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념 -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피트 데이비스 지음, 신유희 옮김 / 상상스퀘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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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와 '전념하기 반문화'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탐색 모드에만 머무르고 있다. 왜 우리는 망설이는 걸까? 

저자는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느 하나에 전념했다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둘째, 유대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언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헌신하면 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 평판, 통제감에 혼란이 생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셋째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나에 헌신하면 책임감 때문에 다른 것은 될 수 없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며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는 우리 경제가 특정한 장소, 사람, 사명 등의 특정 대상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명예 대신 무관심이 도덕성의 기준이 되고, 기술이나 신념을 갖기 보다 경력을 쌓고 출세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 저자는 과거 어쩔 수 없이 헌신하거나 지금의 선택지 열어두기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긍정적 대안으로 '자발적 전념하기'를 제시한다. 자기 스스로 특정 신념과 기술, 장소와 공동체, 직업과 사람에 전념하기로 선택을 하는 것으로 그것들과 충실하게 관계를 맺자고 말한다. 저자는 더 많은 사람이 무한 탐색 모드에서 벗어나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변화에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변화는 느리게,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일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만약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꾸준한 헌신은 필요없을 것이다. 초반에 느끼는 환희나 분노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꾸준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변화를 만드는 일이 전투 전략을 짜는 일보다 관계를 일구고 유지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변화의 길에는 '단순화'하거나 '조정'하거나 '자동화'할 수 없는 과정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기관과 공동체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뉘앙스를 배우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흐름을 가져야 한다. 

만약 우리 세계가 끝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우리를 밤새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전쟁이나 폭동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상적인 것 즉 가꾸지 않은 정원, 오갈데 없는 사람들, 무시당하는 대중의 소리 등으로 밤을 지새우곤 한다. 그러나 이런 불안을 실제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전념하기는 개인적인 기쁨, 사회적인 번영,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보상을 준다. 전념하기는 우리 안에서 믿음이 유기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어느 한가지에 몰입하면 두려움이 희미해질 수 있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무한 탐색 모드에도 장점은 있다. 특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효하다. 이 시기에는 여기저기 탐색하는 것이 즐겁다. 탐색을 통해 자기에게 맞는 공동체나 정체성을 찾았을 때 느끼는 기쁨 또한 매우 크다. 무한 탐색 모드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고 재밌으며, 큰 위험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새로운 경험을 아주 많이 할 수 있다. 융통성은 탐색의 가장 분명한 장점이다. 융통성과 탐험의 기회가 가져다 주는 중요한 결실은 진짜 자아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또다른 장점은 새로움이다. 삶에서 가능한 많은 새로움을 즐기겠다는 생각은 욜로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반대로 포모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남들만큼 충문히 경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가리킨다. 

언젠가는 이 탐색을 마치고 전념하기를 해야 할 순간이 온다. 무한 탐색 모드의 융통성은 '결정 마비'로 이어진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여기저기 탐색만 하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전념할 자신이 없어진다. 더 많은 선택지를 탐험할수록 선택하지 않은 대안에 미련을 갖고, 존재하는 모든 매력 요소를 결합한 허구적인 대안에도 사로잡힌다. 그 많은 선택지와 노력에도 결과는 언제나 기대만 못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쾌락의 쳇바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만족감을 좇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 탐색 모드는 고립을 낳을 수도 있다. 아노미는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느끼는 절망이 아니라, 득점판이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며, 여행 중에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절망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지가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다. 아노미의 해독제는 진짜 공동체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같은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또 우리에게도 애정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아노미는 공동체의 부족, 규제의 부족, 문화적 규범, 도덕적 지침, 규칙이 부족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같이 어울릴 친구뿐만 아니라 거기에 부여되는 책임, 사명, 기대치, 열망, 명예까지도 원한다. 구성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집단이 오히려 더 번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 원한다. 책임감이 우리를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현대는 과거에 비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지역, 역할, 생활방식, 기대치와의 관계가 한결 느슨해졌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방식으로 선택지가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사람들은 비자발적 헌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속박에서 벗어난 다음 무언가를 하기를, 헌신하기를 원한다. 

