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채마밭을 본 적이 있을까-[권혁웅]
내 작은 채마밭을 아십니까, 世上의 변두리에 셋집을 얻어 밭을 꾸몄습니다.
마음의 식물들 싱싱하게 자라 제법 무성하답니다.
이곡(李穀)의 소포기(小圃記)를 읽고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세상 바깥에 밀쳐두면 세상 역시 나의 바깥에 있어서,
세상과 내가 소외의 불편함으로 아늑할 때 실은 세상이 나의 채마밭인 것이지요.
내 상처가 세상의 화농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푸른 상추처럼 상처는 뜯어내도 뜯어내도 날마다 돋아났지요.
감자같이 둥글고 울울한 마음 숨기려 해도 줄기를 잡아당기면 뿌리 끝까지 올망졸망한 생각들이 딸려 올라왔답니다.
깨진 사금파리를 밭 둘레에 박아놓았더니 생채기가 뚜렷이 빛나는군요.
우리는 한통속이랍니다.
내 마음의 바깥이 세상의 안이어서 날 끌어안은 세상에 한 시절 기대거나 세상의 바깥이 내 안이어서 팍팍한 가슴 두드리며 살거나......
양파처럼 겹으로 감춘 나를 세상이 벗기려 들 때마다 나는 또 다른 껍질 속에 웅크려 있었어요.
그러나 세상이 밖에서 나를 두드릴 때마다 나 심하게 흔들렸음을 기억합니다.
세상 혹은 그대라는 이름의 산과 들판에 대해서......
파가 울타리 너머 웃자랐군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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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뿔의 북쪽(角北) 땅에 집 한 채 짓고 시조를 쓰는 행복한 시인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가창 지나 헐티재 너머 산 첩첩 구름 둥둥 눈썹위에 가을 햇살 쟁쟁한 날
남한산성 반닫이, 까치호랑이 민화, 금강산 장안사 풍경 그림, 제주 동자석, 잘 생긴 조선 질항아리 구경하고, 너른 마당 돌확과 맷돌로 꾸며진 정원에서 한껏 즐거웠습니다.
권커니잣커니,
몇 잔 술에 취하면서
내 마음의 채마밭에도 온갖 상상속의 아욱이나 상추 쑥갓 따위...푸성귀를 심고 돌확엔 수련도 몇 포기 가꾸며 더러 청개구리도 수련 그늘에 몸을 쉬어가는 곳.
언젠가 나이 들어서는
뭐, 아이들 대학만 가고 나면
아니 아, 아니 3년 뒤 5년 뒤 정말 딱 10년 뒤...
세상 변두리에 터밭 하나 일굴 궁리에 몰두했습니다.
임자 없을 때 하늘 만 평 재빨리 헐값에 사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