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교수논단-파병철회와 경제파탄론

2004년 07월 19일   백일 울산과학대 

얼마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한미관계 악화는 우리경제에 중대한 불안요인이라는 것이다. 동북아정세는 경제파탄논리는 종종 검토되던 것이었으나 대통령 전용 보고서를 청와대가 직접 공개하고 대 국민 홍보용으로까지 확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건은 김선일씨 사건으로 악화된 이라크 파병 여론 선회를 직접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까지 다급해진 것은 정부의 피랍사건 초등대응 실책과 미국계 언론 AP통신의 정보은폐 의혹, 그리고 국회 파병동의안 통과 시점 등, 일관된 파병안 강행일정 속에서 일이 발생해 정부책임이라는 사회적 지탄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잘못됐다면 고쳐야지 경제파탄을 내세워 오히려 이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떳떳치 못한 일이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진상 은폐보다도, 한미관계까지 들먹이는 노무현 정부의 상황인식이다.
보고서는 한미관계 악화, 미국 경제제재,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한국신용등급 인하, 해외자본이탈, 증시가 파탄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인데, 유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꼭 그래야 진짜로 국가 이익이 보장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불가피한 고뇌의 한 수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파병을 합리화하려는 낮 뜨거운 대응논리의 발굴인가. 말 나온 김에 이 시나리오의 현실성을 강행 가능성과, 실제 경제파탄 발생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점검해보자. 왜냐하면 그간 한미관계악화와 실익 논리는 냉전논리와 함께 정권 합리화의 양대 단골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보고서와는 달리 파병 철회시 부시정부가 경제 제재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라크침공도 감행하는 판에 네오콘(신보수주의)이 무슨 일을 못할까마는, 대선이 코앞이고, 날로 확대되는 이라크 침공정보 조작 의혹은 부시를 옥죄는 그물이다. 둘째 이라크전쟁의 도덕성 추락은 9.11테러 당시의 기세등등한 국수주의와는 다른 환경이다. 부시의 무기력은 스페인 필리핀 등의 파병철회, 멕시코 등의 파병거부에도 별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못한 사례에서 입증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 강행을 예상한다면, 이것은 경제원리의 기초를 모르는 턱이다. 경제이익은 상호적인 것이다. IMF사태이후 우리 증시에 들어온 외국자본 약 2백억불 중 상당수는 불과 5~10% 정도의 헐값으로 주식을 인수해 수 십배 이익을 본 바 있다. 아직도 건질 이해가 있는데 그것을 포기할 자본이 있을까. 혹시 무디스가 어떤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언제 바뀔 정권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철에 먼저 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병과 한미관계, 경제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연관시키는 것은 국제정세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명백한 무리수다. 오히려 우려되는 바는 군사적 변화, 즉 파병 철회시 한반도 긴장고조 가능성인데, 이 확률도 사실은 크지 않다. 이번 3차 6자회담에서 나온 대북 협상조건의 놀랄만한 변화(중유 공급, 다자 안전보장, 경제 제재 해제 등)는 최근 동북아정세의 긴장완화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른바 악의 축 메뉴에서 북이 제외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성질이 아니다. 이것은 남한 당국이 미국에 잘 동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의 중대한 변화요인(미패권주의에 대한 국제적 반발 확산 등)과 그 심각성을 의미한다.
이번 청와대 보고서 파문은 파병 경제이익 논쟁에 가까운 것이다. 영원한 동지가 없는 냉엄한 국제사회 논리에서 자국의 이해관철은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냉철한 국제정세 분석력과 자기 주체성의 바탕위에서 나온다는 것은 오랜 국제관계사가 웅변하는 것이다. 더러운 국제 석유커넥션이라는 오명으로 가득한 이라크 침공을 세계사의 진전 운운하며, 파병 반대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최소한 더 이상 파탄 운운하면서 국민을 현혹하지는 말라. 경제가 정 어렵다면, 남의 피로 내 삶을 강구하는 부도덕을 강요하기 보다는 더 뼈를 깍는 노력을 차라리 호소하라. 이른바 국가 유력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청와대가 힘을 합쳐 나라경제 회생에 매진은커녕, 엉뚱하게 파병 합리화 보고서에 힘을 빼는 것은 마치 베트남전 1인당 최저 살상비용을 계산한 미국 경제기관들의 부도덕성을 재현한 것 같아 참으로 씁쓰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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