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엔 영주권, 숙련노동자는 강제추방?”
이주노동자 투쟁, '영주권 논의'로 옮아가나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7월 29일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저지를 위한 목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약 20여명의 평등노조 소속 해고노동자와 학생들이 모여 정부의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에 항의하고, 그들에게 영주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6월 말 현재, 불법체류자 수는 16만 7천명으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5만 명 가까이 늘어난 상황. 정부는 8월 17일 실시되는 고용허가제를 앞두고 장기체류자 수를 줄이기 위해 고심 중이다.

   
▲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집회

그러나 몇몇 시민단체나 노동단체 등은 "5년 이상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해 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만큼, 이들 장기체류자에게 노동비자를 발급하거나, 시민권(영주권)을 부여하는 등 노동자로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채 불안한 도피생활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한국사회 내부로 편입시키는 것이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을 위해서도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은 "17만에 이르는 장기체류 노동자들을 무조건 추방한다고 해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오늘처럼 자신들의 집회에조차 참여할 수가 없다. 밖에 나서기만 해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잡혀가기 때문"이라 말했다.

이주노동자, '인간사냥' 당할까봐 집회에 참석 못해

그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행태를 '인간사냥'이라 묘사했다. 현행 제도 하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입국 3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 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오면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하지만 임 위원장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 돈으로 수천만 원을 들여 겨우겨우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또다시 빚을 내서 재입국하라는 것은 사실상 영구추방이나 마찬가지다. 장기체류자들을 보면 7∼8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한 사람들도 많다. 사실상 한국 노동자나 마찬가지다. 한국경제발전에 공헌한 숙련노동자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 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

집회에 참석한 여우성 씨는 해고노동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고도 복직이 안돼" 평등노조에서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민주노총에 속한 대형사업장 노동자가 아니면 억울하게 해고당하고도 제대로 복직하는 경우가 드물다. 막다른 길에 그대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여 씨는 이주노동자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같은 노동자이니까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들 해고노동자들 이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아닙니까. 미조직 노동자들은 가장 소외받는 노동자들입니다. 보호해줄 노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라도 이주노동자들을 적극 엄호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회차량의 마이크를 잡은 한 활동가는 '이주노동자에게도 영주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투기자본가들이 3년간 50만달러 이상을 한국에 투자하면 영주권이 주어집니다.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10년 일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을까요? 투기자본이라도 영주권을 주는데, 왜 산업현장에서 일한 노동자한테는 영주권을 주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3년간 50만 달러를 투자하는 투기꾼 보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큰 사회적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투기꾼들은 자신이 이익을 남기고 돈을 빼내서 이 땅에 나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투기자본가들에게만 영주권 주는 건 부조리"

사실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반대하고, 5년의 시한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사업장 이동의 자유 등을 주장해 왔지만 영주권이라는 단어를 꺼내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 소장 박천응 목사가 최근 이주 노동자의 '시민권'을 제기한 바 있었다.

   
▲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집회.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영주권을 거론하지 않지만, 최근 검토를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정정훈 변호사는 '이주노동자의 시민권-법률적 문제에 대한 시론적 검토'라는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국적취득(귀화)보다 영주권 취득이 더 쉬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영주권 취득이 귀화보다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고용허가제는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를 사회적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차별적 시각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며, 미숙련 노동자를 양산하여 질적인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을 원하는 기업계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미숙련 노동으로 인한 산재발생율의 증가 및 불법체류를 유인하는 요소로 작용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 변호사는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를 숙련노동자로서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결론맺는다.

이주노동자의 영주권 부여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이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국제사회를 보더라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 전체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 사무소

 

2004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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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혐오하는 사회
     
연쇄살인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

 조이여울 기자
 2004-07-26 08:32:51


지난 한 주는 고통스러웠다. 딱 일주일 전, 연쇄살인범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가 <일다>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묵었던 곳이 바로 이 근처가 아니냐는 문자 메시지 등을 받고서 기사 마감을 하던 상근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새벽까지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두려움과 분노로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노인과 여성들을 상대로 살인행각을 벌여놓고 자랑스럽게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과 ‘여성혐오’를 논하는 살인자의 태도와, 그를 뒷받침해주기에 급급한 언론의 보도행태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록 손을 쓰지 못하고 있던 경찰 행정력에 대한 불신과 ‘엽기살인’이라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뭇 남성들의 시선,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나보다도 훨씬 더 공포에 떨고 있을 ‘매매되는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갑갑함이 한데 겹쳤다.

