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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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집에 앉아서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p.14)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작품을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하려면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작품의 완전한 효과를 느끼려면 그 존재와 함께 있어 봐야 한다"(p.14)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


미술에 관한 지식도, 경험도 적은 내가 작품에 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책과 이미지를 통해 접했던 작품을 실제로 만났을 때의 감동은 나도 안다. 그 경험은 나로하여금 다시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으로 이끈다.


저자는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의 직업상 이유로 우리보다 그런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직업상 이유라하더라도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직접 그 작품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바로 그 장소에서 만나는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작품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기대, 그곳에서 만날 작품과의 낯선 만남, 작품이 있는 주변 환경, 작품과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짜증까지도 날것 그대로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미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새롭고 흥미로운 이들을 만나기 위해 늘 움직인다. 저자는 좋은 대화를 통해 지적디엔에이를 교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듣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나누었던 좋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가들이 나에게는 낯선 현대미술가들이었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언젠가 내가 그 곳에 가게 되면 그들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몇 년전에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접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지나야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라고 했던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1938, 루마니아 트르구지우)을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 보아서는 왜 '가장 유명한 미술'인지 알 수 없다. "사진으로는 길고 얇은 물체가 공중을 향해 찌르듯 표현"되지만 "관객이 그 근처에 섰을 때는 이 작품이 위로 계속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p.33) 느껴진다.


브랑쿠시의 고향에서 저자는 브랑쿠시가 사용한 도구가 어린 시절부터 사용한 일반적인 도구였으며, 물건을 높고 삐죽하게 만드는 루마니아 공예의 특징을 알아차린다. 이는 이 작품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가 사진(이미지)으로 보는 작품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직접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놓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저자는 "예술 작품에 관한 한, 바로 거기에서 작품을 앞에 놓고 감상하는 것의 대안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p.35)고 말한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경험도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만, 저자가 하는 말의 의미에 공감하였다.


퍼포먼스의 미술의 대모라고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인터뷰는 '퍼포먼스미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 바꾸어주었다. "사람들은 사생활에서 연약함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은' 일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생활해요. 하지만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거대한 대중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어요. 또한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죠."(p.61) 그녀는 관객을 움직이는 힘을 퍼포먼스 미술에서 느꼈다. 물론 작가가 스스로를 고문하는 작품을 하는 것에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작품활동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가고 있다는 그녀의 말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제니 새빌은 "아이가 네다섯 살 때 물감으로 마구 낙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인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본능적인 것임"(p.89)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새빌을 회화라는 아름다운 매체에 미래가 있다는 징표로 보았다. 현대미술에 살짝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새빌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말처럼 "관객이 회화와 같은 공간에 있"(p.96)다면 조금 달라질까? 복제본은 실제 회화와 크기, 색깔, 질감, 투명함의 정도, 붓 자국의 변화, 빛이 반짝이는 방식 등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결국은 회화 혹은 작품이 가진 전체적인 힘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물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회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나 태피스트리도 어디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의 위치나 배열도 작품에 관한 이해에 차이가 생겨나게 한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내가 낯설어하는 현대미술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 작품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거기에서 그 작품을 만날 날을 기대한다. 지금은 우리 나라의 작가와 작품에 조금 더 다가가보는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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