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꽃]-김 상 옥


그 꽃은
작은 싸리꽃
산들한 가을이었다

봄 여름
가리지 않고
언제나 가을이었다

말라서
바스러져도
향기 남은 가을이었다


.......................................................................................................
*'싸리꽃' 뒤로 하고
'향기 남은 가을' 이승에 남기시고
며칠 먼저 떠나가신 사모님 뒤좇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총총 하늘나라로 가신 초정 선생님!

노 시인의 부음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김상옥님의 수필집 "시와 도자"에서 읽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시골서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상경한 이듬해의 일.
어느 하루 인사동을 지나다 가게 주인과 외국인이 백자 연적을 놓고 8만원에 흥정 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이중 투각에 네모꼴의 그 연적이 마음에 든 김상옥님은 당신이 살 테니 절대 외국인에게 팔지 말라고 한 후 값을 깍아 7만5천원에 흥정 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재산이라고는 전세 보증금 10여 만 원이 전부.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당일치기 돈 마련이란 막막한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전후사정을 듣고 어이없어 하든 아내는 말 없이 나가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달러 빚을 얻어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시인에 그 아내라고 밖에는 달리 무슨 말로 설명하랴. 그처럼 무모할 정도로 도자기를 좋아했던 김상옥님은 그 후 인사동에서 한동안 '아자방'이라는 고미술전문점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으며 조선 백자만 두고 본다면 당대 일급의 소장가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 옛 선비들은 지필묵을 가까이 하며 시(詩)와 서(書)는 기본이요 다시 여기로 문인화를 그리기도 했었다. 이처럼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한 사람을 삼절(三絶)이라 했지만, 이제는 시서화 모두에 능한 사람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하기에 정제된 언어로 전통미 형상화에 일생을 건 시조를 차치하고도 시서화 삼절에 능한 김상옥님은 근래 보기 드문 옛 선비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일찌기 "시와 도자"에 수록된 김상옥님이 아자방 시절에 모은 옛 청화백자 화장용구 사진과 당신이 그리신 백자 달항아리에 붉은 홍매가 꽂혀 있는 그림에도 물끄러미 맥 놓고 빠져든 적이 있거니, 이제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혜안을 그 어느 누구에게서 엿볼 것인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4-11-26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살길이 바뻐서 그렇지 여전히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답니다. 아마, 숨어 있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요?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