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러님이 방명록에 질문을 하나 하셨는데,

같은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여기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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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tempestif"는 보통은 "때를 잘못 맞춘"이나 "시의적절하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처럼 보통의 시간의 흐름 또는 보통의 시간의식에서 볼 때는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이 매우 시의적절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보죠.


가령 데리다는 이런 예를 들고 있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몰락하고 난 다음인 1993년에 자신이 마르크스에 관한 책([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낸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왜 이제서야 이런 책을 냈느냐, 왜 이런 때맞지 않는 짓을 했느냐고 힐난했지만, 데리다 자신이 보기에 그건 결코 시의적절하지 않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죠. 데리다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죠.


우선,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나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출간된 것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동일하다는 생각,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르크스주의는 해방운동/변혁운동 전체와 동일하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죠. 하지만 데리다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나 마르크스 사상과 동일한 것도 아니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해방 운동/변혁 운동의 전부도 아니라는 거죠. 따라서 우리가 역사적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딛고 변혁운동/해방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마르크스주의의 차이,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해방운동의 차이,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운동의 보편적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다시 한번 재검토하고 비판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마르크스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로,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이 때로는 매우 시의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간의 구조, 역사의 구조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전제하고 있죠.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나 다른 몇몇 저작에서 이처럼 때맞지 않는 시의적절함을 "정의의 시간" 또는 "정의의 순간"과 연결시키고 있죠.


데리다가 보기에 이런 "정의의 순간"은 보통의 규칙적인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거나 급격하게 동요하는 순간입니다. 가령 1917년 사회주의 혁명도 그런 순간일 것이고, 아니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그런 순간일 테고, 또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라면 1980년 광주, 1987년의 시민, 노동자 투쟁의 순간이 그런 순간이겠죠. 그래서 데리다는 [햄릿]의 한 대사를 빌려와서 이런 정의의 시간, 정의의 순간을 "뒤틀리고 어긋난 시간"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런 정의의 시간, 정의의 순간은 매우 특이하고 일시적인 한 순간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보편적 시간의 또다른 차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의 시간은 보편적인 해방의 경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정도면 질문하신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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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7-18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933359

이시간에 벌써 축하드려요,,

전 그시간에 열심히 청소중이었습니다,


알고싶다 2005-07-1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은 방명록에 달았습니다. 퍼갑니다. 발마스님 사랑해요 ㅋㅋㅋ

balmas 2005-07-19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좀 징그러운 느낌이 ... ^^;;;

알고싶다 2005-07-1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형이 사랑스럽다는 뜻이었어요. ㅋㅋㅋㅋㅋ

알고싶다 2005-07-19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해마소서.

balmas 2005-07-1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농담이었습니다.오해하고싶어요.^^;;;
 

영미권에서 나오는 책들하고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나오는 책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1. 표지의 차이

영미권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개 표지가 화려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매우 세련된 것들이다.

가령 이런 놈 한번 봐라 ...

유작으로 출간된 들뢰즈 논문 모음집의 영어 번역본인데, 책 제목하고 풍경하고 맞춘 것 봐라 ... 

철학책 디자인이 이 정도니, 뭐 다른 책이야 더 볼 것 있나? 아쉽다구? 그럼 하나 더 볼까?

매우 실험적인 철학 논문들을 모아놓은 논문집인데, 표지 한번 봐라 ... 미술 화집인 줄 알겠다.  

 

 

 

그럼 프랑스에서 나온 책들 한 번 볼까?

프랑스에서 가장 유서깊은 철학 전문 출판사로는 브랭Vrin 출판사가 있다. 소르본 대학 정문 앞에 보면

서점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하얀색 벽으로 된 브랭 서점(대개 출판사들은 서점을 같이 한다)이고,

 맞은 편에는 프랑스 학술 서적 전문 출판사인 퓌프PUF

(이건 프랑스 대학 출판부(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의 약자다)의 서점이 있다.

브랭에서 나오는 책들 표지 한 번 봐라.

이게 제일 세련된 디자인이다. 미색 표지로 된.

브랭에서 나오는 책들 중 거의 50%는 이것과 똑같은 디자인이다. 책 제목하고 저자 이름, 소개글만 다를 뿐.

 

이건 몇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새 문고본 시리즈 표지다. 깔끔하죠? 지나치게 ... -_-a

물론 다른 책들도 똑같은 디자인이다.

 

그런데 이 표지들은 정말 발전한 거다. 옛날에 나온 책 표지 한번 볼까?