‘여성들의 죽음’은 너무나 가볍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사건은 얼마든지 다르게 포장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십여 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이 떠올랐다. 소위 ‘부유한 자’에 대한 계획적인 살인사건이자, 인육을 먹는 등의 잔인한 사건으로 알려진 ‘지존파’ 멤버들의 발언과 행각은 놀랍게도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어필했다. ‘빈부 격차’가 심각한 사회 부조리를 거론하면서 이들을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다.

일각에선 살해 당한 피해자가 알고 보면 그렇게 부유한 자가 아니라는 식의 소극적인 반격을 했다. 그러나 당시 누구도 이들이 자신들의 살인 시스템을 ‘시험해보기 위해’ 살해 명단에 없는 한 여성을 강간하고 죽였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들의 맹목적인 살인에 절대로 면죄부를 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주위 분위기는 동정론이 우세했다. 게다가 감옥에 있는 살인범을 그의 어머니가 찾아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여론이 생기는 등, 내 기억 속에 ‘지존파’ 사건은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괴로웠던 일로 새겨져 있다.

십여 년이 지나 맞닥뜨리게 된 연쇄살인 사건과 이를 둘러싼 여론은 그 때보다도 더 큰 공포와 분노, 절망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고 이혼 경력 등으로 인해 한 여성에게 청혼을 거절 당한 것이 ‘여성혐오’의 동기이자 살해동기라는, 말도 안 되는 살인범의 주장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읊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여성들은 함부로 몸 놀리지 말고, 부유층은 각성하라”는 살인범의 말을 논평도 없이 전달해주는 언론에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남성이 ‘부르면 그 장소로 가야 하는’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대책 없는 위험한 실상에 절망감을 느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론에서 ‘부유층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이 문제이며, 살인범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시키려 한다’는 정도를 짚었다는 점일까. 그러나 살인범의 자작시와 그림을 보여주며,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살인마'의 가슴에 무엇이 물결쳤던가를 '증언'한다” 등의 언급을 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진정 범인이 사랑에 목이 말라서 노인과 여성들을 살해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

연쇄살인범이 노인과 여성들을 살해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죽이기 쉬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도방을 통해 매매되는 여성들은 익명을 보장 받으며 얼마든지 유인해낼 수 있고, 대부분 가족 등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사라진다 한들 누구도 찾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실종신고를 해도 경찰이나 검찰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집단이기 때문에 범행대상으로 삼기엔 ‘너무나’ 쉽다.

세상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선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불만을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터뜨리는 이들과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도 불합리하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분노로 인해 옆집 여자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남자, 어른의 꾸지람에 대해 앙갚음을 하려고 그 집 어린 딸을 때려 죽인 소년 등을 보며, ‘가족사랑’ 타령을 하는 언론과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가장 취약한 집단이 희생양이 되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가. 힘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범죄가 어떻게 정당화되거나 동정 받을 수 있는가.

