발견된 분야이기도 합니다. 70년대말에야 비로소 기획자란 이들이 등장한 셈이니까요. 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기획이 무엇인가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기획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이 시리즈를 읽다보면 저절로 문리가 트이지 않을까 하는 궁리를 하면서 새로운 시리즈의 퍼 나르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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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출판기획자>(15)도토리 심조원 대표
 
 
 
오승훈기자 oshun@munhwa.co.kr 
 
“자네 시골가서 6개월 동안 할머니들과 얘기나 하다가 돌아오지.” 89년 겨울 서울 합정동 보리출판사 사무실. 입사원서를 들고 찾아온 스물네살의 신출내기 편집자 심조원(37·현 도토리 대표)씨에게 윤구병(57·현 변산공동체 대표)사장은 다짜고짜 낙향을 엄명했다. “듣기만 하라”는 주문도 보태졌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뒤 을지로 출판동네를 전전하다 “배우고 싶습니다”라며 입사를 간청했던 심씨는 도리없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내려가야 했다.

동네 할머니들의 옛얘기와 넋두리를 듣고, 녹음까지 했다. 심씨는 ‘유배’같은 생활을 하면서 윤사장의 뜻을 헤아렸다. 사회변혁이 지식인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했던 시절, 그때까지 지식인은 민중보다 먼저 말하고 가르치려 했다. 하지만 바른 관계는 민중이 말하고 지식인은 그것을 담아서 전달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출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자각토록 한게 윤사장의 의도였다. 외적 성장에 비해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어린이 출판분야에서 자연생태·환경 그림책의 전문기획자로 입지를 다진 심씨. 출판인으로서의 그에 대한 ‘담금질’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88년 설립한 보리출판사는 한국적인 어린이 그림책을 추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 책 시장은 위인전과 외국서적 번역물이 주류였고, 전집류의 방문판매에 의존했다. ‘천사주의’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마냥 예쁘고, 환상을 심는 그림책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움트고, 어린이 교육이 갖는 중요성과 ‘국적있는’ 어린이 도서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출판이 모색된다. 보리출판사는 그런 새 흐름을 주도했다.

심씨는 보리출판사가 선보였던 ‘올챙이 그림책’(91년 완간)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어린이 책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는다. “미혼인데다, 특별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품도 아니었는데 새롭게 어린이들을 보기 시작한거죠. 집단화가 안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대상이지만 그들의 세계에도 논리가 정연하고 다툼에도 이유가 있지요.” 어린이에게 한국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다룬 그림책을 보여주고 싶었던 심씨는 ‘달팽이 과학동화’(전 50권)를 만들면서 그 구상을 현실로 옮겨갔다.

우선 일러스트레이션이 달라져야 했다. 자연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그림이 아이들의 인지구조에 맞도록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 세밀화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각종 식물, 동물 도감이 많았지만 그림에 느낌이 없거나 외국 것을 베낀게 태반이었던 실정에서 ‘이쁜 그림’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담은 표현기법을 개발해야 했다.

접근 방식도 달라야 했다. “당시 식물도감에는 대개 우리가 먹는 벼, 보리가 없었어요. 또 동물도감에는 한국인과 가장 친숙한 개, 돼지가 없고 코끼리, 사자, 기린 등 열대동물들만 가득했어요. 아이들이 낯선 자연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죠.” 심씨의 문제의식은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자연을 담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품을 파는 일이 시작됐다. 자동카메라를 들고 산, 강을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찍어댔다. 통바지와 고무신 차림으로 1주일에 3~4일은 ‘출장중’이었다. 한겨울 계곡을 넘다 폭설을 만나기도 하고, 모기알을 떠다 사무실에서 키우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특히 그림과 글쓰기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은 기획자의 주요한 몫이었다. 그림책의 종류에 따라 글의 역할이 다르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림을 보는데 글이 방해되면 비켜줘야 해요. 그림으로 모자라면 글이 받쳐줘야 하지요. 글은 그 자체로 그림이 되기도 하고, 때론 캡션(사진설명)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겁니다.” “내 글로 모두 보여줘야 한다”는 작가들을 설득하는 일, 아이들의 언어발달 과정을 고려한 문장을 어른 작가들이 이해하는 것 등이 난제였다.