1974년에 나온 말브랑슈 전집 중 한 권이다. 표지는 마분지 잘라서 만들었다. 70년대의 책들이

이러니 옛날 책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책들은 정식으로 인쇄한 건데도, 글자를 읽기 힘들 정도로

인쇄상태가 조악한 것들이 있다.

요즘 책들이야 너무 잘 만드는 거지 ...

 

데리다가 자신의 거의 모든 책을 내던 갈릴레(Galilee) 출판사 책들은 어떤가 볼까?

이건 좀 옛날 디자인이다. (80년대)

 

 

여기에 상당한 변화를 준 90년대 디자인.

 

 

 

여기에 다시 변화를 준 2000년대 디자인.

 

색깔은 모두 미색이다. (그러고 보니까 브랭이나 갈릴레나 다 미색을 좋아하네 ...)

물론 갈릴레에서는 이런 검은색 표지로 된 책도 낸다.

 

진짜 징한 출판사가 하나 더 있다. 여기는 들뢰즈와 부르디외, 이리가레 같은 쟁쟁한 철학자, 이론가들이

책을 낸 출판사인데, 이름은 미뉘Minuit라고 한다(원래는 "자정", 곧 "밤 12시"라는 뜻이다).

이 출판사는 이 표지 하나로 수백권의 책을 냈다. 징한 넘들 ...

이건 들뢰즈 책(1969년).

이건 이리가레 책(1984년).

이건 데리다 책(1967년)

 

이 표지와 쌍벽을 이루는 이 표지도 있다. 이 표지로도 수백권을 냈다.

1989년에 나온 클로드 시몽의 소설.

 

2003년에 나온 들뢰즈 책.

 

그러다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최근에는 색을 넣어서 디자인을 바꿨다. 화려하지?

 

 

 

독일책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징한 놈들도 있다. 가령 이런 놈들 ...

펠릭스 마이너Felix Meiner라는 철학서적 전문 출판사 표지다. 얘들도 초록색 하나로 수백권의 책을

찍어냈다. 약간의 변화를 주긴 했지만 ...

이건 80년대 나온 책 ...

 

이건 90년대 나온 책. 디자인이 좀 달라졌지?

 

이건 2000년대에 나온 책.

약간 차이가 느껴지지?

 

어쨌든, 영미권에서 나온 책의 표지들을 보다 보면, 유럽에서 나오는 학술 서적의 책표지들은

너무 단조롭고 따분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책표지들이

상당히 다양하고 화려해지고 있다.

 

 

2. 영미권에는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이 함께 나오지만, 유럽의 책들 중에는 하드커버가 거의 없다.

대신 불어로는 "broché", 또는 독어로는 "broschiert"라고 부르는 책들과 문고판이 대종을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이 놈의  "broché"다. 원래의 뜻에 따른다면 "가철"이나 "가제본"이 되겠지만,

영미식 용어법에 따르면 하드커버와 문고판 책이 아닌 것들은 모두 이   "broché"에 속한다. (우리말로는

정확히 어떤 용어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놈의  "broché"는 출판사마다 찍어내는 방식이 제각각 달라서, 어떤 출판사는 고급 양장본 못지 않게

실로 잘 꿰메서 튼튼하게 내는 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출판사는 그야말로 양심 저당 잡힌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데도 있다.

무슨 말이냐구? 주문한 책이 집에 도착하면 부푼 마음을 안고, 책을 펼쳐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책을 쫙 펼치는 순간, 투.드.드.득.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책이 단번에 두 동강이 나버린다.

벌어진 두 쪽 사이로는 노란색 본드가 묻어 있는 책의 겉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흐이구~~ 본드나 쫌 두껍게 바르면 아무말도 안하지, 한번 슬쩍 칠한 다음 대충 말려서 붙인 듯하다.

그러니, 두 동강으로 그냥 갈라져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가만히 붙어 있겠는가? 처음에는 두 동강이었다가

나중에는 네 동강으로, 그 다음에는 7-8동강으로 갈라지고, 그 다음부터는

한 장, 두 장씩 투둑 떨어진다.

 

책값이나 싸면 아무말 안하지. 하드커버가 아닌 이런 종류의 책은 대개 20 유로 내외, 비싸면 30유로 이상,

좀 싼 경우는 15 유로 정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는 2만원에서 4만원 정도까지 한다. 이 정도의 책값을

받으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뽄드"칠을 하는 놈들 ......

