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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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수메르와 우르에 관한 책을 연속해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수메르에 관해 알고 접했다기보다 고대의 신화와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우르를 소개하는 책까지 읽었던 것이다. 그때, 계속해서 나왔던 이야기가 바로 길가메쉬였다. 언젠가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한번은 읽어볼리라 생각을 했다. 책은 진작 구입해두었지만 읽지 못하다가 이번에 동아리에서 함께 읽게 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바벨탑의 신화가 쓰이기 전에 이미 약 4000년 전에 최초의 나라 수메르에는 우르라는 도시국가가 있었다고 이야기가 시작한다. 필경사가 수메르어로 쓴 점토서판에는 '세 역사'가 씌어있었다.

첫번째 '그때에'는 뱀, 전갈, 하이에나, 사자, 개, 늑대 같은 동물조차 없었던 시절이었고, 인간에게 싸움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두번째 '그때에'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p.27) 세 번째 '그때에' 가서 문제가 발생했다. 충돌이었다! 외침과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수메르 신화의 가장 위대한 두 신은 엔릴과 엔키였다. 엔릴은 신들의 지배자였고, 엔키는 인간의 창조주였다. 둘의 대립과 화해는 곧 수메르 신화의 진수였다. (p.28)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 수메르에서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 지식인들이 수메르의 '최초의 국가'의 '최초의 신화'를 접하면서 종교적인 전승을 섭렵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기사회생하기를 바라면서 엔릴과 엔키 같은 위대한 수메르 신들 대신 야붸를 옹립하였고, 이집트인들은 수메르로부터 문자에 대한 개념을 들여와서 독창적인 문자로 발전시켰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메로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수메르에 관해 배울 일이 거의 없었다. 1800년대에 길가메쉬 서사시의 수메르어 판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판본의 판독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메르어 판본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길가메쉬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쉬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폭군에 가까웠다. 소란스럽고 거만한 길가메쉬! 인간을 창조한 신들은 우루크의 평화를 위해 그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자를 만들어 상대하게 하고자하였다. 그렇게 해서 엔키두가 창조되었다.

엔키두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샴하트가 '여자의 힘'으로 그를 개화시켰다. 동물과 같았던 엔키두를 '사람'처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여자'였다. 그로 인해 그의 몸은 느려졌지만, '이해력'은 사람처럼 넓어지고 신처럼 지혜로워졌다. 폭군인 길가메쉬를 상대할 인간으로 창조된 엔키두는 길가메쉬와 만나다. 길가메쉬는 꿈에서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온다는 계시를 받는다.

엔키두를 만난 길가메쉬는 그와 함께 움직인다. 젊은 혈기에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싸움을 하는 길가메쉬. '죽음'보다도 명성에 대한 욕망이 더 컸던 길가메쉬는 '죽음을 향한 원정'을 강행한다. 훔바바를 죽였고, 하늘의 황소를 죽였다. 길가메쉬를 상대하기 위해 신들이 보낸 엔키두였지만 길가메쉬를 벌하기 위해 엔키두의 목숨을 가져간다. "신들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슬픔을 남기고, 꿈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고통을 남긴다네."(p.363) 인간의 몸이었던 엔키두는 병상에 누운 지 열 이틀만에 죽고 만다. 가장 친한 친구인 엔키두의 죽음 이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길가메쉬의 모습에서 영웅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영생할 수도 젊음을 유지할 수도 없다. 젊은 길가메쉬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권력을 쥐면 영생을 얻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인걸까? 권력의 맛을 본 자는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을 손에 쥔 자는 그것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리고 영원히 살고자 한다. 인간의 욕심이 영생에 이르면 다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아마도 탐해서는 안될 것을 탐해서가 아닐까?

길가메쉬 서사시를 번역한 저자는, 이 서사시가 세계 최초의 신화였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의 내용도 이 신화의 원형을 따른다고 본다. 엔릴의 전승은 후대에 이르러 그리스신화와 히브리신화로 연결되었고, 이는 히브리족의 창세기 <베레쉬트>로 이어진다. 저자는 최초의 신화의 주인공들은 수메르의 신이었고, '최초의 국가'를 건설하고 다스렸던 것은 수메르의 왕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록 폭력적이고, 미성숙한 인간이긴 했지만 최초의 영웅은 실존인물이었던 길가메쉬였다고 글을 맺는다.

