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난초 - 130년 만에 증명된 예측 과학자처럼 1
달시 패티슨 지음, 피터 윌리스 그림,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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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처럼 시리즈 첫번째 책 '다윈의 난초'.

이 시리즈는 초등 3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용어가 조금 어려운 것들이 나오지만(과학책이니 어쩔 수 없는) 해당 용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잘 활용한 지식 그림책이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그림책은 다윈이 1862년에 마다가스카르에서 받은 별 모양 난초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꽃은 꿀샘에서 꿀을 만드는데 꿀샘의 길이가 29.2센티미터나 되는 이 난초는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연구를 시작한다.

꽃가루받이는 꽃가루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하는데 '수분'이라고 한다. 이렇게 꿀샘이 긴 꽃은 곤충들이 어떻게 수분을 할 수 있었을까를 고민하던 다윈은 마침내 이런 결론을 내린다. 마다가스카르 어딘가에 29센티미터가 넘는 길이의 주둥이를 가진 나방이 있었을거라고. 그러나 다윈이 18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이 나방을 찾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20년 후 로스차일드 남작과 카를 조단이라는 곤충학자가 나방을 소개하는 책을 썼고 1992년 독일의 곤충학자 루츠 틸로 바서탈 박사가 박각시나방이 별 모양 난초 꽃에서 꽃가루를 묻히고 날아가는 것을 발견하여 130년 만에 다윈의 예측이 증명되었다.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한다. 곤충학자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한 박각시나방이 다윈이 예상했던 그 나방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꽃가루받이를 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장담을 하지는 못했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예측이 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관찰이 필요하다. 때로는 운도 조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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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4-27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갈라파고스의 핀치 새의 부리 모양과 먹이 종류에 대한 것이 진화론의 단초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알았어도 난초의 종류와 가루받이 방법에 대한 것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하양물감 2022-04-27 13:48   좋아요 0 | URL
어린이책이지만 저의 지식도 확장되는것같아요^^

프레이야 2022-05-08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과학 그림책으로 아주 흥미롭네요.
우리도 배우고요. ^^

하양물감 2022-05-08 22:16   좋아요 1 | URL
그림책이다보니 짧긴 하지만 그래서 핵심만 쏙쏙...
이런 책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읽게 되겠지요.

다윈의 연구는 많은 과학적 사실이나 연구에 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패러데이의 촛불 - 양초 한 자루가 던진 질문 과학자처럼 2
달시 패티슨 지음, 피터 윌리스 그림,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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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3학년 이상 과학 그림책으로 지식그림책에 해당한다. 주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다. 글밥이 많지는 않지만, 어려운 용어도 있어서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림이 있어서 이해를 도와주므로 용어에 얽매이지 말고 그림을 보면서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면 도움이 되겠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과학 교육 강연인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배경으로 하여 마이클 패러데이의 강연을 소개하고 있다. 1848년에 처음 강연을 한 <초의 화학사>는 1861년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책 제본사의 조수였는데 책 제본보다 과학책 읽는 데 더 큰 흥미를 느껴 실험 일기도 쓰고 다른 과학자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과학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심이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또다시 즐거운 집중을 하게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 재미있어하고 더 알고 싶은 영역은 시키지 않아도 집중하게 되고, 가르치지 않아도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마이클 패러데이 역시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잘 살려 공부를 하였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과학책을 썼다.

"여러분 이 초 한 자루에 어떤 과학이 담겨 있을까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 새로운 결과가 나올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 원인은 뭘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을 가져야 시간이 걸려도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촛불 하나를 보면서 초의 재료는 무엇인지, 모세관 작용이란 무엇인지, 공기의 흐름에 따라 불꽃의 모양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패러데이의 질문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과학 지식을 알게 된다.

#패러데이 #초등저학년과학책 #과학그림책 #지식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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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오히라 노부타카 지음, 오정화 옮김 / 밀리언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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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무심코 일을 미루거나 시작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바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못났기 때문도, 의지가 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여러분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p.22)라고. 인간의 뇌는 목숨에 지장이 없는 한 변화를 피하고 싶어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의 스위치가 커진 듯이 의욕이 고취되고 즐거움을 느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런 류의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은 '도파민'이라는 단어에 '또 도파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도 이 책이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 도파민을 분비할 수 있도록 작은 실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큰 변화가 아니라 작은 액션이므로 실천이 어렵지도 않다.


자기계발서, 특히 일본 도서는 책 한권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책도 260페이지에 이르지만 결국은 37가지의 행동패턴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37가지의 행동 패턴을 소개하고 '이런 사람에게 추천', '바로 행동하는 비법'을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01 행동이 망설여질 때는 임시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완벽주의인 사람, 계획을 세우다가 끝나는 사람

[바로 행동하는 비법] 비록 임시일지라도 '지금은 이것'이라고 결정하고 움직인다.