 

(새로 산 책 보는 데, 또 투두두둑 쩌~억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는 책 때문에 열 받아서 페이퍼 한 번 써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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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7-1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뽀송뽀송 부엉이 발마스님의 절규 ... 표지는 뭐 미뉘 사도 깔끔하다고 봐줄만 하지만 본드는 -_-

사량 2005-07-1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미뉘 출판사의 별사탕-_- 표지 심플하고 깔끔해서 참 좋아하는데... PUF의 뻘갱이문고나 국내 동문선출판사가 따라하는 듯한 쇠이유의 포앵문고, 독일 주어캄프의 초록색문고도.. ^^ 영미권 책들은 표지가 끝내주지만, 정작 본문의 글씨가 너무 빽빽해서 보기가 힘들더라구요.

MANN 2005-07-11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위에 Desert Islands에서 섬을 거닐고 있는 인물이 들뢰즈라던데... 전혀 알아볼 수는 없지만요 ^^;;
깔끔한 표지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
새로 산 책이 툭툭 뜯어지다니 어느 출판사 책인지는 몰라도 심하네요 -_-

하이드 2005-07-11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난 왜 웃기지. 호호호
저는 미국책 옆에 보면 쥐뜯어놓은것처럼 잘라 놓은 것 보면, 황당하더라구요.

검둥개 2005-07-11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두꺼운 본드도 근데 굳으면 동강나는거 아시죠 ^^ ;;

딸기 2005-07-11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하
유럽권 책표지들... 증말 단촐하군요

瑚璉 2005-07-1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위에서 두 번째 그림의 원화를 알아볼 수 있다는 데서 만족할랍니다(-.-;).

그런데 펠릭스 마이너 사의 90년대와 2000년대 표지에 무슨 차이가 있나요? 제가 보기는 똑같아 보이네요.

chika 2005-07-1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전 원서를 본 적이 없어서...(아니, 구경은 해봤지만 읽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분도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이 거의 저런 형태였지요. 색표지에 제목만 꼴랑!(전 그래도 맘에 들던데..ㅎㅎ)
근데 책이 쩌억 갈라지는건 정말 ... 그런 의미에서 추천 하나 해드립지요. ㅎ

로드무비 2005-07-1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재밌어요.
퍼다놓고 볼게요.^^

stella.K 2005-07-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겨요!!! 근데 발마스님의 재치있는 설명 때문인 것 같아요. 진짜 영미권은 관능적이리만치 멋있는데 유럽은 촌스 그 자체로군요. 추천 안하면 미워하실 것 같아 하고 갑니다. ㅎㅎㅎ.

killjoy 2005-07-1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두두둑 쩌~억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네요. ^_*

마냐 2005-07-1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걸 미니멀리즘이라 해야 하나요..ㅋㅋㅋ 정말 정서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런걸 포착한 발마스님께 박수~ ^^

숨은아이 2005-07-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나 독일에선 책의 내용이 가장 값비싸기 때문에 껍데기에 해당하는 것에는 돈을 들이지 않나 보군요. ^^ 주로 로고로 승부하네요. 그래도 건축이나 미술 쪽 책들 디자인은 좋던데... 글고 보면 한국처럼 책 껍데기에 공 많이 들이는 곳도 없는 듯...

숨은아이 2005-07-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우님, 국배판은 A4 용지만 한 책을 말합니다. 프랑스 책은 대개 국판(A5) 정도 하는 것 같던데요.

숨은아이 2005-07-1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왕 말한 김에... ^^ 발마스님, 따우님이 얘기한 무선(無線) 제책은 말 그대로 실을 사용하지 않은(실로 꿰매지 않은) 제책이란 뜻이지요. 실로 꿰매지 않으니 풀로 떡칠해 붙인다 해서 전문용어(^^)로는 "떡제본"이라고도 해요.

클리오 2005-07-1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징한 놈들... ㅋㅋ~ 재밌었어요.. 글구 비싼 원서 주문해서 촥 갈라지면 피가 확 솟아오르겠어요..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책들은 또 너무나 비싸고 좋기만 하고... ^^

balmas 2005-07-1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이 페이퍼 써놓고 담배 한 대를 피웠는데, 갑자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속이 울렁거려서

바로 쓰러져서 잠을 잤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서도 계속 어지럽고 속이 거북해서 이비인후과에

다녀오는 길이랍니다.

 

리들러님/ 사량님/ 미뉘 출판사 표지는 나름대로 깔끔하죠. 그리고 문고본들도 각각 개성이

뚜렷하니까 괜찮죠.

MANN/ 문제는 그게 한 출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지 ... -_-a

유독 심한 것은 키메Kime라는 출판사에서 내는 책들이지. 이 출판사 책들도 "지나치게" 깔끔하지. ㅎㅎ

이 출판사에서 90년대 이후 스피노자 관련 도서들을 많이 내서 책을 여러 권 갖고 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바로 "투드드득 쩌~억" 증세를 보이고 있어.