수메르의 신화를 판독한 이후 수메르신화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앞선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이전에 다른 신화가 있었고, 성경 이전에 대홍수와 인간의 창조에 관해 다룬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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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2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들한테 맞장뜨는 길가메쉬가 좋아요. ㅎㅎ

하양물감 2021-03-02 16:43   좋아요 0 | URL
젊은이의 치기라고 할까요?? ㅎㅎㅎ 뭐 그때는 그래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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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집에 앉아서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p.14)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작품을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하려면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작품의 완전한 효과를 느끼려면 그 존재와 함께 있어 봐야 한다"(p.14)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


미술에 관한 지식도, 경험도 적은 내가 작품에 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책과 이미지를 통해 접했던 작품을 실제로 만났을 때의 감동은 나도 안다. 그 경험은 나로하여금 다시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으로 이끈다.


저자는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의 직업상 이유로 우리보다 그런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직업상 이유라하더라도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직접 그 작품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바로 그 장소에서 만나는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작품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기대, 그곳에서 만날 작품과의 낯선 만남, 작품이 있는 주변 환경, 작품과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짜증까지도 날것 그대로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미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새롭고 흥미로운 이들을 만나기 위해 늘 움직인다. 저자는 좋은 대화를 통해 지적디엔에이를 교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듣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나누었던 좋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가들이 나에게는 낯선 현대미술가들이었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언젠가 내가 그 곳에 가게 되면 그들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몇 년전에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접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지나야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라고 했던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1938, 루마니아 트르구지우)을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 보아서는 왜 '가장 유명한 미술'인지 알 수 없다. "사진으로는 길고 얇은 물체가 공중을 향해 찌르듯 표현"되지만 "관객이 그 근처에 섰을 때는 이 작품이 위로 계속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p.33) 느껴진다.


브랑쿠시의 고향에서 저자는 브랑쿠시가 사용한 도구가 어린 시절부터 사용한 일반적인 도구였으며, 물건을 높고 삐죽하게 만드는 루마니아 공예의 특징을 알아차린다. 이는 이 작품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가 사진(이미지)으로 보는 작품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직접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놓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저자는 "예술 작품에 관한 한, 바로 거기에서 작품을 앞에 놓고 감상하는 것의 대안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p.35)고 말한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경험도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만, 저자가 하는 말의 의미에 공감하였다.


퍼포먼스의 미술의 대모라고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인터뷰는 '퍼포먼스미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 바꾸어주었다. "사람들은 사생활에서 연약함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은' 일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생활해요. 하지만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거대한 대중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어요. 또한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죠."(p.61) 그녀는 관객을 움직이는 힘을 퍼포먼스 미술에서 느꼈다. 물론 작가가 스스로를 고문하는 작품을 하는 것에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작품활동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가고 있다는 그녀의 말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제니 새빌은 "아이가 네다섯 살 때 물감으로 마구 낙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인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본능적인 것임"(p.89)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새빌을 회화라는 아름다운 매체에 미래가 있다는 징표로 보았다. 현대미술에 살짝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새빌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말처럼 "관객이 회화와 같은 공간에 있"(p.96)다면 조금 달라질까? 복제본은 실제 회화와 크기, 색깔, 질감, 투명함의 정도, 붓 자국의 변화, 빛이 반짝이는 방식 등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결국은 회화 혹은 작품이 가진 전체적인 힘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물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회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나 태피스트리도 어디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의 위치나 배열도 작품에 관한 이해에 차이가 생겨나게 한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내가 낯설어하는 현대미술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 작품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거기에서 그 작품을 만날 날을 기대한다. 지금은 우리 나라의 작가와 작품에 조금 더 다가가보는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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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산문집 (천줄읽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박지원 지음, 박수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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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활자본 17권 6책으로 간행된 박영철본 《연암집》에 실린 산문 237편 중 42편, 《열하일기》에 실린 글 중 10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연암 박지원이라하면, 조선후기 실학자로 열하일기, 허생전으로 기억되며 정조의 문체반정과 연관하여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다.

이 책은 [사이에서 생각하기], [문장가의 마음], [생활의 발견], [현실과 사회]로 구분하여 글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이 중에서도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문장가의 마음]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27페이지까지 쑥쑥 읽히다가 이후부터 힘이 좀 빠진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읽히는 힘이 다르게 작용하는 듯하다.

