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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베르토프와 요리스 이벤스

그러나 상업영화의 역사와 싸운 다른 또 하나의 작가들의 연대기가 있다. 그들은 영화야말
로 역사 속에서 기록하고, 고발하고, 틀린 세상은 바꾸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역사에 대해서 영화의 임무를 강조한 것은 지가 베르토프였다. 볼세비키혁명
이 성공한 직후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운 소비에트에서 "지금의 우리를 영원
히 기억하라" 는 슬로건으로 무장한 그는 카메라를 들고 혁명 직후의 세상을 담았다. 그
는 영화야말로 진실이라는 주장을 담은 "키노-프라우다" 선언을 통해서 카메라만이 "부르
주아들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된" 세상을 기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천(?)하였다.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 프라우다> 연작과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전 세계에 "새로운 세
상" 을 알리는 테르메스가 되었다.

지가 베르토프의 동세대였던 요리스 이벤스의 또 다른 이름은 "날으는 네덜란드인" 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그는 싸움이 벌어지는 최전선을 찾아나섰
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에 카메라를 세워 촬영하였다.

요리스 이벤스는 "30년대에 스페인 내란을, 그리고 중국으로 가서 모택동과 함께 대장정
을, 문화혁명을, 더 나아가 "60년대에 베트남에서 불벼락이 쏟아지는 하노이에 자신의 카
메라를 세웠다. 그는 억압받고 버림받은 자들이 어떻게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가는지를 기
록하였다. 거기에는 어떻게 이름없는 자들이 역사를 하나씩 쌓아올리는 지가 담겼다. 그
의 다큐멘터리가 갖는 놀랄만한 감동은 같은 장소를 몇 년의 차이를 두고 다시 찾아가서
기록하는 정신에 있다. 그는 어떻게 시간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단련시키는 지를 기록한
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의 일보전진을 이야기한다.

요리스 이벤스의 <우공은 어떻게 산을 옮겼는가>는 중국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5년간 12부
작으로 완성된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때로는 기나긴 인터뷰가 이어지고, 때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중국 변방의 시골 공회당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편집 없이" 살아가는 일
상생활을 담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의 우공들이 어떻게 봉건주의라는 산을 저리로 옮기
고, 사회주의라는 산을 옮겨 오는지를 "마음으로" 보여준다.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을까> (1976, 요리스 이벤스) ;

아사아에서 사회주의는 어떤 기적을 만들어냈을까? 요리스 이벤스의 애정 담긴 "좋은 세
상"을 향한 시선.

정성일 (영화평론가)

1. 존경하는 영화, 역사적 가치
1) 칠레 전투 (파트리시오 구즈만)
2) 용광로의 시간 (페르난도 솔라나스, 옥타비오 게티노)
3) 쇼아 (클로드 란츠만)
4) 슬픔과 동정 (마르셀 오필스)
5) 아메리카 원 (로버트 크레이머)
6) 태양도 없이 (크리스 마르케)
7) 하늘, 대지 (요리스 이벤스)
8) 민중의 용기 (호르헤 산히네스)
9) 러시아 엘레지 (알렉산드르 소클로프)
10) 나리타 투쟁 8부작 (오가와 신스케)

세상을 바꾸려고 영화는 항상 시도해왔습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은밀하고도 끈질기게
지속되어온 영화의 프로젝트입니다. 이를테면 지가 베르토프의 역사의 재구성, 요리스 이
벤스의 중국여행,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물 자서전 연작, 오가와 신스케의 나리타 투쟁,
그리고 명동성당 앞의 노동자 뉴스 제작단, 말하자면 영화와 역사, 또는 이미지와 현실,
더 나아가서 보여지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저 모순의 대
립과 이율배반을 넘어서려는 것이 영화의 프로젝트이며,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어낸 저 이
상적인 총체영화에로 돌아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바로 그 사이에 우리는 끼어든 셈입니
다. 물론 빠져나갈 수도 없으며, 하지만 도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 아래 주소로 가시면 상영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iljuarthouse.org/screen/s_view.html?e_u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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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6-1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꼭 보러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balmas 2004-06-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일들이 계속 몰려 있어서 다음 주나 돼야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내가 아는 선배님들이 하는 사이트에서,

현충일 날짜의 유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1944년 6월 6일)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놀랍다, 정말.