하이드님/ 웃긴 왜 웃어욧!!!!

쥐뜯어먹은 것처럼 잘라놓은 책들은 프랑스 책들 중에도 많아요. 사실은 페이지들이 붙은 채로 출판된 걸

보기좋게 뜯지 않았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죠 ...

검정개님/ 그, 그렇죠, 정말 ...

그래도 좀 두껍게 바르면 낫지 않을까요???

딸기님/ 단촐 그 자체죠. 그런데 요즘은 미국쪽을 나름대로 따라가려는 경향을 보이더라구요. 표지들이

상당히 컬러풀해지고 디자인도 다양해지고 있답니다. 그 대신 책값은 더 올랐죠 ... -_-a 

따우님/ 맞아요 ... 같이 꽂혀 있으면 헷갈리죠.

숨은아이님/ 그렇죠, 주로 색깔 하나하고 로고로 승부하죠, ㅋㅋㅋ.

그거에 비하면 우리나라 책들은 너무 하드커버가 많고 디자인도 화려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책의

경우에도 말이죠. 그렇다고 해도 고시용 책들처럼 관공서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표지는 절대 사절~~~

숨은아이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broche>는 "무선제본"에 가까운 말인 듯하네요. 물론  <broche>도

제대로 잘 만든 책들은 다 실로 잘 꿰매서 제본했답니다. 브랭 출판사나 갈릴레 출판사 책들은 대개 다

그렇죠.

호정무진님/ 펠릭스 마이너에서 90년대에 나온 책과 2000년대 나오는 책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 실제

원본을 보면 색조나 표지 재질이 약간 다르답니다. :-)

치카님/ ㅋㅋ 예, 저도 분도출판사 책 몇 권 갖고 있어요. 저는 표지를 단순하게 해서 책값이 좀 싸진다면

그렇게 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추천 감사~~

로드무비님/ ㅋㅋ 재미있게 봐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스텔라님/ 추천 감사.^^ 이러니 제가 스텔라님을 미워할 수 없죠. ㅎㅎ

그런데 요즘은 유럽 출판사들도 나름대로 표지에 신경을 쓰더라구요. 그래봤자 그게 그거지만 ... ^^;;

킬조이/ 오랜만이네. ㅎㅎ 새 책 받아서 펼쳤을 때 그 소리 들으면, 아, 정말 짜증난다구.

마냐님/ ㅋㅋ 박수까지야 ... ^^;;;

새벽별님/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죠. 책값을 그 정도 받는데, 제본을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 쩍쩍 갈라지게

만든다는 게 이해가 잘 안돼요. 한 두권도 아니고 말이죠.

클리오님/ ㅋㅋ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새 책 받아서 기분 좋은데, 펼치자마자 쩌~억 갈라지면, 그냥 ...

 

 


갈대 2005-07-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책들이 그나마 가격대비 (껍데기)완성도가 좋은 거군요^^;

balmas 2005-07-1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영미권에서 나오는 페이퍼백은 싼 경우에는 1만 2천원에서 2만원, 좀 비싸면 2만 5-6천원 정도 하는데, 종이질이나 표지 디자인이 좋거든요. 따라서 생활수준의 차이를 고려해본다면, 우리나라 책들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겠더라구요.

싸이런스 2005-07-1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뽄드에 무한한 존경과 경외를!

릴케 현상 2005-07-1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의 에로티즘이 문득 생각나네요 불끈!(저 민음사 세 번 가봤습니다)

balmas 2005-07-1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존경과 경외까지야, 그것도 "무한한"까지 ... ㅋㅋ
산책님/맞아요, [에로티즘]!!!!! 그것도 한 장 한 장 뜯어지는 책이죠.

philliee 2005-07-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다는거보니 좀 살만한가보네. 다나았냐? 글구 에로티즘...내책도 이미 낱장으로 분해. 다들 그렇구만 ㅎㅎ

balmas 2005-07-1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응, 이제 괜찮아.
어제 밤에는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어지럽더니 약먹고 낮잠 좀 자고 했더니
훨씬 가뿐해졌어.

천재뮤지션 2005-07-1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azzy102 였습니다.
별명을 개발했습니다.

balmas 2005-07-12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별명!! 천재님 ... ^^;;

stella.K 2005-07-1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아니 제가 미워할데가 어디있다고 그러세용!

balmas 2005-07-1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슬레이님/ 세 번씩이나 ...
따우님/ ㅋㅋ 알겠습니다, 절대 사지 않을게요.
스텔라님/ ㅎㅎ 제가 스텔라님을 미워하다뇨???