"본 것이 적은 사람은 백로를 기준 삼아 까마귀를 비웃고 물오리를 기준 삼아 학의 긴 다리가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사물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는데 저 혼자 의심해 화를 내며 한 가지라도 생각과 다르면 만물을 모조리 비방한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날개보다 더 검은 색이 없긴 하나 얼핏 옅은 황금색이 돌고, 다시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면 자주색으로 솟구치다, 눈이 어른어른하면 비취색으로도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이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저 사물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리는 것이다." p.16~17

고정관념을 꼬집고 있는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분명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배우지만 사회에 나와서 보니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은 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데 말이다. 연암은 까마귀 날개의 진실을 알려주면서 사회적 모순과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있다.

연암의 글을 읽다 보면 적절한 비유와 인용을 통해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암 산문집의 많은 이야기가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고 이야기한다.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린 것이고,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남에게 달렸다. 비유하자면 귀울음이나 코골이와 같다. (중략) 자기 혼자만 아는 것은 언제나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또 자기가 깨닫지 못한 것은 남이 먼저 아는 것을 싫어한다. 귀울음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니 하물며 병이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코골이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주면 화를 내니, 하물며 병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귀울음은 듣지 못해도 내 코 고는 소리를 일깨워준다면 작가의 뜻에 가까우리라." p.85~87

연암의 비유가 돋보이는 글이다. 글을 쓰는 일과 독자의 비평을 비유하고 있다. 내 귓속에서 앵앵 우는 소리는 남이 들을 수 없다.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나는 들리는데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코 고는 소리는 잠을 자는 나는 듣지 못하지만 곁에 있는 이들은 시끄러워한다. 옆 사람이 일깨워주려 하지만, 난 코를 곤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앞을 보면 뒤를 못 보고, 왼쪽을 돌아보면 오른쪽을 보지 못한다네. 왜 그럴까? 방 가운데 앉아 있으면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게 되고 눈과 공간이 너무 가깝게 된다네. 차라리 방 바깥으로 나가 문에 구멍을 뚫고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다네. 한쪽 눈만을 집중하더라도 방 안의 물건을 죄다 볼 수 있지." p.94

연암이 알려주는 책읽기의 요령이다. 책의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요약하여 그 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글쓴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사심을 없앤 다음 깨달음을 얻는 독서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글쓰기에 있어서는 중국의 것을 모방하지 말고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의 삶과 정서를 노래해야한다고 알려준다. 이를 조선의 노래, 조선풍이라고 한다. 연암은 우리의 주체성을 높이는 발언을 한 것이다. 강정과 개암을 통해 일상적인 글이 더 참되고 훌륭한 글임을 밝힌다. 평범한 말이나 일상의 언어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진부하게 쓰지 말고 진실되게 쓰는 것이다. 문장이 화려하고 눈길을 끈다고 해서 좋은 글이 아니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관해 쓴 글은 읽다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아, 슬프다네! 내가 예전에 친구를 잃은 슬픔은 아내를 잃는 것보다 크다고 말한 적이 있네. 아내를 잃은 자는 그래도 두 번 세 번 재혼을 할 수 있고, 서너 차례 첩을 얻어도 안 될 것이 없네. 옷이 터지거나 찢어지면 깁거나 꿰매고, 그릇이 깨지거나 이지러지면 다시 새것으로 바꾸는 것과 같지. 혹 나중 아내가 전처보다 낫기도 하고, 혹 나는 늙었지만 새 아내는 예쁘고 어려 신혼의 즐거움이 초혼과 재혼 간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네. 친구를 잃은 아픔에 이르면, 내가 요행히 눈이 있긴 하나 내가 보는 것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이며, 내 요행히 귀가 있긴 하나 내 듣는 것을 누구와 함께 듣겠는가? 내 요행히 코가 있긴 하나 내 냄새 맡는 것을 누구와 함께 맡겠는가? 내 요행히 마음이 있긴 하나 내 지혜와 깨달음을 누구와 더불어 같이 한단 말인가?"p.163~164

친구와는 할 수 있는 일을 왜 아내와는 같이하지 않는 것일까? 친구를 잃은 슬픔이 아내를 잃은 슬픔과 비할 것이 못된다고 하니 그저 헛헛할 뿐이다. 그래도 저 글에서 아내를 남편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생각하고 나니, 섭섭하던 마음도 사라진다.