혹시 사실관계를 더 정확히 아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불길하게도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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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해를 하신 거 같네요. 아무리 사대정부라 해도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가지고 현충일을 삼았겠습니까. 우리 풍속상 한식에 성묘를 하고 망종에 제사를 지냅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망종에 죽은 군인들을 위해 국가차원의 제례가 있었다고 하네요. 이처럼 옛풍속을 쫒아 망종이었던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한 것입니다.

조선인 2004-06-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시는 분이 더 자세한 설명을 올려주셔서 몇 자 더 옮겨적습니다.
수수께끼님 왈~
24절기중 망종의 앞에 있는 청명에는 삭초를 그리고 한식에는 성묘를 지냈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던 우리 고유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현충일이 제정된 1956년의 망종이 바로 6월 6일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운운하며 사대주의를 들먹이는것은 단지 시비를 위한 낭설일 따름이며 우리국민은 남의 승전일을 따라 현충일을 정할 만큼 그렇게 덜 떨어지지는 않았답니다.

balmas 2004-06-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설마 했는데, 그렇겠죠 ...
아무리 그래도, 천년 넘게 문자를 갖고 공부를 해온 사람들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겠죠.
아무튼 이렇게 명쾌한 답변을, 빨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수께끼님께도 상세한 설명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저의 무식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긴 했지만, 오해를 빨리 풀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만큼 무식한^^ 제 선배님들께도 빨리 알려드려야겠군요.

비로그인 2004-06-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무식하다기 보다는 모르고 계시는 선배님들이실것이고, 관심이 없었기에 일어난 일일것입니다.