여성혐오의 실체가 무엇인가

이번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보도나 이야기들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여성혐오’라는 단어다. 사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의 ‘여성혐오’는 '성차별'의 다른 이름이다. 수많은 남편들이 아내를 쥐어 패고 있으며, 더욱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매매하고 학대하고 강간한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자유조차 없다. 아내폭력, 성폭력, 성매매로 대변되는 이 같은 대 여성폭력들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실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범인의 살인행각에 대해 ‘여성혐오’를 논하는 맥락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치 ‘여성혐오’가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듯이, 때로는 정당방위라도 되듯이 언급하고 있다. 살인범이 ‘여성혐오’를 할만한 근거가 있다는 식이다. 가해자의 정신병적 기질이 확인되지 않는 한, 살인행각에 대해 ‘여성혐오’라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범죄를 감싸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성들을 혼내 줘야 한다’는 살인범의 태도는 기실은 너무도 익숙한 레퍼토리다. 최근 속칭 “원조교제” 대상이 되는 미성년자 여성 4명을 강간한 혐의로 잡힌 남자와, 바로 며칠 전 노래방 도우미들만을 대상으로 33차례 강도, 강간을 한 일당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중 하나는 “자신이 여성들을 무려 122차례나 강간했지만 16건에 대해서만 징역을 살았다고 자랑하듯 진술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되는 여성들은 취약 계층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이고, 법과 정의가 이들을 포용해주지 않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를 논하는 강간, 살인 가해자들은 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자랑스럽게 표출한다. 아니, 사실 상당히 많은 남성들이 그 논조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한 인식의 근저엔 여성의 몸이 당사자의 것이 아니라 남성의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한 남성의 소유여야 할 여성의 몸이 여러 남성에게 공유될 때 해당 여성에 대해 적개심을 표하는 것이다.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오랜 기간 활동해 온 한 활동가는 “성매매 현장에는 늘 폭력과 강간이 뒤따른다”고 말한 바 있다.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희생되고 매매되는데, 한편으로 남성들은 이들 여성에게 ‘적개심’을 갖고 혐오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모순을 본 적이 있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는가. 지난 한 주간이 만약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한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살인범의 집에 일주일간 갇혀있었던 여성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그리고 나서 살인범과 그를 비추는 언론과 이번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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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3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오랜 기간 활동해 온 한 활동가는 “성매매 현장에는 늘 폭력과 강간이 뒤따른다”고 말한 바 있다.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희생되고 매매되는데, 한편으로 남성들은 이들 여성에게 ‘적개심’을 갖고 혐오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모순을 본 적이 있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는가. 지난 한 주간이 만약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한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살인범의 집에 일주일간 갇혀있었던 여성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이거야말로 타자의 부름, 타자의 얼굴이 아닐까,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고 호소하는, 명령하는 ...
 

 

[사설] 추한 정체성 논쟁 넌더리난다

 

1주일이 넘게 계속되는 정치권의 추한 정체성 논란이 넌더리가 날 정도다. 삼복의 무더위에 정치권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무 실체도, 실익도 없는 말싸움에 골몰하고 있는가. 그것도 정치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까지 갑론을박을 거듭하고 있는 정체성 논쟁에 직접 가세,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지금 정치전선은 과거 유신시대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미래로 나아갈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다”는 노대통령의 지적에 몇 사람이나 공감할지 의문이다. 유신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게다가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30년 전의 유신 망령을 끄집어내 국민들을 유신 대 반유신 세력으로 패를 갈라 어쩌자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제 의문사위 보고에서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의문사위를 공격하는 측면이 있다”고 야당의 정체성 시비를 정면 반박했다. 야당의 공세에 그런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야당이 정체성 시비를 벌이는 것 자체가 뜬금없는 짓이다.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자는 데 반대할 명분은 없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NLL사건’과 의문사위의 결정에 대해 야당 대표로서 얼마든지 문제제기를 할 만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시하면 그만이다. 의문사위가 독립적 기관인데 대통령이 일일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여야가 죽고살기로 싸우면 당내 리더십이 확립되고 떨어진 지지율이 올라가는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후안무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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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전집’ 50년 걸려 나왔다


△ (좌로부터)1.모스크바에 머물렀던 박헌영이 1929년 부인 주세죽,딸 비비안나와 함께했다. 2.1946년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참석한 박헌영이 여운형과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3.남북단독정부수립 직전인 1948년6월24일,북에 머물던 박헌영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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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헌영 전집’ 주도적 참여 임경석 교수


  • 각계 100여명 11년에 걸쳐 공동작업
    사건·기록·저술 등 9권에 담아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지평 넓혀

    〈박헌영 전집〉(전 9권·역사비평사)이 나왔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새 이정표다. 이제 이 분야의 연구는 〈박헌영 전집〉 완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각계 인사 100여명이 11년에 걸쳐 전집 편집위원회에 참가한 과정도 그렇거니와, 책이 나오기까지 50년의 ‘숙성’을 기다려야 했던 역사의 무게를 따져봐도 그렇다.