연암의 글을 읽다보니 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해제가 있어서 읽는데 도움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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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송병권 외 옮김 / 평사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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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를 다룬 책을 연이어 읽게 되었다. 


앞서 읽은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박훈, 21세기 북스)은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 책은 유럽 열강을 모델로 한 일본의 근대화과정을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 천황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영국 저널리스트 월터 바지호트가 시도한 성찰을 검토하여 이를 '일본 근대'가 무엇이었는지에 답을 하고 있다. 바지호트는 '전근대' 이후 영국의 국가구조를 둘러싼 자유로운 토의의 축적이 '토의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였고, '근대'개념은 '토의에 의한 통치'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았고 인간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으로 전통과 습관을 중시했다고 말한다. 바지호트는 '낡은 동양의 관습적 문명'에서 '새로운 서양의 변동적 문명'으로 이행, 즉 '전근대'에서 '근대'를 향한 세계적 규모의 이행이 서양 문명권에 의한 동양 문명권의 식민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p.23)는 명제의 진실성을 믿었다. 영국에서 출현한 '토의에 의한 통치'를 지표로 하는 '근대'개념은 영국을 주동력으로 한 식민지화에 의한 '근대'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동양에 있으면서 서양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일본이 이웃 국가를 식민지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아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계속된 양국의 갈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당시 일본이 국제 정세를 읽고 빨리 움직여 서구 열강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인 것이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일본보다도 훨씬 먼저 전 세계에 식민지제국을 건설하던 서구제국주의들 사이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일본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정책과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된 것은 왜인지, 식민지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한반도와 그외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생긴 것은 왜인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볼 수 있었다. 


1장에서는 '토의에 의한 통치'로서 의회제와 정당정치가 어떻게 성립했는지를 다룬다. 


'입헌주의'는 메이지 헌법 하의 체제원리였으나 곧바로 정당정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바지호트는 '관습의 지배'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 정치의 형태가 이행하는 것을 근대라고 하였는데 일본의 선진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메이지헌법 하의 귀족원, 중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는 미국의 상하원 양원제에서 볼 수 있는 체제원리인 권력 분립제였다. 권력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 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여겼으며, 어떠한 국가 기관도 단독으로 천황을 대행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메이지헌법 하에서 일본정치는 체제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기때문에 체제를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가진 비제도적인 주체가 필요하였다. 이로 인해 번벌과 정당이 나타났다. 


2장에서는 '무역'과 일본의 자본주의 형성을 살펴본다.


국민국가 형성을 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는 자립적 자본주의 형성을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이미 확립된 유럽 자본주의를 모델로 삼은 일본은 국가주의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정치적 리더가 동시에 경제적 리더가 되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가 형성된 것이다. 일본은 유럽적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전략적 수단으로서 유럽식 자본주의를 자주적으로 형성하였다. 선진산업기술, 자본, 노동력, 평화의 네가지 조건을 국가가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자립적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식민지화'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그것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고찰한다.    


일본은 아시아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식민지 영유 국가였다. '식민지'란 특정 국가 주권에 종속되면서도 본국과 달리 본국에서 시행되는 헌법, 기타 법률이 시행되지 않는 차별적인 영토(p.167)를 말한다. 랴오둥반도 반환 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럽열강과 함께 권력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청일전쟁이 초래한 국제정치상의 변화는 러인전쟁 이후 식민지 제국 일본의 팽창방향을 확정하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성은 경제적 이익보다 군사적 안전보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유럽의 식민지와는 달랐다. 즉 식민지제국 일본의 팽창은 본국과 국경선이 연결된 남방 및 북방 지역의 공간적 확대로 이루어졌다.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 식민지화의 시동이 걸린다. 