전념하려면 '전념하기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를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상상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력,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근성, 관계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열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계속해서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비자발적 헌신에서 벗어났지만 자발적 헌신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탐색과 전념 사이의 긴장감이 계속되면 결국에는 결정 마비, 아노미, 피상적인 삶이 주는 괴로움이 융통성, 진짜 자아찾기,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을 저해한다. 이러한 긴장감을 잠재적 불안, 번아웃, 일방적인 동요, 단순 무기력 상태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p.83)

전념하기를 향해 가는 길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는 것이 위대한 운동에 뛰어들거나 공동체를 위한 슈퍼맨이 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신념은 별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스스로 전념할 수 있는 한 가지면 충분하다. 우리의 헌신을 기다리는 기술, 프로젝트, 지역, 공동체, 기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기 위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p.113)

대의에 헌신하는 것은 시민의 헌신이다. 사회의 운명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은 비전을 행동으로 옮긴다. 자신이 사는 지역과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은 애국자이다. 애국심은 우리나라가 '최고'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우리나라의 한 부분이기에 사랑한다. 내가 알고 내가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진정한 의미의 애국심은 국가와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마음이다. 건축가의 전념하기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시민과 달리 건축가는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비전을 그려본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 혁심은 기술 발전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다. 기술의 대부분은 유지보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유지하고 지키는 사람이다. 

친구 하나가 지역 도서관에서 열리는 월간 독서 토론에 갈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유난히 춥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녀는 코트를 집어들고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것 같다."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가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세상을 지탱한다. (p.132)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전념하기의 한 갈래다. 오랫동안 노력해서 기술을 갈고닦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수의 경지에 오른 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전념하기의 마지막 갈래이면서 가장 중요한 헌신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동료를 말한다. 누군가에게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되는 일은 금세 또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과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이나 공통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친구가 되는 기술을 쌓은' 사람이라는 내용이다. (p.142)

전념하기의 길을 갈 때 무언가에 전념했다가 나중에 다른 것에 전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두려워한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려면 선택에 대한 부담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부담감 없이 전념하고자 결심할 수 있다. 

부담감을 내려놓았다면 이제 결정마비를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감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선택지의 장단점을 생각하느라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자기가 중시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은 존경하는 영웅의 사례를 수집해서 이 상황에서 '영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대입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장단점 목록은 이때 도움이 된다. 결정을 내렸으면 실천을 해야 한다. 일단 해보고 생각하라. 선택지 고르기의 과제는 '올바른'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유대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정체성, 평판, 통제감'이 위협받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자신의 자아를 고정적이고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개인적 특성이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을 자신의 자아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유기적인 것이라고 보다면 여러 관계를 통해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헌신하는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정체성 형성을 도와준다. 

또한 자신의 자아가 과정적이고 독립적이기 않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평판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보편적인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하기 보다 매력점이 분명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특정 소속을 피하려는 사람을 우리는 실체가 없다고 표현한다. 특정한 것에 헌신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경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독립적이고 고립된 상태에 있을 때 통제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지만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한 통제감을 느낄 수 있다. 타인과 함께 공동체를 이룰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혼자일 때는 스스로 변화하기가 어렵지만 공동체는 그런 불안과 걱정을 이겨낼 수 있게 하여 변화가 가능하게 도와준다. 전통을 바꾸려면 전통이 필요하고, 규칙을 바꾸려면 규칙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면 공동체 안에 속해야 한다. 인간 관계는 특히 더 먼저 상대방의 신뢰를 얻어야 조언할 수 있다. 독재정권은 시민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사유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갈등을 힘으로 다룬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유대를 형성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일에 모두가 참여한다. 전념하기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고를 수 없었던 다른 선택을 아쉬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념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었을 모든 새로운 순간을 아쉬워 하는 것이다. (p.202) 

