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한정주 지음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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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율곡 이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되다가도 곰곰 생각해보면 그닥 아는 것이 드문 인물이기도 하다. 이이를 말할 때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과의 일화나, 중고등학생 시절 윤리시간에 배운 것 정도가 떠오를 뿐 딱히 아는 게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나에게 율곡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읽어보게 되었다. 율곡이 평생의 철학으로 삼았다던 <자경문>의 내용을 7개의 핵심주제로 통합정리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 7개의 핵심주제란 다음과 같다.

입지(立志), 치언(治言), 정심(定心), 근독(謹獨), 공부(工夫), 진성(盡誠), 정의(定義)

이 중에서도 나의 눈과 마음을 붙잡은 항목은 입지와 공부에 해당하는 부분들이다. 시대와 사람을 넘어서 존경받는 인물의 이야기라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겠으나 나의 상황과 생각과 부합하는 부분은 특히 마음을 끌기 마련이다.

입지, 큰 뜻을 가져라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항목이기도 하고, 내가 아는 많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여느 자기계발서에서도 볼 수 있는 항목이지만 율곡 이이의 삶과 그의 저서를 통해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이라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작은 항목을 보자면, 뜻을 크게 가져라, 평생의 스승을 찾으라, 반드시 실천하라, 낡은 습관을 혁파하라고 말한다. 지난 1년을 반성하면서 다시 한번 새겨두었다.

사실, 입지는 조금 더 젊었을 때, 조금 더 어렸을 때 가졌어야 할 덕목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덕목이다. 특히, 요즘처럼 삶에 많은 회의가 들 때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나를 잃어버린 것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 나와 같은 이들이 새겨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더불어 내 마음에 들어온 부분은 평생토록 공부하라는 공부.

배우고 익히는 일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일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 하기 싫은 것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평생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왕 하는 공부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특히 이 책에서는 '독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몸으로 배우는 것과 마음으로 배우는 것 둘다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것이 없다보았다. 독서에 관한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율곡이 이렇게 독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독서방법 5가지는 박학, 심문, 신사, 명변, 독행이다. 박학은 두루 널리 배운다, 심문은 자세히 묻는다, 신사는 신중하게 생각한다, 명변은 명확하게 분별한다, 독행은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자세로 읽어야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그동안의 나는 권수만 무리하게 늘렸지 제대로 가슴에 묻은 책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율곡은 한권의 책을 읽고 또 읽으라하고, 바삐 책장을 넘기지 말라고 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책이란 게 귀하다보니 읽고 버려도 되는 것들은 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한권을 읽어도 읽고 또 읽을 가치가 있었을테고, 한장 한장 생각하면서 읽어야했을 것이다. 요즘 같은 때는 책의 홍수라 할만하니 책같지 않은 것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꼭 읽어야 할, 꼭 읽었으면 좋을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을 잘 골라 읽는 것, 그것도 필요하다.

율곡의 독서목록을 보면,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과 심화해서 읽어야 할 책으로 구분이 된다. 지금의 나는 전공서 외에는 그렇게 전문적인 수준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 굳이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더라도 개론서 같은 느낌의 책만 읽어온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아는 것의 깊이가 얕고, 제때 활용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율곡의 독서목록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많이 든다.

이 책에서 제시한 7가지 주제 중에서 나는 두개의 주제를 마음에 담았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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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웃다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9
문부일 외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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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겹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니, 만년2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친구H이다. H는 그 꼬리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것을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을까? 그도 아니면, 조금 더 분발해야 할 자극제로 생각했을까?