코마개 2005-07-2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 책들도 다 프랑스 책처럼 저렇던데...심지어 대학 학위논문도 저렇게 나오던데..
복사하려고 책을 쫙 펼치면 낱장이 되어버리는...

balmas 2005-07-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그렇군요.
어떤책들은실로튼튼하게잘꿰멘반면,또어떤책들은낱낱이떨어지고...
그런데값은비슷하고...ㅎㅎㅎ
 

 

 책 소개-과학에 관한 담론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


책 한 권 소개하고 싶어서 페이퍼를 씁니다.

지난 주에 나온 책인데요,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제목이 붙은 책입이니다. 바로 요 놈!







제목만 봐서는 “또 한 권의 교양과학서군”라기 십상일 텐데, 사실은 그것과는 성격이 좀 다른 책이죠.


부제를 볼까요? [“과학 시대”를 사는 독자의 주체적 과학 기사 읽기] 바로 이게 이 책의 부제입니다. 제가 볼 때는 이 책의 성격을 아주 정확하게 축약하고 있는 부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최신 과학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요약해 놓은 대중과학서가 아니라, 신문이나 방송 같은 언론 매체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과학에 관한 담론이 믿을 만한 것인가, 타당한 것인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책입니다


사실 가히 과학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요즘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과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죠. 수만원이 넘는 교양과학서들이 좋은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고, 초등학생을 위한 교양과학 시리즈도 수십종씩 나와 있고, 신문이나 TV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과학에 관한 기사나 특집 다큐멘터리를 싣고 있죠.


물론 이런 과학 이야기, 과학에 관한 담론의 절정은 최근 있었던 황우석 교수에 관한 이야기이겠죠. “산업 혁명”에 비견할 만한 세계사적인 과학 업적을 한국인이 해냈다는 자부심, 이 업적이 앞으로 낳을 수 있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 앞으로 이 연구가 수많은 난치병 환자를 구해내리라는 인류애적인 감동이 뒤섞여 언론은 앞다투어 “황우석찬가”를 쏟아냈고, 정부는 황교수를 연간 3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제 1호 최고과학자”로 선정함으로써 여기에 화답했죠.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대단했구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계나 시민단체에서 이처럼 대단한 황교수의 업적에 대해 “감히”(많은 네티즌들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제기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물론 일간신문이나 TV 등에서 이런 비판을 접하기는 어려웠고(MBC 100분 토론에서는 이 문제를 토론 주제로 다룬 적이 있기는 합니다), 일부 인터넷 신문 등이나 시민단체 사이트에 이런 비판이 실렸죠.


그래서 도대체 황우석 교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좀 어리둥절하게 생각했던 분들이 많았을 텐데, 이 책은 이 궁금증에 대해 적어도 조금은 해결을 해줍니다. 어떻게 해결해 주냐구요? 그건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알게 될 테고, 저는 그저 저자의 말을 약간 인용하는 걸로 그치겠습니다. 


“뇌가 구멍이 숭숭 뚫려 스펀지처럼 된다는 괴질이 광풍처럼, 때론 유령처럼, 유럽과 미국을 떠돌다 이웃 일본에까지 이르렀을 때, 황우석 교수팀이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세계 최초로 생산해 냈다는 보도가 대부분의 방송과 신문의 주요 뉴스와 1면을 장식했다. 광우병과 경제 침체로 시끄럽고도 우울했던 그해, 2003년의 마지막 달은 광우병에 대한 극적인 ‘반전’을 전하는 뉴스로 마감하는 듯했다.”


“프리온prion[광우병을 유발하는 인자]이라는 것의 실체와 ‘광우병’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쾌거’가 나왔다는 건 여러모로 어리둥절한 일이다. 그렇게 ‘생산’한 소가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선 이상할 만큼 침묵했다. 그리고, 한국을 먹여살릴 그 소가 정말 먹을 수 있는 소인지, 혹은 세계인이 그 소를 기꺼이 먹어줄 것인가라는, ‘유치한’ 의문 또한 ‘당연히’ 품지 않았다.”