우리가 새로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만성적인 포모가 찾아온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보상은 갈수록 줄어들고 즐거움이 지루함으로 변한다. 그러나 목적은 이와 반대로 작용한다. 목적은 지루하게 시작해서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목적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은 깊이 있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깊이가 곧 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사는 인생이니 깊이 파고드는 것이 낫다. 깊이 파고드는 것이 좋은것임에도 우리가 항상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정이 힘들수록 성취감도 크다. 기다림은 힘들었지만 열매를 수확할 때가 되면 그동안의 기다림은 보상을 받는다. 전문지식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식을 쌓으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사라진다. 전문지식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포착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도 갖출 수 있다. 작은 전념이라도 거기에 깊이가 더해지면 폭발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은 지루함, 산만함, 불확실성, 유혹, 목표 변질, 고통과 피로가 있다. 


과거에 비해 확실히 선택지가 많아졌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져 있다. 소셜미디어는 점점 더 짧은 컨텐츠로 승부를 본다.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이 지루하고 즐겁지 않으면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동안 '경험'은 다양해질 수 있을 지 모르나 '깊이'는 전혀 없게 된다. 들어는 봤지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본 적은 있지만 그것의 의미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내 삶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지도 않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툴을 이용해서 생각하지 않고도 쉽게 살 수 있다. 쉽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또한 내 한 평생 잘 살았다고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념하기'를 통해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두 가지의 삶을 비교해볼 수 있었으니 그 다음 실천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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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
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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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책읽기, 글쓰기, 그림책...이런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게 '나'이다. 한때는 국내 작가들의 소설에 푹 빠진 적도 있고, 한때는 일본문학을 내도록 읽기도 했다. 전공 도서인 국어학과 국문학을 다룬 책, 실용 국어와 한국문화를 뒤지고 다닌 적도 있다. 최근에는 독서와 그림책 등을 다룬 책을 주로 읽는다.


어지간해선 벽돌책도 마다하지 않는데 특히 그 내용에 푹 빠져 읽을 때는 7~800 페이지의 분량도 많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이 그랬다. 앞서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파크에 이어 또 벽돌책이었다.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하자 묘한 재미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였다.


이 책은 문학에 숨겨져 있는 25가지의 발명품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문학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 문학의 원작자라고 칭할 수 있는 최초의 발명가인 엔헤두안나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테크놀로지를 끌어온다. 테크놀로지란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모든 것을 뜻한다. 수많은 발명품들이 우리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왔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떤 점에서 테크놀로지란 말인가? 저자는 인간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문학이 풀어나간다고 본다. 인간의 뇌가 제기하는 온갖 문제와 감정을 다룬다.


"창조물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부로 눈을 돌렸지만, 문학은 우리 자신으로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부로 눈을 돌린다."(p.24)


무슨 주제를 다루더라도 이 사람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껴가진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직접 작성하지는 않은 걸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발굴한 첫 번째 발명품이 있다. 바로 플롯 반전이다. 플롯 반전의 밑바닥에는 '확장'이 있다.


'확장은 플롯이나 캐릭터, 이야기 세계, 서술 스타일 또는 스토리의 다른 핵심 요소에서 일반적 패턴을 취한 다음 그 패턴을 확대하는 것 '(p.36)을 말한다.


확장은 모든 문학의 근저에서 놀라움, 황홀감, 경외감을 일으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치유 과정을 강조한다. 카타르시스는 건강에 좋지않은 것을 정화한다는 뜻으로 두려움을 정화한다. 그리스 비극의 치유 효과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기 효능감', 즉 외상 후 두려움을 잘 처리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이 있을 때 더욱 효과적이다.


제1장부터 저자는 문학 속에 숨겨진 발명품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호머의 《일리야드》에서는 용기를 불러온다.