언젠가 '베토벤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서도 강마에의 친구인 천재지휘자의 이야기를 얼핏 본 것 같은데 학창시절의 성적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천재'는 그들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다. 천재이기에 감당해야 할 부담감들은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가하면 '천재'곁에는 언제나 약간 못미치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방송에서도 2인자임을 떳떳하게 밝히기도 하고, 2인자이기를 자처하기도 하지만, 2인자는 서럽다. 그들의 노력은 언제나 천재들 앞에서 빛이 바래기 일쑤다. 그러나,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 앞에 놓인 장애물을 장애물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의 수많은 '수혁'이들 역시 그들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수혁이처럼 '표절'이라는 사건을 겪고 난 후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할수도 있다. 청소년기에는 크던 작던간에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경험을 소중한 자신만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청소년문학이 그들에게 좌절과 실패에 대한 간접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청소년들이 겪게 될 좌절과 실패를 줄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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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부일의 또다른 글 '6시 59분'은 '살리에르, 웃다'에 비해 인물의 행동이 좀더 적극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생각에 비해 실천이 느린 편이다. 어떻게 보면 권완수의 행동이 무모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권완수의 실천력을 조금 배울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여 더 나아가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큰 꿈이 없다. 세상을 좀더 넓고 크게 볼 수 있는 마음가짐, 그것이 비록 지금은 무모해보일지라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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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 서평을 보내주세요
수학의 神신 엄마가 만든다 - 수학으로 서울대 간 공신 엄마가 전하는 수학 매니지먼트 노하우!
임미성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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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무슨 무슨 대학 간 누가 쓴 글이나, 무슨 무슨 대학 보낸 누구 엄마가 쓴 글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었다. 특별히 잘할 필요도 없고, 뒤처져있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나 자신이 부모로부터 그런 특별한 대접이라곤 받아본 적 없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만 다르게 살았더라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같다.

그것은 아마도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퇴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학력위주의 사회를 성토하면서도 학력위주로 굴러가는 사회구조를 보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사회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 나는 지금 갈팡질팡 고민이 많아졌다.

처음 이 책 제목만 보았을 때는 솔직히 말해 거부반응이 왔다. 수학으로 서울대 간 공신엄마가 쓴 책이란다. 쳇~! 기분이 나빴다. 자식이 서울대가니 엄마가 뜨는구나. 하고. 영어, 영어, 영어 하더니 이제는 수학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과목마다 엄마가 붙잡고 있으려면 정말 보통 엄마는 엄두도 못내겟다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기분이 나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려고 펼쳐 든 것은 나는 지금 한참 고민중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것저것 다 제쳐두고, 이 책에서 내가 밑줄 쫙 그은 것은, 선행학습이든 뭐든간에 '아이가 받아들이는 만큼' 하라는 것이고, 엄마가 아이곁에서 평생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석달 정도의 훈련을 통해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엄마에게 또하나의 짐을 지게 하는 책이 아니라 엄마의 짐을 덜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한솔이는 이제 한달있으면 4살이 된다. 개월수로는 한참 어리지만, 나이는 벌써 4살이란다.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조만간 학부모가 되고, 조만간 할머니가 되겠지. 그러고보면 아이에게 내가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에서는 세살에서 초등학생까지의 엄마가 할 수 있는 방법론들을 교과과정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다. 교과과정을 무시하지 않은 점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학습지와 문제집들에 대해서도 저자 나름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어서 선택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같다. 또한 수학을 잘하기 위한 방법보다 수학을 좋아하기위한 방법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수학은 계산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이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솔이가 수학의 신이 되기를 욕심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방법론들을 통해, 아이가 (영어와 마찬가지로) 수학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아이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잘해내고 싶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와 저자의 일(사교육현장)을 잘 접목하여 글을 전개한 점. 보통의 다른 책과 달리 이상을 제시하기보다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유아부터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부모가 수학을 못하는데도 내 아이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부모.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선행학습이든 뭐든간에 '아이가 받아들이는 만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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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 - 나의 그림책 이야기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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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문학뿐 아니라 자신의 저작이나 작품들은 보통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나 관람객들에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저자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과대포장되거나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그림책에 대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존 버닝햄은 행복한 작가이다.