balmas 2004-06-1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식을 너무 너그럽게 봐주시는 것 아닙니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최근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좋은 번역이야말로 철학/이론적 논의에 맥락을 부여할 수 있는 기초작업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번역>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론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편의상 <번역본만으로도 철학적/이론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번역> 정도로 규정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도의 규정을 기준으로 평가해본다면, 국내에 번역된 책들 중 상당수는 이런 기준을 충족시켜주기 어렵다는 것이, 또 아쉬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동안 상당히 많은 좋은 책들이 좋은 번역(적어도 위의 기준을 충족시켜 주는)으로 소개되었고, 이 번역본들은 상당수의 고급 인문사회과학 독자들을 형성해왔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물론 경험적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얼마간 자의적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계를 지탱하는 독자들 중 상당수는 이 번역본들 덕분에 생겨난 독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두어달 전에 프랑스에서 철학으로 학위를 하고 돌아온 젊은 연구자 한 분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제가 그 분에게 전공한 철학자의 책을 번역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 철학자(이 철학자가 누구인지 밝히면 그 분의 신원이 곧 드러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서, 그냥 그 철학자라고 하겠습니다. 그 철학자가 과연 누구인지는 독자분들의 상상력에 맡기겠습니다. 죄송^^)는 20세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이고 최근 외국에서는 그에 관한 국제적인 전문 학술지가 만들어져 매우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철학자입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 철학자에 관한 책들이 거의 번역되지 못해, 그저 무성한 소문으로만 접할 수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이 사람의 주저가 번역되긴 했지만 번역에 문제가 많아서 제대로 논의를 따라가기 어려워,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공자는 번역에 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군요. 그 철학자의 스타일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들여야하는 데 비해 제대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번역할 바에야 그 시간에 여러 편의 논문을 써서 업적을 남기면, 그만큼 학계에서 인정도 받을 수 있고, 따라서 취직에도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실 번역본 한 권은 논문 두 편의 가치로 평가받는데(이것도 뜻있는 분들이 우리나라 학술분야의 정책을 총괄, 집행하는 학술진흥재단에 여러 차례 건의하고 방안을 제시한 끝에 최근에 이루어진 개선의 덕택입니다), 중요한 철학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는 적어도 1년 이상, 또는 대개는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전공자의 생각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잘 번역된 한 권의 좋은 철학책은 두 편의 논문, 또는 심지어 몇십편의 논문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국내의 철학 논문은 공개적으로 출판되기보다는 대개 비매용 학회지에 수록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반 독자들이 제대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한 편의 논문의 독자는 많아야 수십명을 넘어서기가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반면 좋은 철학책의 경우는 적어도 수백명, 많은 경우는 수천명의 독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독자들 중에는 해당 분야를 전공하는 전문가들도 있겠지만, 관심은 있는데 원서로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 동안 이 책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철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전공하지만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 하지만 역시 원서로는 책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또 직업적인 학자는 아니지만 철학이나 이론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쌓고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헤겔 또는 스피노자]의 독자분이 바로 그런 분이죠),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와서 왕성한 호기심으로 이 책 저 책을 탐독하는 장래의 학자들도 있을 테고, 또는 얼마간 막연하게 교양을 쌓으려는 목적으로(또는 남들이 입만 열면 푸코, 들뢰즈, 데리다, 지젝 운운하는데, 그냥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이 놈들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길래^^ 그렇게 떠드는지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 등등) 책을 사는 독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좋은 책을 한 권 잘 번역하면 논문 몇 편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학자이지만 그동안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했던 사람의 경우, 또 그 사람의 철학이나 이론을 전공한 전문가의 경우, 좋은 책을 한 권 번역하는 것은 그만큼 쉽고 빠르게 이 철학, 이 이론을 소개하고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죠. 어느 학회에 가서 지금까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한 학자에 관해 연구논문을 발표하면 해당 분야를 전공하는 소수의 학자들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또 소통이 가능하겠지만, 위에서 말한, 수천명의 독자들에게 이는 거의 소통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의미가 없게 됩니다. 예컨대 저는 국내에 라캉에 관한 관심이 많지만, 이러한 관심이 내실 있는 연구나 논의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라캉의 저작들이 번역되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깡의 재탄생]이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변은 독자분들의 판단에 맡깁니다). 라캉에 관한 논의라면 당연히 먼저 라캉의 저작들이 존재하고 독자들이 이를 읽을 수 있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텐데, 라캉은 부재한 가운데(그야말로 유령, 허깨비죠) 많은 사람들은 영역본으로, 어떤 사람들은 독역본으로, 매우 소수의 사람들은 불어본으로 라캉을 읽고서 이야기를 하니, 불어본이나 영역본, 독역본으로 라캉을 읽을 수 없는 대부분의 독자들로서는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라캉의 저작(들)이 잘 번역되어 나온다면(그렇게만 된다면, 역자(들)에게는 정말 감사해야 마땅한 일일 텐데), 라캉에 관한 논의들로는 얻을 수 없었던 독자들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수의 전문가들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라캉의 이론, 라캉의 철학이 훨씬 넓은 지식과 공론의 광장으로 나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는 오히려 라캉의 이론이 이러한 광장을 단단히 다지고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광장에서는 (때로는 매우 의심스러운) 어학 능력의 소유 여부에 따라 한 철학자, 한 사상가, 한 이론가가 독점되거나 평가되는 게 아니라, 그의 철학, 사상, 이론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우리를 어떻게 변모시켜 줄지에 따라 평가받고 전유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라캉은 더 이상 프랑스의 이론가, 철학자가 아니라, 또는 적어도 프랑스의 이론가, 철학자로만 남지 않고, 한국의 이론가, 철학자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식의 노력이 라캉과 우리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최선의 소통 방식, 교통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말하는 맥락이란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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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6-03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잘 번역된 한 권의 좋은 철학책은 두 편의 논문, 또는 심지어 몇십편의 논문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ou are right. That's it!..

balmas 2004-06-0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든든한 원군이 나타났군요.^^
그런데, 노파심이긴 하지만, 절대로 제가 논문을 쓰지 말자, 논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좋은 논문을 쓰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죠.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논문쓰는 일이 이론, 철학을 우리의 맥락 속에 들여넣는 일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맥락, 우리의 지적 광장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좋은 철학책, 이론책을 번역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MANN 2004-06-0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번에 발표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느꼈던 게 한국어로 된 참고할만한 책이 정말 없구나, 하는 거였어요. 하긴 이번에만 느꼈던 것도 아니고... 몇 년 전에(수능 끝나고;;) 철학책을 좀 읽어보겠다고 이것저것 찾아봤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 칸트, 후설 등 꽤나 유명한 철학자들의 책, 또 그에 관련된 유명한 2차문헌이 번역된 게 거의 없다는 것에 놀랐던 것이 기억나네요. 철학자들의 주요 저작들은 번역되지 않고 그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담론들만 있는 것은 정말 해괴한(!) 상황인 것 같아요.

balmas 2004-06-0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중요한 걸 하나 깨우쳤군.^^
좋은 책들 열심히 읽고, 나중에는 MANN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들을 소개해줘야지.
 