'용기는 우리가 요즘 서술자라고 부르는 문학 테크놀로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서술자는 스토리 뒤에 숨겨진 마음을 가리킨다."(p.58)


스토리텔링은 구술되었기 때문에 어조와 취향이 드러난다. 일인칭 화자인 나의 목소리로 전하는 시에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문학은 어떤 스토리든 튀해서 사랑 이야기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p.96)


공감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기분이다. 우리의 공감력을 개선할 도구로는 '사과'가 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우리 뇌가 사과를 받아들이면, 분노와 피해의식 같은 부정적 감정은 줄어드는 반면 신뢰와 사랑 같은 긍정적 감정은 늘어난다.'(p.113)


풍자가의 발명품은 세 가지가 있다. 패러디, 암시,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풍자는 원래 남을 비웃으려고 고안되었지만 우리 자신을 풍자하면 기분이 고양되고 통증도 억제할 수 있다. 남들을 풍자하면 우리 자신을 끌어내려 불안감과 심장마비로 몰아간다.


'흥미진진한 논픽션은 또다른 수수께끼이다. 논픽션 자체는 스릴러와 반대된다.교과서나 교육 매뉴얼, 또는 궁금해서 펼쳤다가 지루해서 금세 덮어버리는 책들의 영역이다. 그런데 미래에서 들려준 이야기와 결합하면'(p.163) 우리의 심장을 고동치게 할 수 있다.


스트라파롤라는 반전의 감정적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상정했다. 하나는 반전이 부여하는 행운을 확대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았다'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줄폭시킨다. 또 하나는 왕실 신부를 불완전하고 무능하게 그릴 수 있다. '그녀를 공주로 만든 것은 미덕이 아니라 우연이었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순전한 우연이었어.'(p.203~204)


샤를 페로는 동화의 반전을 걱정하였다. 나쁜 스토리텔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비논리적 스토리텔링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운에 대한 믿음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햄릿》은 슬픔과 이룬 타협의산물이요, 슬픔을 이겨낸 치유의 산물이었다.(p.220)


세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음모 없는 플롯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애도뿐만 아니라 상실의 아픔에서 비롯된 눈물도 동시에 처리한다. 복합적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정신적 장애를 유발한다. 세익스피어의 극에서 복합적 슬픔의 원인은 죄책감이다. 햄릿은 우연한 깨달음읠 결과로 죄책감을 없애게 된다. 햄릿의 치유 역시 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설은 산문 장르의 하나로 교묘한 주장으로 논리를 뒤덮는다. 역설은 본래의 진실을 철회하게 할만큼 강력하거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대신 역설은 반대되는 진실에도 우리 마음을 열게 할 만큼의 설득력이 있었다. 문학적 역설을 뒤집는 대신에 진실을 두 가지로 확대한다.


이 책에서 나는 그동안 읽은 여러 책을 다시 만났다. 그때는 잘 몰랐던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많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문학의 목적, 존재 이유를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묘하게 이끌리는 점이 많다.


제인 오스틴이 구사하는 자유 간접 화법이 무엇인지, 메리-셀리가 아드레날린으로 맥박을 고동치게 하고 코티솔로 눈을 이글거리게 하여 우리의 스트레스를 나쁜 괴물에서 착한 괴물로 전환시키는 것을 본다. 조지 앨리엇은 실패를 치유할 시도로 감사 테크놀로지를 개선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 루이스 케럴의 '좋아, 그래서' 스토리, 소설의 독백, 재발견까지 다양한 문학적 발명품은 우리의 뇌가 하는 질문과 호기심을 풀어나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룬 문학적 발명품들이 거의 다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의 각 장의 마지막에는 문학발명품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읽은 책이 좀 늘어서 이 목록 중에도 제법 있었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제목은 익히 알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계속해서 읽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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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19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원서를 읽고나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소개하는 책을 다 읽지는 못하니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읽고 다시 원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잘읽었습니다.
하양물감님,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하양물감 2022-07-2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읽은 책일 때 더 이해가 잘되었어요. 앞으로 읽을 책도 그럴것같아요
 
회사인간 - 진짜 인간으로 나아가는 인문학적 승진 보고서
장재용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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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책을 덮은 후 나의 첫 감상은 글쎄, 저자 말대로 살기가 어디 쉬운가? 그렇게 살면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행복하다고 할까? 아니, '남'은 둘째치고 '나'는 행복할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자가 자신의 꿈을 쫓아 살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자가 꿈을 쫓는 동안 누군가는 자신의 꿈도, 시간도, 자유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거나 동의할 수 없었다.

