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를 하나 할게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6월 3일에 [트랜스토리아] 2005년 상반기호(통권 5호)가 출간되었습니다. 

[트랜스토리아]는 역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박종철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역사학 이론 학술지인데요,

좌파적인 관점에서 역사학의 문제설정을 쇄신해보자는 취지로 창간되었고, 또 계속 그런 관점에서 책을

펴내고 있습니다. 편집 위원들은 [트랜스토리아]의 목적은 단지 역사학을 새롭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학이라는 분과화된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고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본다면, "전환"을 의미하는 접두어 "트랜스trans"와 "역사"를 뜻하는 "이스토리아istoria"를 합쳐서

[트랜스토리아]라는 제목을 정한 것은 이 학술지의 취지와 매우 잘 들어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취지에 걸맞게 [트랜스토리아]는 매호마다 특집 주제를 정해서 다뤄왔는데요,

창간호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와 서발턴 연구], 

2호에서는  [식민/포스트식민: 역사와 민족주의의 구성적 모순],

3호에서는 [바바와 그 외부],

4호에서는  [서발턴/여성과 포스트식민적 재현의 문제] 및 [근대(성)와 폭력] 이

각각 특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5호는 바로 [스피노자의 현재성]이라는 특집을 주제로 삼고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하고 제 후배가 쓴 글하고, 또 제 후배들이 번역한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자의 글이 두 편 실려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현대 (유럽) 스피노자 연구의 동향을 살펴 보기에는 매우 좋은 특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구입과 독서를 바랍니다.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 

 

그런데 보니까 알라딘에서는 1-4호는 판매하고 있는데, 5호는 아직 입고가 되지 않았는지 책소개가

없네요. 교보문고나 리브로, 반디북 같은 데서는 팔고 있네요. ^-^

아래 그림은 리브로에서 가져온 그림입니다. (교보문고에는 엉뚱하게도 2호 목차가 나와

있더군요.) 아래에 이 책의 목차를 적어 놓았으니까 참고하세요. ^-^

 

 

[차례]

 

편집인의 말   4

 

특집: 스피노자의 현재성

대중들의 역량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 II ---  balmas   13

알튀세르와 들뢰즈를 통해 본 스피노자 철학의 문제 --- 김은주   51

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맑스주의 --- 앙드레 토젤   93

운과 역사 이론 ---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129

 

일반 논문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민족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하나의 해석 --- 장문석   143

아시아라는 사유 공간 속의 미스터 몬스터와

식민적 판타지를 횡단하는 <하녀> --- 주창규   175

 

서평

소극의 시대와 벤야민 읽기 --- 신승환   215

수잔 벅-모스, 김정아 옮김,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 2004)

 

필자 및 역자 소개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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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반 2005-06-1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랬군요. 이전부터 알라딘에서 트랜스토리아를 치면 4호까지밖에 안나오길래 왜 아직도 출판이 안됐나 이러고 있었다니까요-_-;;

역시 내용이 풍부해서 좋네요. 토젤에 모로에, 선배님에 은주 선배님까지+_+ 거기에 장문석 선생 글까지 있네요. 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또 사야죠. ㅎㅎ

비로그인 2005-06-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이 되었군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교보에 목차가 이상하게 나와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당장 사야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공부하다가 의문나는 것이 있는 데요, 스피노자는 '존재esse'를 특성으로 파악했나요? 속성으로 본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요.(스피노자에서 속성은 실사적인 것 맞죠?) 그렇다면 존재는 속성이 아니라는 칸트나 프레게의 입장에 배치되는 것인가요?(물론 스피노자의 용법이 아니라, 특성과 동일한 용법으로 속성을 이해할 경우)

아침해 2005-06-1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김상일님
알라딘 고객센터 조지은입니다.
 
문의하신 도서를 검색해 보니 아직 저희 사이트에 등록이 안된 도서여서
담당부서에 의뢰하여 새로 사이트에 올려 놓도록 하였으니,
<빨리찾기>창에 도서 제목을 입력하여 검색하시면 됩니다.
 
