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湖州)경 외

호주팔능형경(湖州八稜形鏡)고려시대 11cm ‘박가분자료관’소장


-명문이 있는 동경-

거울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동경이 현대에 와서도 그 가치를 주목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금속공예적인 측면에서 일 것이다. 특히 동경의 뒷면에는 각종 문양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당시의 금공기술이나 사상,신앙,무늬 및 사회현상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려경이라고 할 때 중국의 한경(漢鏡)이나 당경(唐鏡) 혹은 송경(宋鏡)처럼 특정 시대의 동경이라는 의미 보다는 한반도의 동경을 두루 일컫는 경향이 많았다. 그것은 고려 이전에도 청동기시대 다뉴경이나 신라의 동경이 있었음에도 워낙 고려시대에 동경이 많이 생산되고 널리 애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경이라고 알려진 것 중 상당량이 중국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영향받은 것이라고 짐작되는 것들이 많다.
사진상 호주진석가염이숙조자(湖州眞石家念二叔照子)명 경은 꼭지 왼쪽 방형궤안에 명문이 있다. 여기서 '호주'는 중국 소주(蘇州)와 항주(抗州) 등과 함께 당시의 동경 생산지명이고 '진석가'는 진석이란 집안명이며 '조자'는 거울을 뜻하는 것이다.



소주(蘇州)경 고려시대 13.5cm ‘박가분자료관’소장



또 다른 동경은 스물 네 개의 돌기를 가진 형태의 것으로서 소주관출매동기관(蘇州官出賣銅器官)이라는 명문을 갖고 있다. 중국 송대(宋代)나 금대(金代)에는 동(銅) 부족탓으로 동금법(銅禁法)이 시행되었는데, ‘동기관’이란 국가에서 요구하는 동경의 제작 요건을 검사하는 기능을 담당한 관청을 말하는 듯 하다. 관(官)자 아래 메 '산'자 비슷하게 보이는 부호는 검사를 통과한 ‘사인’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외 길상의 뜻을 가진 복(福),길(吉),만(卍),희(喜),수(壽)자... 등의 명문을 도안화 했으며 천년만세(千年萬世)나 연년장수(延年長壽)와 장명귀부(長命貴富)... 등 당시 사람들의 바램과 기원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연화당초문경(蓮花唐草文鏡) 외


연화당초문경(蓮花唐草文鏡)고려시대 11.2cm ‘박가분자료관’소장



-연꽃문양이 있는 동경-

동경 문양의 종류와 특성에 따른 분류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덩굴풀이 비꼬여 뻗어 나가는 문양을 접하게 되는데 이런 것을 흔히 당초문이라고 한다. 하나의 줄기에 꽃과 꽃망울이나 잎이 서로 연결되어 뻗어 나가거나 다른 것을 감아붙이면서 문양과 문양 사이를 메워 나가며 이루어지는 만초 문양을 총칭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런 당초문양은 모란과 만나 모란당초문(牡丹唐草文), 인동형 만초를 만나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포도와 만나 포도당초문(葡萄唐草文), 보상화를 만나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 용과 만나 용당초문(龍唐草文), 연꽃과 만나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 등이 된다.
당초문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하여 그리스를 거쳐 여러 지역에서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의 각종 장신구와 마구류 및 백제 미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각종 불교미술 뿐 아니라 동경에서도 다양하게 구성되고 변용된 당초 문양을 접할 수 있다.
사진상의 연화당초문경은 여덟 개 연꽃잎으로 된 꼭지자리를 두 줄의 연주문대가 감싸고 있다. 연주문대 바깥쪽에는 네 가닥의 테두리 안에 연화당초문이 활짝 핀 모습이다. 이런 당초문양을 반복하거나 리드미컬한 선형을 길고 유려하게 표현하면서 한 겹 더 여섯가닥의 연화당초문대를 배열한 동경도 보인다.




화문경(華文鏡)고려시대 15cm ‘박가분자료관’소장

또 하나의 동경은 사실적인 꽃은 화문(花文)으로, 장식적인 의미가 강한 꽃은 화문(華文)으로 부른 학자들의 견해를 존중해 화문경(華文鏡)으로 이름 지었다. 꼭지 자리를 여섯 개 연꽃잎을 이중으로 강조한 대담한 구성이며 바깥쪽으로는 당초문양대를 둘러 보조 문양으로 배치하였다. 구할 수 있는 여러 자료를 더듬어 보았으나 듣고 본 바가 적은 탓인지 위에 소개하는 화문경과 똑같은 것이 없어 처음 소개되는 자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쌍용연화문규화형병경 외