'임시 결정과 임시 행동'을 해 본 후 최초의 기대나 예상과 다른 성과가 나온다면 행동 방향을 수정하면 된다. 일단 행동의 첫발을 디디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첫발을 내디디기가 어렵다면 '10초 액션'이라 부르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10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뜻한다. 이 단계에서는 누구도 실패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10초 정도의 작은 행동이라면 뇌는 변화에 바로 대응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 브레이크'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① 원인을 특정하여 방해 요인을 배제한다.

② 목적에 집중하여 방해 요인의 영향을 줄인다.


'지금 바로 oo를 한다'라는 형태로 메모를 해두는 '10초 지시 메모', '아침 첫 번째 지시 메모', 1분간 눈감기, 자신과의 약속, 플랜B, 플랜 C를 만들기 등 간단하지만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를 '고통 회피'와 '쾌락 추구'로 정리한다. '고통 회피'란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고, '쾌락 추구'는 '원하다'라는 욕구이다. 고통 회피 스위치는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바로 행동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는 할 수 있다. 해냈다!'라는 긍정적인 목표 이미지를 그리는 겨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이미지의 힘을 잘 사용하고 있다. 반면 일을 미루는 사람은 '불가능하다', '어렵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불가능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하지 않을 이유, 바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행동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 된다. (P.125~126 요약)


10초 만에 할 수 있는 자기 긍정감을 높이는 다섯 가지 행동을 살펴보자.


1) 자신에게 지적할 때는 '알아, 알아'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2) 인정받고 싶을 때는 '열심히 하고 있어'라며 스스로 어깨를 토닥여준다.

3)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생각이 지나친 사람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오감을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감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면 좋다.

4) 좋지 않은 기억을 잊고 싶다면 입꼬리를 1mm 올린다.

5) 지쳐 있을 때는 위를 바라보고 크게 기지개를 켠다. 지치고 피곤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 본 내용을 보더라도 하지 못할 것은 없다. 저 정도 행동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이 행동에는 '동기'와 '목표'가 필요하다. 분명한 동기와 목표가 있다면 망설이고 미룰 일이 없다. 사람이 행동을 하는데는 강력한 동기와 원대한 목표가 구심점이 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37가지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렵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우리 뇌의 도파민을 분출시켜 행동하게 만든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재바르게 행동하고 진척도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시작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원칙적으로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하는 모드와 쉬는 모드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었으며, 위의 내용은 제가 직접 읽고 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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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소리 스콜라 창작 그림책 30
정진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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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작가의 《심장 소리》를 읽었다. 


아이는, 달린다.

일 등을 하려고 달리는 것도 아니고

공을 잡거나 살을 빼려는 것도 아니다.

달리기마다 많은 이유가 있듯이

이 아이가 달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아이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그제서야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아이는 달리기를 한 후 만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개인 SNS를 사용하다 보면 1년 전, 5년 전, 10년 전, 혹은 무려 14년 전의 게시글이나 사진을 보여 주며 과거의 나를 추억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오래전 작성했던 일기장이나 주고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남긴 기록을 통해 기억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들, 거기서 나던 냄새, 귓가를 간지럽히던 소리들, 내 손에 느껴지는 감촉들. 그런 것들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왜 달리는 것일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품에 안고 있었던 그 긴 시간이 떠올랐다. 이 그림책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독자인 나는 과거로, 기억 속으로 그렇게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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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제전 -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걸작 논픽션 23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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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반란의 에너지와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 ‘제물’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과 제1차 세계대전을 비교하며 그 의의를 설명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 것처럼 전쟁에서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 죽어갔다. 저자는 이 병사들을 ‘제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봄의 제전」에서 희생양은 애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기려졌다. 메시지, 음악, 작품의 테마, 안무까지 모든 것이 불편했다. 이 작품은 현대적 반란의 여러 본질적 특징을 담고 있었기에 단편적 관객으로부터는 열광적 참사를 이끌어냈지만, 떠들썩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관객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주인공들 그 자체보다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훨씬 더 중요한 증거의 원천(p.10~11)이라고 보며 ‘관객’에 대한 묘사를 이어간다. 작품이 공연되었던 그날 밤은 그 시대의 상징이자 20세기의 지표가 되었고 최신식 파리 샹젤리제 극장, 핵심 관계자들의 사상과 의도, 관객의 소란스러운 반응까지 모두 ‘모더니즘’의 발전에서 획기적인 이정표였던 셈이다.


러시아 발레단의 단장이었던 댜길레프는 예술을 구원과 재생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구원은 도덕적 관습과 관습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러시아를 포함한 서구 문명의 경쟁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윤리에 지배되는 우선적 가치들로부터의 해방이었다.(p.65) 예술은 생명력이며, 삶을 붇돋우는 종교적 힘을 지닌다. 그는 예술가의 자율성과 도덕성은 상호 배타적이라고 믿었고,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보았다. 도덕은 추(醜)의 발명품이며 추의 복수였다. 미(美)를 향한 해방은 에고이즘과 개인적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댜길레프는 예술이 현실을 가르쳐주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관객은 예술적 경험에 중요하다고 보았다. 