독특한 것은 집단창작 방식이었다. 심씨는 이를 ‘우르르 시스템’이라고 지칭했는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듯 경험을 축적해야 하는 상황인터라 난제가 등장할 때마다 함께 머리를 맞대야 했던게 출판기획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96년에는 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심씨, 화가 이태주씨 등이 편집기획자집단인 ‘도토리’를 설립해 보리출판사에서 독립했다. 그런 역량을 모아 ‘보리 아기그림책’(5세트·1994년)에 이어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1997년),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1998년)을 내놓았다.

이들은 기존의 도감과 형식부터 색달랐다. 학문적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생활에서 서로 연관성을 가진 주제별 분류법을 시도했다. ‘보리 아기 그림책’은 10만 세트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가 됐고, 식물도감과 동물도감은 각각 3만부 정도 팔렸다. 이달초에는 제작하는데 6년이 걸린 ‘나무도감’이 출간됐다. 조만간 ‘곤충도감’도 선보인다. 생태그림책 ‘갯벌에 뭐가 사나 볼래요1’을 시작으로 갯벌살림, 산살림, 들살림 등을 주제로 묶어 약 50여권을 출판할 예정이다.

심씨가 기획출판한 책은 약 100여권. “딱히 히트작이랄 건 없지만 모두가 판을 거듭하며 살아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심씨의 말처럼 어린이 책시장에서는 스테디셀러가 중요하다. 그는 어린이 책시장에 대해서 “출판시장의 의미를 공간에서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 당장 보이는 시장보다 멀리 내다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1년에 10만부가 팔릴 책을 만들게 아니라 1000권씩 10년 동안 팔리는 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이 출판의 특성상 육아일기를 쓰는게 의무이고, 신입사원 모집때는 ‘시골출신 우대’라는 이색 조항이 추가되는 도토리. 현장취재를 책에 반영하고, 박제화된 자연이 아니라 생활과 교류하는 오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편집기획원칙은 도토리 기획의 차별화를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다.

<오승훈 기자 oshun@munhwa.co.kr>

<문화일보  2001/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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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보도사진윤리) + (수니나라님 고맙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보도사진윤리를 주제로 꽤나 진지하게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비폭력집회 도중 백골단이 쳐들어와 참가자들을 죽일듯이 팰 경우 이를 사진으로 찍어 널리 폭로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일단 학생을 구하는 게 맞는가. 당시 우리는 일단 얼른 사진을 찍은 뒤 학생을 구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라며 냉정하게 따지던 선배의 안경이 지금도 오싹하게 기억난다.

나로선 보도와 인명(혹은 인간존엄)중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설 기회가 아예 없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질뿐 도저히 해답을 못내겠다. 하지만 수니나라님이 보내준 고마운 공짜표로 세계보도사진전을 가본 소감은 영 씁쓰름하다.

참혹한 전쟁을 고발한다는 명목으로 라이베리아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체는 곳곳에서 거리낌없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뿐인가.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부모와 형제는 물론 11명의 친척이 죽고 본인은 상반신만 남은 병신이 되었다는 것을 사진으로 말하기 위해, 어린 알리 이스마일의 가엾은 몸뚱아리를 가리고 있던 모포는 거리낌없이 제쳐졌다. 남편의 학대를 피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한 마리아의 사진은 또 어떤가. 초점이 흔들린 사진결과를 보건대, 전신화상으로 얼룩진 나체의 몸뚱아리와 얼굴을 가리기 위해 그녀가 노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충격적인 사진들은 전세계적으로 파장을 불렀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진들 모두가  '보도'를 우선시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과연 누가 사진기자에게 촬영을 거부한 사람의 사진을 전세계에 순회전시할 권한을 주었는가. 보도를 명목으로 초상권 고소의 위험이 없는 사체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도 되는가?

