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구입한 건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장강명 작가가 4.3평화문학상까지 받았단 말이야? 작가는 제주도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같았는데? 이런 의문때문에, 그리고 사실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닥치고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 4.3평화문학상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는 1회와 2회에는 어떤 작품이 수상했는지 알아보았다.
1회 수상작은 구소은 작가의 <검은 모래>, 2회 수상작은 양영수 작가의 <불타는 섬>이 수상했단다. 전혀 몰랐다.
심사평들을 살펴보니 4.3을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4.3을 직접적으로 다룬 소설이 아닌 작품이 상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불타는 섬>만이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고 제 3회 수상작 <댓글부대> 또한 4.3과는 관련이 없지만 `폭력을 드러냄으로써 궁극적으로 평화를 소망하게 한다`는 4.3 평화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당선작이 되었다 한다. 그래도 나는 소설 속에서 한 줄 언급이라도 4.3과 관련한 부분이 있겠지 했는데 그건 나의 편협한 생각이었나보다. 그래도 장강명 작가에게 고마워해야할 부분은 있다. 작가가 올해 부단한 노력으로 유명작가가 되어주었기에 4.3평화문학상도 더 많이 알려진 면이 있을테니까.
4.3을 직접 겪었거나 직접 겪지는 않았더라도 가족 중 4.3 피해자가 있는 대부분의 제주도민의 입장으로선 4.3에 대한 작품이 수상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다. 진상규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부터는 외면 일색이고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역사가 아닌가. 권력은 외면하지만 문학적으로라도 제대로 자리잡아서 그 정신이 잘 계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직은 4.3문학상에 4.3이 배경이 된 소설들이 많이 응모되고 수상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능력이 된다면 멋진 소설을 하나 써보고 싶었지만 그런 능력은 없고, 들을때마다 그냥 묵히긴 아깝다는 이야기가 우리 가족들에게 전해져온다. 어른들도 말씀하실때마다 ˝소설로 쓰면 소설 몇 개는 나오지......˝ 하시는 이야기다.
나는 제사상에 올라오는 사진으로만 뵌 외삼촌. 우리 가족은 그 외삼촌을 4.3의 회오리 속에 잃었다. 중산간 마을을 통째로 불태워 학살하거나 토벌대에 의해 빨갱이라는 이유로 붙잡혀 구덩이에 파묻힌 것은 아니었다. 그런 억울한 죽음도 제주엔 부지기수였지만 당시 삼촌은 제주 시내 한 중학교 선생님이셨다는데 사상적으로 의심스럽다고하여 경찰서에 붙잡혀 갔고 제대로된 재판도 없이 처형을 당했다 한다. 억울했지만 하소연 할 곳이 없었던, 그래서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던 가족들.
우리 엄마가 열두 살이던 때, 공부도 잘했고 얼굴도 잘 생겨서 동네 처녀들 가슴을 휘저어놓던 듬직한 오빠, `오빠 생각` 노래에 나오는 오빠처럼 정말로 서울 갔다오면서 예쁜 구두를 사오겠다던 오빠는 어느날 인사도 없이 행방불명이 되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다니고 감옥에서 빼내보려고 뒷돈도 쓰고 여러 노력을 하던 중에 어느날 면회를 갔더니 면회가 안된다 해서 이상했는데 알고보니 소리소문없이 이미 처형되었다더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그 후에 삼촌의 아이라며 어린 딸을 데리고 온 참한 처자가 있었고 아들은 이미 죽고 없는데 그의 자식이라며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여자를 인정할 수 없어서 끝내 외면하다가 마침내 받아들여 함께 살기로 한지 얼마 안된 어느날 친정다녀오는 길에 급체로 저세상으로 가버린 여자. 원혼을 풀어줘야겠다며 굿을 하는데 무당의 입을 빌려 나타난 삼촌의 이야기...
소설로 써도 한권으론 모자랄 이야기라 여기에 다 쓸 순 없지만 당시의 이야기를 어른들께 들을 때면 정말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그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해서 이야기 속에 쏘옥 빠져들곤 했다.
조금 더 자라서야 이런 이야기가 우리집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왠만한 제주 사람들의 집에는 다 이런 사연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고, 심지어는 한날 한시에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는 마을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아직까지도 사상을 의심받을까봐 서로 쉬쉬하고 선거만 하면 유난히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엔 더 좁은 사회였던 제주라 왠만하면 다들 괸당(친척)이나 삼촌(이웃 어른)으로 연결되던 곳이다보니 우리 집안 어른들 기억 속에 `수줍은 청년`으로 기억되던 현기영 작가가 어른이 되어 쓴 <순이삼촌>을 읽으며 어른들 이야기가, 그 슬픈 역사가 문학으로 어떻게 승화되는지를 알았던 나는 그런 문학이 좀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런데 막상 소설이 되어 나온 이야기들은 너무 비참한 사건들만의 나열이다보니 문학성을 놓친다거나 제주도 사투리를 잘못 사용하거나 4.3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앞으론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응모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전에 나부터도 제주의 역사나 4.3관련 책들을 더 많이 읽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부대>를 읽은 내 느낌을 쓰려고 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이 책은 처음부터 4.3이 배경이 아닌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도 불편했지만, 읽는 내내 더욱 불편해졌다. 기자 출신의 작가라서 그런지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르타주로 읽힌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현실에 실제로 있는 인물이나 단체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마치 기획 연재 기사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읽어내려니 더욱 불편하다.
각 장의 제목을 괴벨스의 어록으로 붙여놓음으로써 나치독재의 대중조작과 현대의 SNS를 통한 댓글조작이 같은 맥락임을 암시한다.
멘탈이 없어서 멘탈싸움에 강한 팀 알렙 소속의 댓글부대원들은 정치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대중조작에 소모품처럼 사용되다가 용도폐기된다. 그동안 어렴풋하게 느꼈던 조작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걸 보며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내내 지배했다. (물론 그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인터넷 댓글에 예민한 몇몇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무나 직설적으로 말해주니까 힘들다고 할까. 소설은 좀 소설다운 분위기가 나야하는데 말이다.