나는, 존 버닝햄을, 내 아이에게 읽혀주고 싶은 책을 고르다가 만났다. 어린 시절 마음에 드는 그림책 하나 변변하게 없었던 나였기에 그림책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추억도, 이야기꺼리도 없을뿐 아니라, 그림책을 고르는 안목 또한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의지하게 되는 무슨 무슨 상 수상작가의 책에서 그의 그림책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후 그의 책을 논하는 혹은 추천하는 블로거들의 글을 통해 하나씩 둘씩 만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존 버닝햄의 삶을 짧게나마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중에 하나이다. 나는 (성인인) 작가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 아이들의 코드와 맞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그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지 늘 궁금해왔다. 이 책은,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림책 작가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겠지만, 짧은 코멘트들이 그 작품을 읽는(혹은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하는 것 같다.

긴 세월동안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리고 써 온 존 버닝햄은 이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그리려고 하며 또 그 시도는 시작되었다. 그의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도 그의 그림책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야기 1부가 끝이 났다. 2부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 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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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1-1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양물감님.그림책에 대한 추억도, 이야기꺼리도 없고 안목도 없다는 점이 저와 너무 똑같아요. 저 역시 그렇거든요. 저는 어린시절부터 그림 있던 책을 봤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늘 글자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림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쩐지 느껴지는 이 동지의식이라니!

하양물감 2008-11-23 08:56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저도 어렸을 때 읽은 그림책보다는 보통의 세계명작전집같은것만 기억에 있어요. 최근들어 좋은 그림책이 많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저 아직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더라구요.

지나 2008-11-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존 버닝햄을 좋아하여...이책을 나오자 마자 구입했지요. 부인인 헬렌 옥슨버리와 정말 행복한 부부일것 같아요. 부부란 마주 보는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거라고 하잖아요. 같은 방향을 보는 부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구요. 존버닝햄의 상상력이 정말 좋아요.^^ 아이를 위하는 마음도 정말 좋구요.

하양물감 2008-11-23 08:57   좋아요 0 | URL
지나님, 그렇군요^^ 저 이 책 읽고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걸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작가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구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지요. 그의 작품을 대할 때 또다른 느낌이 들것같아요

부엉이마님 2008-11-2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닝햄 작품은 왠지 슬퍼요. 유쾌하고 아이들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는데도 슬퍼요.ㅜ.ㅜ

하양물감 2008-11-27 11:16   좋아요 0 | URL
그렇기도 하네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거겟죠...
 
천년별곡 푸른도서관 2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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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사랑은, 숭고하거나, 지극하거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사랑이야기가 많은 것은 아마도 그런 사랑을 꿈꾸기 때문일 터. 현실에서는 가벼운 사랑이 판치고 있기에 더욱더 그런 사랑을 꿈꾸는 것이리라.

주목나무공주의 사랑은 별곡체에 담겨 군더더기를 다 빼버렸다. 현실 속의 사랑이 집착과 구속, 강요라는 군살을 붙인 채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면, 주목나무공주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다 떼어버리고 오로지 님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사실,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채 떠난 님을 기다리다 주목나무가 되어버린 공주가 천년을 넘어 그 님을 기다리는 이야기이다. 죽어서도 못잊는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망부석 설화가 이 이야기에도 녹아든 것이다. 보통의 망부석 설화가 기다리는 사람 앞에 뒤늦게 도착한 님이 울부짖으며 일찍 돌아오지 못했음을 후회한다면, 이 이야기는 주목나무가 되어서도 님을 기다리는 공주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떠난 '님'들이 왔다 가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그 많은 인연들이 그저 스쳐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렇게 천년을 거쳐 내게 다시 돌아온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깨닫지 못햇을 뿐.

주목공주의 사랑을 별곡이라는 노래로 지은 것은, 아마도 그 사랑이 천년을 이어가듯, 이 사랑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불러야 할 것이다. 내 사랑이야기를 함께 붙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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