이는 서방의 사건을 다룬 보도사진의 예와 비교해볼 때 더욱 문제시된다. 가령, 미국에 불어닥친 초거대 허리케인의 피해로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쳐야했던 사건을 보도한 사진을 보자. 단 1명의 사체도, 부상자도 발견할 수 없다. 사진속에는 아름답기까지한, 장엄한 자연의 순간이 담겨있을 뿐이다. 전시회에는 사진이 없었지만, 미국의 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었던 보도사진을 기억하는가. 교실벽에 박혀있던 총알, 혹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흐느끼는 친구의 사진이 실렸었지, 총기난사후 자살한 주범의 사체나 비명횡사한 급우의 현장사진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라이베리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이 나라들은 서방세계에 속하지 않는 타자이며, 감히 국제사진기자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서방기자들은 고소당할 염려없이, 상대적으로 사진을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고민을 덜 하면서, 보다 충격적인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난 서방기자들 개개인의 윤리의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수십통의 사진중 단지 한 장만이 보도될 수 있다고 할 때, 그러한 사진이 널리 알려지고, 순회전시되고, 사진집에 수록되고, 상을 받을 수 있는 배경에도 서구우월주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니나라님, 인사가 너무 늦었죠? 님덕에 정말 좋은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전시회에 갔었으나 그동안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페이퍼에는 전쟁 사진의 참혹함만을 끄적였지만, 스포츠 사진이나 인물사진, 자연사진 등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고, 수니나라님 덕분에 참으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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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말]

 

 

마이크로소프트 아성 무너지나

모질라 불여우 1.0, 100시간 만에 100만 다운로드 돌파

 

이정환 기자 blue@digitalmal.com

 

마이크로소프트 독점 왕국의 아성이 무너지는 것인가. 최근 1.0 미리보기 판을 출시한 모질라 재단의 대안 웹 브라우저, 불여우(파이어폭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9월 14일에 첫 선을 보인 불여우 1.0 미리보기 판은 출시 6일째 되는 날에, 시간으로는 100여시간 만에 다운로드 횟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첫날 31만2천명이 이 프로그램을 내려받은데 이어 22일까지 모두 150만6200명이 불여우 쓰기 운동에 동참했다. 당초 모질라 재단이 공언했던 10일 100만 다운로드 목표를 일찌감치 넘어선 셈이다. 이런 속도라면 10일 동안 200만 다운로드도 가능할 전망이다.

불여우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계보를 잇는 100% 무료 프로그램이다. 넷스케이프가 아메리카온라인에 인수됐다가 지난해 8월 결국 독립해 나오면서 불여우로 이름을 바꾸고 소스 코드를 모두 공개했다. 소스를 공개했다는 건 프로그램의 내부구조가 모두 공개돼 있어 누구나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고쳐쓰거나 무료로 배포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불여우를 개발하고 있는 모질라 재단은 100%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재단이다. 60여명의 개발자와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글 불여우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근무하고 있는 윤석찬씨를 비롯해 이정민, 박상현, 신정식씨 등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불여우가 주목받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여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불여우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비교할 때 속도나 안정성, 보안 등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웹 사이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 돼 있어 불여우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페이지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1.0판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호환성이 크게 강화했고 라이브 북마크 기능과 비밀번호 암호화 기능 등이 추가됐다. 라이브 북마크는 RSS(웹 페이지 정보 수집, Really Simple Syndication)를 제공하는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오른쪽 아래 상태 막대에 아이콘이 나타나는 기능이다. 즐겨찾기에 추가하면 새로운 글의 목록을 읽을 수 있다. RSS를 지원하는 웹 브라우저는 불여우 1.0판이 최초다.

비밀번호 암호화는 관리자 암호를 입력해야 암호 자동입력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여러명이 쓰는 컴퓨터에서 유용하다. 검색도 편리해졌다. 검색어를 입력하면 페이지 안의 모든 검색어를 한꺼번에 표시해주는 기능도 있다. 보안이 필요한 페이지에 접속할 때는 주소창이 밝게 표시되는 기능도 있다.

이밖에 이미 0.9판 때부터 제공됐던 팝업 창 차단 기능과 탭 브라우징, 검색 툴 바 등도 불여우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용량이 4.5메가바이트로 작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 훨씬 빠르다는게 가장 큰 강점이다.



정보기술 전문 잡지'이위크(EWEEK)'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석달동안 1.8% 줄어들어 현재 93.7%에 이른다. 불여우는 1.7% 늘어나 5.2%에 이른다. 역시 정보기술 전문 웹사이트 '시넷'에 따르면 이 사이트 방문자 가운데 불여우 사용자의 비율이 지난 1월 8%에서 9월 둘째주에는 18%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의 비율은 84%에서 75%로 크게 떨어졌다.

불여우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지난 7월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보안 결함이 발견되면서 부터다. 모질라 재단의 대변인, 바트 디크램은 "불여우 열풍은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디크램은 "일시적인 현상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가 계속될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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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9-2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이 좀 거창하긴 한데,
혹시 모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