다만, 저희 시스템이 매일 아침 6시경에 업데이트 되는 관계로,
오늘은 반영이 안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일 아침 이후 아래 URL을 누르시면 검색 및 주문이 가능하십니다.
[트랜스토리아 - 제5호]
 
즐거운 오후 시간 되세요.
 
짠~ 브이!!

balmas 2005-06-1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기, 주루님, 아침해님,
모두 관심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 드디어 알라딘에도 입고가 됐군요. :-)
그리고 주루님, esse는 스피노자 철학에서는 볼 수 없는 어휘입니다. 다시 말해
속성도 아니고 특성도 아니죠. 스피노자는 ens라는 용어는 여러 번 쓰고 있지만,
esse라는 용어는 쓰고 있지 않죠.
esse는 중세철학(특히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수아레즈)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철학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스피노자 철학은 이 계보에 속하지 않죠. 따라서 스피노자는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입니다.

2005-06-17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6-2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봤습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근데 esse가 여하튼 나오기는 하던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 지 ... 예를들어 1부 정리9의 aut esse나 3부 정리6의 in suo esse 등등 말입니다. 저런 경우는 사물의 본질 자체와 등가인 개념으로 존재esse를 이해하면 됩니까? 그리고 existentia 의 경우는, 신에 있어서는 esse와 일치하지만, 유한 양태의 경우는 esse=essentia / existentia 로 분리되고 existentia는 양태들의 인과망에서 결정된다고 보면 됩니까?

그렇다면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드는 스피노자의 특징이라하면 존재와 본질을 같다고 놓은 것(즉 속성이나 특성이 아니라)에 있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그리고 유한 양태에 있어서는, 기존 형이상학이 속성이라 놓았던 esse 대신에 existentia를 놓았다는 것으로 보면 될까요? 워낙에 소양이 부족해서 ... 또 질문만 늘여놨네요.

balmas 2005-06-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스피노자 철학에서도 "esse"라는 용어가 드물게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 용어가 당대의 철학 어휘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지, 스피노자

자신이  이 용어를 중시하거나 이 용어에 대해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esse는 원래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existentia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까(그리고 그와 함께 perfectio라는 의미도 수반되죠) 이걸 본질로

이해할 수는 없겠죠. 반면 스피노자는 esse라는 단어보다는 realitas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고, esse를 realitas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피노자가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라고

했죠. 제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심지어 그 이전의 철학자들

로부터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칸트 및 독일 관념론을 거쳐

마르크스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이 "존재"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보고 있죠.

 

그런데 스피노자는 "존재"의 문제,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이 "존재"에 해당된다고 하는 건 순전히 견강부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제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형이상학/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간주한 철학적 계보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계보는 서양 철학사의 <한 가지 계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의 철학 계보에는 오캄 같은 유명론자나 홉스, 로크, 흄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론 전통은 들어설 자리가 없죠. 이러한 철학 계보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영향력이 떨어진다고는 전혀 이야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 반면 스피노자는

소위 대륙 합리론의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이긴 하지만,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하이데거가 거의 연구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철학자이죠. 이는 하이데거 자신도

스피노자 철학이 자신의 철학사 계보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한 가지 증거로 볼 수도 있겠죠. 또 사실이 그렇구요.

 

그러니 아무 철학자에 대해서나 "esse"나 "존재"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고, 또 그게

철학사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식도 아니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이나 1930년대 신토마스주의(자크 마리탱, 에티엔 질송)의 영향이 그만큼 후대의

서양 철학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철학계는 일제시대부터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컸던 나라니까, 대륙 철학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러한 철학사적 관점을 거의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이제 비판적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겠죠.


비로그인 2005-06-2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문제틀 자체가 다르군요. 새겨듣겠습니다.
그 밖에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지만, 자제를 해야겠네요. 일단은 내공을 쌓는 것에 주력해야지요.

더운 날씨에 건강유의하세요.

balmas 2005-06-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뭐, 좀 가설적인 이야기예요.
앞으로 이 분야에서는 연구해야 할 주제들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