저자는 "나는 회사 업무와 자기 성장을 연결 짓는 세상의 말들을 이젠 믿지 않는다."(p.49)라고 말한다. '반복되는 업무는 지겹고, 누군가 시켜 하는 일은 굴욕적인 것이어서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하는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하루를 패배하며 시작하는 월급쟁이에게 노동은 양가적이다.'(p.57)라고 말한다.

모든 월급쟁이들이 매일 가기 싫은 회사에 억지로 끌려가듯 생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나는 월급쟁이지만 회사에 가서 만나는 사람이 반갑고, 하는 일이 즐겁고,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뿐만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고자 애쓰는 시간을 즐긴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활용해서 회사 직원들과 함께 나누기도 한다. 월급쟁이의 애환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랐다. 휴직계를 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모습은 일반적인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직까지 할 마음으로 휴직계를 냈지만 다행히도 휴직이 받아들여졌고, 오히려 회사홍보팀에서는 그것을 회사홍보용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아마도 저자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회사인간으로 살지 마라. 자기 꿈을 쫓아 한번 움직여봐라.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했지만 아무 문제 없지 않나? 라고. 정말 그럴까? 회사에서는 아마도 '당신'이 비운 두 달을 위해 업무 분장을 하고 대안 마련을 하느라 분주했을 것이고,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 휴직을 허용했으니 '우리 회사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홍보라도 해야겠기에 당신을 이용했을 것이다. 결국은 당신도 '회사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그리고 집에서는 어떤가? 가족과 상의는 했을지, 휴직이 아니라 사직이 되었을 경우도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다.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을 응원한다. 휴직은 아니었을테고, 가족이 모두 동의하고 움직였을테니..

저자는 회사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자들의 답을 들려준다.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회사인간은 '자유를 잃은 노예'이며 '삶의 모든 결정에서 차선을 택한 자들'이라 말한다. '최선'을 선택할 수 없는 일은 무수히 많다. 그런 과정에서 차선을 선택한 것이 잘못일까? 저자는 쾌쾌묵고 오래된 철학자들의 사유를 인용하면서, 죽은 자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탐탁치 않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 절반이 철학적 해석에 할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인간'에서 '독립'하고픈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나는 '노예'근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월급쟁이들이 '아이히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다. 시간당 생산성을 향상시켜 근무시간을 줄이고, 국가에 해주지 못하는 것은 회사 복지 제도를 통해 보완하는 등 '회사'도 많은 변화를 했다. 그런 흐름에 발목을 잡는 '제도'가 있다면 개선해나가는데 작지만 힘을 보탤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자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흔치 않다. 나의 노동을 폄화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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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 슬금슬금 북극곰 이야기샘 시리즈 6
이가을 지음, 허구 그림 / 북극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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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나다. 도깨비의 형체를 특별히 정해 놓지 않아서 그림으로 남은 것도 찾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은 일본의 오니라고 하니 그것도 알아두면 좋겠다.


도깨비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살았다고 한다. 사람들과 아주 많이 친해지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도깨비들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것을 보고 하느김 같다고 여겼을 수 있다. 그들은 그냉 생겨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는데 도깨비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었다. 그냥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데 도깨비는 무엇을 할 수는 있지만 무엇을 가질 수는 없다. 이런 저런 특징을 가진 우리 도깨비들도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뭐냐면 [사람을 도와주되 골려주면서 도와줘야 하고 골려 주되 다치게 해서는 안 되고 골려 주면서 도와줘서 어떤 사람이 깜짝 놀라 "이게 뭔 도깨비 조화 속이랴?"라고 하는 말을 천 번을 들어야 한다.](p.13)


하나밖에 모르는 도깨비 하나는 하나만 아는 도깨비다. 돌쇠도 하나밖에 모르는 아이다. 하나밖에 모르는 도깨비 하나는 돌쇠네 헛간에 자리를 잡는다. 하나밖에 모르는 도깨비는 돌쇠가 이쁜 돌멩이를 가지고 와서 헛간에 두는 것을 보고 돌쇠가 가져오는 것들을 한가득 가져와서 헛간을 채운다. 하나밖에 모르는 도깨비는 계속해서 돌쇠나 헛간을 채워놓는데... 아, 어쩌면 저렇게 물건을 모아다 놓는 것이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랑 겹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집에도 도깨비 하나 있으면 좋겠네. 대장간 도깨비 뚝딱이도 비슷한 이야기이다.