19세기의 많은 지식인에게 자아와 사회, 물질계로부터 소원해지는 진짜 원인은 성(性)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중간계급은 쾌락을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으로 해석했고 감각은 죄악이라고 의심받았다. 따라서, 성도덕 쟁점이 현대적 운동을 위해 부루주아적 가치에 맞서는 반란의 매체가 돼야 했다. 동성애자는 반란의 이미지의 중심이 되었다. 무용의 신이라 불렸던 니진스키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대담한 정신, 순수함과 무모함의 조합으로 한 세대 관객 전체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p.71) 이전까지는 시적 영감의 원천이자 숭배의 대상, 공연 예술에서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주목받았다면,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갖춘 남자가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 


1914년 8월, 대부분의 독일인은 자신들이 개입하게 된 무력 충돌을 정신적 의미로 이해했다. 전쟁은 무엇보다 하나의 관념이지, 독일의 영토 확장을 노린 음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p.156) 전쟁이 발발했을 때 독일인들은 자기들의 “도덕적 우월성”, “강한 정신력”, “도덕적 정당성”을 확신했다.(p.158)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서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민주주의를 위하여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전쟁”이라는 관념이 부상했다. 많은 이에게 전쟁은 천박성, 제약, 관습으로부터의 구원이었고.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전쟁 열기에 사로잡혔다.


일부 젊은이들은 전쟁을 반가운 모험으로 여겼다. 그들은 전쟁을 미래로, 진보로, 혁명으로, 변화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이 변해감에 따라서 적은 갈수록 추상화되고 영웅은 이름을 상실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무명의 병사로 바뀌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중반부가 되면 전쟁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들은 뒤집어진다. 무인지대에서 무더기로 희생자가 된 병사들은 전쟁의 최대 이미지가 되었다. 


무수한 공격에 노출되어 시간이 지나면 병사는 반사작용에 따라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왜 앞으로 나아가는지는 몰랐지만 충성스럽고 성실하며 명예롭게 움직인다.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대의명분’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병사는 훈련을 통해 몸에 밴 규칙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교육, 성장 배경에 의해 주입된 가치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개전 후 몇 달이 지나자 영웅주의가 빛이 바래고 진 빠지는 소모전에 들어서자 의무라는 개념이 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목적이 변하는 지점이다.


19세기 중간 계급의 이상적 도덕률에서 개인적인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사회 조화, 공공복리, 공공선이었다. 개인적인 자제는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태도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공공에 봉사한다는 관념, 즉 의무는 이 계급의 위대한 성취가 됐다.(p.300) 1914년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전쟁에 나간 사람들은 주로 봉사와 의무 관념으로 충만한 중간계급이었다. 이전 전쟁이 왕조 간, 봉건적/귀족적 이해관계, 군주 간 대립으로 시작한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역사상 최초의 중간계급 전쟁, 부루주아 전쟁이었다. 의무는 신의가 없고 비열한 외국의 공격에 맞서 조국을 지킨다는 말로 들렸다. 따라서 전쟁 초기에는 이 의무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명령이었다. 


전쟁은 문명의 행진과 진보의 지속에서 거쳐가는 한 단계였고, 문명과 진보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토대로 여겨지는 것에 기반을 뒀다.(p.303)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 의무 관념은 옅어지고, 병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무너지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위기 상황에서 손발이 말을 듣지 않거나 용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1917년이 되자 의무라는 말은 사라진다. 진짜 전쟁은 1918년에 끝났다.


전쟁의 이미지와 어휘는 1920년대 모든 형태의 문화에 스며들었다. 그 시대의 문학, 영화, 광고, 정치까지 청년 숭배에 지배됐다. 전쟁에서 젊은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빠진 구세대는 젊은 반항아들에게 딱히 항의하지 않았다. 1920년대의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정치를 멸시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성과 합리성, 불변성, 신념은 사라지고 운동, 우울증, 신경증만 남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이 나타난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어른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라는 말을 많이 했다. 누군가의 경험은 그 사람의 가치체계와 사고방식을 바꾸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외국과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이 곧 전쟁이라는 생각을 한다. 국가를 위한 의무와 충성보다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가까운 곳에서 지금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민간인이 죽음을 당하며 이름없이 스러져간 군인들이 있다. 세계 질서를 바로잡는다면서 무기를 들이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불이익을 강제하고, 네 편 내편 갈라서 편 먹지 않으면 따돌리고, 무시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가까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소식을 듣고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쉽지는 않았다. 봄의 제전과 세계대전을 엮어서 생각하기 위해 두 번, 세 번을 다시 읽었다. 잠재적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걱정’이 커진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무슨 봉사 활동 하듯 참전하러 간 개인이 있는가 하면, 자취방 이사할 때도 챙기고 알아보고 살펴볼 게 많은데, 두 달 만에 옮기겠다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도 본다. 명분과 목적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실리’가 없으면 국민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축제의 제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희생의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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