대화의 또다른 중심 주제는 “철학의 맥락”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선생님은 가끔 철학회에 나가보면 재미도 없고 실망만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헤겔 철학이든 스피노자 철학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철학이든 간에 철학은 항상 어떤 맥락 속에 존재하기 마련이고, 철학은 자신의 환경, 자신의 맥락에 대한 긴장과 갈등, 성찰로부터 형성되고 발전되기 마련인데, 국내의 철학회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을 보면, 철학이 현실 맥락과 맺고 있는 긴장 관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나쁜 의미에서 추상적이고 몽롱한 논의들로 가득차 있다는 거지요.

  더 나아가 외국에서 학위를 하고 돌아온 몇몇 연구자들의 논문을 보면 결국 그 나라 철학계의 하청작업만 해주고 왔다는 인상을 받게 되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예컨대)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얼마간 필요한 문헌학 작업이지만 정작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어서 그 나라에서도 그 일을 수행할 만한 연구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 나라 사람도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가서 그 일을 대신 해주고 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이 경우 그 나라는 구하기 힘든 고급 노동력 하나를 잘 구해서 아쉬운 부분을 메울 수 있지만, 그 연구자가 몇 년 걸려 해낸 그 작업이 우리나라 철학계에, 우리나라 지식계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더 나쁜 것, 더 심각한 것은 본인들은 정작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학문 선진국에서 (얼마간) 인정받은 논문이니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는 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것 아니냐고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학문적 사대주의”로 비판받을 만한 이런 태도는 사실은 국내의 철학계(꼭 철학계에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에 상당히 팽배해 있는 현상입니다. 그 중에서도 좀 유별난 것은 국내의 학자들은 국내에서, 자신이 유학한 나라의 철학적(또는 학문적) 경향을 그대로 대변하는 투사 노릇을 한다는 점입니다. 독일 철학 연구자들 중 상당수는 영미 철학을 무시하고 프랑스 철학은 아예 철학 취급도 하지 않거니와, 영미 철학자들 중 상당수는 독일 철학을 공허한 헛소리라고 일축하고 “프랑스 철학은 여자들에게나 적합한 철학”(원문 그대로! 무슨 뜻인지는 발언자에게 물어보셔야 할 듯)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철학이 덜한 건 아닙니다. 아직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고 “통일된 대오”(?)를 갖추지 못해서 그렇지, 프랑스 철학자들도 독일 철학이나 영미 철학 못지 않은 “애국심”을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건 프랑스 유학자들의 경우 주로 공격 대상이 프랑스 철학이라는 점입니다. 이제는 국내에도 얼마간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제도권 철학계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프랑스 철학의 대표자들이라고 알고 있는 인물들, 곧 알튀세르, 라캉, 푸코, 들뢰즈, 데리다, 리오타르 등의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거의 연구되지 않고 있고,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학위 논문 주제로 삼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프랑스 유학자들이 학위 논문 주제로 가장 많이 택하는 철학자는 베르그송이고, 그외 메를로-퐁티나 사르트르, 레비나스 같은 현상학 계열의 철학자들, 아니면 멘 드 비랑을 비롯한 군소 유심론 철학자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이 국내에서는 현대 프랑스 철학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립니다(물론 이 경우도 일부가 문제입니다). 그들을 가르친 프랑스 강단 학계의 선생들이 이 사람들을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철학적인 논거를 들어 비판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드는 논거들은 그건 철학이 아니라느니, 너무 많이 쓴다드니, 저자 사인회를 하면서 책을 팔더라느니 등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거슬러 올라가자면, 일제 합병 이후 우리나라의 학문의 맥이 끊어졌고, 여기에서 비롯한 빈 공백이 아직도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를 잘 표현해주는 용어가 바로 국학이라는 단어일 겁니다)에서 유래하겠지만, 공시적으로 본다면 학문, 또는 철학을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나는 결과들이 아닐까 합니다. 철학을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철학을 사회경제적 조건의 결과로 봐야한다는 것도, (불변적인) 민족성의 정수이자 한 결과로 봐야한다는 것도, 철학사의 흐름에 따라 파악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학문들과의 관계에 따라 파악해야 한다는 것도, 철학자의 삶의 조건과 관련시켜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겠지요(그런데 “맥락”이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요? context? circumstances? surroundings? environment? conjuncture? exteriority? ...).