씨름꾼 도깨비 얘기는 도깨비 얘기 중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아닐까. 씨름을 좋아하는 도깨비와 밤새 씨름을 하다 골탕을 먹는 이야기이다. 때로는 빗자루와 싸우기도 하고 이 이야기처럼 암소를 빼앗기기도 한다. 밤에 어슥한 곳을 걸어갈 때 말 거는 도깨비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자고~~


사람이 되고 싶은 물도깨비는 이런저런 물건을 모은다. 혹시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면 언젠가는 물도깨비가 두 배로 돌려주러 올지도 모른다. 도깨비 이야기를 읽다보면 엣날에는 밤 새는 줄 모르고 즐겁게 들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도깨비 하면 '공유'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장난을 치는 도깨비 하나.... 내 곁에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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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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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의 제인오스틴 전집을 사놓고 겨우 오만과 편견 하나 읽었다. 그 외 다른 책은 줄거리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냥 책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책을 정할 때 일부러 이 책을 추천했다. 언젠가 읽으려고 사 놓은 책을 읽기 위해서. ^^


쉽지 않았다. 우선 778페이지나 되는 책인데다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읽기가 좀 더딘 편이다. 감정 이입도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당연히 주인공인 패니와 에드먼드에게 집중을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크로포드 남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결혼 문제에 관해서라면 늘 그런 게 아니란다. 사랑하는 메리."


“결혼 문제에서 특히 그래요. 지금 말하고 있는 그 두 사람의 결혼 운에 대해서는 적절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요, 친애하는 그랜트 부인, 결혼할 때 기만당하지 않는 사람은 여자건 남자건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된답니다. 앞으로 제가 처하게 될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언제나 그렇게 보여요. 결혼이라는 것이 모든 거래 중에서 상대에게 가장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가장 정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거래라는 점을

고려해보면요."


“저런! 너 런던의 힐 거리에 살면서 결혼에 대해 정말 잘못 배웠나 보다."


"돌아가신 가엾은 숙모의 결혼 생활은 분명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관찰한 것들만 근거해서 말한다고해도, 결혼이란 책략을 쓰는 작전 같은 일이에요. 결혼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인척 관계에서 뭐라도 한 가지 득이 있겠지, 혹은 상대방이 교양과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자신이 완전히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그 정반대의 상황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을 제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요! 바로 이런 게 사기가 아니고 뭐겠어요?"


"얘, 그 생각에는 틀림없이 상상이 어느 정도 가미된 것 같구나. 미안한데 네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어.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절반밖에 못 보고 있어. 안 좋은 면은 보지만 위안이 되는 면은 못 보고 있다고. 어디든 사소한 마찰이나 실망은 있는 법이야. 그리고 우리는 모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경향이 있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가지 행복의 계획이 실패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계획 쪽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지. 첫 번째 계산이 잘못되면 두 번째 계산은 더 잘하게 되는 법이야. 어디에서든 위안을 찾아. 사랑하는 메리, 심사가 비뚤어져서 사소한 문제를 중요한 일로 치부하는 제삼자들이 사실은 당사자들보다 더 많이 기만당하고 속아넘어간단다."


"참 훌륭한 말씀이네요, 언니! 언니네 기혼 부인 집단의 단결심에 존경을 표하겠어요. 저도 기혼 부인이 되면 딱 그만큼 심지를 굳게 가질게요. 제 친구들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요. 그럼 가슴 아픈 여러 일들을 피하게 되겠죠." (p.77~78)


책을 읽는 동안 잊어버렸었는데, 메리의 결혼관을 이렇게 서두에 말해두었다. 메리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이란 서로가 서로를 기만하는 거래라고 생각하기에 그녀는 그 거래를 훌륭히 해내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랜트 부인의 대화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행복하게 살기에 그렇게 결혼을 못 시켜 안달인 사람이 많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결혼이 행복하다고만 말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비슷하다.