    〈박헌영…〉은 ‘민족주의적 좌익’ 인물에 대한 조명을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운동사 연구로 대신했던 관성에 대한 결정적 일침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박헌영(1900~1956)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한국전쟁 정전 51주년(7월27일)을 즈음해,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것은 물론, 반세기 동안이나 “은밀하고 공포스럽게 유지돼온 박헌영에 대한 기억을 역사로 부활시켜야 할 때”(편집위원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혁명을 선동한다거나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연구자들은 전집 9권 빼곡하게 무미건조한 날짜와 사건, 기록과 저술을 담았다. 1~3권은 박헌영의 저작, 4~7권은 신문기사 등 자료, 8권은 회고와 증언, 9권은 화보와 연보로 구성됐다. 전집 편집위원회 책임 대표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박헌영에 대한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객관’을 유지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밴 자평이다.

    거기에 논평과 감상이 서 있을 자리는 없다. 이를 읽으며 어떤 울림을 얻을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전집의 ‘행간’에는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자료와 문헌을 따라가다 보면, ‘민족 배반자’와 ‘미제 간첩’으로 그를 몰아세운 남과 북의 정치권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실을 뒤틀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결국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제자리에 올려놓는 힘이다. 1918년 한인사회당 건설 이후 30여년 한국 근대사의 중심을 이뤘지만, 결국은 남과 북으로부터 철저히 폄하당한 공산주의 운동의 본류를 ‘역사적 사실’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풍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편제’한 북한을 논외로 하더라도, 남쪽 역시 이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척박하기 그지 없다. 김준엽과 김창순이 함께 지은 〈한국공산주의운동사〉(전5권·1963~1976), 서대숙의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영문 1967·국문 1985),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이 쓴 〈한국의 공산주의〉(1972) 등이 대표적 저작이지만, 냉전체제 아래 영미권의 시각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1987년, 20여명의 소장학자들이 한국역사연구회 안에 ‘사회주의 운동사 연구반’을 만들어 10여년 공동연구를 펼쳐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집단적·체계적 연구활동은 사라졌다. 전국 각 대학의 역사학 교수 가운데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운동사를 전공한 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젊은 학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해 연구교수 등에 머물러 있다.

    임경석 교수(성균관대)는 “사회적 금기를 넘어 역사인식의 공감을 넓혀 사회구성원의 가치를 통합하고 그 정체성의 외연을 넓히는 구실을 한다”며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의미를 평가했다. 〈박헌영…〉은 그 길을 가로막았던 어떤 ‘금기’를 깨고, 온전한 역사인식으로 가는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셈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박헌영 전집’ 주도적 참여 임경석 교수


    “아직도 독자의 가슴속에
    검열 시스템이 있다”

    냉전적 잣대로 휘둘려온 한국 사회주의운동사 연구에 대한 임경석 교수(성균관대)의 신념은 확고하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 톺아보는 학문 연구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역사 연구와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데, 근거 없는 경계심 아니면 턱없는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한국적 상황’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는 1993년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기원’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을 다시 펴내, 이 분야의 맥을 잇고 있는 소장학자다. 〈박헌영 전집〉 편찬 과정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특히 그 일부인 〈이정 박헌영 일대기〉를 직접 집필했다. 박헌영의 일생을 돌아보는 작업조차도 “일제시대와 해방 전후에 큰 영향력을 준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역사학자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박헌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그는 이념적 열정 대신 학문적 냉철함으로 한국 사회의 금기를 잇따라 넘어서고 있다.