결국 광우병 내성소에 대한 보도를 다른 방식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광우병과 프리온이 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런데 광우병에 안 걸릴지도 모르는 소를 생산했다. 어떤 이론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단다. 그 소가 정말 광우병에 안 걸릴지 어떨지는 아직 실험 전이라 모르겠다.>”([광우병 안 걸리는 소, 기묘한 이야기의 시작] 중에서 인용)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안 걸리는 소’는 황우석 교수를 확실한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 그러나 의심이 더 깊어지기 전에, 황우석 교수팀은 더욱 놀라운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 ‘영향력 지수’에서 최정상급이라 할 만한 저널에 논문이 실린 것이다. ... “복제한 (인간의)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내용이다. 언론은 2개월 전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열광’했다.”


“이 연구는 “사람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사람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배아 줄기세포를 얻은 것으로서, 처음부터 없던 개념은 아니었으나,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증거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황우석 교수팀은, 기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난자의 핵을 제거하는 방식에서 (분명히) 진전을 보았다.”


“황 교수 스스로, 인간 복제는 해서도 안 되는 일이며 현재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수시로 말해 왔지만, {사이언스}가 “올해의 10대 연구”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면서 밝힌 이유 안에는 그가 공개적으로 밝혀 온 ‘의도’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동물들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던 복제가 인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처음 입증했다”({조선일보} 2004년 12월 16일)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팀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인 제럴드 섀튼 박사는 여러 해 전부터 ‘원숭이 복제연구’에 매달려 왔으며, 그렇게 실험한 결과를 {사이언스} 등에 발표해 국제적 ‘뉴스’와 ‘이슈’를 제공해 온 사람이다. ... 그러나 원숭이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 배아를 만드는 연구는 난자의 핵을 제거하는 과정에서의 문제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영장류의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한다.”


“황우석 교수는 섀튼과 같은 {사이언스} 단골 게제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영장류 ... 복제불가라는 일종의 ‘항복 선언’을 취하하게 한 연구를 함으로써, “10대 연구”라는 것에도 선정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이 인간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믿기를 바란다. 한편으로는 원숭이 복제 성공을 낙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최근의 원숭이 개체 복제 실패를 통해 사람들이 인간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믿기를 바란다. 그렇게 “인간 복제에 대한 논란이 불식”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성공은, 기술적 혁신 이외에도, 242개의 건강한 난자를 얻을 수 있는 환경에 힘입은 바 크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목적으로 하는 ‘치료’라는 것이,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점을 얘기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 ‘흑백시대’로의 회귀] 중에서 인용)


“한국에서의 문제는, 난자 채취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든가 치료용이라고 말하고 연구용으로만 난자를 사용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난치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것”이고, 거기서 한국의 경제와 자존심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세계가 얼마나 ‘찬사’를 보내고 있느냐 등을 전달하는 게 한국 언론의 주 업무가 된 듯하다. 한국인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탓이기도 하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 지지자들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과학,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과학”의 이미지와 쉽게 결합한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으로부터, 지지자들을 확산시키는 데 이미 성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국가주의적 응원”이 덧붙는다. 한국인에게 지난 백 년의 역사는, 스스로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외국에서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일이야말로 지고한 가치를 가지는 일이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정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단하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억압의 역사”는 그런 식으로 심리적 분출구를 만들어 냈다.”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 희망은 애드벌룬처럼]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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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6-3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감사합니다, 새벽별님. ^_____________________^

알고싶다 2005-07-0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발마스님이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요? 저 인형때문에?

클리오 2005-07-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개군요.. 정말. 관심있어요... ^^

balmas 2005-07-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암만 해도 이미지 덕을 많이 보는 듯 ...

balmas 2005-07-0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 사이에 클리오님이 ...

nemuko 2005-07-0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 땡스투 두번째는 아마도 저일거예요^^

MANN 2005-07-0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balmas 2005-07-0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네무코님 감사합니다. 땡스투꺼정!!!
재미있게 읽으시기를 ...
MANN, 음, 재미있고 유익하더라구, 한번 꼭 읽어봐.
 
 전출처 : balmas님의 "책 안내-트랜스토리아 2005년 상반기호"

그렇죠. 스피노자 철학에서도 "esse"라는 용어가 드물게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 용어가 당대의 철학 어휘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지, 스피노자

자신이  이 용어를 중시하거나 이 용어에 대해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esse는 원래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existentia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까(그리고 그와 함께 perfectio라는 의미도 수반되죠) 이걸 본질로

이해할 수는 없겠죠. 반면 스피노자는 esse라는 단어보다는 realitas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고, esse를 realitas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피노자가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라고

했죠. 제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심지어 그 이전의 철학자들

로부터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칸트 및 독일 관념론을 거쳐

마르크스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이 "존재"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보고 있죠.