나는 영악하지만 메리의 행동에 오히려 공감하는 바였다. 내가 닳고 닳아서 그런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성직자, 아니면 재산은 있어도 그 재산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도전이나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에드먼드에게 '성직자'가 아니면 안되냐고 하는 그녀를 나는 이해한다. 도시에서 온 메리와 헨리 남매의 눈에 에드먼드와 패니의 삶이 좋게 보일 리는 없는 것이다.


시골의 삶을 동경하여 귀농을 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거나 실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본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시골의 삶이다. '돈'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른 여자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너는 주목받고 칭찬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던가."(p.315)


메리는 패니를 정확하게보았다. 물론 패니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래 그녀의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패니는 비록 노리스 이모의 잔소리와 미움, 구박을 받고 있을지언정 자신의 집에서 나와 이모 집에서 살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 환경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나는 자주 느껴왔다. 패니가 이모집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그 많은 동생들을 돌보며 자랐다면 그녀의 사려깊은 생각과 처신들은 그다지 형성되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안 그럴수도 있지만)


패니는 이모집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다. 노리스이모가 사랑해마지 않는 언니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인물이 그 정도 눈치가 없을 리가 없다.


패니의 행동은 자신감 없고, 마음은 자존감 낮고, 거기에 몸마저 허약했다. 그런 패니를 잘 챙겨주었던 에드먼드도 그녀를 여자로서 느끼지는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나라도 메리 같은 여자에게 반할 것 같다. 물론 메리의 사고방식에 깜짝 놀란 에드먼드가 패니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좀 의외였다.


노리스이모는 지금 말로 하자면 '가스라이팅'을 저지른 사람이 아닐까?


"분수도 안 지키고 제 본분을 벗어나 터무니없는 일을 하면서 어리석게 구는 사람들 얘기를 하다 보니 네게 조언을 하나 해주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니. 네가 우리 누구와도 함께 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제발 부탁이고 간곡히 바라는데, 너무 나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네 사촌 언니들이라도 되는 양 함부로 말하면서 네 생각을 밝히면 안 돼. 우리 러시워스부인이나 줄리아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내말 명심해. 어느 곳을 가든 네가 제일 미미하고, 네 순서가 제일 마지막이라는 걸 잊지 마. 물론 크로퍼드 양은 목사관이 제집인 양 편안한 태도를 보이겠지. 하지만 네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선 안 돼. 그리고 밤에 돌아올 때 말인데, 에드먼드가 바라는 시간만큼만 그 댁에 머물러야 한다. 결정을 그 애에게 맡겨"


“네, 이모, 딴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혹시 비가 온다면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여, 내 평생 오늘처럼 비가 금방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험한 날씨는 본 적이 없구나, 어쨌든 혹시 비가 온다면 너 스스로 알아서 최대한 잘 해결해야 한다. 너를 위해 마차를 보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나는 오늘 밤 분명히 집에 안 돌아갈거야. 나 때문에 마차가 나갈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를 철저히 해 가거라."


조카딸은 이모의 말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노리스 이모가 생각하는 만큼이나 안락하게 지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p.350~351)


다행스럽게도 패니는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패니의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성격이든 태도든 그렇지 않고 그녀의 생각이든간에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이라면 역경을 이겨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면의 변화라도 보일텐데 패니에게서는 그런 점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갔을 때 자기 식구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3부에 넘어가면 책의 내용은 급한 마무리가 된 듯하다. 에드먼드가 메리에게서 패니에게로 마음이 옮겨가는 과정을 오롯이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그들의 결혼으로 귀결된다. 헨리와 마리아가 사랑의 도피를 한 후 파경을 맞는 과정도 그렇다. 줄리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이츠 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이야기를 마구 풀어놓았다가 급하게 거둬들이느라 앞에 비해 지나치게 생략된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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