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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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수메르와 우르에 관한 책을 연속해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수메르에 관해 알고 접했다기보다 고대의 신화와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우르를 소개하는 책까지 읽었던 것이다. 그때, 계속해서 나왔던 이야기가 바로 길가메쉬였다. 언젠가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한번은 읽어볼리라 생각을 했다. 책은 진작 구입해두었지만 읽지 못하다가 이번에 동아리에서 함께 읽게 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바벨탑의 신화가 쓰이기 전에 이미 약 4000년 전에 최초의 나라 수메르에는 우르라는 도시국가가 있었다고 이야기가 시작한다. 필경사가 수메르어로 쓴 점토서판에는 '세 역사'가 씌어있었다.

첫번째 '그때에'는 뱀, 전갈, 하이에나, 사자, 개, 늑대 같은 동물조차 없었던 시절이었고, 인간에게 싸움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두번째 '그때에'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p.27) 세 번째 '그때에' 가서 문제가 발생했다. 충돌이었다! 외침과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수메르 신화의 가장 위대한 두 신은 엔릴과 엔키였다. 엔릴은 신들의 지배자였고, 엔키는 인간의 창조주였다. 둘의 대립과 화해는 곧 수메르 신화의 진수였다. (p.28)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 수메르에서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 지식인들이 수메르의 '최초의 국가'의 '최초의 신화'를 접하면서 종교적인 전승을 섭렵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기사회생하기를 바라면서 엔릴과 엔키 같은 위대한 수메르 신들 대신 야붸를 옹립하였고, 이집트인들은 수메르로부터 문자에 대한 개념을 들여와서 독창적인 문자로 발전시켰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메로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수메르에 관해 배울 일이 거의 없었다. 1800년대에 길가메쉬 서사시의 수메르어 판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판본의 판독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메르어 판본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길가메쉬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쉬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폭군에 가까웠다. 소란스럽고 거만한 길가메쉬! 인간을 창조한 신들은 우루크의 평화를 위해 그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자를 만들어 상대하게 하고자하였다. 그렇게 해서 엔키두가 창조되었다.

엔키두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샴하트가 '여자의 힘'으로 그를 개화시켰다. 동물과 같았던 엔키두를 '사람'처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여자'였다. 그로 인해 그의 몸은 느려졌지만, '이해력'은 사람처럼 넓어지고 신처럼 지혜로워졌다. 폭군인 길가메쉬를 상대할 인간으로 창조된 엔키두는 길가메쉬와 만나다. 길가메쉬는 꿈에서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온다는 계시를 받는다.

엔키두를 만난 길가메쉬는 그와 함께 움직인다. 젊은 혈기에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싸움을 하는 길가메쉬. '죽음'보다도 명성에 대한 욕망이 더 컸던 길가메쉬는 '죽음을 향한 원정'을 강행한다. 훔바바를 죽였고, 하늘의 황소를 죽였다. 길가메쉬를 상대하기 위해 신들이 보낸 엔키두였지만 길가메쉬를 벌하기 위해 엔키두의 목숨을 가져간다. "신들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슬픔을 남기고, 꿈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고통을 남긴다네."(p.363) 인간의 몸이었던 엔키두는 병상에 누운 지 열 이틀만에 죽고 만다. 가장 친한 친구인 엔키두의 죽음 이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길가메쉬의 모습에서 영웅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영생할 수도 젊음을 유지할 수도 없다. 젊은 길가메쉬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권력을 쥐면 영생을 얻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인걸까? 권력의 맛을 본 자는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을 손에 쥔 자는 그것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리고 영원히 살고자 한다. 인간의 욕심이 영생에 이르면 다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아마도 탐해서는 안될 것을 탐해서가 아닐까?

길가메쉬 서사시를 번역한 저자는, 이 서사시가 세계 최초의 신화였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의 내용도 이 신화의 원형을 따른다고 본다. 엔릴의 전승은 후대에 이르러 그리스신화와 히브리신화로 연결되었고, 이는 히브리족의 창세기 <베레쉬트>로 이어진다. 저자는 최초의 신화의 주인공들은 수메르의 신이었고, '최초의 국가'를 건설하고 다스렸던 것은 수메르의 왕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록 폭력적이고, 미성숙한 인간이긴 했지만 최초의 영웅은 실존인물이었던 길가메쉬였다고 글을 맺는다.

수메르의 신화를 판독한 이후 수메르신화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앞선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이전에 다른 신화가 있었고, 성경 이전에 대홍수와 인간의 창조에 관해 다룬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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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2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들한테 맞장뜨는 길가메쉬가 좋아요. ㅎㅎ

하양물감 2021-03-02 16:43   좋아요 0 | URL
젊은이의 치기라고 할까요?? ㅎㅎㅎ 뭐 그때는 그래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