쌍용연화문규화형병경(雙龍蓮花文葵花形炳鏡) 고려시대 13*22.9cm ‘박가분자료관’소장


-용문양이 아름다운 동경-
우리 고유어로 ‘미르’라고 하는 용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다. 용은 물의 신이며 신화속에서 국조(國祖)나 군주 혹은 시조의 어버이이면서 지상계의 비를 관장하는 외에 호법신(護法神)이나 호국신(護國神)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무속이나 민속적으로 보면 사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邪)의 신이면서 풍습상으로는 권위와 초능력을 지닌 상상속 동물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학적으로 쓰인 예를 보면 무한능력을 지닌 왕을 나타내거나 남성이나 남근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예언자의 구실을 하거나 상서로우면서 온갖 조화를 마음대로 부리기도 한다. 또한 현대에 와서는 길상과 행운을 상징하며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진상 8각의 굵은 테를 두른 손잡이 있는 병경은 해바라기 규(葵)자를 써서 규화형병경이라고 하는데 여의주를 우러르며 좌,우 두 마리 용이 배치된 모습이 재미있다. 뿔은 생기다 만듯 하고 놀란듯 동그란 두 눈과 시늉 뿐인 혓바닥 하며 네 발톱과 비늘을 두른듯한 허리와 배의 표현이 다분히 해학적이다. 다만 꼭지 아래 두 송이 꽃봉오리와 드넓은 연잎 사이 활짝 핀 연꽃 모습이 고급스럽고 귀한 느낌을 준다.






반룡경(蟠龍鏡)고려시대 14cm ‘박가분자료관’소장

또 하나의 동경은 사방 테두리(周緣)에 넓은 테를 돌리고 네모꼴에 맞추어 몸 전체를 구부러지게 표현한, 승천하지 뫃한 반룡(蟠龍)을 나타낸 것이다. 사슴 뿔 같은 모양에 입은 삼각형으로 벌리고 눈은 조그맣고 귀는 상대적으로 크다. 꼬리와 배와 목덜미는 뱀처럼 생겼는데 목 아래로는 맹수의 하체처럼 살이 찐 상태이며 발톱은 세 개다.
자세히 보면 온 몸을 뒤틀며 승천하려는듯 유려하고 리드미컬한 몸짓을 하고 있으며, 은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부분적으로 흰 바탕이고 녹소 또한 좋아 조각 자체가 생동감이 넘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변명 -[이상국]

어느날 새벽에 자다 깼는데
문득 나는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했다
아내는 안경을 쓴 채 잠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네 방에서 송아지처럼 자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게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에게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고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해야 했으므로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 내가 문을 열어놓고 자는 동안
바람 때문에 추웠던 모양이다,라며
멀쩡한 문을 열었다 닫고는
다시 누웠다

................................................................................................
*자다 일어나 괜시리 멀쩡한 문을 열었다 닫고, 무언지 누구에겐가 미안하고 그냥 창피하기도 하고 그런 때가 있지, 그래 왠지 잘못 살아왔는 지도 몰라...이런게 아닌데...늦도록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때가 있긴 있지...

어쩐지 무언가 열심히 해야할 것 같은데 망연자실 넋 놓고 하염없이 쓸쓸해 하다가 걸 곳 없는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지. 오래전 잊혀진 이름 떠올려 보기도 하다가 진작 진작에 낯선 얼굴 가물가물 애써 기억해 내려 도리질 쳐보기도 하지...

그러다 그러다가 마침내 잘 덮고 자는 아들 녀석 이불도 다시 덮어 다둑거리다가
딸내미 얼굴도 쓸어 보다가..허허 여드름이 엉망이구만..혼잣말 해보기도 하지..그러다간 꿈결같이 곤한 잠에 실려가는 꽃같던 마누라 정수리의 흰 머리칼에 눈길이 머물며 가슴만 먹먹해지다가....

어, 벌써 겨울이네. 더럽게 춥네. 투덜투덜 거실을 오래동안 서성이기도 하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철지붕에 대하여-[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하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
*'양철지붕에 대하여'를 읽다 보면
뜨, 뜨거운 어느 해 여름이 생각난다.
세월도 지나고 보면
나달나달 닳아진 실밥같은 거
숱한 추억처럼 흔적만 옛이야기처럼 희미한 거

그렇지
삶에도 적당한 은유가 필요하다면
그렁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
눈물 어룽어룽 잊혀진 노래가사도 생각나고....
쪼작쪼작 껌처럼 오래 씹으며 앙다물던 맹세도 생각나고...
죄처럼 상처를 둘렀으되 온전히 버텨온 지나온 길도 보이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5-12-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셨죠. 오랫만에 글 올리셨네요.
시도 님의 감상도 좋군요. 퍼갈께요.^^

프레이야 2006-01-31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가져갈게요. 좋으네요. 박가분아저씨 바쁘신가봐요. 새해에도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