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평점 :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차를 한잔 마시고 있다.
왠지 힘들었다. 대담 형식의 책인데다가 요즘 내가 가장 관심있는 주제라서 술이라도 한잔 하며 수다떠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볼까 했는데......
읽는 내내 '에효~~~'를 연발했다. 마음을 좀 다스릴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엄기호와 하지현이 하는 이야기들은 백프로 내가 경험한 이야기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내가 직접 겪기도 하고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던 일들. 그리고 그 문제를 통감하며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대안도 찾아보았지만 결국 불안함에 못이겨 막차에 올라타는 심정으로 동승하게 된 일들.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문제였기에 해결책이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들여다 본 책이었다.
해결책을 찾았냐고?
물론 해결책은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당신도 나도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이 현실을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나 젊은 부모세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꼭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현실이 눈앞에 보일 것이다.
우리 486세대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보상이 주어지던 세대였다. 그것이 누가봐도 가장 확실한 성공비법이었다는걸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니 자식의 공부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 한참 유행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헬리콥터맘' '슈퍼맘' 같은 말들이었다. 자녀의 성장단계에 따라 인생 계획을 세워주고 가장 효율적인 매뉴얼대로 실패할 확률들을 걷어내 주는 역할을 하는 엄마가 능력있는 엄마였다.
공부로 확실히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사실은 이미 우리 사회가 더이상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내자식만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열심히 치열한 경쟁 속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렇게 효과적인 매뉴얼대로 공부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나? 똑똑한데 자기의 일은 스스로 처리할 줄 모르고 언변은 좋지만 무능하다. 시험문제는 잘 푸는데 삶의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은 형편없고, 남을 품평하는데는 날카로운데 자신을 성찰하는데는 무디다. 공부는 열나게 하지만 삶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공부와 삶은 점점 괴리되어간다. 연애도 인간관계도 학원에서 배운다. 가르칠 수 없는 것들까지 가르치려 하고 누군가 이 힘든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성공을 했다해도 또 바로 그 성공스토리를 책으로 내고 학원을 차린다. 공부중독이 교육중독이 되고 이제는 뭔가 배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경지에 이르렀다. 강연카페가 유행일만큼 역대 최대 강연을 좋아하는 세대가 되었고, '공부중'이라는 푯말을 들고 무한루프중이다. 머릿속 세계는 완전한데 현실은 불완전해서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정신승리를 한다.
예전엔 삶이 단순한 일차방정식처럼 풀렸다면 이제는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화되어 고차방정식이 되었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길이 있다. 그렇지만 이 궤도에서 발을 빼는 순간 삶이 얼마나 힘들어질지, 혹시 나만 보기좋게 망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내가 막차를 타야지. 이 모든게 불합리한 걸 알지만 나까지는 희생하겠다."하는 심정이 되어 발을 못뺀다.
우리 모두 문제를 알고 있다면 답은 어디에 있나?
이 책에서 말하는 답도 사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일단 나부터 이 미친 경쟁에서 발을 빼야한다.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땐 과감히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이미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 미친 드라이브레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많아져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발을 뺄 수 없었나? 더 중요한 해답은 무엇인가?
엄기호는 먼저 학력간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한다. 우연히도 어제 한겨레 신문에 강준만의 칼럼이 실렸는데 제목이 <바보야, 문제는 임금격차야!>였다. 너무 공감이 가는 글이라서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주었었는데, 지금 이렇게 해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이나 입시정책을 해결할 문제는 교육제도 개선이 아니라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라는 거다. 또 우연하게도 요즘 읽고 있는 장하성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도 한국의 불평등은 재산의 차이라기보다는 소득격차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을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가 줄어든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격차가 줄어든다면 모두가 상위 10%를 위해 달려가지 않을 거라는 거다.
지금도 일부 특성화고는 일반고보다 인기가 높다. 그런데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하는 얘기가 '공부해서 무조건 대학가라' 라는 거란다. 사회에 나와보면 임금격차가 심하다보니 제도가 마련되어도 활성화 될 수 없고 다들 또 대학경쟁에 뛰어들거나 도태되어 각자도생하거나 하는 것이다.
일단 학력간 임금격차를 줄이고, 특성화고 같은 직업 중심의 학교가 더 활성화되어야 하며, 직업교육을 선택한 사람들이 공부에 대한 계기가 주어지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라도 대학에 진학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가능하려면 삶의 안전망이 어느 정도는 구축돼 있어야 한다. 괜히 혼자 멋진척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가는 낙오되어 나만 손해볼 것이라는 두려움을 없애 줄 수 있어야 한다. 좀 실패해도 버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지현교수는 지금의 부모세대들에게 이렇게 꼭 당부하고 싶단다.
"교육에 과잉투자 하지마라. 적정선으로 투자를 해라."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아이에게 투자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투자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그나마 시간이 좀 있어서 공부가 영 적성에 맞지 않아 보이는 아들에게 미션을 주었다.
신문 읽기와 독서하기. 그리고 매일 청소년수련관에라도 가서 놀 거리를 찾아 기웃거리기.
우리 아들도 공부중독이라 공부하는 걸 아주 싫어하면서도 또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공부하지 말라는 말이다.
방학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학원으로 뺑뺑이 돌아야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랐으니 아들은 엄마의 미션이 또 이상하기만 하다.
책을 읽고, 나가서 놀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 하기 일쑤라 좀 겁을 준다. 너 지금 하는 그 공부는 니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제로가 되는 공부라고. 그때 멘붕을 겪기 싫으면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놀면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연히 배우고 싶은게 생겨나니까 그걸 열심히 해보라고. 실패해도 그만큼 경험을 한 거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엄마는 진심으로 말하지만 아들은 또 의심스럽다. 엄마가 공부를 더 열심히 안하면 학원비를 안대주겠다고 협박하는 건가? 싶다. 그래서 (하기도 싫은) 공부를 해야한다며 꾸역꾸역 학원으로 간다.
우리집도 이렇게 무한루프다. 나도 아들에게 그렇게 말은 하지만 딱히 공부 대신 이 길을 가라 할 만한 대안도 없다.
그래서 이렇게... 차를 마시는 것이다....(벌써 잔이 싸늘해졌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