4장에서는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이었는가를 알아본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담당한 '국가의 기축'으로서 기능을 일본에서는 황실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부재가 천화의 신격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나, 근대 일본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문명개화', '부국강병'은 오로지 일본 국가의 대외강화를 목적으로 한 근대화 노선이었다.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시대에 세계가 자국중심주의로 치달아가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본은 '안전 보장 환경'의 변화를 강조하고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강병'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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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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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과 말귀 못 알아듣게 말하는 사람이 만나 말해봐야 복장 터질 일밖에 없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뿐인데 '그 인간 문제 있다'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어휘력과 인격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경우 어휘력 '부족'보다 '잘못'에 가깝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 등을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잃는다." p.6

이 책을 읽는 동안 앞에서 밝힌 저 문장이 탁 와닿았다. 직장생활을 하든, 사회생활을 하든, 또는 가정에서조차도 늘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열 받았던 일이 하루이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다음 '내가 못 알아듣게 말한'사람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의사소통의 실패경험이 늘어나면 날수록 소심해지는 것은 어느 누구랄 것도 없다.

책에서는 어른다운 어휘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말이나 글의 의미나 어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눈치'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눈치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척하면 척! 알아듣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것도 어뤼혁이 부족해서 그렇단다. 어휘력은 개념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필요로 등장하여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알게 되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국어시간에 낱말 공부를 꽤 했었다. 비슷한 말, 반대말도 늘 시험을 쳤고, 낱말의 뜻을 찾아 공책에 쓰고 외웠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전이라는 것이 낱말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단어를 눈에 익히는 과정을 거쳐, 해당 낱말의 뜻을 알게 되는데, 요즘은 '낱말'을 써서 검색하면 바로 답이 나오는 시대다 보니 어휘력을 증진할 시간이나 과정이 없다.

그렇다면 정확한 어휘는 왜 필요한가? 우선은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해석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언어의 한계는 상상과 인식의 한계상황을 불러온다. 어휘력은 낱말에 대한 지식의 총합이며, 문장을 낱말로, 서술을 명사나 형용사로 줄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또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간단한 표현이라도 고도의 두뇌활동이다.

"눈으로 읽은 적 없고 귀로만 들은 말을 손으로 적으려니 벌어지는 웃기는 맞춤법이다. 거의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고 싸잡아 단정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p.117

"한쪽에서는 글자를 줄이다 초성으로까지 줄여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불필요한 경어와 존대로 문장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p.119

"우리말은 형용사와 동사가 잘 발달해 구태여 피동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p.120

"말과 글은 주어가 목적어를 하게 하는 것을 기본 구조로 파생한다. 그래야 목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p.120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갖지도 않은 독심술을 부리지 말고 말(글)을 건네자. 그 말(글)이 가진 힘을 믿자. 우리가 어휘력을 키우고 싶은 궁극적인 목적도 결국 소통에 있지 않던가." p.133

그렇다 결국은 소통이다. 내 말을 잘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궁극의 목표는 의사소통이다.

모국어 사용자들은 언어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왜냐하면 말맛을 알기 때문이다. 말뜻과 말맛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말맛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텍스트보다 콘텍스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에서 교정일을 조금 하고 있다. 문서 교정을 하고 있는데, 간혹 문법적으로는 틀리지 않았지만 뭔가 어색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는 아예 해체해 놓고 문장을 바꿔버리는데 소리내어 읽어본 후 어색한 것은 삭제하거나 조정을 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방법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문장 자체는 번듯한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는 글이다. 전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원고를 쓴 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고 묻는 것이다. 말하면서 생각났는지 생각해서 말하는지 몰라도 한결 명확한 내용으로 들려준다. 내용을 간략하게 줄이고 압축할 수 있는 것도 어휘력이다." p.183

나도 자주 하는 일이다. 최초 문서 작성자에게 연락해서 무엇을 전하고자 하였는지 묻는 것이다. 애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문장을 수정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바꾸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사와 형용사를 모조리 걷어내자는 말이 아니다. 문장의 적재적소에 형용사를 다채롭게 구사하면 문장이 특별해 보일 수 있다.

"인간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을 일어난 것처럼 상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것들을 상징을 통해 이해한다. 글자가 기호라면 글은 상징이다. 글자를 읽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다른 차원에 있다. 저자도, 독자도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글자가 아닌 글을 읽는 것,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기대고 있는 콘텍스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P.258

어른의 어휘력,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을 학교만 졸업하면 싹다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책을 읽고 새로운 어휘를 습득하고, 사용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른의 어휘력'. 대학입시가 아니라 살면서 우리가 필요해서 쓰는 어휘력이다.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이라면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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