 

그런데 스피노자는 "존재"의 문제,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이 "존재"에 해당된다고 하는 건 순전히 견강부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제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형이상학/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간주한 철학적 계보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계보는 서양 철학사의 <한 가지 계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의 철학 계보에는 오캄 같은 유명론자나 홉스, 로크, 흄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론 전통은 들어설 자리가 없죠. 이러한 철학 계보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영향력이 떨어진다고는 전혀 이야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 반면 스피노자는

소위 대륙 합리론의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이긴 하지만,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하이데거가 거의 연구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철학자이죠. 이는 하이데거 자신도

스피노자 철학이 자신의 철학사 계보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한 가지 증거로 볼 수도 있겠죠. 또 사실이 그렇구요.

 

그러니 아무 철학자에 대해서나 "esse"나 "존재"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고, 또 그게

철학사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식도 아니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이나 1930년대 신토마스주의(자크 마리탱, 에티엔 질송)의 영향이 그만큼 후대의

서양 철학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철학계는 일제시대부터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컸으니까, 대륙 철학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러한 철학사적 관점을 거의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이제 비판적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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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를 하나 할게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6월 3일에 [트랜스토리아] 2005년 상반기호(통권 5호)가 출간되었습니다. 

[트랜스토리아]는 역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박종철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역사학 이론 학술지인데요,

좌파적인 관점에서 역사학의 문제설정을 쇄신해보자는 취지로 창간되었고, 또 계속 그런 관점에서 책을

펴내고 있습니다. 편집 위원들은 [트랜스토리아]의 목적은 단지 역사학을 새롭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학이라는 분과화된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고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본다면, "전환"을 의미하는 접두어 "트랜스trans"와 "역사"를 뜻하는 "이스토리아istoria"를 합쳐서

[트랜스토리아]라는 제목을 정한 것은 이 학술지의 취지와 매우 잘 들어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취지에 걸맞게 [트랜스토리아]는 매호마다 특집 주제를 정해서 다뤄왔는데요,

창간호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와 서발턴 연구], 

2호에서는  [식민/포스트식민: 역사와 민족주의의 구성적 모순],

3호에서는 [바바와 그 외부],

4호에서는  [서발턴/여성과 포스트식민적 재현의 문제] 및 [근대(성)와 폭력] 이

각각 특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5호는 바로 [스피노자의 현재성]이라는 특집을 주제로 삼고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하고 제 후배가 쓴 글하고, 또 제 후배들이 번역한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자의 글이 두 편 실려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대 (유럽) 스피노자 연구의 동향을 살펴 보기에는 매우 좋은 특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구입과 독서를 바랍니다.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 

 

그런데 보니까 알라딘에서는 1-4호는 판매하고 있는데, 5호는 아직 입고가 되지 않았는지 책소개가

없네요. 교보문고나 리브로, 반디북 같은 데서는 팔고 있네요. ^-^

아래 그림은 리브로에서 가져온 그림입니다. (교보문고에는 엉뚱하게도 2호 목차가 나와

있더군요.) 아래에 이 책의 목차를 적어 놓았으니까 참고하세요. ^-^

 

 

[차례]

 

편집인의 말   4

 

특집: 스피노자의 현재성

대중들의 역량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 II ---  balmas   13

알튀세르와 들뢰즈를 통해 본 스피노자 철학의 문제 --- 김은주   51

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맑스주의 --- 앙드레 토젤   93

운과 역사 이론 ---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129

 

일반 논문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민족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하나의 해석 --- 장문석   143

아시아라는 사유 공간 속의 미스터 몬스터와

식민적 판타지를 횡단하는 <하녀> --- 주창규   175

 

서평

소극의 시대와 벤야민 읽기 --- 신승환   215

수잔 벅-모스, 김정아 옮김,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 2004)

 

필자 및 역자 소개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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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반 2005-06-1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랬군요. 이전부터 알라딘에서 트랜스토리아를 치면 4호까지밖에 안나오길래 왜 아직도 출판이 안됐나 이러고 있었다니까요-_-;;

역시 내용이 풍부해서 좋네요. 토젤에 모로에, 선배님에 은주 선배님까지+_+ 거기에 장문석 선생 글까지 있네요. 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또 사야죠. ㅎㅎ

비로그인 2005-06-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이 되었군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교보에 목차가 이상하게 나와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당장 사야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공부하다가 의문나는 것이 있는 데요, 스피노자는 '존재esse'를 특성으로 파악했나요? 속성으로 본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요.(스피노자에서 속성은 실사적인 것 맞죠?) 그렇다면 존재는 속성이 아니라는 칸트나 프레게의 입장에 배치되는 것인가요?(물론 스피노자의 용법이 아니라, 특성과 동일한 용법으로 속성을 이해할 경우)

아침해 2005-06-1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김상일님
알라딘 고객센터 조지은입니다.
 