    그런 그에겐 ‘냉전체제’조차도 학문 연구자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제에 불과하다. “냉전 시기에는 이념적 금기에 도전한다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고, 냉전 구조가 붕괴된 뒤에는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1차 자료를 폭넓게 접할 수 있어, 오히려 유리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의 책임도 학계 내부에 먼저 돌린다.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역사서술이 무미건조하거나 지나치게 이념적 편향을 보였기 때문에, 대중들과 폭넓은 소통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활발한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역사 서술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는 게 역사학자들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대안도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이다. 다만 “학문의 자유가 많이 확장됐지만 아직도 연구자와 독자의 가슴 속에 내면적인 검열 시스템이 있고, 한국전쟁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결국 임 교수의 작업은 “역사적 불화를 거쳐 이리저리 분열된 사회적 심리상태를 통합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사회적 금기를 연구해 이를 정상적인 담론구조에 소통시키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역사까지 보듬어 우리의 20세기를 온전히 이해하게 만드는 일이 그의 필생의 과제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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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oria 2004-07-3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글 하고는 상관없는 얘긴데 적당히 쓸 곳이 없어 여기 적습니다. 어제 주신 Linda M. G. Zerilli(이름 참 복잡하군요...) 글을 대충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무척 재밌군요! 확실히 세상 참 넓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듯 한데 앞으로 기대가 많이 되네요.
    이 글에서도 '공화주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네요. 볼수록 흥미있는 사상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번에 말씀해 주신 Bonnie Honig의 작업에 특히 관심이 생겼습니다. 아렌트와 데리다를 접목시킨다는 점도 그렇지만, 특히 이를 페미니즘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안타깝게도 도서관에는 책 한권 밖에 없던데, 그래도 아렌트에 대한 페미니즘적 해석을 주제로 한 책이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 책 하고 어제 말씀하신 Penelope Deutscher의 책이 어떤 내용인지 정말 궁금하군요.
    요새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사람들은, 한명한명이 다 세계란 느낌입니다. 이러다가 헤어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죠? ^^ 감사합니다!

    balmas 2004-07-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다니 다행이군 ...
    그나저나 박헌영 전집은 아직 안 나오고 [이정 박헌영 일대기]만 나온 셈인가 ...

    aporia 2004-07-3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가 최근 기사라면 전집은 곧 나올 겁니다. 사실 이 전집은 박헌영 선생 탄생 100주년에 맞춰 나올 예정이었고, 그 기간을 놓친 다음에도 매년 나온다는 말이 무성했는데, 이제 이렇게 신문기사까지 난 걸 보면 출판 직전이 아닌가 싶네요. 원래 [이정 박헌영 일대기]도 전집의 일부로 기획되었는데, 전집이 늦게 나왔고 또 이 책을 빨리 출판해야 할 현실적 필요가 있어서 먼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9권이니까 최소 20만원은 할 텐데, 선생님의 경제에 다시 한번 큰 타격이 되겠군요. ^^ 그러나,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지요. 저는 이걸 어떻게 마련하죠??? TT

    aporia 2004-07-3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른 기사를 찾아 봤더니 가격이 60만원이라는군요...! 한권이 6만원 꼴인 셈인데, 물론 고생들도 많이 하셨을 테고 나갈 부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밥 굶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겠군요. 전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TT

    balmas 2004-07-3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0만원이라 ...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보다 더 비싸군!!!
    목돈 생기면 사야지 별 수 없군요 ...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돌풍

     

    하루평균 870만회 조회
    수록도 ‘브리태니커’ 3배

    소스 공개를 통한 무료 소프트웨어운동을 벌이는 리눅스의 아이디어를 빌려 네티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가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브리태니커>를 압도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 <위키피디아>의 수록 건수가 <브리태니커>의 3배인 30만건을 넘어섰다면서 ‘세상의 지식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아이디어를 표방한 <위키피디아>가 앞으로 몇개월내에 영어뿐만 아니라 아랍어에서 게일어에 이르기가지 50여개 언어에 1백만건 이상의 내용으로 풍성해진 온라인 백과사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키피디아>는 지난달 하루 평균 870만회의 방문건수를 기록해 조회건수에서도 유료사이트(연간 60달러)인 <브리태니커>( www.eb.com)를 크게 앞질렀다.

    <위키피디아>는 1995년 네티즌들이 협동해서 웹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미국 컴퓨터 프로그래머 워드 커닝햄의 아이디어로 출발했으며, 온라인상의 서버는 3년 전 지미 웨일스 등이 결성한 비영리재단인 ‘위키미디어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상근 편집진은 없고 1200명의 자원자들로 구성된 편집자들이 네티즌들이 새로 올린 자료들의 정확성, 저작권 침해 여부 등을 검증해 질을 담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호놀룰루공항의 무료셔틀버스 이름인 ‘위키위키’(하와이말로 ‘빨리빨리’란 뜻)와 ‘백과사전’이란 영어단어를 합성한 말이다.

    위키미디어는 또 지난해 7월부터 무료 교과서와 교재들을 온라인상에 퍼뜨리는 작업으로 위키북(wikibooks)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의 네티즌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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