이 문제는 좀더 다듬어진 생각으로, 좀더 개념적인 논의에 따라 고찰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철학 또는 이론적 논의에 맥락이 부재한다는 점 또는 적어도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은 경험적 차원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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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만나뵈었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연세는 더 많으신데 외모는 더 젊어보이셨습니다(아마 젊은 사람들하고 자주 어울리신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 날 식사 자리에는 제가 아는 다른 선배분하고 또 다른 젊은 철학도가 한분 더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두 분 다 참석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57학번이시니까 우리 나이로 하면 67세이신데, 철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정치부에 근무하다가 75년에 해직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뒤 다시 언론계로 복직하지 않고 거의 30여년 동안을 독서와 사색으로 지내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왜 [한겨레 신문] 창간될 때 복직하지 않으셨냐고 여쭤보니까, 빙그레 웃으시면서 두려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느낀 두려움은, 간단히 말하자면, 기자로서, 지식인으로서 글을 쓰는 것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언론 통제가 극심하게 이루어지던 당시에 기자들은 세 가지의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순응하면서,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렵고 교묘한 언어들로 사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맞서 저항하는 길, 신문사를 그만 두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당신이 이 마지막 길을 실행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 때문에, [한겨레 신문]으로부터 끈질긴 동참 요청을 받았지만 결국 입사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날 대화의 초점 중 하나가 이 세번째 길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과 관련하여 세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중국의 백화문의 사례이고, 둘째는 리영희 선생(선생님은 당시의 언론인들 중에서는 리영희 선생만이 유일하게 이 세번째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지젝, [Self-Interview](The Metastases of Enjoyment)에서 지젝이 말한 "말의 윤리"라는 사례였습니다(선생님은 올해 나온 지젝의 Organes without Bodies를 벌써 구해 읽으셨을 만큼, 지젝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이 세 가지 사례들 모두는 지식인들이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것의 빼어난 사례들이라는 것이지요.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원하는 진실한 내용을 전달하되, 그 때문에 전해야 할 내용의 함량이 줄어들거나 또 하나의 권력이나 관행으로 고착되지 않게 하기. 선생님은 [한겨레 신문]이 이런 일을 해줄 수 있을지, 또 당신이 새로 신문기자가 되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 [한겨레 신문]에 입사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 [한겨레 신문]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신문]은 결국 “문민 정부”의 한계, “50년만의 정권 교체”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선생님의 예견을 입증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결국 그 선택(들)로 인해 해직 이후부터 따지면 30여년 가까운 세월을 독서와 사색으로 소일하신 셈인데, 당신께서는 “돈 별로 안들이고 시간 잘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 세월의 고독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헤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러한 “선택”은 당신의 헤겔 해석과도 맞물려 있는 듯했습니다. 선생님은 헤겔 철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헤겔 저작만이 아니라 헤겔 연구서들까지 폭넓게 섭렵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헤겔의 문제, 헤겔이 청년기에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심했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법의 실정성을 극복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로 집약하셨습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법은, 법의 실정성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지만, 또 그 법이 단지 법으로, 실정적인 법으로만 남아 있게 되면, 그 법을 처음 정립했던 힘, 원칙은 퇴락하고 전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상적인 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떻게 법을 흐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헤겔에게는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헤겔의 이런 문제의식은 단지 헤겔의 문제의식일 뿐만 아니라, 근대 사상, 근대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듯했습니다. 알튀세르에 관해, 문화혁명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 하시는 이런저런 말씀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독일의 저명한 헤겔 연구가인 디이터 헨리히(Dieter Henrich, 1927-)가 발굴해낸 “반성의 논리Logik der Reflexion”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시는 게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앞으로 이 문제를 한번 연구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셨는데, 사실 전부터 얼마간 막연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던 터라, 선생님의 권유를 받자 매우 반가웠습니다. 

* 병아리 모이만큼 찔끔찔끔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만(-_-;;;;), 아무래도 오늘도 여기에서 글을 줄여야 할 듯합니다.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영 쉽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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