문의하신 도서를 검색해 보니 아직 저희 사이트에 등록이 안된 도서여서
담당부서에 의뢰하여 새로 사이트에 올려 놓도록 하였으니,
<빨리찾기>창에 도서 제목을 입력하여 검색하시면 됩니다.
 
다만, 저희 시스템이 매일 아침 6시경에 업데이트 되는 관계로,
오늘은 반영이 안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일 아침 이후 아래 URL을 누르시면 검색 및 주문이 가능하십니다.
[트랜스토리아 - 제5호]
 
즐거운 오후 시간 되세요.
 
짠~ 브이!!

balmas 2005-06-1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기, 주루님, 아침해님,
모두 관심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 드디어 알라딘에도 입고가 됐군요. :-)
그리고 주루님, esse는 스피노자 철학에서는 볼 수 없는 어휘입니다. 다시 말해
속성도 아니고 특성도 아니죠. 스피노자는 ens라는 용어는 여러 번 쓰고 있지만,
esse라는 용어는 쓰고 있지 않죠.
esse는 중세철학(특히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수아레즈)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철학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스피노자 철학은 이 계보에 속하지 않죠. 따라서 스피노자는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입니다.

2005-06-17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6-2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봤습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근데 esse가 여하튼 나오기는 하던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 지 ... 예를들어 1부 정리9의 aut esse나 3부 정리6의 in suo esse 등등 말입니다. 저런 경우는 사물의 본질 자체와 등가인 개념으로 존재esse를 이해하면 됩니까? 그리고 existentia 의 경우는, 신에 있어서는 esse와 일치하지만, 유한 양태의 경우는 esse=essentia / existentia 로 분리되고 existentia는 양태들의 인과망에서 결정된다고 보면 됩니까?

그렇다면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드는 스피노자의 특징이라하면 존재와 본질을 같다고 놓은 것(즉 속성이나 특성이 아니라)에 있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그리고 유한 양태에 있어서는, 기존 형이상학이 속성이라 놓았던 esse 대신에 existentia를 놓았다는 것으로 보면 될까요? 워낙에 소양이 부족해서 ... 또 질문만 늘여놨네요.

balmas 2005-06-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스피노자 철학에서도 "esse"라는 용어가 드물게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 용어가 당대의 철학 어휘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지, 스피노자

자신이  이 용어를 중시하거나 이 용어에 대해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esse는 원래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existentia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까(그리고 그와 함께 perfectio라는 의미도 수반되죠) 이걸 본질로

이해할 수는 없겠죠. 반면 스피노자는 esse라는 단어보다는 realitas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고, esse를 realitas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피노자가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라고

했죠. 제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심지어 그 이전의 철학자들

로부터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칸트 및 독일 관념론을 거쳐

마르크스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이 "존재"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보고 있죠.

 

그런데 스피노자는 "존재"의 문제,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이 "존재"에 해당된다고 하는 건 순전히 견강부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제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형이상학/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간주한 철학적 계보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계보는 서양 철학사의 <한 가지 계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의 철학 계보에는 오캄 같은 유명론자나 홉스, 로크, 흄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론 전통은 들어설 자리가 없죠. 이러한 철학 계보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영향력이 떨어진다고는 전혀 이야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 반면 스피노자는

소위 대륙 합리론의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이긴 하지만,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하이데거가 거의 연구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철학자이죠. 이는 하이데거 자신도

스피노자 철학이 자신의 철학사 계보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한 가지 증거로 볼 수도 있겠죠. 또 사실이 그렇구요.

 

그러니 아무 철학자에 대해서나 "esse"나 "존재"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고, 또 그게

철학사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식도 아니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이나 1930년대 신토마스주의(자크 마리탱, 에티엔 질송)의 영향이 그만큼 후대의

서양 철학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철학계는 일제시대부터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컸던 나라니까, 대륙 철학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러한 철학사적 관점을 거의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이제 비판적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겠죠.


비로그인 2005-06-2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문제틀 자체가 다르군요. 새겨듣겠습니다.
그 밖에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지만, 자제를 해야겠네요. 일단은 내공을 쌓는 것에 주력해야지요.

더운 날씨에 건강유의하세요.

balmas 2005-06-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뭐, 좀 가설적인 이야기예요.
앞으로 이 분야에서는 연구해야 할 주제들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